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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스크립트는 저의 전작 복종과 침묵, 40번 실장의 후속 스크립트입니다.
http://cafe.daum.net/sweetjissouseki/dZSt/3992 -링크
전작을 봐야만 이해되는 요소는 그다지 많지 않지만, 효과적인 감상을 위해 전작을 감상하신 뒤 감상하시기를 권장드립니다.
그럼 재밌게 즐겨주세요 :)
1.
치익-
반짝이는 캔 뚜껑을 누르면 캔에서 공기가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조금 더 힘을 주면
따악!
하고 캔이 시원스런 소리를 내며 열린다.
열린 캔 입구에 코를 대고 숨을 한 번 들이쉬면 머리가 맑아지는 카페인의 냄새가 아찔하다.
그렇게 한껏 냄새를 음미하고 열려진 캔 입구에 입을 대고 커피를 한껏 들이키면
“꿀꺽, 꿀꺽, 꿀꺽….캬아!”
입속에 달콤 쌉싸름한 맛이 가득 퍼진다.
설탕과 감미료가 잔뜩 들어간 싸구려틱한 맛이지만 그 저렴한 맛마저 사랑스럽다.
“휴우…….”
캔커피. 들이키면 한숨 소리마저 편안하다.
단촐한 사무용 책상과 의자 몇 개만 놓여진 이 곳은 나의 가게, 실장숍 ‘실장학교’다.
불과 몇 시간 전에 모든 ‘교육’을 마치고 40번 실장석을 출하한 순간은 나의 일년 사이클 중 몇 안 되는 휴식 시간이다.
41번의 예약은 일부러 꽤 늦게 잡아놨다. 덕분에 모처럼 긴 휴식시간이 생겼다.
이번에 입금받은 액수도 꽤 많고 간만에 시간도 생겼다.
그런 의미에서 해외로 여행이라도 다녀올까?
지겹게 다녀왔지만 최신 정보 수집을 위해서 일본의 로젠사라도 한 번 더 다녀올까.
그러고보니 월간 짓소 이번 호 잡지에 나온 로젠사의 최신 위석적출 시스템은 꽤 괜찮았던 것 같은데 이번에 한 번 다녀올….
똑똑.
이런, 가게문에 휴업 팻말 거는 걸 잊었다.
사육실장 행동교정을 위해 방문한 사람일까?
“택배입니다.”
다행히 손님은 아니었다. 하지만 택배로 받을 물건 같은 것은 없었을텐데?
무슨 택배가 온 건지 이해를 못 한 나의 앞에서 택배원이 상당히 묘한 표정을 지었다.
“무표정님⋯맞으시죠?”
“⋯네?”
대학 시절의 별명이 낯선 택배원의 입에서 나오자 나는 꽤 당혹스러웠다.
뭔가 대체?
“네. 제가 맞는 것 같습니다.”
“⋯네, 그러면 여기 서명 부탁드립니다.”
그러니 서명을 하는 나의 손끝이 약간 부들거려도 택배원이 이해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택배원을 보내고나서야 나는 당혹감을 떨쳐내고 택배상자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내 손에 들린 것은 상당히 가벼운 무게의 우체국 택배 골판지 상자였다.
윗부분 우측하단에는 실장학교의 주소와 ‘무표정 군’라는 글자가 꽤나 반듯하고 예쁜 글씨체로 정성스레 써져있었다.
보낸 사람 이름은 적혀있지 않았지만 짐작가는 곳이 있었다.
이 글씨체로 이 별명을 써서 택배를 보낼 사람은 내가 알기로 딱 하나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참 예쁘게 웃던 여자였는데 말이지.’
나는 가위를 가지러 가면서 계속 생각했다.
그 여자가 뿌리던 향수가 장미향이었나?
시트러스 향이었던 것 같기도한데.
맡으면 기분이 살짝 아찔해지는 그 향은 무엇이었을까.
“그래. 레몬향이었지.”
“센세를 말씀하시는테치?”
“음?”
정신을 차리고 택배 상자를 보자 나의 직업이자, 판매상품이자, 밥벌이. 인생의 반절을 차지하고 있는 생명체가 누워있었다.
실장석이 택배상자에 누워있는 것은 물론이고 그 실장석의 말은 더더욱 어처구니 없다.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건가?
“닝겐상, 안녕하신테치?”
실장석을 앞에 두자 나는 습관적으로 얼굴을 굳혔다.
옷은 깨끗.
운치 지리지 않았음.
크기를 보니 나이는 한 살을 넘기지 않았음.
인간을 두려워하거나 깔보지 않는 것을 봐서는 인간의 손에 자란 것으로 추측.
사육실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어리고 들실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깨끗함.
사육실장이면 인간에게 누워서 인사하는 무례를 저지를리가 없음.
여러가지로 따져보았을 때 사육실장의 자, 혹은 훈련 중인 사육실장 후보일 가능성이 높음.
‘센세’ 라는것은 그 여자를 말하는 말하는 것일터.
“닝겐상, 혹시나해서 말씀드리지만 와타시는 탁아당한게 아닌테치.”
나의 표정이 '불쾌'라고 인식했는지 자실장은 묻지도 않는 변명을 하였다.
“너는 누구지?.”
“와타시는 보시는 바와 같이 자실장인테치. 태어난지는 두 달 정도인테치. 센세가 와타시를 이 상자에 넣으시고 닝겐상께 보내신테치. ”
예의없이 누워있는 자세와는 달리 자실장은 정중하게 자신에 대하여 설명하였고, 그 정중함에 나는 위화감을 느꼈다.
왜냐하면 나의 브리더 경력에서 태어난지 두 달만에 이렇게 조리있게 말할 수 있는 실장석은 한 번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센세가 상자가 열리면 이것을 보여드리라고 하셨던테치.”
자실장은 드러누운 채 등 뒤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나에게 내밀었다.
자실장이 내민 종이는 산뜻한 글씨체로 씌여진 손편지였다.
편지에서 희미하게 레몬향이 풍겼다.
그 향기에 나는 그때가 약간 그리워지고 말았다.
안녕 무표정군, 잘 지내니?
다른 지역에 있어도 네 소식은 꾸준히 들려오는구나.
이번 세레브 실장 대회에서 우승한 실장석이 네가 가르친 애라면서? 정말 대단해!
우연히 그 아이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정말 실장석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였어!
몸짓은 기품있고 말투에는 품격이 넘치는게 감동적이더라구.
아마 그 아이를 가르치느라 캔커피 꽤나 마셨겠지?
그런데 난 그 아이를 보면서 어째선지 너무나도 슬펐어.
왜 그랬을까?
어쨌든 이 편지를 보낸 건 택배에 있던 그 아이를 맡기고 싶어서야.
그 아이는 좀 특별해서 친실장에게도 버림받아서 내가 키우게 되었는데, 내 실력으로는 이 아이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부끄럽지만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걸 너는 이해할 수 있길 바라며 보내니 잘 부탁해.
그 아이를 키우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내가 지불할게.
그럼 잘 지내고 꼭 그 아이가 행복을 느낄 수 있게 해줘.
그럼 이만!
추신 : 어떤 점이 특별한지는 그 아이에게 직접 들어보는 편이 좋을 것 같아!
“허…….”
실로 자기주장 강하고 제멋대로인 그녀다운 편지였다.
때문에 나는 보내는 이가 써있지 않았어도 쉽게 누가 썼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굳이 보내는 이를 쓰지 않은 것은 내가 짐작할 것을 그녀도 알고 있어서겠지.
나와 그녀는 A대학의 실장교육학과 동기였다.
그다지 사교적이지 못했던 나와 달리 그녀는 쾌활하고 활기찬 말씨, 생글생글한 웃음으로 누구나와 친하게 지냈다.
기본적으로 발랄하고 모든 것을 즐기는 활기찬 여자였지만 동시에 자신의 표정과 말씨, 몸짓등이 상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 알고 그것을 무서울정도로 잘 활용하는 여자였다.
게다가 과 수석을 입학부터 졸업까지 단 한번도 놓치지 않은 그야말로 우리 과의 스타였다.
졸업 직후에 로젠사에서 바로 연구직으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지만 어째서인지 거절하고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브리더계에 입문해, 특유의 사교성과 뛰어난 능력으로 최근에 이름을 날리고 있다.
특히 나의 넘버링 실장석과는 달리, 분충이 아니면서도 감정이 풍부하고 애정을 갈구하는 실장석들을 키워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능력이 부족해서’ 나에게 실장석을 보냈다?
꽤 똑똑해 보이는 녀석이지만 고작해야 생후 두 달된 실장석이다.
돈이 된다면 키우고 안 된다면 처분하면 그만인 그런 존재이다.
그런데 다른 브리더에게 그 자실장을 보낸다?
그것도 편지까지 동봉해서?
대체 어떤 의도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지만, 그 의도가 무엇인지는 나중에 천천히 생각해보고 일단 이 실장석을 처리해야할 터이다.
하지만 그 전에
“어째서 누워있는거지?”
명색의 브리더로서 실장석이 누워서 인간을 올려다보는 꼴은 다소 보기 힘들다.
“닝겐사마. 와타시도 닝겐사마 앞에서 누워있는 것을 대단히 무례하다고 생각하는테치. 하지만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으니 부디 이해해주길 바랄뿐인테치.”
아
나는 순간 그녀가 말한 ‘특별한 점’의 편린(片鱗)을 느꼈다.
이상하다.
이것은 절대 생후 두 달 된 자실장의 말씨가 아니다.
이정도라면 내가 말투와 지능교육을 반년 정도 해야 나올 만한 어휘와 문장이다.
대체 어떻게?
“어떤 이유지?”
하지만 실장석에게는 감정을 보이지 않는 것은 나의 지론이며, 특기이다.
당황한 기색을 애써 감추고 한 나의 질문에도 여전히 자실장은 택배상자에 누워서 눈만 데굴데굴 굴리고 있었다.
“아무것도 못 먹은지 이틀이 넘어서 팔과 다리에 힘이 들어가질 않아서 일어나지를 못하겠는테치.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남는 음식물 쓰레기라도 주실 수 있는테치? 움직일 수 있을 정도라도 부탁드리는테치.”
