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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아들도 태어나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농사를 지으며 자라
도시에서 이것저것 하다 결국 회기 본능을 이기지 못해 본래 살던 곳으로 돌아와
농촌에 사는 나로서는 농촌 사람들이 늘 불쌍하다.
시골 노인네들의 삶이나 풍경이 늘 정겨워 보이는 것은
내 밑바닥 정서에 그런 애틋함이 있기 때문이리라.
농촌은 겉으로 보기엔 늘 같은 모습으로 평온해 보이지만
농촌의 사계중 가장 기운 찬 때는 봄이고,
가장 침울한 때는 가을이다.
가을에 수확물을 계량하다 보면
잊고 있던던 빈곤감이 한꺼번에 몰아온다.
봄이면 논밭에 거름을 줘 갈아 씨앗을 뿌리고
여름이면 풀을 뽑으며 작물 자라는 모습을 쳐다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논밭에서 일하는 것이 즐거운 건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아침에 나가보면 훨씬 성숙해진 작물이 놀라게 한다.
초가을 논밭에서 탐스럽게 쑥쑥 자라 노랗게 익어가는 열매를 보면
긴 계절의 땀도 뿌듯하다.
졸리운 햇살이 들녘을 배회할 때쯤이면 수확 작업도 막바지에 이르고,
무심히 지나치는 바람에도 서슬이 돋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될 때면,
숭숭 구멍난 블록 창고를 들락거리며 동면을 준비하게 된다.
<2008년 11월 15일 담양장>
오랜만에 한가한 햇살이 늘어지게 바닥에 드러눕는다.
갑자기 햇김이 먹고 싶어 핑계 김에 장을 찾았다.
매 5일, 10일에 열리는 군내에서는 제일 큰 5일장이다.
오늘은 한가하므로 미리 적어가지 않아도 잊지 않고 다 챙겨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불과 10여년 전만해도 이곳에선 우시장도 열렸는데
지금은 깨끗하게 관리되는 인근 가축시장으로 옮겨가 한산해졌다.
천변 고수부지엔 며칠 전부터 잘 먹여 윤기 좔좔 흐르는 소들과
바구니나 채반 같은 죽제품이 즐비했었는데
값싼 중국산, 베트남산에 밀려 자취를 감췄고
그 자리를 먼거리를 달려온 차들이 널널히 자리잡고 있다.
읍내엔 아직도 전통 죽제품 매장이 몇 곳 박물관처럼 자리하고 있기는 하지만,
어쩌다 오는 관광객들만 하나 둘 기념품 삼아 사갈 뿐 한산하다.
나도 늘 대나무 채반에 눈길은 가는데 정작 가격표만 보고도 놀라
마트에서 파는 베트남산 채반을 쓴다.
매장엔 구색을 맞추느라 가끔 중국산도 껴 있다.
내가 사는 이 고장엔 마을마다 뒷편엔 대나무 밭이 백사장처럼 늘어서 있고,
어딜 가든 널린 게 대나무라 일찌기 죽제품 산업이 자연스레 발달했었다.
쌀 수매가 끝나기가 무섭게 집집 마당마다 대나무를 널어 놓고,
찬 바람도 야무진 햇살에 밀려 담벼락 앞을 잠깐 기웃거리고 말 땐
노부부가 도란히 마주 앉아 바구니를 짰고,
5일장이 열리는 새벽 아낙들은 머리에 켜켜이 묶은 대바구니를 이고
이 장바닥에서 분주한 한낮을 보냈다.
수입도 짭짤~~.
그래서 겨울이 오히려 살만했었는데 이젠 그마저도 추억 속에 묻혔다.
장에 들어설때마다 의아한 것은,
농촌에선 집집마다 자기가 먹을 채소는 가꾸며 살기 때문에 찾는 사람이 없을 것 같은데도
읍내 장이든 면 소재지 장이든 채소 좌판이 유별나게 많다는 점이다.
하긴, 농촌에서 팔 수 있는 물건은 채소 곡식 외에 무엇이 더 있으랴.
이나마의 공간이라도 있다는 게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읍내 가장 번화가 도로변에도 푸성귀들이 오손도손 모여 있다.>
그래서일까.
값이 싸다.
<한 글자 정도는 또 써도 되는데 2단은 땡땡이로 처리한 게 특이하다. 내키지 않아서였을까?>
배추는 7포기 한 단에 1만원,
입에 착착 달라붙는 호박고구마도 10킬로 한 박스에 1만원,
고추도 한 근에 5천5백원, 좋은 것은 6천원.
당근 값은..... 당근, 위에 적힌 대로~~.
