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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14:1
우리는 도반입니다. 같은 길을 서로 도우며 가는 좋은 벗입니다. 물론 목적지는 진리와 생명이신 아버지의 품이요, 영생입니다. 빛의 사귐 속에서 영원하고 풍성한 삶을 이어 가는 관계입니다. 우리는 거기에 이르는 길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릅니다. 그 길을 어떻게 걸어야 하는가? 공주야! 진리를 구하는 사람을 구도자라고 부른다. 이는 길을 구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주님의 제자라면 그분이 걸어오신 길을, 그분이 앞으로 오실 길을, 또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을 묻는 것이 마땅하다.
We are Doban. We are good friends who help each other on the same path. Of course, the destination is the arms of the father, who is truth and life, and eternal life. It is a relationship that continues an eternal and rich life in the relationship of light. We believe in and follow Jesus Christ on the way there. How should we walk that path? Princess! A person who seeks truth is called a seeker. It means a person who seeks his way. If you are a disciple of the Lord, you should ask him the path he has walked, the path he will come in the future, and the path we need to w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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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질문의 과정에서 우리가 어떤 길을 가고 있는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예수께서 가시는 길에 제자들은 따라올 수 없다는 말에 제자들이 근심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이 가는 것의 의미를 안다면 그것은 근심할 일이 아니라고 하신다. 지금 할 일은 근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 일이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하나님이 같이 거하실 거처를 마련하러 가신다. 거처 마련은 건물이나 장소가 아니라 관계의 창조다.
You will realize what path we are going along in the process of this question. When the disciples say they cannot follow Jesus on his way, they are worried. But Jesus says that if he knows the meaning of what he is going, it is not something to worry about. What to do now is not to worry, but to believe in God and Jesus. Jesus goes to make a place for his disciples and God to live together. Housing is not a building or a place, but a creation of relationshi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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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제자들은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영원토록 함께하는 관계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예수님이 가시는 궁극적인 목적지는 하나님이다. 그리고 그 길에 이르는 길은 바로 예수님 자신이다. 예수님이 길이다. 예수님이 길이시니 그분은 진리와 생명이 되신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또 관계적으로 안다면 그는 사실상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된다(1:18).
Through Jesus' crucifixion and resurrection, the disciples will enter a new relationship with God. You will enter a relationship that will be together forever. The ultimate destination for Jesus is God. And the way to that path is Jesus himself. Jesus is the way. Jesus is the way, and he becomes truth and life. If you know Jesus personally and relatively, he becomes a person who actually knows God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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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과 그분이 남기신 말씀과 그분의 몸인 교회와 그분이 통치하시는 하나님 나라를 떠나서 하나님과 관계할 수 있는 길은 없다. 다른 길은 없다. 다른 진리는 없다. 다른 생명은 없다. 빌립은 또 예수님이 시각적으로 하나님을 보여주신다는 말로 알아듣는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행하신 모든 일이 예수님 혼자 힘으로 하실 수 없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성품과 피조물을 향한 그분의 목적을 보여주셨다.
There is no way to relate to God apart from what Jesus has done for us, what he has left behind, his body, the church, and the kingdom of God that he rules. There is no other way. There is no other truth. There is no other life. Philip also understands that Jesus shows God visually. Everything Jesus said and did could not be done on his own. Jesus showed God's existence, his character, and his purpose toward his cre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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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하신 그분의 역사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예수님은 위대하고 영웅적인 사람이 되기를 거절하신다. 아들을 믿는 자는 아들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는 놀라운 말씀을 하신다. 이는 예수께서 아버지께로 가는 것(십자가와 부활) 때문에 가능해진 일이다.이 구속으로 거듭난(새 창조된)백성들은 이제 이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응답을 받고, 이 응답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How will you explain his history of doing things that man cannot do? Jesus refuses to be great and heroic. He says amazing things that he who believes in his son can do greater things than his son. This was made possible by Jesus going to the Father (the Cross and the Resurrection). This is because the (newly created) people who have been reborn with this restraint will now be able to receive a response if they pray in the name of Jesus, and through this response, they will be able to live a life that is glorious to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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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영광 받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기도, 그것이 예수님의 구속의 열매다. 무엇을 믿으라는 것인가? 처소를 예비 하러 가신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길이 되신 예수님은 길을 찾는 제자들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진리와 생명이신 하나님께 이르는 길은 무엇인가?