자실장의 말을 들은 나는 내 판단을 수정했다.
이것은 이상한 정도가 아니다.
이 자실장은 똑똑하다거나 예의바르다, 라고 치부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다.
아무것도 못 먹은지 이틀이나 된 실장석이 이렇게 차분하고 정중히 음식을 요구할 수 있을리가 없다.
나는 이 자실장에게 ‘왜 이렇게 똑똑한가?’ 대신 다른 의문이 들었다.
이것, 생물이긴 한건가?
“잠시만 기다려라. 푸드를 가져다주지.”
굳이 가져다주지 않을 이유도 없고, 관찰을 위해서도 푸드를 가져다주는 편이 나을 것이다.
가면서 자실장을 힐끔 쳐다봤지만 자실장은 여전히 표정도 변하지 않은 채 드러누워있다.
나는 암실로 통하는 복도에 있는 서랍에서 푸드들을 들고 왔다.
“먹다남은 찌꺼기라도 좋은데 푸드를 주시다니, 정말 감사드리는테치, 닝겐상.”
경악스럽다.
‘공복으로 방치 후 식사 전 감사인사하기’는 나의 넘버링 실장들도 대여섯번 교육받은 후에야 겨우 해내는 것이다.
대체 그 여자는 나한테 뭘 보낸건가?
“감사히 먹겠는테치.”
나는 팔다리를 움직이지 못하는 자실장을 위해서, 푸드를 직접 입에 넣어주었다.
푸드를 입에 넣어주자 자실장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감사인사를 하고 푸드를 먹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아까보다는 좀 더 차분한 기분으로 자실장의 이상한 점을 관찰할 수 있었다.
먹는 속도가 평범하다.
자실장은 여전히 아무런 표정없이 여유롭게 푸드를 씹어삼켰다.
이번에 세레브 실장 대회에 우승한 29번 실장조차 공복에는 먹는 속도가 20프로정도 빨랐고, 그것은 내가 교육한 실장석들 중에서 가장 느린 속도였다.
“이제 그만 주셔도 되는테치.”
불과 5개정도를 입에 넣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만 주어도 된다고 하는 자실장에게 나는 오늘 몇 번째인지 모를 놀라움을 느꼈다.
보통 자실장들은 한 끼분은 푸드 10개이고, 공복시에는 15개정도 먹어야 만족한다.
스스로 소식하는 실장석이라니, 차라리 채식하는 사자가 더 그럴 듯 하다.
“푸드를 직접 먹여주기까지 하시니 어떻게 감사해야할지 모르겠는테치.”
푸드가 어느 정도 소화되었는지 자실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무릎을 꿆었다.
손의 위치와 허리를 핀 정도 모두 완벽한, 실로 깔끔한 자세였다.
“너에게 물어볼 것이 있다.”
나는 자실장에게 할 질문을 12가지정도 떠올렸다.
“죄송한테치, 닝겐상.”
뭐라고?
나는 약간의 불쾌감을 느꼈다. 대답할 수 없다는 건가?”
“지금 굶은지 오래되서 머리가 흐리멍텅한테치. 지금 상태라면 닝겐상의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을 해낼 자신이 없는테치. 정말 죄송하지만 와타시에게 조금만 시간을 주신다면 어떤 질문을 하셔도 성실하게 대답하겠는테치.”
이런. 놀라움에 눈썹 끝이 살짝 올라가버렸다.
“알겠다. 30분 뒤에 다시 오도록 하겠다.”
슬슬 포커페이스를 유지할 자신이 없어진 나는 한손에 편지를 들고 교육용 암실로 향했다.
2.
딸깍
전구를 켜자 얼마전 까지 40번 실장이 있던 낡은 유리수조가 보였다.
유리 수조 주변에는 녹색과 붉은색 얼룩들이 남아있었고, 피비린내가 희미하게 풍겼다.
나는 어둠에서 의자를 꺼내어 앉아 방금 본 그 자실장 같은 실장석을 만드는 것이 가능한지 생각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너무나도 명확하였다.
불가능하다.
과정섞인 비유도 감탄의 의미도 아니다.
나의 인간으로서, 브리더로서의 명예를 걸고 단언하건데 평범한 실장석을 저렇게 키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불가능이라도 단정지어도 그 자실장은 여전히 택배박스 안에 있었다.
선천적으로 그렇다?
저런 실장석이 선천적으로 태어난다면 나는 당장 실장숍 문을 닫고 공원으로 달려가 들실장들의 인간노예로 평생 살아가겠다.
편지는 ‘특별한 점이 있다. 무엇이 특별한 점인지는 그 아이에게 물어봐라.’ 라고 했다.
그래, 결국 직접 물어봐야 답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나의 브리더로서의 역량이 답지를 보기전에 문제를 풀 수 있을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편지에 있을지 모를 단서를 찾기 위해 또 다시 레몬향 섞인 편지지를 들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걸 너는 이해할 수 있길 바라며 이렇게 보내니 잘 부탁해.’
처음에는 약간의 비꼼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정황과 저 자실장을 보건데 아마 진심일 것이다.
하지만 나와 방향은 다르지만 그녀 또안 어엿한 일류 브리더이다.
그런 그녀도 감당하지 못하는 실장석이 저 실장석이다.
그녀는 무엇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며, 내가 무엇을 이해하길 바라는 것일까.
나는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그러자 처음에는 느끼지 못했지만, 굉장히 이상한 문장이 눈에 띄었다.
‘행복을 느낄 수 있게 해주길 바라.’
‘행복하게 해줘.’가 아니라 ‘행복을 느낄 수 있게 해달라.’ 라고?
학대당하던 실장석이기라도 한건가?
하지만 학대당했다고 행복을 느끼지 못할 리가 없다.
혹시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가 ‘특별한 점’인가?
하지만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라는 이유로 친실장에게 버림받는다는 것은 이상하다.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이상할정도의 자제력과 평온함.
나이에 비해 턱없이 정교한 말투.
허기를 채울 필요성을 못 느낌.
나는 대체 무엇이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지 생각하다 문득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몇 가지 변수들이 걸리지만 이것 이외에는 설명할 수 있는 길이 없다.
나는 어둠 속에 있는 교육용 도구들을 뒤적거리렸다.
그리고 그 중에서 번뜩이는 메스를 찾아낸 뒤 암실을 나갔다.
3.
“닝겐사마, 오신테치?”
자실장은 여전히 택배상자 안에 바른 자세로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 이상할 정도의 바른 자세에 나는 약간의 섬뜩함을 느꼈다.
“아까도 말했지만 너에게 물어볼 것들이 있다.”
“무엇이든지 물어보시는테치. 성실하게 대답하겠는테치.”
유리창으로부터 택배상자에 햇빛이 비추자, 택배상자 내부에는 그림자가 졌다.
자실장의 위에 그림자가 드리워졌고 그 그림자 속에서 자실장의 눈동자가 희미하게 빛났다.
나는 그 눈동자를 잠시 쳐다보았다.
서컥
그리고 대뜸 암실에서 가져온 메스로 자실장의 오른팔을 잘라내었다.
그 순간 나는 손끝에서 느껴지는 약간의 저항감이 의문스러웠다.
자실장의 팔을 수도없이 잘라봤기에 알 수 있다.
이 저항감은 보통 자실장의 흐물거리는 팔을 자를 때의 느낌이 아니라, 성체가 되어서 팔에 다소 근육이 붙은 상태의 팔을 잘라낼 때의 그 저항감이다.
약간의 당혹스러움을 마음에 품은 나와는 달리 자실장은 팔이 잘리기 전과 똑같은 무표정으로
굴러가는 오른팔을 힐끗 쳐다보았다.
“질문은 언제 하시는테치?”
그 모습을 보고 나는 내 추측이 옳았음을 확신했다.
“너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거냐?”
내 질문에 자실장은 잠시 고민하였다.
“와타시는 그 ‘고통’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테치.
하지만 센세는 와타시가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고 했으니 아마 맞는 것 같은테치.”
역시 그랬다.
이틀 동안의 공복을 참고 이성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실장석 따위 있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답은 분명하다.
이 녀석은 공복을, 즉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아마 통각은 커녕 촉감 자체가 없을 것이다.
“내가 너의 팔을 잘랐을 때 무엇을 느꼈지?”
자실장의 오른팔에서 피가 흘러내려 택배상자의 바닥을 적셨다.
“다음 식사 때는 푸드를 하나 더 먹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테치.”
자실장의 패기가 넘치는 대답에 나는 정신적으로 헛웃음을 내뱉었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들이 남아있다.
“너는 왜 식사를 하는 거지?”
그렇다. 공복을 느끼지 못한다면 식사를 하는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태어났을 때는 마마, 오네챠들이 입에 뭔가를 넣고 삼키는 걸 보고 그냥 따라한테치.
처음에는 그냥 공놀이 같은 장난인줄 알았던테치.
그러다가 며칠을 아무것도 먹지 않았던 적이 있었는데 몸에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던테치.
그 때 이후로 몸을 움직이기 위해 식사를 한테치.”
과연.
그러니까 이 녀석에게 식사란 그냥 자동차에 기름을 넣는 것과 별 다를 바가 없다는 말이다.
먹으면 움직인다. 먹지 못하면 움직이지 않는다. 그것이 전부.
“너는 푸드를 먹을 때와 음식물쓰레기를 먹을 때와 차이를 느끼나?”
‘미각이 있는가.’를 묻고 싶었지만, 정말 미각이 없다면 미각이 있냐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냄새가 다른테치. 하지만 그것 말고는 잘 모르겠는테치.”
맛은 모르지만 냄새는 맡을 수 있다, 이건가?
하지만 이 자실장은 아까 분명히 ‘음식물 쓰레기로도 좋은데 푸드를 주셔서 감사한테치.’라고 했었다.
“푸드가 음식물 쓰레기보다 더 좋은 음식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군. 어떻게 안거지?”
자실장은 여전히 표정변화 없이 평온히 답하였다.
