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요13:31
하나님의 사랑을 안다면 누구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를 원할 것입니다. 은혜를 경험했기 때문이고, 자신이 영화롭게 되고 영생을 얻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세상은 죄와 사망의 권세가 힘을 발휘합니다. 이런 땅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공주야! 추위가 도사린 땅은 앙상하고 생명이 없는 듯 보이지만 때가 되면 이파리가 돋고 꽃이 필 것이다. 흥미롭게도 분명 새로운 꽃이지만 새롭지 않다. 작년에 봤던 것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Anyone who knows God's love will want him to make a movie. Because he experienced grace, and because he is on his way to become a movie and eternal life. Still, the world is powered by the power of sin and death. What kind of life should you live to make God a movie in a land like this? Princess! The land where the cold lurks seems bare and lifeless, but when the time comes, leaves will bloom and flowers will bloom. Interestingly, it is definitely a new flower, but it is not new. It does not look different from what I saw last year.
-
주께서 떠나셨지만 그분의 향기가 아직도 주위에 맴 돈다면 그것은 무엇 때문일까? 가룟 유다가 예수를 팔러 나가는 것을 알고 예수는 이 순간이 바로 자신이 영광을 받을 시간의 시작임을 아셨다. 십자가는 이미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께도 영광이 된다는 것을 아셨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께도 영광이 된다는 것을 아셨다. 그리고 자신의 이 순종도 죽음의 고난으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시는 영광으로 이어질 것을 믿으셨다.
If the Lord has left, but his scent still lingers around him, what is it for? Knowing that Jarod Judah was going out to sell Jesus, Jesus knew that this was the beginning of his time to be honored. The cross had already begun. And he knew that it would be an honor for God. And he knew that it would be an honor for God, too. And he believed that this obedience would not end in the hardships of death, but would lead to the glory that God gave him.
-
자신이 격을 고난의 가치와 죽음 이후의 약속을 믿고 있다면 두려움 없는 순종, 담대한 순종이 우리에게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발 씻는 것을 통해 섬김의 사랑을 당부하셨던 예수께서 이제 ‘서로 사랑’의 계명을 새 계명이라고 부르며 당부하신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인 것을 세상이 아는 것은 그분처럼 우리도 섬김의 사랑, 상호 사랑을 보이며 살아갈 때라고 하신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몰랐더라도 최소한 스승이나 동료라고 생각했더라도 가룟 유다는 사랑을 했어야 했다.
If you believe in the value of suffering and the promise after death, wouldn't fearless obedience and bold obedience be possible for us? Jesus, who asked for the love of service through washing his feet, now calls the commandment of "love for each other" a new commandment. The world knows that we are disciples of Jesus when we live with the love of service and mutual love like him. If Jesus had not known as the Messiah, if he had at least thought he was a teacher or colleague, Jarod Judas should have loved.
-
가룟 유다의 배반은 메시아에 대한 배반이지만 상호 사랑을 요구하는 새 계명의 위반이며, 이는 그가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될 자격이 없음을 보여준다. 베드로는 예수께 어디로 가시든 자신은 따르겠다고 확신 있게 고백한다. 진심이었다. 하지만 진심이 늘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자신이 그 고백을 감당할 만큼의 에수를 향한 지식이나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을 몰랐다. 예수를 위해 목숨을 버리겠다는 그의 각오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감동하는 대신에 그가 자신을 부인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Although the betrayal of Judah is a betrayal of the Messiah, it is a violation of a new commandment that demands mutual love, indicating that he is not qualified to be a citizen of the kingdom of God. Peter confesses to Jesus with confidence that wherever he goes, he will follow him. He meant it. But sincerity does not always come true. He did not know that he lacked knowledge or understanding of Essu enough to bear the confession. Despite his determination to give up his life for Jesus, Jesus says that instead of being moved, he will deny himself.