It is not the prayer that I am honored, but the prayer that fulfills God's will, that is the fruit of Jesus's restraint. What am I to believe? What does it mean to go to prepare for a disposition? What does Jesus, who became the path, say to his disciples looking for the way? What is the path to God, who is truth and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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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다시 오심(1-3)
a.제자들의 근심을 위로하시는 예수님:1
b.아버지의 집으로 초대하시는 예수님:2-3
예수님을 통해 아버지를 만남(4-11)
a.예수님을 통해 아버지께로 감:4-7
b.예수님을 통해 아버지를 봄:8-11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함(12-14)
a.예수께서 하신 일보다 큰 일 하기:12
b.기도를 통해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기: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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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마음에(1a)
근심하지 말라(1b)
하나님을 믿으니(1c)
또 나를 믿으라(1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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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버지 집에(2a)
거할 곳이 많도다(2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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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으면(2c)
너희에게 일렀으리라(2d)
내가 너희를 위하여(2e)
처소를(2f)
예비하러 가노니(2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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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서(3a)
너희를 위하여(3b)
처소를 예비하면(3c)
내가 다시 와서(3d)
너희를(3e)
내게로 영접하여(3f)
나 있는 곳에(3g)
너희도 있게 하리라(3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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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는 곳에(4a)
그 길을(4b)
너희가 알리라(4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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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가 가로되(5a)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5b)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5c)
그 길을(5d)
어찌 알겠습니까?(5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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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가라사대(6a)
내가 곧 길이요(6b)
진리요 생명이니(6c)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6d)
아버지께로(6e)
올 자가 없느니라(6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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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7a)
나를 알았더라면(7b)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다(7c)
이제부터는(7d)
너희가 그를 알았고(7e)
또 보았느니라(7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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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이 가로되(8a)
주여 아버지를(8b)
우리에게(8c)
보여 주옵소서(8d)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8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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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가라사대(9a)
빌립아(9b)
내가 이렇게 오래(9c)
너희와 함께 있으되(9d)
네가 나를 (9e)
알지 못하느냐(9f)
나를 본 자는(9g)
아버지를 보았거늘(9h)
어찌하여 아버지를(9i)
보이라 하느냐(9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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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10a)
아버지 안에 있고(10b)
아버지는(10c)
내 안에 계신 것을(10d)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10e)
내가 너희에게(10f)
이르는 말이(10g)
스스로(10h)
하는 것이 아니라(10i)
아버지께서(10j)
내 안에 계셔(10k)
그의 일을(10l)
하시는 것이라(1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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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11a)
아버지 안에 있고(11b)
아버지께서(11c)
내 안에 계심을(11d)
믿으라(11e)
그렇지 못하겠거든(11f)
행하는(11g)
그 일을 인하여(11h)
나를 믿으라(11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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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진실로진실로(12a)
너희에게 이르노니(12b)
나를 믿는 자는(12c)
나의 하는 일을(12d)
저도 할 것이요(12e)
또한 이보다(12f)
큰 것도 하리니(12g)
이는 내가(12h)
아버지께로 감이니라(12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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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내 이름으로(13a)
무엇을 구하든지(13b)
내가 시행하리니(13c)
이는(13d)
아버지로 하여금(13e)
아들을 인하여(13f)
영광을 얻으시게(13g)
하려 함이라(13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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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으로(14a)
무엇이든지(14b)
내게 구하면(14c)
내가 시행하리라(14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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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심하는 제자_a distressed disciple
방향 잃은 제자_Disciplined Disciple
확신 없는 제자_disciple without conv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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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심하는 제자들을 위로하셨던 주님, 이 시간 오셔서 저희를 위로해 주옵소서. 하나님께로 이르는 유일한 길은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점포보다, 그리고 소중한 어떤 것 보다 더 좋은 처소를 예비해 주셨으니 감사함으로 그 나라를 받고 주 이름으로 구합니다. 상심한 명옥 누나에게 위로를 주시고 희 정 이와 어머니께 새 힘을 주옵소서. 주께서 가시면 또 다른 보혜사가 오시어 우리를 통치하실 것을 믿습니다. 주님 오늘도 내가 성삼위일체 안에서 큰일을 행하게 하옵소서.