“오네챠와 이모우토챠들이 와타시는 쓰레기가 어울리는 분충이라고 했기 때문인테치. 그래서 항상 오네챠와 이모우토챠들은 푸드를 먹고 와타시는 부스러기를 먹은테치. 그래서 와타시는 푸드가 음식물 쓰레기보다 더 좋은 음식이라고 생각한테치.”
잠시 말을 끊고 자실장은 말했다.
“하지만 아직도 왜 푸드가 음식물 쓰레기보다 좋은 음식인지 이해를 못하겠는테치.”
그러고보니 최근 그녀는 일가 하나를 통째로 기르는 특이한 교육법을 발표하여 꽤나 주목받는 중이었다.
하지만 아직 기획단계에만 이르고 결과는 나오지 않은 상태였을 터다.
혹시 이 녀석이 그 첫실험의 결과인가?
이 자실장의 말에 따르면 이 자실장의 자매는 분충이다.
하지만 편지에 의하면 정작 친실장에게 버림받은 것은 자매가 아니라 이 녀석.
어떻게 된거지?
혹시⋯.
“너는 들실장이었나?”
“와타시는 들실장이 아니었던테치. 하지만 사육실장도 아닌테치. 사육실장이 되기 위해 센세에게 여러가지를 배우다가 이곳으로 보내진테치.”
그렇다면 더더욱 이상하다. 들실장이라면 모를까, 어째서 그녀의 펫숍에서 분충 대신 이 녀석이 버림받은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너는 친실장에게 버림받은 것이 맞나?”
자실장은 꽤 오래 생각하더니 대답하였다.
“마마는 와타시의 팔을 물어 뜯고 주먹으로 와타시를 때리면서 ‘내가 분충을 길렀던데스! 오마에 따위는 그냥 뒈져버리는데스!’라고 한테치.
와타시의 몸에서 흰막대기가 튀어나오고 빨간물이 나온테치.
그걸 본 센세는 와타시와 마마를 떼어놓고 와타시에게 이상한 액체를 부어준테치.
그리고 그 이후로는 마마를 본 적이 없는테치.
아마 와타시는 마마에게 버림받는 게 맞는 것 같은테치.”
즉 친실장에게 분충 취급을 받고 뼈가 튀어나올때까지 맞다가 그녀가 그 광경을 보고 둘을 떼어놓고 이 자실장에게 활성제를 부어주었다, 이 말이군.
여기까지 들어본 말로는 대체 이 일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이렇게 된 이상 별 수 없다.
“너와 너의 자매, 그리고 친실장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봐라.”
내 말을 들은 자실장은 고개를 숙였다.
그림자진 택배상자 안에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약간 숙인 그 모습은 죄인을 생각나게 하였다.
자실장이 다시 고개를 들 때 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마침내 자실장은 입을 열었다.
5.
실장석과 브리더는 떼놓을 수 없는 관계이다.
왜냐하면 끝없는 탐욕, 저열한 두뇌,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자존감을 가지고 태어나는 실장석이 애완동물로서 판매되기 위해서는 브리더라는 존재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브리더는 실장석을 교육시켜 판매하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그렇기에 실장석과 브리더는 서로에게 필요한, 기묘한 공생관계인 셈이다.
그렇다면 브리더가 실장석을 교육하는 것은 쉬울까?
실장석을 교육하는 것은 간단하다.
채찍과 당근. 잘못된 행동에는 벌을, 좋은 행동에는 상을 준다.
게다가 의사소통이 되기 때문에 개나 고양이에 비해 교육이 용이하다.
이렇게 교육해서 실장석은 나쁜 행동을 하지 않고 착한 행동만을 하게되고, 브리더는 실장석을 고객에게 팔아 돈을 번다⋯참으로 편한 이야기다.
하지만 길거리에 나가보면 의외로 실장숍 간판을 보기란 쉽지가 않다.
그 이유는 브리더는 고객의 집에 팔린 실장석까지 ‘교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장숍에서야 얼마든지 채찍과 당근을 사용할 수 있지만 브리더로서는 고객의 집에 팔려간 실장석까지는 어쩔 수 없다.
이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매 달 추가 교육을 제공하는 브리더도 있지만, 이는 시간적·공간적으로 꽤 부담될 뿐 아니라, 사육주의 집에서 편안한 삶에 젖어든 실장석을 불과 몇 시간 내에 다시 교육시키기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브리더는 실장석이 고객의 집에 넘어가서도 분충짓을 하지 말도록 교육해야하며, 이 때문에 브리더에게는 섬세한 기술과 통찰력, 그리고 엄청난 집념을 필요하다.
만일 실장석의 분충짓을 한 번이라도 넘어가는 순간 모든 교육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을 뿐 아니라 브리더의 눈을 속이는 분충을 판매한다면 브리더로서의 생명은 끝장이기 때문이다.
만에하나 일어날 수 있는 이러한 사태를 막기 위하여 브리더들은 훈육기술을 공유하고 연구하기 시작하였고, 이 공동연구는 점차 발전하여 브리더간의 협회가 되기까지 이르렀다.
이 브리더 협회에 모인 지식과 기술들은 어마어마하였고 그 모든 것들이 총동원되어 만들어진 것이 실장석이면서 실장석을 벗어난, 인형처럼 아름답고 귀족처럼 기품있는 실장석, 속칭 ‘세레브 실장’을 만들어내기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이것을 사회 고위층 인사들에게 선물하여 언론에 지속적으로 노출시켜 제 2의 실장석 열풍을 일으키는데 성공하였다
이 열풍 속에서 협회는 쌓여가는 노하우와 자금을 바탕으로 계속해서 성장하여, 결국 A대학에 ‘실장석교육학과’를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협회의 자금력과 역대 브리더들이 쌓아올린 훈육 기술과 지식들이 결합하여 생긴 실장석교육학과는 우수한 브리더들을 수없이 배출하고, 배출된 브리더들은 선의의 경쟁을 계속하였다.
이에따라 사육실장 업계는 브리더 저마다의 개성에 따라 분화(分化)하였다.
실장석을 보다 아름답게 만들거나,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게 하거나, 보다 똑똑하게 만들게 하는 등의 다양한 발상과 시도가 있었고 그에 따라 발전을 거듭해나갔다.
그들 중 성공한 이의 지식은 후계로 이어지고 실패한 시도 역시 반면교사가 되어 브리더 업계는 날로 성장해나갔다.
그중에서도 여자가 실장석을 교육하는 방법은, 그 다양한 시도 중에서도 특기할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예상치못한 어떤 변수가 그 시도를 망쳐버릴 것이라고는 여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심지어 그것은 그 변수 스스로조차도 말이다.
6.
삼녀는 알 수 없었다.
“좋은 아침인테치, 주인사마!”
왜 우리는 인사를 연습하는 것일까.
“장녀챠. 목 각도가 약간 오른쪽으로 틀어진데스. 차녀챠. 웃는 눈이 지나치게 가느다란데스. 삼녀챠. 그대로만 하는데스. 아주 좋은데스. 자, 다시 해보는데스.”
왜 마마는 우리에게 인사를 연습시키는 것일까.
“좋은 아침인테치, 주인사마!”
왜 우리는 이 텅 빈 하얀 방에 있는 것일까.
“장녀챠! 이번엔 고개가 왼쪽으로 뒤틀린데스! 적당히라는 걸 모르는데스?
차녀챠! 그 분충 같은 웃음 좀 짓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하는데스까!
둘 다 삼녀챠를 조금이라도 좀 배워보는데스!”
왜 장녀와 차녀는 나를 저런 눈빛으로 쳐다보는 것일까.
나에게 주먹질을 하겠다는 의미일까.
아니면 좀 있다 푸드를 내놓으라는 것일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볼 때 아마도 전자일 가능성이 높은 것 같다.
“알겠는테치!”
하지만 왜 마마가 쳐다보자 아무것도 아니였다는 듯이 바로 시선을 돌리는 것일까.
삼녀는 세상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굳이 이해할 필요도 없었기에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친실장이 훈련을 시키면 훈련에 따르고 장녀가 자신을 때리고 차녀가 부려먹어도 거기에 따를 뿐이었다.
이유도 의미도 모르겠지만 굳이 따르지 않을 이유도 없기 때문에 하루하루를 그렇게 보낼 뿐이었다.
“좋은데스. 그럼 다시 한 번…….”
“안녕, 애들아~ 잘 하고 있니?”
갑자기 텅 빈 벽에서 사각형의 거대한 균열이 생기더니 그 사이로 여자가 들어왔다.
여자치고는 장신인 키에,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핑크빛 드레스를 입고 시원시원한 얼굴로 장난기어린 미소를 띤 여자는 28세, 실장숍 ‘실장학교’의 주인이었다.
(남자의 실장숍과 이름이 같은 것은 순전히 우연이다.)
여자가 방에 들어오자 방에 레몬향이 풍겼다.
“센세, 어서오는테치! 너무너무 기다렸던테치! 안아주는 테츙~ ♡”
“센세~와타시 인사연습 열심히 한테츙~♡ 와타시 잘한테치?”
“어서오시는테치, 센세.”
브리더의 교육현장 같던 방은 갑자기 먹이를 가지고 돌아온 친실장을 환영하는 들실장들의 그것과 흡사해졌다.
그리고 장녀와 차녀 역시 들어오는 여자에게서 보통 자실장들이 친실장에게 느끼는 감정을 느꼈다.
“응응, 장녀쨩! 오늘도 열심히 했어?”
장녀와 차녀의 어리광에 응답해주면서 여자는 활짝 웃었다.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순수하고 아름답게 지은 미소에 실장석들은 아찔하였다.
“와타시 오늘 인사 많이많이한테치! 안아주는테치!”
“응, 그래그래. 자! 귀여워 귀여워! 장녀쨩, 오늘도 귀여워!”
“장녀 오네챠만! 치사한테치! 와타시도 안아주는 테츙!”
“차녀쨩도 노력했구나. 자! 어이구어이구~”
여자가 장녀와 차녀를 한 팔에 하나씩 안자 자실장들은 여자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그 광경은 브리더와 사육실장 후보의 관계라기보다는 오히려 친실장과 자실장의 그 질척하고 끈적끈적한 관계를 연상하게 하였다.
