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e5fN5VsFnu4?si=Nq-baj-ZbqQyn6At
Erik Satie : Parade, Ballet rèaliste sur un theme de Jean Cocteau (1916-17)
2. Erik Satie의 예술관
다양한 음악적 사고를 가졌던 사티를 보다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하여 그의 중심되는 음악적 사고를 알아보고 그의 음악과의 관련성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사티의 예술관은 (1) 반독일주의 (2) 반인상주의, 그리고 (3) 새로운 음악에의 시도 등으로 압축해 볼 수 있다.
사티의 반독일주의에는 바그너에 대한 반발이나 낭만주의에 대한 저항 등도 포함시킬 수 있는 반면, 반인상주의는 때로 그가 반 Debussy와 동일하게 생각한 것으로 보여진다. 사티의 새로운 음악에 대한 시도의 예로써 그가 행한 다양한 주의(~ism)의 편력을 볼 수 있는데 이들은 신고전주의, 허무주의, 입체파, 초현실주의, 그리고 가구음악 등이다. 이들은 신 고전주의를 제외하고는 사티가 본격적으로 추구했던 이념으로는 생각되지 않으며 또한 그의 독창적 사고라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러한 시도들이 그의 음악에 일관되어 반영되어 있지 않을 뿐 아니라 그것들은 다른 예술가들과의 공동작업에서 이루어진 것으로서 사티 자신의 이념이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점을 중점적으로 살펴봄으로써 여기에 관련된 그의 다른 음악적 사고도 추적해보려 한다.
신고전주의는은피아노연주가이자 작곡가인 Feruccio Busoni에 의해 주창되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이 때 Busoni는 독일어로 젊은 고전주의라 칭하였다. Busoni는 그의 작품 Konzertstuck을 작곡하던 1890년대에 신고전주의에 입각한 첫 작품 희극적 서곡을 발표하였고 2년 뒤 다시 sonatina를 발표하여 신고전주의의 시대를 열어 보였다. 에릭 사티가 신고전주의에 입각하여 처음 쓴 작품은 관료적인 소나티네로서 1917년에 발표되었다. 이것은 Busoni보다 20년 뒤에 나온 것이 되는데 이 20년 동안 신고전주의로 작곡한 사람은 더 이상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사티는 두 번째로 신고전주의를 현실화시킨 작곡가라고 하겠다.
신고전주의는 후기낭만파음악, 특히 바그너 음악에 반발한 음악사조이므로 서로의 반대되는 입장을 여기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신고전주의가 후기낭만파음악에 반발한 내용을 살펴보면, 첫째 순수해야 할 음악적 내용이 중후하고 과장되게 꾸며져 있다는 점, 둘째 서정성이 너무 강하고 또한 그것의 집착으로 인해 다양해야 할 음악의 표현이 한정되고 있다는 점, 셋째 문학적 내용이나 표제등과의 결탁으로 인해 음악 자체의 요소나 그 표현이 방해받고 있다는 점, 넷째 지나친 반음계의 사용으로 조성의 붕괴는 물론 명확한 선율 구성에 해를 끼친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이에 비해 후기낭만파음악을 대표한다 할 수 있는 바그너의 음악은 앞서 언급된 신고전주의가 반발한 내용들을 거꾸로 그 이상으로 사용하고 있다. 즉 위에서 지적된 그 첫 번째 것의 경우 바그너는 그리스 비극의 합창과 같은 역할, 다시 말하면 관현악 편성의 극대화로 음악의 강렬성과 섬세성 둘 다를 충분히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두 번째 문제는 바그너 자신에 의해 명명된 ‘무한선율’과 음악의 흐름을 막는 정격종지의 의도적 회피를 통해 멜로디 우위의 음악을 썼으며 세 번째 것의 경우 예술의 개개분야 즉 조형예술, 시, 음악 이 서로 고립되기만 하면 예술의 전체적인 표현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음악이 종합예술이 되기 위해서는 타 예술 분야와 결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네 번째 문제에서 바그너는 화성의 표현능력을 철저히 추구, 확대하기 위해서는 반음계적 선율진행이 필연적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신고전주의, 즉 사티와 Busoni, 그리고 사티보다 8년 후에 피아노협주곡을 발표하게 되는 스트라빈스키 등의 이론과 바그너와의 그것은 상반되고 있다. 전자가 객관적인 절대음악을 지지한다면 후자는 음악의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면을 추구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가 이 두 가지 이념의 가치여부를 따지거나 어느 하나만을 지지해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라 생각된다. 왜냐하면 이 주장들이 어느 개인적인 가치의 문제라기보다는 그 시대적 객관성의 요구에 부합하기 위해 생겨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신고전주의가 정도의 차이는 잇더라도 많은 작곡가들의 경향 속에 존재하고 있었고 바그너 역시 많은 지지자들의 가치인정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바그너의 음악이 모험적이거나 혁신적이라고 볼 수 있다면, 그 속에는 이미 그 반대적 요소의 필요성이 내재되어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이런 점을 신고전주의가 지적한 것이라 하겠다. 신고전주의가 이런 점을 극복하기 위해 취한 방법들은 음악의 조성감과 형식감의 회복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는 적당한 반음계와 온음계의 균형과 안정된 대위법적 구조 등의 기법도 쓰이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한마디로 요약하면 절약된, 경제적인 음악어법으로 그 구체적인 효과를 표현한다고 하겠다.
이 두 음악적 사상, 즉 신고전주의와 바그너 주의는 금세기에 와서 표현주의와 인상주의를 비롯한 수많은 음악사조의 원천이었으며, 에릭 사티가 갖는 음악적 가치도 이런 면에서 높이 평가받을만 하다고 생각된다.