The Lord, who comforted his troubled disciples, Please come and comfort us at this time. The only way to reach God is to go to Jesus. Thank you for preparing a better place than the store and anything more precious, so I would like to thank you and ask for your country under the name of the Lord. Please comfort sister Myeong-ok, who is heartbroken, and give new strength to Hee-jung and her mother. I believe that if you go, another boye will come and rule us. Lord, let me do great things in the Trinity again today.
2026.3.19.thu. Clay
신학 비평//
요한복음 14장은 매우 독특한 상황에서 시작된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이 근심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제자들의 세계가 붕괴되는 순간이다. 그들이 이해하던 세계는 다음과 같았다. a. 예루살렘 성전 b. 메시아 왕국 c. 민족적 구원 그러나 예수는 전혀 다른 말을 한다. “나는 떠난다.” 이 말은 사실 성전 세계의 붕괴를 의미한다. 성전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공간적 중심이었다. 그러나 예수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 이상 공간에 두지 않는다.
1) 성전 신학의 구조
전통적인 유대 성전 신학은 다음 구조를 가진다. a. 성전-하나님의 임재 b. 제사-하나님과 회해 c. 제사장-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 d. 예루살렘-신앙의 중심 즉 하나님에게 가는 길은 성전 → 제사 → 제사장이라는 체계를 통해서만 가능했다. 하지만 예수는 놀라운 선언을 한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이 선언은 사실상 성전 체계를 해체하는 말이다. 예수의 선언은 신학적 전환을 가져온다. a. 성전 신학...공간 중심/제사 중심/예루살렘 b. 요한복음 신학...인격 중심/관계 중심/예수 즉 하나님께 가는 길은 더 이상 성전이라는 장소가 아니라 예수라는 존재**가 된다. 이것은 단순한 종교 개혁이 아니다. 존재론적 전환이다.
2) 철학적 연결: “길”이라는 존재 개념
예수의 “길” 선언은 철학적으로도 매우 깊다. 고대 철학에서도 **길(way)** 은 진리 탐구의 은유였다. 예를 들어 Martin Heidegger 는 철학을 길 위에서 사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간은 진리를 소유하는 존재가 아니라 진리를 향해 걷는 존재라는 것이다. 요한복음의 구조도 비슷하다. (제자 = 길을 찾는 존재 예수 = 길 자체) 따라서 신앙은 정답을 얻는 것이 아니라 길에 참여하는 것이다.
3) “처소”의 의미: 성전의 재구성
예수는 말한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다.” 여기서 “처소”는 건물이 아니다. 요한복음에서 하나님의 집은 관계의 공간이다.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하나님/아들/제자 사이에 새로운 공동체가 형성된다. 즉 성전은 이제 건물이 아니라 공동체가 된다. 이것은 요한복음 전체 흐름과 연결된다. 예수는 이미 말했었다.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우리라.” 여기서 성전은 예수의 몸이었다.
4) “더 큰 일”의 신학
예수는 또 놀라운 말을 한다. “나를 믿는 자는 나보다 더 큰 일을 하리라.” 이 말은 신학적으로 매우 급진적이다. 왜냐하면 예수 이후의 공동체가 성전 역할을 이어받기 때문이다. 즉 교회는 단순한 조직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가 머무는 새로운 성전이다. 이것이 성령 시대의 신학이다.
5) 제자의 길: 구도자의 철학
당신의 글에서 중요한 단어가 있다. 구도자, 구도자는 길을 찾는 사람이다. 제자도 역시 마찬가지다. 제자는 예수의 길을 묻고 그 길을 걷고그 길을 이어가는 사람이다. 따라서 신앙은 단순한 교리가 아니라 길 위의 존재 방식이다.
6) 결론: 성전에서 삼위일체의 공동체로
요14장은 세 가지 전환을 보여준다. 1. 성전 → 예수 2. 공간 → 관계 3. 제사 → 사랑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삼위일체적 관계*안에서 완성된다. 아버지/아들/성령/공동체 이 네 관계가 바로 요한복음의 새로운 성전이다. “하나님께로 이르는 유일한 길은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 길은 쉬운 길이 아니다. 그러나 그 길은 진리의 길/생명의 길/관계의 길이다. 그래서 신앙은 결국 성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길을 걷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