“센세한테서는 새콤달콤한 냄새가 나서 너무 좋은 테츄!”
“헤에….기분 좋아지는테치….”
“으휴, 이 어리광쟁이들! 삼녀쨩도 오늘 열심히 했니?”
삼녀는 여자의 질문을 이해했지만 대답할 수 없었다.
열심히라는 것은 무엇인가? 하루에 3시간부터인가? 아니면 4시간부터인가? 아니면 하루 종일 해야하는 것인가?
결국 삼녀는 친실장에게 바톤을 넘겼다.
“와타시는 와타시가 열심히 했는지 잘 모르겠는테치. 마마에게 물어보는 편이 더 정확할 것 같은테치.”
“삼녀챠는 연습 시간은 물론, 쉬는 시간에도 계속 연습한데스. 셋 중에서 가장 열심히 한데스.”
“그래? 어휴, 삼녀쨩. 말하지 그랬어~ 예쁘다, 예쁘다~”
여자는 자신의 목덜미의 체온과 향기에 푹 빠져있는 장녀와 차녀를 바닥에 내려놓고 삼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삼녀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 처럼 여자의 손이 닿지 소리내어 웃었다.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장녀와 차녀가 저 여자의 손에 닿을 때마다 소리를 내어 웃는 것을 보니 아마도 그렇게 하는 것이 맞으리라.
“헤헤, 감사한테치, 센세.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는테치.”
여자의 애정과 온기가 삼녀로 옮겨가자 장녀와 차녀의 눈에는 불꽃이 튀었다.
조금 전에 삼녀를 바라보던 시선이 적의(敵意)였다면, 이번에는 분명한 살의(殺意)가 포함되어있었다.
제까짓게 무엇인가.
제까짓게 무엇인데 우리보다 선생님의 이쁨을 받는 것인가.
저것이 없었다면, 저것만 없다면.
친자매간에 적의와 살의, 분노와 질투 섞인 시선이 오가는 것을 그 옆에서 친실장은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삼녀쨩뿐 아니라 다들 수고 많았어! 자, 오늘 점심식사야~”
여자는 주머니에서 실장푸드팩을 꺼내어 정확히 30개를 바닥에 놓았다.
그런데 푸드를 줄 것이라면 자실장 하나에게 10개씩 배분하면 될 것을, 굳이 30개를 바닥에 내려놓는 것은 퍽 이상한 일이었다.
“아, 그리고 로토쨩. 잠깐 나 좀 볼래? 여기 너희들 밥 두고갈테니까 사이좋게 나눠먹어야해~!”
여자가 로토라 불린 친실장을 데리고 함께 방에서 나갔다.
“오늘도 이 빌어먹을 년만 칭찬받은테치.”
“센세는 왜 이런 분충 따위를 칭찬하는테치?”
방 안의 분위기는 급변하였지만 좀 묘하게 돌아갔다.
애정을 빼앗긴 장녀와 차녀는 분노하며 삼녀를 노려보았지만, 삼녀는 그 모습을 어느새 표정을 지운채 바라볼 뿐이었다.
장녀와 차녀의 눈빛과 표정은 항상 보던 일상이다.
크게 놀라울 것도, 두려워할 것도 없었다.
“오마에같은 분충 따위는 이렇게 해버리는테치!”
“그게 당연한테치!”
콰드득!
장녀와 차녀가 질투와 분노로 삼녀의 팔을 한 쪽씩 물어뜯는 분충짓도, 그저 으레 있는 일 뿐이었다.
“데갸아아아악! 아픈테치!! 왜 와타시의 팔씨를 먹는테치!!”
그리고 여기서 이렇게 비명을 지르며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마무리되어야 한다.
15일 전 친실장이 게으름 부리는 장녀를 체벌하기 위해서 팔을 물어뜯었을 때도 장녀가 이렇게 했으니 아마도 이렇게 하는게 맞을 것이다.
실제로 이렇게 행동하면 장녀와 차녀가 모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것을 보니 틀림 없다.
이와같은 삼녀의 괴리감있는 사고는 보통 실장석들의 행동과 약간 다른 점을 보였다.
첫째. 팔을 잡을 때 까지는 신경도 쓰지 않다가 장녀가 팔을 물어뜯고 나서야 반응하였다.
둘째. 비명은 높고 날카로웠지만 그 비명에는 팔이 없어진 것에 대한 당혹감과 고통에 대한 경악이 결여되어있었다.
마치 발연기를 하는 신인 배우처럼 그저 대본을 읽는 듯한 비명이었다.
셋째. 눈물을 흘릴 때의 얼굴 표정은 분명히 일그러저 있었지만, 그것은 고통의 표정이라기보다는 억지로 눈물샘을 비틀어 눈물을 흘리기 위한 일그러짐에 가까웠다.
하지만 모방과 거짓에 의한 위화감을 알아채기엔 장녀와 차녀는 너무나 어렸다.
“배가 고프니 먹는게 당연하지 않은테치?
멍청한 분충인 오마에는 그런것도 모르는테치? 데프프픗.”
“자비로운 장녀 오네쨩과 와타시가 특별히 자비를 배풀어 푸드 하나 정도는 줄테니 엎드려서 이거나 처먹는테치! 데프프프픗!”
승리감에 도취된 차녀는 입에서 우드득하는 살점과 뼈가 씹히는 섬뜩한 소리를 내며 푸드 하나를 저 멀리 던져버렸다.
그러자 삼녀는 눈물을 흘리며 푸드를 향해 걸어가, 주저없이 땅바닥에 배를 깔고 푸드를 씹기 시작하였다.
“장녀 오네쨩 저 천한 짓거리 좀 보는테치. 어떻게 식사를 엎드려서 할 수 있는테치?”
“멍청한 분충년이라 별 수 없는테치. 저런게 우리 자매라니 한심해서 봐줄 수 가 없는테치, 데프프픗.”
심플한 신데렐라적인 상황이었지만 삼녀의 괴리감있는 사고방식, 감각과 고통의 부재. 그리고 그로 인한 위화감은 장녀와 차녀, 그리고 삼녀 스스로를 포함하여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였다.
“역시 변한게 없네, 이 아이들은.”
그리고 그것은 지금 이 상황을 의자에 앉아서 CCTV로 지켜보고있는 여자와, 그 여자의 무릎에 앉아있는 친실장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스. 장녀와 차녀는 이제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분충인데스.”
여자와 친실장은 옆 방에서 CCTV를 통해 세자매들의 행동을 똑똑히 보고 있었다.
다만 원거리에서, 그것도 실장석들로부터 숨기기위해 만들어진 작은 카메라는 유감스럽게도 삼녀의 위화감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였다.
“역시 안 되겠어.”
여자는 무릎에 앉아있는 친실장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한숨을 쉬며 말했다.
“더 이상 장녀와 차녀를 키우는 건 시간낭비야. 저 둘을 가르치려고 하다가는 오히려 삼녀까지 망가지겠어.”
“와타시도 센세와 똑같이 생각하는데스.”
자신의 자실장 중 두 명을 폐기처분하겠다는 여자의 말을 듣고도 친실장은 분노는 커녕 적극적으로 동의하였다.
그것은 아마 애정의 차이일 것이다.
“그래, 그럼 장녀와 차녀는 여기까지. 내일 처분하는 걸로 하자. 자, 그럼 이제 애들한테 가봐 로토쨩.”
“⋯알겠는데스.”
로토라고 불린 친실장은 여자의 무릎에서 내려와 고개를 숙이고는 옆 방을 향하였다.
하지만 미묘하게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는 듯이, 걸어가는 와중에 힐끔힐끔 여자를 바라보았다.
“참! 깜빡할뻔 했네! 어휴, 미안해, 로토쨩.”
여자는 나가려는 로토를 붙잡고는 찬장에서 콘페이토를 꺼내어 친실장에게 주었다.
“이거는 특별히 수고한다는 의미에서 주는 거야. 맛있게 먹어~”
“헤헤, 센세~ 늘 고마운데스웅~.”
친실장은 기분 좋게 여자를 향해 웃음을 지었고, 여자도 미소를 지어 화답하였다.
“그럼 센세, 와타시는 이만 가보겠는데스웅~”
“응, 로토쨩! 수고해~”
여자는 미소를 지으며 친실장이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탁
친실장이 나가고, 방문이 닫혔지만 여자의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여자는 누구를 향하는지, 왜 짓는지도 모를 미소를 지우지 않으며, 핑크빛 노트북을 꺼내어 워드프로그램을 켜고 타자를 치기 시작하였다.
‘⋯이와같이 통칭 ‘세공사’를 필두로하는 종래의 교육방법은 수많은 연구와 시도를 거듭한 끝에, 실장석은 하나의 예술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정도로 섬세하고 아름다워졌다.
집요하고도 철저한 체벌을 주요 수단으로 삼는 이 고전적인 교육수단의 가장 큰 특징은 교육을 받는 실장석들의 감정을 철저하게 제거하는 것이다.
이 감정의 제거는 ‘변질’을 막고 주인의 말에 복종하게 하는 효과가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육실장의 본질인 ‘반려동물로서의 기능’을 거의 하지 못하게 하는 부작용이 있다.
즉, 이 방법을 통해 만들어진 실장석들은 주인이 웃으라 하면 입꼬리와 눈꼬리를 올리고 울라 하면 기꺼이 눈물을 흘리겠지만, 개나 고양이와 같은 일반적인 반려동물과의 교류에서 느낄 수 있는 정서적인 만족감을 느끼기는 힘들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석처럼 섬세한 사육실장의 아름다움에 매료되는 사람들의 수요는 막대하여 대다수의 브리더들은 이 교육방법을 따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에 필자가 안타까움을 느끼는 부분은 실장석과의 교류에서 정서적인 만족감과 애착을 느끼고 싶어하는 사육주들의 요구가 시장에 전혀 반영되지 못하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필자는 다음과 같은 교육방법을 제안한다.
린드 B 로젠 교수가 입증하고 다수의 브리더들이 경험하는바와 같이, 분충과 양충을 같이 양육하는 것은 분충에게는 전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하며 오히려 양충의 분충화가 가속된다.