-
이것이 그가 알고 있는 예수의 수준이었다. 이 분명한 자신의 현실을 직면하게 하는 것이 예수의 사랑이다. 예수님이 나의 고백에 대해서는 어떻게 반응하실까? 목숨을 바쳐서라도 주를 따르겠다는 고백을 하기도 어렵겠지만, 그 고백을 했다고 해도 과연 나는 얼마나 그 진정성과 영적 실력을 인정받을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예수께서는 내 화려한 고백에 속지 않으신다는 사실이다. 사망의 땅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This was the level of Jesus he knew. It is Jesus' love that makes him face this clear reality. How will Jesus react to my confession? It may be difficult to confess that I will follow the Lord at the risk of my life, but how much will I be recognized for my sincerity and spiritual power even if I make that confession? What is clear is that Jesus is not deceived by my colorful confession. What kind of life should you live to film God in the Land of Death?
-
인자가 영광을 받았다는 의미가 무엇인가?
주님의 십자가 죽음을, 왜 완료형을 사용하였을까?
하나님도 인자를 인하여 영광을 얻었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하나님도 인자를 인하여 영광을 곧 주신다는 뜻이 무엇인가?
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말씀하셨는가?
영광은 어떻게 살아지는가?
What does it mean that the Son of Man is honored?
The death of the cross of the Lord, why did he use the completion form?
What does it mean that God also gained glory through kindness?
What does it mean that God will soon give glory through the Son of Man?
Why did Jesus tell his disciples the new commandments?
How does glory live?
-
예수님의 떠남과 영광(31-33)
a.예수님의 영광이 하나님의 영광:31-32
b.예수님의 떠남:33
예수님의 떠남과 새 계명(34-35)
a.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34
b.서로 사랑과 제자도:35
예수님의 떠남과 베드로의 신앙(36-38)
a.예수님의 떠남과 베드로의 제자도:36-37
b.예수님의 떠남과 베드로의 부인:38
-
저가 나간 후에(31a)
예수께서 가라사대(31b)
지금 인자가(31c)
영광을 얻었고(31d)
하나님도 인자를 인하여(31e)
영광을 얻으셨도다(31f)
-
만일 하나님이(32a)
저로 인하여(32b)
영광을 얻으셨으면(32c)
하나님도(32d)
자기로 인하여(32e)
저에게 영광을 주시리니(32f)
곧 주시리라(32g)
-
소자들아(33a)
내가 아직 잠시(33b)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33c)
너희가 나를(33d)
찾을 터이나(33e)
-
그러나 일찍 내가(33f)
유대인들에게(33g)
너희는 나의 가는 곳에(33h)
올 수 없다고(33i)
말한 것과 같이(33j)
지금 너희에게도(33k)
이르노라(33l)
-
새 계명을(34a)
너희에게 주노니(34b)
서로 사랑하라(34c)
내가 너희를(34d)
사랑한 것 같이(34e)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34f)
-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35a)
이로써 모든 사람이(35b)
너희가(35c)
내 제자인줄 알리라(35d)
-
시몬 베드로가(36a)
가로되 주여(36b)
어디로 가시나이까?(36c)
예수께서 대답하시되(36d)
나의 가는 곳에(36e)
-
네가 지금은(36f)
따라 올 수 없으나(36g)
후에는 따라 오리라(36h)
-
베드로가 가로되(37a)
주여 내가(37b)
지금은 어찌하여(37c)
따를 수 없나이까?(37d)
주를 위하여(37e)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37f)
-
예수께서 대답하시되(38a)
네가 나를 위하여(38b)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38c)
내가 진실로진실로(38d)
네게 이르노니(38e)
닭 울기 전에(38f)
네가 세 번(38g)
나를 부인하리라(38h)
-
가롯 유다의 배반과 예수의 영광_Judas' betrayal and Jesus' glory.
사랑의 계명을 주는 예수_Jesus, who gives a command of love.
베드로의 부인을 예고하는 예수_Jesus foretells Peter's wife_
-
예수님은 떠나셨으나 새 계명을 통해 제자들과 함께 하시나이다. 십자가를 통해 잉태한 백성들에 새 계명을 주신 주님 감사합니다. 내가 순종할 때 영광(새 창조)을 경험케 하실 것을 믿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서로 사랑하라고 하였사오니 더 이상 나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열등의식을 갖지 않고 가족과 교우들에게 먼저 사랑의 손길을 내밀겠습니다. 나로 인해 사랑이 충만한 가정과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Jesus has left, but he is with his disciples through a new commandment. Thank you Lord for giving a new command to the people conceived through the cross. I believe you will experience glory (new creation) when I obey. Since I told you to love each other as if I loved you, I will no longer have an inferiority complex while comparing myself to others, and I will give my family and friends a touch of love first. May I be a family and church full of love.