내가 내 수확물을 팔기 위해 여기저기 기웃거려 보다 놀랬다.
몇 푼 안되는 농산물을 사면서 우리 동네 수퍼보다 비싸네, 품질이 별 차이도 없네 하며
굼시렁거리는 사람들이 많더라.
몇 십, 몇 백만원 짜리 물품은 브랜드며 품질이며, 성능, 내구성 따위를 어울리지 않게 따져 보는데 비해
촌놈의 것은 원산지를 묻는 척하다 가격으로만 평가하는 쫀쫀함도 이해가 된다.
약한 놈 앞에선 더 살벌하게 따지는 치밀함도 이해가 된다.
그러나 거기에 들인 수고의 질을 살피지 않고 가격만 따지는 이런 풍토에선
절대 무농약 유기농과 같은
신선한 먹거리 농업은 이뤄질 수 없다.
<남의 집 배추는 트럭에 실려 있는데 우리 집 배추는 아직도 밭에서 저러고 있다>
내가 경험하고 지켜본 결과 고추, 배추, 사과, 감, 밤 같은 것을
농약 한 방울 안 치고 멀쩡하게 기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만약 농약 한 방울 묻지 않은 것이라면 그건 거짓말 아니면 운이 억세게 좋았던 것이다.
농약 투입량을 줄이면 줄일수록 그만큼 사람의 손이 많이 들어간다.
친환경재를 만들고(사서 사용키는 너무 비싸니까), 일일이 벌레를 잡아 내는 수고를 해야 한다.
이것도 경지 면적이 좁을 때의 이야기고,
재배 면적이 넓어지면 불가능하다.
그냥 편하게 농약으로 촤~~~~악!
농약 살포기를 동원하면 1만평 짜리도 하루면 끝난다.
투입된 노동이 많아지면 재배면적은 늘릴래야 늘릴 수가 없다.
그렇다면, 무식하게 가격만 따져서 정말 비싼 것일까?
내가 먹기 위해 심은 고구마 밭은 10평 정도였는데 올해는 조금 부지런 떨어서
작년보단 덩어리도 크고 수확량도 많았다.
어림 짐작으로 100킬로그램 정도는 된 것 같은데,
10키로 한 상자에 1만원이니까 돈으로 환산하면 10만원 어치를 수확한 셈이다.
그나마 친척, 친지들에게 조금씩 나눠 주고 고맙다는 립 서비스 외에 받은 것이 없으니
내 지갑에 들어온 것은 정만 달랑달랑~~.
-아부지~~, 비료 값이라도 좀 주심 안되까영?
그러나 이걸 낯모르는 사람에게 제값 받고 팔았다 치자.
내가 퇴비 퍼 붓고 경운기로 갈아 엎어 밭을 만들어 두고,
장마철 비를 맞아가며 하루 반나절 고구마 순을 심었다.
고구마는 다른 작물과는 달리 여름에 심기 때문에 풀 뽑는 수고는 덜했으니
풀 뽑는 수고는 제외하고도 심는 데 걸린 시간만 이틀 걸렸다치고,
이걸 캐느라 하루 두어시간씩 3일 걸러 했으니 대략 하루라 치면
10만원 어치를 수확하기 위해 땀 흘린 시간은 최소한 3일이었다.
여기에 고구마순 값 6천원과 퇴비값 9천원을 제하면 내가 취한 이득은 8만5천원이다.
그러니까 내가 일한 대가는 하루 3만원도 안 된다는 말이다.
백 평 재배했다치면 85만원, 천 평 재배했다치면 850만원 어치를 수확한 셈이다.
만 평, 2만 평의 경우 따위는 생각하지 말자. 그런 촌놈은 적어도 대한민국엔 없다.
물론 나야 혼자 했으니 인건비를 따로 지출하지 않고 며칠만에 다 했지만,
밭농사는 어떤 작물이든 5백평이 넘어가면 가족 노동으로는 불가능하므로 인건비도 제해야 한다.
이것도 수확량이 있었을 때의 말이지, 촌놈들은 1년중 공치는 날이 거의 대부분이다.
내가 단언하건대 아주 첨단 기업농에 대단한 유통망을 갖춘 놈이 아닌 한,
어떤 작물로 어떻게 재배를 했든 돈이 안 된다.
그러니까.....
저 놈이.....
저걸 난테 비싸게 팔아묵어서....
저늠 시키가 부자가 돼불지도 모른다는 염려는 하지 않아도 좋다.
괜히 배 아파할 필요도 없고, 내가 저 촌놈한테 당했다고 속상할 필요도 없다.