하지만 필자는 해당 연구가 분충과 양충을 한 마리씩 양육한 결과임에 주목하여 분충과 양충의 사육비율을 조정해본 결과, 흥미로운 결과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소수 분충과 다수 양충, 동일한 분충과 동일한 양충을 교육하는 경우 모두 양충이 분충화되는 결과를 가져왔지만 특이하게도 교육환경에서 ‘소수의 양충이 다수의 분충에 의해 괴롭힘을 당하는 경우’는 소수 양충들에게 분충 행동에대한 경멸과 혐오를 심어주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종래의 교육방법은 교육대상에게 분충짓에대해 극단적인 공포를 심어주는 것으로 ‘변질’을 막는다.
이에 반해, 해당 교육환경에서 ‘소수의 양충’은 브리더가 특별히 분충짓에 대한 언급이나 처벌을 없음에도 불구하고, 진심으로 분충짓에 대하여 경멸과 혐오를 가지고 해당 행동을 피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실험결과, 해당 교육환경에서 교육대상이 진심으로 가지게 되는 분충짓에 대한 경멸과 혐오는 기존의 교육방법보다 ‘변질’ 가능성을 약 20% 가량 낮출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방법의 장점은 이뿐만이 아니라, 다수 분충에 의한 괴롭힘은 양충들의 자존감을 상당수준 낮추기 때문에, 토시야키 교수가 정의한 분충화의 3대 주요 요소 중 하나인 ‘지나치게 높은 자존감’을 억압하여 분충이 될 가능성을 30퍼센트 가량 낮출 수 있었다.
이와 같은 결과에서 착안한 필자의 교육방법은 소수의 양충이 다수의 분충에 의하여 괴롭힘을 받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해당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먼저….’
논문이라고 하기엔 투박하고 자기기록이라고 하기엔 딱딱한 글을 타이핑하던 여자는 한숨을 쉬더니 노트북을 덮고 기지개를 쭈욱하고 폈다.
“야아- 장녀쨩과 차녀쨩도 이걸로 마지막이구나~
좀 아쉽지만⋯그래도 할 수 없는 걸.어리광부릴 떄 정말 귀여웠는데…”
내일 장녀와 차녀를 차분할 생각을 하자 여자는 진심으로 안타까움을 느꼈다.
장녀와 차녀는 분충이지만, 여자는 자신들보다 우월한 삼녀에게 가지는 질투와, 자신에게 부리는 어리광과 그 분충성들을 포함하여 진심으로 그 둘을 사랑스럽다고 생각하고 좋아하였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자신의 일은 브리더.
시덥지않은 정에 휘말려서 일을 망치는 것은 브리더 실격이다.
“이미 각오했으니까.”
무엇보다 이런 일이 일어날 건 이미 각오하였다.
그것을 위해서 나이에 맞지도 않는 이런 핑크빛 드레스를 입고 실장석들을 대하는 것이나 분충들을 처분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여자는 실장석을 사랑하였다.
분충도, 양충도, 프니프니만 찾는 구더기의 저능함도, 테찌테찌거리는 자실장들의 혀짧은 소리도, 끝없는 탐욕도 역겨운 아첨소리도, 고통에 테챠아아 하고 지르는 소리도, 죽을 때 한순간 내는 지벳 소리도 포함해서 실장석의 모든 것을 사랑하였다.
어떤 이는 애호파라 하고 어떤 이는 학대파라 하겠지만, 여자는 실장석이라는 생물의 모든 것. 그 가증스러움과 사랑스러움, 역겨운 면 모두를 사랑하였다.
그렇기에 여자는 브리더 업계에 슬픔을 느꼈다.
아무도 실장석을 실장석으로 보고 있지 않다.
분충성을 모두 제거한다고?
그 분충성과 그 이면에 있는 사랑스러움이 모두 공존하는 것이 실장석 아닌가?
여자는 자신의 영혼을 매료시킨 이 생물을, 브리더 업계와 소비자들이 살아움직이는 인형, 값비싼 악세사리 취급하는 것에 슬픔과 염증을 느꼈다.
애호든 학대든 중요하지 않다.
여자는 인간이라면 실장석의 희로애락, 고상함과 역겨움, 그 모든 것을 제대로 직시해야한다고 생각하였다.
실장석을 생물로 보지않고 단순히 비싼 무기물로 취급하는 것은 학대나 학살 이전의, 실장석의 존재와 생물로서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을 넘어, 아예 없는 것 취급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즉, 실장석이 값비싼 무언가로 취급받지 않고 ‘생물’로서, ‘실장석’으로서 취급받게 하는 것이 여자의 목표였다.
이를 위하여 기존 브리더업계의 주류인 ‘세공사’의 교육방법 대신, 자신이 연구한 새로운 교육방법으로 실장석과 인간이 서로 올바른 반려동물로서의 관계를 형성하게 하는 것이 제 1보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실장석을 위한 그 시도는, 바로 그 실장석에 의하여 늦춰지게 되었다.
7.
부스럭 부스럭
삼녀는 잠을 쉽게 잘 수 없었다.
피로를 느끼지 못하는 탓에 도무지 잠을 자기 힘든 삼녀는 자세를 바꾸려 몸에 신호를 보내다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몸이 움직이지 않는테치? 왜 이러는테치?’
삼녀의 육체가 한계에 달해있었다.
장기간에 걸친 식사량의 부족, 장녀와 차녀의 동족식에 의한 신체재생에따른 육체적 부담이 쌓이고 쌓여 움직일 수 없게 된 탓이다.
‘이럴 때 지난 번에 어떻게 했던테치?’
삼녀는 움직이지 못하게 된 경험이 처음이 아니었다.
태어난지 얼마 안되었던 시절 식사라는 행동의 의미를 모르던 삼녀는 극단적인 소식을 하다가 영양실조로 실신하였다.
그때는 낮이었고, 여자와 친실장이 같이 있었기 때문에 여자는 곧 바로 삼녀에게 고열량의 콘페이토를 주었고, 콘페이토를 먹은 삼녀는 겨우 움직일 수 있었다.
그 때의 경험으로 식사의 의미를 깨달은 삼녀가 생각한 원인해결 방법은 간단하였다.
‘무언가를 먹어야하는테치.’
하지만 지금은 밤 중 인데다가,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조차 없다.
보통 실장석, 인간이라도 패닉에 빠질만한 상황이겠지만, 특이한 신체를 가진 삼녀만이 먹을 수 있는 것이 있었다.
까드득
섬뜩한 소리를 내며 삼녀는 움직이지 않는 턱을 간신히 움직여 자신의 혀를 잘라내어 씹었다.
질겅질겅
몇 안 되는 살점이지만, 일단 삼녀는 간신히 움직일만한 열량을 섭취하였다.
입과 코에 피비린내가 확하고 풍겼지만, 삼녀는 개의치않았다.
일단 몸을 움직일 수 있지만, 빨리 먹을 것을 구하지 않으면 오히려 혀를 재생하는데 영양분을 더 빼앗겨 버릴 것이다.
“테츄⋯테츄…와타시 너무나도 세레브한 테츄….센세랑 평생 행복하게 사는 테츄⋯테츄⋯.”
“테츄⋯스테이크와 콘페이토의 산인테츄⋯전부 다 와타시의 것인 테츄⋯아무에게도 못 주는 테츄⋯.”
간신히 일어난 삼녀는 고뇌에 빠졌다.
‘빨리 무언가를 먹어야하는테치. 이러다가는 내일 아침 연습을 할 수 없는테치.’
또 다시 실신해버리면 내일 아침연습에 참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마마는 장녀와 차녀에게 아침연습을 빼먹으면 안 된다고 몇 번이나 말했다.
따라서 무언가를 먹어야한다.
하지만 지금은 밤이고, 주위에 식사거리라고 할 만한 것은 전혀 없다.
자매들을 깨워 도움을 요청하고 싶어도 18일 전 이 시간에 잠을 깨웠을 때 분명 다시는 깨우지 말라고 했었다.
어떻게하면 좋은가?
자매들을 깨우는 것은 안 된다.
내일 아침 연습을 안 할 수는 없다.
주위에 먹을 것은 없다.
꽉 막힌 상황 속에서 한참을 고민하던 삼녀는 문득 낮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데갸아아아악! 아픈테치!! 왜 와타시의 팔씨를 먹는테치!!’
‘배가 고프니 먹는게 당연하지 않은테치?
멍청한 분충인 오마에는 그런것도 모르는테치? 데프프픗.’
‘배가 고프면 팔을 먹으면되는테치?’
그것이 삼녀가 내린 결론이었다.
생각해보면 장녀와 차녀가 팔을 뜯어먹었지만, 결국 다시 자랐고 그다지 해가 될 건 없었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다.
‘오네챠들을 깨우면 안 되는테치. 와타시가 장녀챠의 팔을 먹으면 장녀챠는 ‘데갸아아아악! 아픈테치!! 왜 와타시의 팔씨를 먹는테치!!’ 하면서 일어나야하는테치. 그러면 차녀챠가 시끄러워서 일어나버리는테치⋯⋯. 어떻게하는 테치?”
실로 어려운 문제이다.
내일 아침에 연습을 하려면 “먹어야한다.”
밤에는 자매들을 “깨워서는 안 된다.”
이 모순에서 한참 동안 고뇌하던 삼녀는 순간, 떠올렸다.
그래, “깨우지 않고”, “먹으면” 된다.
간단한 방법을 떠올린 삼녀는 지체없이 방법을 실행하였다.
옆을 힐끗 쳐다보자 장녀가 여전히 잠꼬대를 하며 자고 있었다.
“아⋯센세⋯거기는⋯테교보오오옥?”
삼녀는 지체없이 장녀의 입과 코를 손으로 틀어막았다.
아그작.
그리고 목, 정확히 말하자면 성대가 있는 부분을 씹었다.
이빨이 들어가는 순간 겉에 낀 부드러운 지방이 맞이하고 그 다음에는 말랑한 뼈가, 그리고 단단한 목뼈가 느껴지지만은 이가 으스러져라 깨문다.
소리를 지르려면 목이 있어야한다.
그렇다면 목부터 씹어삼킨다면 자매들을 깨우지않고 아무 문제없이 식사를 할 수있다.
