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1-02 스포츠 서울(마니아 월드)에 기재됐던 내용
최근의 '야구위기'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지고 일선에서 물러나야 할 감독은 없다. 존경할 대상이 없는 것도 서글픈 일이지만, 그것이 반드시 누군가를 비난하는 행위로 귀결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사실 지난 21년간 투수 혹사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감독은 없었다.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21년동안 똑같은 팜, 똑같은 야구장, 똑같은 마인드를 가진 구단에 있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
ID(input Data) 야구의 신봉자인 김성근 감독은 지난해 LG가 시즌의 1/4을 버리고 꺼내든 카드였다. 감독대행으로 한 시즌을 보낸 그는 LG투수들에게 스트라이크를 던지는 방법을, 타자들에게는 달리면서 점수를 짜내는 요령을 주입시켰다. 개인적으로는 김성근 감독의 ‘5시간 야구’ 를 좋아하지 않는 이들도 많다. 덧붙여 왼손의 법칙-왼손타자와 왼손투수의 매치업-을 믿지 않는 이들도. 특히나 김성근 감독처럼 원칙주의자들이 경기를 푸는 만능열쇠로 사용하는 것은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다.
플레이오프 4차전 7회 3-2로 앞선 상황에서 LG 트윈스는 무사 1,2루의 위기를 맞았다. 타석에는 이전까지 3타수 3안타를 기록한 좌타자 장성호. LG 김성근 감독은 좌완 유택현을 마운드에 올렸다. 그러나 올시즌 장성호의 왼손투수 상대 타율은 무려 ‘3할 4푼’ 이다. 좌우를 가리지 않고 안타를 만드는 장성호를 상대로 한 납득하기 어려운 원포인트 릴리프였다. 더구나 이날 장성호의 4개의 안타는 모두 왼손투수를 상대로 만들어낸 것이었다. 타석에서도 왼손의 법칙은 예외가 없었다. 상대 선발 우완 리오스에 맞서 지명타자로 출장한 선수는 플레이오프 ‘5타수 무안타’ 의 좌타자 심성보였다. 데이타 야구를 추구하는 김성근 감독이기에 더욱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었다.
무슨일이 일어났는가? 김성근 감독이 올린 유택현은 장성호를 좌익수 플라이로 잡아냈고, 당뇨를 딛고 일어선 심성보는 눈가를 촉촉하게 적시며 수훈 선수 인터뷰를 할수 있었다.
모두가 왼손의 법칙이다. 김성근 감독의 왼손 법칙을 마땅찮게 생각하고 있던 이들은 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에 충분했고 필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정식 감독으로 승격한 후 지난 1년 동안 그를 둘러싸고 생겨났던 수많은 잡음들. 그리고 그를 흔드는 가장 큰 불만이었던 왼손의 법칙에 근거한 잦은 라인업의 변화는 때로는 좋지 못했고 아주 가끔은 (이번처럼) 좋았다. 그러나 그 가끔을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심지어 (적지않은) LG 팬들도 그랬다.
신바람을 기억하는 골수 LG팬들이 김성근식 벌떼 야구와 잔야구를 반길리 없었다. 시즌 말미 일부 동호회원들은 잠실구장 스탠드에 “수고하셨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감독의 퇴진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런데 음…지금의 LG 트윈스가 94년의 그때 그 팀인가? 김성근 감독의 애제자 최동수와 심성보 조차도 LG 팬들의 가장 큰 ‘공공의 적’이 아니었던가?
김성근 감독이 맡은 팀들이 '언제나 그랬듯이' 당초 LG는 꼴찌 전력이었다. 그러나 LG는 지난 2년간 앞서만 가던 두산을 뒤로 넘겼고, 투타에서 가장 안정된 전력으로 평가받던 현대를 잡았다. 그리고 기아의 시리즈 스윕예상을 보란 듯이 뒤집었다. 이 모두가 김성근 감독의 손끝에서 나온 그 지겹기만 하던 5시간 짜리 야구가 만든 개가(?)였다.
다음은 필자가 올초에 모 스포츠사이트에 기고한 LG 트윈스의 시즌 프리뷰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도저히 어울릴것 같지 않은 나이 육십의 노신사와 신바람의 만남은 처음부터 딜레마였다. 그러나 비시즌 기간에 훈련금지를 외치며 당당한 권리찾기 운동의 선봉에 있던 친구들이 (전임 이광은 감독시절 LG는 2000시즌 종료후 01년 오키나와 전지훈련까지 거의 3개월을 놀면서 보냈다.) 두산의 ‘옆집천하’ 소식을 타지에서 듣자 오기가 발동했을까? 본격적인 김성근호 출범후 첫번째 담금질에 들어간 그들은 2001년 10월 오키나와 마무리 훈련을 시작으로 제주,괌 재활 캠프와 스프링캠프까지 장장 넉달 이상의 지옥을 자청하는 새로운 자율을 택했다. 박수칠 만한 일이다. 90년대 중반 수도권 젊은이들을 설레게 했던 줄무늬 유니폼의 잔상은 상당 부분 희석됐지만, 나태한 자율로 유망주들의 무덤임을 자행한 전력은 이제 수정되리라 믿는다. 적어도 조련에 있어서는 새로운 메인 브레인(main brain) 김성근을 믿어도 좋다. 아직도 이팀에는 제2의 와일드씽-신윤호-을 바라보는 유망주들이 넘쳐난다. 그들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예전의 그것(신바람)을 찾을 것이다.]
2002년 가을 LG트윈스는 김재현과 서용빈 없이 여기까지 왔다.
모자와 신발에 62와 7을 새긴 예전의 ‘무늬만 천재’ 들은 비록 지난해 두산과 같은 광기 어린 방망이는 아니었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운동능력의 한계 안에서 아름다울 정도로 최선을 다한 명승부를 연출했다.
동기생인 김주철(기아), 이정호(삼성)에 비해 놀랍도록 빠른 성장세를 보인 이동현은 어느덧 마운드의 기둥으로 자리잡았고, 장문석은 플레이오프 최종전 승부처에서 지난 2년간 그를 괴롭히던 포스트시즌 증후군을 말끔히 씻어냈다. 신인왕 경쟁에서 한발 밀렸던 박용택도 5차전 플레이오프 한 경기 최다루타 타이기록인 10루타로 4타점을 쓸어담았고, 이상훈은 여전했다.
무엇보다 그림같은 수비를 선보인 내외야수들의 허슬플레이와 팀워크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것이었다.
“우리 선수들에게 이렇게 어마어마한 잠재력이 있는지 나도 놀랐다. 4차전 심성보와 이종열의 기습 번트, 야수들의 집중력, 선수생명의 기로에 선 김재현의 한국시리즈 출장의지를 보며 ‘ 우리팀이 정말 강팀이 됐구나’ 하고 느꼈다. 나보다 선수들이 이기고자 하는 마음이 강했던 것 같다. 선수들이 일치단결한 것이 승리의 원동력이다. '내'가 아닌 `우리'라는 LG가 새롭게 탄생한 것 같다” (김성근 감독 인터뷰 中에서)
94년 '무조건 이기는' 절대강자 LG트윈스의 신바람 야구 보다는 2002년 플레이오프 5차전 까지 일궈낸 '잔잔한 신바람'의 감동이 훨씬 더 따뜻한 것이 비단 온난한 이 겨울날씨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올 한해 LG 트윈스는 아주 신선한 신바람 야구를 했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최강 삼성을 마지막 적수로 불러냈다.
최우근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