2026.3.18.wed.Clay
신학 비평//
요13:31에서 예수님은 **아직 십자가를 지시기 전인데도** “이미 영광을 얻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시간의 문법이 아니라 존재의 문법입니다. a. 인간의 시간: 사건 → 결과 → 평가 b. 하나님의 시간: 뜻 → 성취 → 이미 완료 예수께 있어 십자가는 아직 “다가올 사건”이 아니라 이미 아버지의 뜻 안에서 완결된 사건입니다. 따라서 완료형은 예언적 확신이 아니라 존재론적 확정입니다. 하이데거 식으로 말하면,예수는 “죽음을 향해 가는 존재”가 아니라 죽음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완성하는 존재입니다. 십자가는 비극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시간 속에 드러나는 ‘현현(現現)’입니다.
1) “하나님도 영광을 얻으셨다” — 상호내재의 신비
“인자가 영광을 얻었고, 하나님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으셨다” 이 구절은 단순한 보상이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의 상호 내재(perichoresis)를 드러냅니다. a. 아들의 순종 = 하나님의 사랑의 계시 b. 십자가 = 하나님의 본질이 드러나는 자리 하나님은 능력으로 영광 받지 않으십니다. 자기를 내어주는 사랑으로 영광 받으십니다. 따라서 십자가는 하나님의 영광이 “손상된 사건”이 아니라 가장 순수하게 드러난 사건입니다. “하나님도 저에게 영광을 곧 주시리라” 여기서 “곧”은 단순한 시간적 속도가 아닙니다. 십자가 → 부활 → 승천은 하나의 연속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즉, 십자가는 끝이 아니라 이미 부활을 내포한 사건입니다. 고난과 영광은 분리되지 않습니다. 순종 자체가 이미 영광의 시작입니다.
2) “새 계명” — 부재 속 임재의 방식
예수님이 떠나시며 남긴 것은 기적도, 제도도 아닌 사랑의 계명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서로 사랑하라” 이 말은 단순한 윤리가 아닙니다. 이것은 예수의 존재 방식 자체를 계승하라는 요청입니다. a. 사랑 = 감정이 아니라 존재 방식 b. 사랑 = 자기 소멸을 통한 타자 생성 따라서 “새 계명”이란 새로운 규칙이 아니라 새로운 존재 방식의 탄생 선언입니다.
3) 유다와 베드로 — 사랑의 실패와 은혜의 긴장
a. 가룟 유다...사랑의 공동체 안에 있었지만 사랑을 존재 방식으로 받아들이지 못함. 그의 배반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사랑의 존재론을 거부한 선택입니다. b. 베드로...사랑하겠다는 의지는 있었지만 자신에 대한 인식이 부족함. 그의 실패는 배반이 아니라 자기 이해의 붕괴입니다. 이 둘의 중요한 차이는 a. 유다는 사랑을 거부/관계를 끊음/절망으로 나감 b. 베드로는 사랑을 오해/관계 속에서 실패/은혜로 돌아옴. 하나님 나라의 기준은 “완벽한 사랑”이 아니라 사랑 안에 머무는가입니다.
4) 제자의 삶 — 영광을 사는 방식
어떻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가? 요13장은 명확히 말합니다. 십자가처럼 살 때/사랑으로 살 때/자기 확신이 아니라 순종으로 살 때입니다.
1. 영광은 결과가 아니라 순종의 방식이다.
2.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존재의 구조다.
3. 실패는 끝이 아니라 계시다 (베드로처럼)
4. 십자가는 패배가 아니라 이미 시작된 승리다.
5) 신학적 결론 — “향기”의 정체
“주께서 떠나셨지만 그분의 향기가 남아 있다면…” 그 향기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랑의 방식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떠났지만 사랑은 남았고 그 사랑이 공동체 안에서 반복될 때 그분은 여전히 존재하십니다. 공주야, 꽃은 해마다 다시 피지만 사실은 같은 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같은 봄이라고 부릅니다. 왜냐하면 생명의 방식이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영광도 그렇습니다.십자가는 한 번이지만 사랑은 계속 반복됩니다. 나는 지금, 영광을 살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