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틀
방구석에 틀어 박혀서 꼼짝도 안했나 봅니다.
티비로 연신 눈이 15센티이니 뭐니 해도 베란다 창문으로 내다보질 않았는데 어제는 관공서에 일이 있어 어쩔 수 없이 바깥으로 나왔지요.
집 밖의 사정은 전혀 딴 세상인듯 나무 가지마다 쌓인 눈들로 환상이더이다.
너무나 아름다운 광경이라 핸폰으로 한컷 했네요.
도로엔 어느새 녹았는지 비가 내린듯 질척거리고 갓길엔 아직도 채 녹지 못한 눈이 수북하고
가로수들 마다 매달린 눈꽃송이들....
햇빛 사이로 반짝이는 설경이라니...
바람에 흩날리는 하이얀 눈발이 마치 벚꽃이 휘날리듯 사뭇 색다른 풍경이더이다.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듯 휘청거리는 나무가지들 틈새로 스며드는 봄날의 따스한 햇빛이 눈(雪)에 반사되어 반짝입니다.
참
상큼하다는 느낌입니다.
봄날에 수북히 내린 눈이 마치 동화속 눈의 나라에 온듯한 착각까지 일게 하니요.
이런날은 그저 나 좋은 사람과 살포시 팔짱끼고 자박자박 눈길을 거닐어야 하는디,...흐~
관공서에서 일을 마치고 나오는데 전화가 왔지요.
"어디야?"
"나 배고픈데 뭐 좀 사줘봐요?"
"알았어 그기서 기다려 ..여기 잠깐 볼일 보고 그리로 갈테니."
잠시의 기다림으로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책이 몇권 꽂혀 있는곳에서 잠시 망설였지요.
"사랑" 이라는 소설책을 읽을까?
아님 "사소한것에 목숨을 건다"라는 책을 읽을까?
그러다가 하이얗고 깔끔한 수필책인 "소금꽃"(한동희)이라는 책으로 손이 가더이다.
그 책을 집어들고 따스한 창가에 앉아서 읽어갔지요.
남자가 쓴 수필집인줄 알았는데..
글쎄 우리 나이의 중년의 여인이 쓴 글이더만요.
참 정갈하고 깔끔한 글체가 마음을 차악 가라 앉히더군요.
일상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을 맛깔나게도 딱 내 나이에 쓴 글이라 더 다가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사 살아가는 일이 어디 한순간에 다 알겠는지요!
이러저러 내 나이쯤 되어 곰삭인 삶이 자연스럽게 베어 나오는거겠지 싶더구만요.
특히나 딸아이의 배필을 고르는 부분에선 딱 공감이 가는 부분이 나오더군요.
딸아이가 원하는 남자키는 180은 되어야 하고 .....
이 부분에선 잠시 주춤거렸는데
딸아이의 키가 171센티나 된다니 더 나무랄것도 없는 일이라는 것에...
그리고
키작은 남자를 먼저 살짝 가서 살펴보는 어미의 조바심.
또 키큰 남자와의 차 한잔에서 살펴보는 섬세함....
지갑속까지 살필 수 있는 어미의 경제적인 부분까지.....
그런건가 봅니다.
삶이란 사람과사람과의 인연을 자로 잰듯 반듯하게만 꿰 맞출 수 없기때문에...
한참을 책속으로 파 묻히려는데...
전화가 왔네요.
다 왔다고,..
"나가서 기다릴까?"
"아니 내가 전화함 나와"
참 자상하고 이삔 남자이다.
"뭐 먹고싶어?"
"응. 설렁탕, 따끈한 국물같은게 먹고싶네."
"내가 맛있게하는 갈비탕집 아는데 그리로 가지"
"그래? 그럼 그러던지,.."
마주앉아 먹는 갈비탕 한그릇이 참 뜨끈하고 훈훈하다.
앞에 앉은 내 남자...
아직도 마누라와 다정히 데이트 하고싶어하는 남자
곱상하고 선이 고운 얼굴이 여늬 남자들보다 아직은 선하고 착한 얼굴을 하고 있다.
앞에 놓인 뚝배기에서 갈비 한절음 내 탕그릇에 넣어주며 먹으란다.
"나도 많은걸?"
"맛있지?"
"응."
참 말할 수 없이 따스한 남자다.
늦게까지 잠자는 마누라 깨우지않고
먼저 일어나서 손수 찌개끓이고 밥도 해서 아이들 먼저 챙기는 남자
마누라 늦게 일어나도 인상한번 안찡거리고 밥 먹어라 채근하는 남자
그런 남자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마누라가 이런 인터넷카페에 들락거리는 것이란다.
특히 중년의 남녀들이 만나는 모임을 끔찍히도 싫어한다.
중년의 남녀들이 만나봐야 뻔할 뻔자라는 거란다.
허긴,....
내 남자의 말도 아주 틀린것도 아니지 싶다.
그럼에도
답답함과 갑갑함을 느끼는 여자
현실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고픈 갈망으로 이런 곳에서나마 푸념을 내 뱉어야 속이 풀리는 여자
가끔은 황당하고 붙잡을 수 없는 아련한 꿈을 꾸는 여자
그런 여자가 언제쯤이나 편안해질 수 있을까?