<장날이어도 사는 사람보다 파는 사람이 더 많다>
내가 시골로 이사 오기 전 우리 집 아파트 앞 배추 차 아저씨는,
대로변 도깨비시장의 좌판 할머니는, 진짜 농사꾼일까
항상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지금은 확실히 안다.
똑같은 수고를 하면서 배추 다발을 만지는 것보단 땡처리 옷을 파는 게 낫고,
천원어치 시금치 팔기 위해 길바닥에 퍼질러 앉아 시금치를 다듬는 것보다는
리어카 커피를 파는 게 훨씬 경제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짓을 하고 있다면 그는 촌놈이 분명하고,
그게 아니라면 그는 바보다. 그래서 추운 날 대로변서 그짓하고 있는겨.
나는 백원을 벌든 1억을 벌든, 잔머리를 굴려서 벌든 몸뚱아리를 굴려서 벌든
돈은 떳떳하게 벌어야 하는 것이라 믿는다.
내가 번 돈은 내가 언제 어떤 짓을 해서 어떻게 벌었다고
누구에게나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 돈으로 먹고 산 것에도 그 당당함이 묻어 있고,
돈을 써도 쓴 맛이 있다.
그런데,
아주 치사한 인간들이 버젓이 살고 있더라.
촌놈을 촌놈으로 묵혀있지 않게 하는 것이 인터넷이라 촌놈들도 인터넷을 적절히 활용하는데
불쌍한 촌놈들에게 기생해 먹고 사는 인간들도 있다.
정말 촌놈보다 불쌍한 계층이 이 사회엔 존재한다는 사실이 서글프다.
인터넷 카페를 통해 내 작물을 팔아보려 했더니
통로만 소박하게 제공해 주는 순진한 카페는 별로 없고,
다 팔아봤자 몇 십만원에 불과할 농산물 판매글을 올려주는 대가로
게재비를 달라, 수수료를 내라 껄떡이는 곳이 많다.
촌놈들을 위한다는, 회원수가 제법 되는 어느 카페는 돈내란 말은 어려웠던지
참가비가 몇만원씩하는 워크숍에 참석해야 한단다.
그 다음 덧붙인 글이 압권이다.
수수료는 없지만 다들 성의표시는 한다고.
니기미 뽕이다.
그동안 있던 정도 떨어지고, 이런 것이 용인되는 시스템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는 철창 속에 갇혀 있는 개를 보면 그 주인까지도 싸게 보인다. 요넘들은 5만원 짜리들.
싼놈이든 비싼 놈이든 장에 나가면 개들을 한참동안 보고 노는데 어떤 촌놈이 개장사에게 개를 판다.
놀랍게도 개장사는 그 촌놈이 가져온 개를 개장 옆에 묶어 두더니 5천원을 건네 주더라. 허걱!
요놈도 이 철장 속에 들어가는 순간 5만원짜리가 된다.>
먹고 사는 문제만 아니면,
맑은 공기를 마시며,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은
위대한 자연 속에 묻혀지내는 이상의 삶은 없다.
늘 돈이 문제다.
돈이 많으면 목구멍까지 나오던 욕도 삼켜지고, 없던 친밀감도 생겨난다.
삶의 질도 돈으로 계량되고, 사람의 가치도 돈으로 가려진다.
돈이 없으면 별나 춥고, 별나 배고프다. 갖고 싶은 것도 별나 많이 아른거린다.
그래서 촌놈들의 가을은 창고에 쌓인 나락 더미 만큼
앞이 가로막혀 수심이 깊다.
<예정일이 이달 20일인 순이. 쥔놈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대자로 뻗어 주무신다>
그나 저나 걱정이다.
이번엔 수확량도 꽤 많아서 이번 가을엔 우리 면에 딱 하나 밖에 없는 치킨집으로
순이, 멍멍이, 꼬맹이, 사랑이...... 욜케 4마뤼 델구 들어가
"아짐마, 오늘 장사 끝. 셔터 문 내리셔요"
욜케 큰 소리로 주문하고 도란도란 여유롭게 삥 둘러 앉아서
입때껏 누구 입에 들어갔는지 정신 없이 먹던 때를 추억거리 돌리고
생전 처음으로 먹으면서 "너도 좀 더 먹어" 하는 덕담도 주고 받아 볼라 했드만,
흑흑~~~!
다 틀렸다.
아그들아~~, 담에 하자.
"언제요?"
"개시키들아, 알자너"
로또 되면....
첫댓글 사라져가는 시골장 풍경과 필자의 마음..............잘 느껴보고 갑니다~
감사...^^* 닉 글자체가 무척이나 아름다우십니다.
