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에 올해 들어 첫눈이 많이도
내렸다
늦가을서부터 가뭄이 들어
먼지바람으로 겨울을 나나 싶었는데
요행 겨울 끝자락에 첫눈을 보다니
농사 많은 이곳에
이 정도로는 해갈은 안 되고
눈이든 비든 더 내려야 하는데
하늘이 하는 일이니 기다려 봐야지
그래도 이 정도라도 어디냐
겨우내 가뭄이 길어지면 봄에 돋는 나물도
억세고 처음 장에 나오는 유채니 달래니 하는
봄 나물조차 보드랍지가 않다
하우스에서 키우는 거 빼곤
대지는 항시 물기를 적당히 물고 있어야
발아를 원활히 하고 세상의 씨앗이라면
모두 품어 싹을 틔워 내려 안간힘을 쓰는 게
이치라지만
하늘이 땅과의 합의 일체를 거부하면
생명 또한 없는 게 이치다
물과 생명
첫눈
새벽까지 내리는 눈이 고맙고 궁금해
자다 깨어 내다 보고
다시 잠들까 하다가 또 내다 봤다
1월에서 2월까지
마르고 갈라진 흙덩이 속을
악착같이 후벼파던 바싹 마른 겨울바람
야속도 해라
그 덕에
아침이고 저녁이고 흙먼지 닦아 내느라
무릎은 닮고 끌려 다니는 두 다리는
별 별 비명을 다 내질렀지
눈이 내려서 깔따구처럼 천방지축 휘몰아
다니던 먼지도 처리해줬으니
내리는 눈 봐서 좋고 명경같이 맑은
공기 마시니 둘다 좋을씨고~
시장 닭집엔
닭장같이 좁은 공간이 있어
튀긴 닭을 기다리는 손님이
앉아 있다
간혹 튀겨 낸 닭을 들고 가기 싫어
뱃속에 넣어 가고자 하는 손님도 있는지라
조잡한 나무 탁자에 조잡한 나무 걸상 몇 개
뒀더니
그로 인해
닭집 안은 앉으면 일어나기 어렵고
일어나면 다시 앉기 어려워
앉은 사람이나 일어나야 할 사람은
으례 주변을 둘러보고 순간적인
판단을 하느라 잠깐 눈을 내리깔고 엄숙한
표정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대로 가고 말까
아님 더 앉아 있어 저 고소한
닭튀김 냄새에 흠뻑 몸을 내맡길 것인가를
눈 내리던 어제의 닭집은
앉은 손님보다 못 앉은 손님으로
빼곡했다
안에서 밀려 나와 열어 놓은
문을 넘어 하얀 눈을 머리에 소복하게
얹고도 못내 미련 남은 눈길로
닭장 안만 노려보던 단골손님들
단골 남자 손님들
닭집 주인은 처녀다
늘씬하고 청순한 처자 사장님이다
하얀 니트 티셔츠에 꽃무늬 앞치마
중간 길이의 옆 라인이 쫙 갈라진 치마 속엔
암말 다리처럼 늘씬한 두 다리는 검은 부츠로
감싸고 둥글둥글한 눈매에 동글동글 웃는
생얼에 자연산 긴 머리
그 처자 닭 사장이
봄소리처럼 포근 나른한 어투로
느릿느릿 꽃무늬 앞치마로 떨어뜨리는
그 말이 마음에 매달리던 어제
눈이 오네, 어머. 눈이 이렇게 내리는데
포장할 닭은 많고
에이, 언니야, 술 한잔하자
언니야~ 이따 한잔해야지 잉
어제 강릉은 밤새 첫눈의
축복을 받더라만
카페 게시글
삶의 이야기
첫눈
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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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3.04 07:15
댓글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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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눈 구경 못하는 줄 알았지요 ㅎ 이번 3일간 눈 푸지게 왔습니다 이젠 만족했답니다 둥근 해님 언제나 성원해주셔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