봄인데도 눈이 수북한 나무가지를 올려보며 시려오는 눈시울을 붉힌다.
2010.3.10
15년전에 쓴글이네요
운선님이 쓴 첫눈이라는 글을 읽다가 문득 지난 일이 생각나서 올려봅니다
예전의 봄눈은 참 따스하고 정겨운 풍경이었는데 오늘아침 내리는 봄눈의 풍경은 사뭇다른 풍경입니다
다정하고 깔끔했던 서방님도 나이탓인지 치매초기(6급)진단 탓인지 앞에서 말한것도 돌아서기도전에 까먹기일수이고 다 늙어막에 치킨집하니라 사람이 점점 거칠어지고 짜증만 늘어가니 어찌해야 할지모르겠네요
깜빡깜빡 실수연발인 서방님만 탓하는 내 자신도 답답한 현실입니다
하루에도 열두번씩 복창터지는 일이 생겨 확 짤라버리고 싶지만 짜르지도 못하고 오히려 일하다가 다 팽겨치고 집 가버리니 사람 환장 할 노렷입니다
그나마 점점나빠지는 기억력을 붙잡아보려 알바를 안 쓰는 이유이기도 하지만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몰라도 미우나고우나 그래도 싸워가며 달래가며 치킨집 하고 있습니다
모처럼 쉬는 날
축축한 눈발 휘날리는 길을 달려 이삔서방 좋아하는 꽃게 잔뜩 사다가 한 찜통 쪄서먹고 서방은 거실에서 저는 안방 침대에 누웠습니다
창밖은 이제 눈이 그쳤는지 환 하네요
첫댓글 첫눈은 첫사랑 소녀처럼 설레이고 아름다운 느낌인데
봄눈은 나이들어 만난 첫사랑여인처럼 애잔하고
금새 사라질것같은 안타까움이 듭니다
글을 참 정갈하고 아련하게 잘쓰시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장사한답시고 글 한줄 제대로 못쓰니
이렇게라도 ㅎㅎ
어제 점심식사로 뭘 먹었는지
기억이 안 나는 때가 거의 매일 인데요
가벼운 인지장애 ??
구청 센터에 가 봐야 될는지......
조심조심 하시기 바랍니다
인지장애가 좀 심해져서 이년전부터 치매약도 매일 먹습니다요
시어머님이 치매이시라 요양원에 계시는데 아마도 유전이 아닌가싶기도 합니다
약으로 치매가 더이상 진전이 안되었으면하는 바램입니다
아까버라 이렇게 글 사랑하고 독서에 심취하는 여심을 세파에 맞서게 하다니
여린 감성이 굳은 살 속에서 숨죽여 때를 기다리노라니 그 마음인들 편했으리 언제나 마음 풀어 놓을 곳은 열려 있으니 시간 나는 대로 들러 마음에 쌓아 둔거 내려 놓곤하세요 이렇게 마음 나누며 속 내 풀어 야 자존감도 얻고 자신감도 생기고 요요님 뭐든 진지하게 맞서 보아요 요즘 경기가 좀 안좋아서 힘드시죠 건강 챙기시구요
에공 아까울거 하나도 없어요
글도 자주써봐야 늘지 장사 핑계대고
이렇게 엄살을 뜹니다요
장사는 그럭저럭 괜찮은 편입니다
긴시간 둘이 붙어있으니 티격태격 자주 다투게 되네요
힘에 부치니 여러가지로 짜증이 나지 싶어요
감사합니다
부부도 따로 또 같이라고
자상하고 따뜻하던 남편도
같은곳에서 계속 같이 있으면
부딪힐 일도 생기지요
글 참 잘 쓰시네요
바쁜 틈새라도 가끔 오셔요
맞아요
거의 24시간 붙어있으려니 자주 부딪히네요
니가잘났니 네가잘났니
에공 누워 짐뱉기지싶다가도 어린애같이 구니 참 답답하네요
@요 요
맞벌이 하던 친구
자기는 남편이랑 잘 맞는다 하더니
퇴직하고 같이 주구장창 있더니
지독히 안맞다네요 ㅎ
같이 있는 시간 길어지면
다들 그러고 살더라꼬요
금년에
마지막 눈이아닐까 함니다
감사합니다
늘 건강한 모습 보기 좋아요
행복한고국나들이 되시길요^^~
저 또한 아직까지도 카페 활동을 제대로 못하고 있지요.
꼭 글뿐만 아니라 다른 것도 마찬가지지만요
하지만 시간이 많아야 하는 것은 아닌것 같아요.
내가 좋아하는 게 있다면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지요.
어제는 옷이 축축해 때까지 눈을 맞고다녔어요.
가끔은 까탈스런 성격도 풀어놓는 것도 괜찮다 싶어요.
장사한답시고 이제서야 귀가 해서 잠자리에 누웠네요
옷이 축축해 지도록 눈을 맞고 다녔다는 소녀적 감성이 무척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