참 가슴 아픈 현실에 끝까지 읽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전 멀지 않아 먹거리는 변합니다. 아니 도시인 스스로가 그렇게 할겁니다. 미리 준비 하셔요.유기농,로컬푸드,죽음의밥상,슬로우푸드,슬로우시티....전 머지 않은 미래엔 희망의 밥상을 찾고 유기농과 로컬푸드가 대세라 봅니다. 대비 하시고 공부 하십시요. 응원합니다.
그게 맞긴 맞는 건데요, 긍께...그것이..머시냐....그때를 기다리다 굶어 죽는당께요. ㅠㅠ
근데..이 아짐마는 왜 놀래고 그런대
눈에 익은 풍경이네요... 한동안 담양장에 일부러 찾아가곤했었는데....첫번째 사진 너머에는 지금도 황금마차 달리고 있겠죠!!! 근데 내용은... 맘을 무겁게 만드네요....이땅의 모든 농부님들 화이팅입니다
네..가깐데 사시는군요. 저는 하천에서 놀고 있는 백존지 학인지 그런 거 비스므레한 새들이 참 이쁘드라구여.
맞아요...새가 이뻐요...
마음에 와 닿는 현실입니다. 힘내세요.
네.글타구 해서 혼자 힘내믄 뭐하것습니깡
강아지폼새가 제집하늘이랑 똑 같네요...ㅋㅋ................힘내세요....요기 꽃사좀 이용해보심이...요긴 뭐가(?) 없다구하던데요....저도 품질좋고 가격좋고하믄 잘 사는 편이라서...ㅋㅋ.......좋으면 이집 저집 선물도 잘 보내는 편이라서....좋은 것가지고계시면 ...........^^*
저는 첨에 개가 사람 눕듯이 등대고 누워자는 거 보고 우스워죽는줄 알았심다. 저는 원래 허브가 좋아서 허브만 기르다 보니 제 농산물은 허브차입니다.사 쥔 아짐마가 무뚝뚝하긴 해도 참 차카신 거 같드라구여. 글고 매니아들이 마니 도와 주셔서 힘이 됩니다. 근데...그게....먹어서 배부르는 게 아니라 많이 찾지는 않네영. 돼지들
첫번째 사진은 제가 자주 주차 시키곤 했던곳이네요. 친정이 바로 옆이라서~~이것이 현실이란걸 잘 알면서도 글로 읽으니 가슴에 와 닳네여~~그래두 힘 내시고 건강하세요...^*
오모나...그러세요? 거기 주차장이 넓어서 참 좋습니다. 도시처럼 주차비도 받지 않아서요.
마음 한켠이 시려오면서 시골에 계신 울 엄니 아부지 생각납니다.
흑흑 어무니
시골오일장은마음이 넘 풍요롭죠..그치만 님의글이 마음에와닿네요...수공비라도건져야하는데 중간상인의횡포에 소비자만 죽어나는 세상이니말이죠. 힘내세요...좋은날이올겁니다....
글게요. 그너므 유통구조가 촌놈들이 넘어서기엔 너무 어렵습니다.
죽제품으로 한세상 풍미했던 담양에도 중국,베트남산이 넘치는 군요. 담양이라면 소쇄원이나 대나무테마공원, 메타스퀘어가로수... 낭만적인 풍경만 생각했던 저 같은 사람에게 부끄러움을 알게하는 안타까운 현실이네요.
좋은 데는 다 아시는군요. 일전에 거길 지나가는데 요즘엔 메타세콰이어길이 북적 대드라구여. 가을이 제철인지 관광버스들이 수십대씩 늘어서 있드라구여. 담양 죽공예품이 좋긴 한데 가격이 넘 차이나다 보니 글케 됐습니다.
국수집앞 주차장이네요...반갑습니다...
근처 사시나봐요? 반갑습니다.^^*
마음이 아프네요...힘들게 일한 사람이 잘 사는 세상이 왔음 좋겠습니다.힘들다는 내용인데 글은 참 재밋게 읽었습니다..
힘들다고 찌푸리고 있음 더 힘들져.
가슴아픈 현실입니다첫번째 사진 앞으로 조금더 가면 대나무축제 하던곳이지요
제가 대나무축제엘 한번도 못가봤습니다. 한참 바쁜 5월에 해서요. 아마 거기일 겁니다.
도심에선 보기힘든 풍경입니다.. 담양.. 좋은곳에 사십니다..
시골 5일장 풍경과 시골 농산물 이야기 잘 하셨네요.어디 사시는 분인가 했더니 담양이군요.반갑습니다.쪼매 가까운곳에 살고 계시는 한낭님이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