“데⋯!!!⋯⋯⋯⋯!⋯⋯!!⋯!⋯!! !!!!!!!”
장녀는 목덜미가 깨물려 소리조차 지르지 못한 목부터 시작해서 가슴, 분대, 창자까지 산채로 파먹혔다.
그리고 자신을 잡아먹고 있는 것이 누군지도 깨닫지 못한 채, 죽는 순간까지 삼녀의 옷자락만 바라보며 날뛰다가 소리도없이 절명하였다.
‘얼마나 먹어야하는 지를 몰라서 너무 많이 먹어버린테치.’
목부터 시작해서 장녀의 신체의 왼쪽 절반을 먹어치운 삼녀는 너무 많이 먹지는 않았나 걱정하였다.
다행히도 장녀는 말을 할 수 없는 것을 깨닫고 다시 잠 든 모양이고, 이제 몸이 제대로 움직인다.
하지만 이걸로 충분한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장녀와 차녀는 하루에 푸드를 10개는 넘게 먹었고, 자신은 굶은지 꽤 오래 되었다.
이걸로는 부족한 것 같지만 장녀를 더 먹어도 될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렇다면 별 수 없다.
차녀도 먹는다.
삼녀는 자신이 먹은 장녀가 깨어날까 염려되었기에, 장녀와 똑같은 방식으로 차녀를 먹기 시작하였다.
아랫부분을 먹으면 너무 많이 먹으니 이번에는 윗부분을 먹어볼까?
삼녀는 차녀의 목덜미를 씹었다.
그러자 차녀의 눈이 번쩍 뜨이면서 그 순간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이게뭐인테치뭐인테치왜목이목소리가안나오는삼녀오마에왜거기에살려줘살려줘살려주는테치!’
차녀는 극도의 공포로 삼녀를 쳐다보았지만 낮 시간과 마찬가지로 삼녀는 대체 왜 차녀가 저런 눈으로 쳐다보는지 알 수 없었다.
곰곰히 생각하던 삼녀는 차녀가 예전에 자신을 때리다가 친실장에게 혼났을 때 저런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제발 웃어주라고 한 기억을 떠올렸다.
“이렇게 웃으면 되는테치?”
삼녀는 장녀를 깨울까봐 그렇게 속삭이며 차녀의 눈을 마주보고 활짝 웃어주었다.
경멸도 분노도 승리감도 없는, 하지만 진심도 없이 눈꼬리와 입꼬리를 당길 뿐인 그 미소는 가면을 생각나게 했다.
그러자 차녀는 만족한듯이 눈을 까 뒤집고는 다시 잠이 들었다.
이걸로 된거구나, 하고 안심한 삼녀는 계속해서 차녀의 몸을 천천히 갉아먹었다.
그렇게 충분히 자매를 먹어치운 삼녀는 제자리 뛰기와 스트레칭을 몇 번 하였다.
‘이제야 평소대로 움직이는테치.’
자신의 예상대로라면, 이 컨디션은 대략 일주일 정도 유지되리라.
아마 당분간은 장녀와 차녀가 자신의 몫의 푸드를 먹어치워도 연습에는 별 지장 없겠지.
더 이상 움직였다가는 장녀와 차녀를 깨울지도 모른다.
배도 채웠으니 이만 자도록 하자.
시체는 어느 새 식었고 흰색 방에는 광기 아닌 광기, 역겨운 피비린내와 썩은 냄새가 가득 채웠다.
그 모습을 방 구석에 놓인 cctv는 그저 똑똑히 지켜만 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이 광경을 발견한 친실장은 그대로 졸도했다.
8.
가게의 유리창에는 어느덧 붉고 길다란 그림자들이 드리누었다.
문을 열면 꽤나 멋진 노을이 볼 수 있을 것이다.
자실장의 길고 긴 고해성사를 들은 나는 왼손 엄지와 검지로 내 얼굴을 잡고 손바닥으로 입을 가렸다.
과연. 그렇게 된건가.
월간 짓소의 칼럼니스트였던 그녀가 지난 호에서 놀랄만한 교육방식을 공개한다고 장담한 것과 이번 호에서 그녀 이름을 볼 수 없었던 것을 기억한 나는 아귀가 얼추 맞아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입을 가리고 계속해서 생각하던 나는 문득 자실장의 상태를 떠올렸다.
“너, 다리 괜찮은거냐?”
“음, 와타시의 짧은 경험으로는 그렇지 않을 듯 한데스.”
몇 시간이고 무릎을 꿇고 있던 자실장의 다리는 피가 흐르지 못해 보랏빛을 띄고 있었다.
그럼에도 눈 하나 까딱 하지 않는 걸 보고 나는 자실장을 들어 올려 편히 눕혔다.
“늦었으니 이만 쉬어라. 피곤할테니 오늘은 편히 잘 수 있게 해주마.”
나는 통로의 서랍으로 가 활성제 뚜껑을 열어 컵에 약간 따른 뒤 네무리를 섞어 자실장의 입에 흘려넣었다.
“감사한테치. 그럼 안녕히 주무시고 내일⋯zzz⋯”
자실장 녀석은 말을 하다 말고 눈을 감고 자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코츄코츄 소리를 내며 잠든 자실장을 보면서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간만에 휴가인데 어쩌다 이런 녀석을 맡게된걸까?
느닷없이,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떠맡기고 휘둘리지만 그게 싫지만은 않은 느낌.
그러니까 이 느낌은…….
“대학생 때 많이 느꼈지, 그래.”
나는 이 상황에서 동아리 방이나 강의실에서 혼자 있던 나를 끌고 나가 멋대로 휘두르고 사라지고는 했던 그녀와의 추억을 연상했다.
아무래도 이번 휴가도 그 때 처럼 낯선 어느메를 향할 것 같다는 예감에 휩싸이며 나는 그녀에게 답장을 해야할지, 해야한다면 뭐라고 쓸지 고민하며 가게문을 닫고 집으로 향했다.
9.
그 후로는 별다른 일이 없었다.
‘행복을 느끼게 해달라’라는 말에 대하여 곰곰히 생각해보았지만 애초에 맛있는 음식도, 따뜻한 집도, 아름다운 옷도 소용없는 녀석이다.
감각이 없으니 3대욕구가 전부 의미가 없고, 나는 그 밖에 이 쓸데없이 똑똑하고 성가신 자실장을 행복해줄 방법을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일단 최대한 많은 것을 경험하게 해주었다.
한강 둔치에 가서 같이 흘러가는 강과 사람들을 보기도 하고 불꽃놀이를 하거나 속초로 겨울 바다를 보러가기도 했고, 심지어 짓소랜드에 가기도 했다.
그때마다 자실장 녀석에게 감상을 물었지만
“와! 정말 아름다운테치! 이런 것을 와타시에게 보여줘서 정말 감사한테치!”
“교육받은대로 말하지 말고, 너의 생각을 말해봐라.”
“어떻게 말해야 올바른 것인테치?”
“너의 감상을 말하는 것에 올바른 것 따위는 없다. 그냥 너의 생각을 이야기해봐.”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테치. 어떤 생각을 해야하는테치?”
“그러니까⋯아니다. 관두도록 하자.”
하지만 이런 식으로 얻는 것 없이 힘만 빠지는 일이라 곧 그만두게 되었다.
소득이 아주 없었던 일은 아닌 것이, 자실장은 가끔씩 나에게
“센세, 하늘에 저 불꽃을 쏘아올리는 건 무슨 의미가 있는테치?”
“센세, 어째서 저 실장석들은 주인에게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는테치?”
같은 퍽 시니컬한 말을 하기도 했다.
그밖에는
“센세, 왜 햇님은 없어질 때만 되면 빨개지는테치?”
“센세, 왜 여기 바다라는 곳은 항상 움직이고 있는테치?”
같은 질문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일들을 보자면 다른 것은 몰라도 지식욕이 꽤 있는 녀석이다.
몸에 감각이 없어서 정신적인 쾌락을 찾는걸까?
어쨌든 별 소득없는 행복찾기 여행을 마치고 결국 실장학교로 돌아와서 소소한 일상을 보내었다.
자실장은 꽤 부지런한 녀석이라서 본인이 자청해서 잡일을 하였다.
나로서는 굳이 녀석을 놀릴 이유가 없으니 이러저러한 일들을 맡겼다.
주로 필기구나 잡다한 사물을 갔다주거나, 마실 것을 가져오게 하는 등의 소소한 일이었다.
실장학교 내부 구조에 익숙해지니 심지어 찬장에서 아이스티를 꺼내서 타오는 일 까지도 가능해졌다.
사육실장을 파는 것을 업으로 하지만 어째서 이런 것을 돈주고 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생각하던 나지만, 이런 녀석이라면 꽤 기를만하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잡일이라는 것이 24시간 늘상 있는 일은 아니다보니 하루중 대부분을 할일없이 멍하게 지내는 것이 녀석의 일상이었다.
그것을 보다못한 나는 녀석에게 tv와 리모컨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본인이 이걸 ‘명령’이라고 생각하는건지, 아니면 즐거운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자실장은 여가시간에는 보통 tv를 보면서 지냈다.
자실장의 취향을 좀 알아보려고 했지만, 애니메이션, 드라마, 뉴스, 예능 등 가리지않고 일관성없게 보고있는지라 좀처럼 취향을 파악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나는 자실장의 행동들을 관찰하면서 틈틈히 녀석에 대해 기록했다.
이름:미정
나이:약 4개월, 자실장
특징
- 몸에 감각이 없고 그 영향으로 감정이 극히 희박한 것으로 추정됨.
- 생존욕구, 3대욕구를 비롯한 욕구가 거의 없음.
- 스스로의 의지가 거의 없음. 행동원리는 보통 ‘명령 받았으니까’ ‘남들도 이렇게 하니까’
- 단 지식에 대한 욕구는 비교적 크다.
- 선천적으로, 혹은 감각, 감정이 없는 탓인지 두뇌가 상대적으로 비상. 어느 쪽인지는 불명.