3. 에릭 사티의 음악 기법
제 2장에서 언급된 바 있는 3가지 음악적 사고는 사티의 음악세계를 집약시킨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그 중에서 반독일주의와 반인상주의는 그가 처해 있던 시대적 배경이나 환경으로부터 기인된 것으로 그 반발은 3번째 음악적 사고로써 지적된 새로운 이상의 개척으로 집약될 수 있다. 새로운 기법을 개척하려는 그의 시도는 이미 언급된 바와 같이 mode의 사용이나 4도화성, 병진행, 마디줄이나 박자표 등의 해체 등을 들 수 잇으며 이에 대한 고찰이 따라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1) mode의 사용
사티가 처음 음악을 공부하기 시작한 것은 organist vinot로부터의 Gregorian plainsong과 피아노공부가 그것이었다.
물론 Gregorian chant를 구성하는 재료, 즉 mode는 중세 이후부터 사티의 시대에까지 계속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16세기 이후 이 선법들은 화성적인 결합과 관계되어 사용되는 선법이 점차 제한되었으며 17세기에 이르러서는 Ionian과 Aeolian은 각각 장조와 단조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바뀌었고 그 후 평균율이 일반화됨에 따라 조성이 선법보다 보편화 되었다. 그러나 19세기 와서 빈번한 조바꿈과 반음계의 심화로 인해 점차 조성의 속박에서 벗어나려는 경향이 나타나 독일음악에서의 바그너 이후 12음기법에의 접근으로까지 확대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사티는 반음계주의가 아닌 다른 방법, 즉 mode를 사용함으로써 독창적으로 시대적 변화에 부응하고 있다. 그가 처음 사용한 교회선법이 들어가 있는 곡은 Gymnopedies이며 이 곡에서는 Mixolydian을 쓰고 잇다. 물론 사티는 조성적 3화음 위에 mode로 된 선율을 결합시키는 형태를 취함으로써 중세 mode와는 다른 처리 방법을 사용하였다. 이렇게 될 경우 화성에서 보여지는 조성과 선율에서 나타나는 mode는 그 성격상 다르므로 poly-modality로의 발전을 쉽게 예견할 수 있다. 이 poly-modality의 기법은 19세기말 근대음악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기법의 하나로 확립된다.
(2) 병진행(Parallel chords)의 사용
자연배음상 그 진동비가 2:3인 완전5도는 진동비가 1:2인 octave나 1:1인 동음등과 함께 완전음정이다. 또한 완전 5도의 전위형태인, 진동비 3:4의 완전 4도 역시 완전음정이다. 적어도 14세기 전까지 협화음정으로는 위에 든 4개의 음정으로 제한 사용되었는데 그 이후 협화음에 대한 감각도 변화되어 3도, 6도음정까지 협화음에 포함되게 되고, 1도, 5도, 8도는 공허한 협화음으로, 또한 장.단 3도와 6도는 온화한 협화음으로 구별, 사용되게 되었다. 그리고 협화음으로써의 장.단 3도와 6도의 출현 이후 완전음정들은 공허한 음정으로 인식되어 이의 병행은 화성적 효과가 없다는 이유로 그 사용이 기피되어 왔다.
그러나 이에 앞선 시기인 중세때에는 모든 노래를 5도나 4도로 병진행시키는 organum이 일반적이었는데 이들이 Gregorian chant를 배운 사티에 의해 부활되었다 하겠다. 병행 5도 등의 진행은 3화음에 익숙하였던 당 시대에 색다르게 들렸을 것으로 보이며 이는 곧 그 시대의 작곡가들에게 널리 퍼지게 되었다. 이로써 작곡가들은 지금까지 조심스럽게 사용되었던 음악적 소재라 할 수 있는 병진행을 보다 많이 사용하게 되어 그 표현의 폭을 넓혓으며 이것은 사티의 공적으로 볼 수 있다 하겠다.
한편 2도와 7도는 불협화음이라는 이유로 음악의 자연스러운 진행을 위해 해결이라는 과정을 거쳐야만 했으나 사티는 이를 관념적인 제약에 구속될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서 그 해결의 과정을 무시한 채, 연속적인 병진행을 사용하였고 이의 결과로서의 7도나 9도화음의 병진행 역시 인상주의 음악에 중요한 요소로 사용되게 되었다.
(3) 4도 화성(Fourth chords)
사티는 인상주의 음악의 가장 중요한 화음구성방법의 하나라 할 수 있는 4도화음을 그들보다 먼저 사용하였는데 이것은 사티가 유년기에 공부했던 Gregorian chant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세에는 병행4도 organum이 많이 사용되었으며 이렇게 애호되었던 4도음정이 3화음의 체계가 갖추어진 14세기에 와서는 협화음정 사이에서는 불협화음정으로, 불협화음정 사이에서는 협화음정으로 인정되는 애매한 음정이 되었다.
사티는 이 음정에 3화음 구성방법을 응용하여 완전4도 위에 다시 완전4도 음정을 쌓는 기발한 방법으로 새로운 4도화음을 만들게 되었는데 이는 3도화음을 주로 사용하던 당시에 신선한 화음, 또는 충격적인 화음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4도화음은 근대음악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으로서 사티의 업적을 한층 크게 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자료출처: 베토벨라
https://youtu.be/2Xfg7HXKqgw?si=R0SSS2cTOgsy0Ft-
Satie: Complete Piano Works Vol.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