- 통각이 없기 때문에 신체를 한계이상으로 사용할 수 있어 근력이 발달. 맨손으로 성체실장 뼈를 꺾을 수 있을정도.
- 움직일 때마다 근섬유가 끊어지고, 재생력으로 치유되는 것을 반복하기 때문에 같은 나이의 자실장들에 비해 근육량이 높음.
적어놓고 나니 머리 좋고, 힘 쎄고, 금욕적인 그야말로 완전체같은 놈이었다.
로젠사에 의뢰해 위석조작, 태교 등으로 이런 실장석을 양성하면 떼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 잠시 나마 생각했지만
“위험. 기각.”
이 녀석이 어째서 나에게 왔는지 생각났다.
한밤중에 자다가 자매를 뜯어먹어서였다.
이 녀석은 통각과 생존욕이 없고 그렇기에 타인의 고통과 죽음에도 무감각하다.
생명을 빼앗거나 헤치는 일을 하지 말라고 명령할 수 있지만 절대 왜 그래야하는지는 이해하지 못한다.
훈육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교육’도 불가능할테고.
심지어 다른 실장석에 비해 명석하고 힘도 쎄다.
실장석이 지성이 있음에도 애완동물로써 길러지는 것은 그 지성이 한없이 탐욕적이고 육체는 약해빠져 인간에게 해를 거의 끼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녀석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일반 실장석보다 힘이 쎄고 머리가 좋다는 이야기는 그 만큼 해를 끼칠 가능성도 증가한다는 뜻이다.
만약 이 녀석이 잠자는 주인의 목에 못을 찌르면 어떤 소리가 날지 궁금해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는가?
어쩌면 자매에게 그랬던 것 처럼 인간의 아이에게 손을 댄다면⋯⋯.
“팔아치운 놈이 경찰서나 안 가면 다행이겠군.”
결국 이 자실장은 현재로서는 돈도 안 되고 키우기도 뭣한 기껏해야 잡일이나 잘 하는 애물단지다.
“뭔가 말씀하신테치?”
“아무것도.”
무릎을 꿇고 허리를 쭉편 사육실장의 이상적인 자세로 TV를 시청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저걸 팔 수 없다는 사실이 퍽 안타깝게 느껴졌다.
“그러고보니”
나는 자실장을 주목시키기위해 일부러 말을 끊었다.
자실장이 이쪽을 쳐다보는 것을 확인하고 나는 계속해서 말했다.
“너를 이대로 내버려둘 수 없는데 말이다.”
자실장은 한차례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말했다.
“와타시가 필요없어지셔서 버리시겠다는 말씀이신테치?”
“⋯아니 그게 아니고.”
평소와는 좀 다른 의미로 무표정이 깨질뻔한 것을 참고 나는 말했다.
“너를 보낸 사람이 말하기를 너를 행복을 느끼게 해달라고 했다.”
“와타시, 불행하지 않은테치.”
그건 내가 보기에도 그렇지만 그걸로 끝난다면 그녀가 나에게 이 녀석을 보냈을 이유가 없다.
“불행하지 않은 상태가 행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 말을 들은 자실장은 나를 빤히 쳐다봤다.
장님에게 색을 말한 격인가. 할 말이 없을 만도 하지.
어쨌든 이 상황을 좀 전환하고자 나는 꽤 강한 승부수를 던졌다.
“뭐든 좋으니까 원하는 것을 말해봐라. 내 능력이 되는 한에서는 들어주마.”
“⋯뭐든 말인테치?”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고 내심 초조해졌다.
만약 이 녀석이 말도 안되는 소원을 요구하거나 어쩌면 그녀에게 다시 되돌아가고 싶다면 어쩔지 걱정되었다.
나는 이 녀석을 들고 그녀의 실장숍 앞에서 멍청한 표정을 짓고있을 내 모습을 상상했다.
그녀는 틀림없이 폭소를 터뜨리겠지.
“와타시는⋯.”
자실장은 약간 망설였다.
자신이 이런 것을 바래도 되는지 스스로 의심하는 것 처럼.
“와타시는 글을 배우고싶은테치.”
실장석들에게 글을 가르쳐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 글을 배우고 싶다는 녀석은 처음이었다.
나는 저 소원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브리더이다.
실장석을 찢고 비틀고 고문하고 정신까지 모조리 박살내서 파는 것이 나의 직업이다.
그런 내가 생각하는 실장석들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지독한 짓은
실장석이 어떤 생물인지 알게하는 것이다.
이 녀석들은 다른 동물에 비하면 높은 지성을 가졌고 인간과 교류할 수 있으며 본능적으로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것들을 갈망한다.
하지만 처참할 정도로 빈약한 신체와 도덕성은 거기에 따라가지 못한다.
실장석의 대부분은 골판지 상자에서 인간이 남긴 찌꺼기들을 먹다가 비참하게 죽는다.
나머지는 나같은 브리더들의 손에서 교육받아 사육주에게 팔려 죽지도 살지도 못하다 평생 두려움 속에서 산다.
아주 가끔씩 들실장이 사육실장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좋게 끝난 경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이들은 갈망하지만 얻을 수 없고, 지성은 있지만 그래서 더욱 비참할 뿐이다.
평생 구정물을 마시며 썩은 고기를 씹고 있지도 않은 별을 쫓다가 추락하여 부스러진다, 이것이 실장석이라는 종의 본질이다.
만일 이 녀석이 글을 배운다면⋯높은 확률로 자신이, 실장석이 어떤 생물인지 알게되겠지.
나는 자실장의 눈을 바라보았다. 이 녀석의 눈동자는 적록색이다.
그리고 이 녀석의 눈동자는 절대 검은색이 될 수 없다.
그런데도 괜찮은 것일까.
“⋯⋯.”
하지만 내 역할은 이 녀석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다.
‘행복을 알게 해주는 것’이다.
스스로를 직시하지 못하는 생물이,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리가 없다.
만약 스스로를 직시하여 절망하는 것으로 끝난다면⋯⋯그건 그 녀석이 거기까지인 거겠지.
“좋다. 알겠다.”
나는 책장으로 가 실장석용 글씨 교재를 꺼냈다.
11.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었다.
나는 일을 하였고, 여전히 저 녀석은 잡일을 하며 남은 시간은 TV를 보았다.
하지만 귀로 들었을 때보다 더 많은 사실들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 중에서는 실장석에대한 정보도 있었을테고.
TV를 보는 녀석을 힐끗 쳐다보았지만 역시 겉보기로는 심경의 변화를 알 수없다.
“⋯다음 소식입니다. 지난 4월, X시에서 벌어진 끔찍한 인육살인사건으로 온 국민의 분노를 샀던 용의자가 경찰의 수사 끝에 2달만에 Y시에서 잡혔습니다. 이 용의자는 범행을 인정하면서도 전혀 반성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 더더욱 분노를…⋯.”
얼마전에 떠들썩한 살인 사건의 용의자가 잡혔다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왜 이 실장석은 이런 것이나 보고 있을까, 라고 생각하면서 시선을 돌려 다시 자실장을 보았다.
하지만 자실장은 TV가 아니라 내 쪽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 할 말이라도 있는건가.
“센세, 굉장히 실례이고 분충같아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질문 몇 가지 되겠는테치?”
“해봐라.”
두 달간 이 녀석과 생활해본 결과 저 말은
‘지금부터 너를 좀 귀찮게 할 질문을 할건데 괜찮냐?’
라는 의미이다.
“와타시는 지금까지 나쁜 행동을 하면 벌을 받아야한다고 배웠던테치.”
나는 자실장의 눈을 쳐다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닝겐을 죽이고 먹는 것은 나쁘기 때문에 저 닝겐은 벌을 받는테치. 맞는테치?”
“⋯그렇다.”
표현이 상당히 러프하지만, 이것도 맞는 말이다.
“그럼 오네챠들을 죽이고 먹은 와타시도 나쁜 것이 맞는테치?”
브리더의 어려움은 이런 곳에 있다.
실장석의 질문에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는 순간, 권위가 깨지고 얕보일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빠르게 머리를 굴려 답변을 해야한다.
“그렇다. 자매를 죽이고 먹은 것은 분명히 나쁜 행동이다.”
선천적인 장애로 고통과 죽음에 대하여 알지 못했던 이 실장석의 행동이 단순히 이 녀석이 나쁘다, 라고 치부할 수 있는 단순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나 개인으로서의 견해이지 브리더로서 할 말은 절대 아니다.
“죄송한테치. 몇 가지 더 여쭤보겠는테치. 대체 죽음이 뭐인테치? 그리고 다른 것을 죽이는 건 왜 나쁜테치?”
예상은 했지만 역시 난감하다.
우리가 살인, 살생을 금기시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가장 간단하고 근본적인 이유는 그것이다.
‘내가 죽고싶지 않으니까.’
‘죽는 것은 아프니까. 아픈 것은 무섭고 싫으니까.’
생명체라면 기본적으로 고통을 피하려고 하고 죽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그것을 타인에게 하지 않는다는 간단한 역지사지를 이 녀석에게는 설명할 수 없다.
“일단 네가 죽음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말해보겠나?”
“움직이지도, 말하지도 못하게 되는 것인테치. 많이 맞아도, 숨을 못쉬어도, 밥을 못먹어도, 병에 걸려도, 크게 베여도 그렇게 되는테치.”
꽤 사실에 근접해서 알고있는 것이 의외였지만 나는 이 녀석이 보는 TV프로그램을 떠올렸다.
좀처럼 프로그램 선정에 일관성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 녀석, 죽음에 대하여 언급하거나 나오는 프로그램들을 보고 있었던 것인가.
“네가 보고 알고 있는 것 처럼 몸에 일정 이상의 타격을 받게되면 움직일 수 없게되고 더 나아가 생각도 할 수 없게 된다. 그것이 죽음이다.”
“그게 다인테치?”
“뭘 묻고 싶은거지?”
“죽고나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되는테치?”
순간 내 머릿 속에는 환생, 천국, 지옥, 콘페이토의 낙원 등 온갖 사후세계가 떠올랐다.
하지만 나 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가르칠 수는 없다.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테치?”
“그냥 이 세상에서, 너라는 존재가 영원히 사라지게 된다.”
“죄송한테치. 잘 모르겠는테치. 죽은 닝겐도 실장석도 움직이지만 못하지 분명히 남아있는데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되는테치.”
그것은 영혼이 떠난 고깃덩어리에 불과한 시체다⋯라고 설명하는 것 보다는
“네가 자는 동안에도 세상은 여전히 흘러가지?”
“그런테치.”
“그렇다면 죽음은 영원히 자게 된다, 라고 생각해라.”
이렇게 설명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죽음의 다른 말은 영면.
영원히 잠듦으로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것.
이 정도면 꽤 그럴듯하게 설명했다고 생각한다.
“이해한테치⋯그럼 고통이란 것은 죽음을 피하기 위해서 있는테치?”
“그렇지.”
역시 이해력이 꽤 좋은 녀석이다.
“그렇다면 다른 실장석을 죽이는 것은 어째서 나쁜테치?”
“그것은 설명하기 꽤 어려운 일이다.”
나는 말을 끌면서 최대한 그럴듯한 이유를 찾기위해 머리를 굴렸다.
“굳이 설명하자면, 대부분의 생명체는 죽음과 고통을 두려워하고, 피하려고 하기 때문이지.”
너를 제외하고 말이지, 라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어째서 죽는 것이 무서운테치?”
“흠…….”
그 밑도 끝도모를 질문에 남자는 또 다시 고민하였다.
대체 고통도 공포도 느끼지 못하는 이 실장석에게 ‘죽음을 무서워하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해야한단 말인가?
“살아있는 것들은 행복을 추구하거나 아니면 행복을 누리며 살아간다.”
나는 최대한 정론에 가까운 말을 했다.
“만약 죽게되면 더 이상 행복을 누릴 수 없고, 행복을 위해 노력해왔던게 전부 다 없어지기 때문에 죽는 것은 두렵다.”
자실장이 이해할 수 있을까 불안해진 나는 쉽게 좀 더 풀어서 이야기하였다.
“나는 가진 것이 많다. 먹을 것도 많고, 입을 것도 많고, 그 밖에 즐길 수 있는 것들도 많다. 죽으면 이 모든 것을 잃게 되겠지. 이런 이유로 죽는 것이 무섭다.”
막연한 공포를 제외한다면 아마 이것이 가장 합리적인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이어진 자실장의 말은 나의 예상을 넘은 것이었다.
“그럼 와타시에게 벌을 내려주시는테치.”
벌이라고?
“네가 자매를 잡아먹은 것에 대한 벌을 내려달란 뜻인가?”
“와타시와는 다르게 장녀챠와 차녀챠는 행복할 수 있었던테치. 그런데도 와타시는 장녀챠와 차녀챠를 먹어버린테치. 이것은 나쁜 행동인테치. 그러니 와타시에게 벌을 내려주는테치.”
꽤 정론이다. 그런데⋯⋯
“너와는 다르게?”
“센세가 말씀하신대로라면 와타시는 가진 것이 없고, 먹어도 맛을 모르고, 입어도 감촉을 모르고, 즐길 수 있는 것이라고는 없는테치. 행복을 느낄 수 없는테치. 이런 와타시하고 장녀챠, 차녀챠를 어떻게 비교하겠는테치?”
나는 이 녀석에게 글을 가르쳐주면서 스스로에 대해 알 수 있기를 바랐다.
그 결과 이 녀석은 스스로에 대해 내린 답은 자신은 죄인이라는 것이다.
나는 자실장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자실장는 나를 올려다보았다.
한참을 대치하던 우리 둘의 귀에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다음 소식입니다. 최근 성범자들의 형량이 너무 적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청와대 청원게시판에는 성범죄자들의 형량을 늘려달라는 청원이 올라오고 서명자 수가 무려 10만명이 넘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12.
부와와아왕
남자의 자동차는 소리를 내며 멀어졌다.
이윽고 곧 점이 되어 보이지 않게 될 때 까지, 41번 실장석은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그렇게 멍하니 있던 41번은 천천히 몸을 돌려 공원 입구를 바라보았다.
공원 입구의 표지판에는 ‘닝겐상 사랑하는데스!’라고 말하는 실장석을 끌어안고 방긋방긋 웃는 인간과 함께 ‘실장석 생태 공원, 두루마리 공원에 어서오세요!’라는 문구가 박혀있었다.
“⋯⋯.”
초현실적을 넘어 전위적이기까지한 표지판을 응시하던 41번 실장석은 공원으로, 자신이 앞으로 2년간 살게 될 장소로 걸어갔다.
“너의 벌은 공원으로의 추방이다.”
남자는 자실장에게 그렇게 선고했다.
자실장은 스스로 피고이자 죄인을 자처하였고, 남자는 검사이자 재판장이자 배심원이었다.
“너는 고통도 느낄 수 없고 죽음에 대한 공포도 없다. 따라서 내가 너에게 내리는 벌은 ‘생존’이다.”
자실장은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적절하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은 공원으로 걸어가는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들로 버려진 전사육실장들이 말하기를 들생활은 ‘죽는 것만도 못하다’라고 하더군.네가 죽인 자매는 두 명이다. 그러니 너에게 2년간 공원에서 살아는 남는 것을 선고한다.”
자실장은 자신의 가슴팍을 더듬었다.
하지만 태어났을 때 부터 그랬듯이 손 끝에서는 아무런 감각도 느낄 수 없었다.
자신에게는 의미가 없지만, TV속에서 봤던 인간들은 이렇게 잃어버린 것을 더듬고는 했던 것 같다.
감각이 없는 나의 손 끝과 감각이 있음에도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그들의 손 끝은 뭐가 다른 것일까?
“하지만 네가 2년을 채우기 전에 죽는다면 죗값을 치르지 못하게 되겠지. 따라서 너의 위석은 내가 맡아두겠다.”
위석을 빼는 동안 남자는 41번 실장석의 눈을 가렸기 때문에 41번은 자신의 위석을 보지 못하였다.
41번 실장석은 자매들이 자신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너 같은 년도 위석이 녹색인테치?’ 아마도 그런 말이었던 것 같다.
41번 실장석은 궁금해졌다.
나의 위석은 녹색이었을까?
“그리고 너에게 이름을 주도록 하겠다.”
언젠가 마마에게 물어본적이 있다.
“앞으로 누군가가 이름을 물어보면 무조건 답하도록. 이것또한 들실장들이 너를 미워하게 하기위한 벌이다.”
마마는 ‘로토’라고 불리는데 나는 어째서 이름이 없냐고.
“그리고…….”
그러자 마마는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스스로 죄를 짊어지는 너에게 내가 차리는 최소한의 예의다.”
‘그것은 언젠가 삼녀가 이름을 가질 자격이 생길 때 가지게 될 것인데스.’
“너의 이름은……”
‘이름을 가지는 것은 단순한 일이 아닌데스. 그만큼의 책임도 따르는데스. 명심하는데스.’
“41번이다. 기억하도록.”
마마 와타시는 자격이 생긴테치?
세상에 모든 사육실장들은 자매의 목을 물어뜯어 먹어서 이름을 얻게되는테치?
41번은 끝모를 의문을 품으며 공원으로, 자신의 죄를 향해 걸어갔다.
<계속>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다음편은
고통과 죽음, 41번실장-죽음편 http://cafe.daum.net/sweetjissouseki/dZSt/6775
입니다.
귀한 시간내서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자세한 후기는 고통과 죽음, 41번실장-죽음편에서 남기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다음편으로 고고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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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와 기다렸습니다!!
이거 왜 안나오나 했었는데!
많이...늦었습니다 ㅠㅠ 죄송합니다
그래도 기다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소시오패스네 이놈
잘 가르치고 배우게해야할 필요가 있는 놈이지요.
잘 되야할텐데!
오타만 없으면 갓명작인데
헉 오타점검 열심히했는데도 아직도 있나보네요
신경쓰이시는 오타를 알려주시면 수정해보겠습니다!
하도 안보이셔서 파킨하신줄
살아있었습니다ㅎㅎ
와 이거 예전에 끊겨서 아쉬웠는데 이렇게 올려주시니 감사해여
잇는데 너무 오래걸려서 죄송했는데 기억해주시는 분이 계셔서 다행이네요!ㅎㅎ
이전 스크립트 꽤 인상깊게봤었는데 이번것도재미있네요
이전작 반응이 너무 좋아서 걱정됐는데
이번것도 재밌게 즐겨주셨다니 다행입니다!!
캬 존나 흥미진진
다음 화까지 팍팍 달려주세욧!
선생님 이것은 심오하지만 매우 재밌군요...
재밌게 봐주셨다니 감사합니다ㅠㅠ
닉네임때문에 자동 칭찬이 막 되네요ㅎㅎ
오 다음 편은 없나요?ㅠㅠ
있지요
고통과 죽음,41번 실장 고통편입니다
화끈하게 달려주십셔!
흥미로운 오네챠레츄... 매력뿜뿜레치
설정 짤 때는 좋았는데
글 쓰려니까 저를 미치게 만드는 놈입니다.
감각도 욕구도 없어서 뭘 시킬 수가 없어요....!
묘사할 때도 행동 말고는 감정을 묘사할 수가 없고 아이고
어 댓글이 왜 4개월전이지 옮겨온건가
넹
우왕 이번작품도 역시 명작인테치 얼른 후편 보러가야겠다는 테치
다 읽고나니 명작이라는 말로는 부족한 걸작중의 걸작인 테치ㅜㅜ
@vishal 걸작이라니 과찬이 심하십니닿ㅎㅎㅎㅎ
굉장합니다.
헤헤헤ㅔㅎㅎㅎ
와... 사이코패스에 대한 이해도가 정말 높으신듯... 재밌게 읽고 갑니다.
상상을 열심히 해봤어요 감각이 없으면 사람이 어떻게 될까, 하고 ㅎㅎ
글 써주셔서 너무 감사한데수ㅜ우ㅡ우ㅜ웅
댓글 달아줘서 더 감사한 데스웅 ㅠㅠ
숨막히는 전개인 레후
다음편은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신 본 쉐프의 자신작인데스웅
맛있게 드셔주시는 데스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