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은 새해가 시작되는 정월 초하루이다.
우리나라 최대의 명절이다.
그래서인지 설날을 전후한 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새해를 맞는
마음을 새롭게 하면서 한해의 안녕을 빌곤 한다.
이에 따른 세시풍속 또한 매우 다양하다.
설날 전후하여 한해의 복을 빌어주거나
액을 몰아내는 풍습, 이른바 벽사진경(辟邪進慶)의 풍습이 바로 그것이다.
먼저 설 전날이나 설날 아침 일찍이면 복조리를 만나게 된다.
섣달 그믐날 자정부터 정월 초하룻날 아침 사이에 조리장수는
복 많이 받으라고 소리치며 집마당에 복조리를 던져놓는다.
새해를 맞아 우선 모든 사람들의 복부터 빌어주는 아름다운 풍속이다.
이 조리를 일어 한해의 복을 취하도록 빌러준다고 하여
'복 들어오는 조리'라는 뜻에서 ‘복조리’라 부르거니와
이 얼마나 이웃사랑의 마음을 살갑게 느낄 수 있겠는가.
설날에 장만하게 된 이 복조리는 1년 내내 쓰기도 하지만
방 한쪽 구석이나 대청 한 귀퉁이에 그대로 걸어두기도 할 뿐만 아니라
갈퀴와 함께 부엌문 앞에 걸어두기도 한다.
이는 갈퀴로 복을 끌어들여 복조리 속에 담는다는 뜻이다.
복조리 장사는 설날 아침 해뜨기 전까지 복조리를 팔곤 하는데 만약 집안에
사람이 없으면 문 위에 걸어두고 갔다가 며칠 뒤에 복조리 값을 받으러 온다.
그러면 누구도 불평 한 마디 없이 서로 만나 덕담을 나누면서
치루지 못한 복조리값을 내어준다.
복조리 값이 그다지 비싸지도 않았지만 들어오는
복을 물리치지 않고 받아들인다는 뜻에서다.
오히려 설날이면 집집마다 청실홍실로 복조리를 치장하여 매달곤 한다.

설날 밤에는 신고 다니던 신[靴]을 방안에 들여놓고
일찌감치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드는 풍습이 있다.
이는 ‘야광(夜光)’이라 불리는 야광귀(夜光鬼)로부터 오는
액(厄)을 막아내고자 하는 뜻이다.
야광귀(夜光鬼)는 우리나라의 전통 귀신이다.
원래 야광귀는 전생에 욕심이 너무 많아 남을 헐벗게 한 사람이 죽으면
굶주리고 헐벗게 하여 늘 추위에 떨게 한다는 귀신이다.
그뿐만 아니라 지옥으로부터 인간 세상으로 도망 나온 귀신들을
다시 붙잡아서 자신이 지은 죄를 씻지 못하게 하기도 한다.
다른 귀신들과 마찬가지로 야광귀는 온몸에 지옥을 안내하는 불빛을 지닌 채
일 년 중 단 한 번 새해가 시작 되는 밤에 인간 세상으로 나온다.
그리고 집안으로 들어와서 차가운 몸을 녹인다.
어느 정도 몸이 풀리면 치수가 자기 몸에 맞는
사람들의 신발이나 옷을 훔쳐 입고 나간다.
이때 야광귀에 신발이나 옷을 뺏긴 사람은 복을 뺏긴 거라서
1년간 복이 사라져서 안 좋은 일만 생긴다 한다.
이 때문에 옛부터 새해가 오는 밤이면 우리 조상들은 야광귀에게 신발이나
옷을 뺏기지 않기 위해 집안의 문틈을 모조리 막고 옷을 한곳에 쌓아둔다.
색동옷들과 함께 신발 역시 색깔이 있는 것으로 준비한다.
귀신들은 밝은 색들로 물들인 색동옷을 싫어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신발도 싫어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야광귀들은 다른 귀신들과 마찬가지로 신출귀몰한 능력을 지닌다.
그러나 그만큼 호기심이 많고 아둔하기 때문에 우리 조상들은
야광귀로부터의 액막이를 위하여 ‘체’를 이용하였다.
집집마다 그 동안 농사에 사용하던 ‘체’를 지붕 위에 올려놓으면
호기심 많은 야광귀가 체의 구멍이 몇 개인가를 세어본다.
그러나 워낙 둔한 귀신인지라 체의 구멍을 하나, 둘, 세다가 그만
어디까지 세었는지 까맣게 잊어버리고는 다시 세기를
거듭하다가 결국 날이 세워 그냥 돌아가고 만다.
야광귀 뿐만이 아니라 다른 귀신들이 떡방아를 찧는 소리를 싫어하여
새해에 들면 떡방아를 찧는 것 또한 액막이의 풍습이요,
원일소발(元日燒髮)이라 하여 한 해 동안 빗질할 때마다
모은 머리카락을 설날 저녁 문 밖에서 태우는 풍습이 있었으니
이는 전해의 묶은 액을 물리치고 머리카락을 태울 때
나는 냄새로 악귀를 물리친다는 의미이다.

달집에 불을 붙여 태우는 ‘달집태우기’ 습속 또한 예외가 아니다.

‘도깨비 놀이’라는 전통 놀이도 있다. 도깨비 모양의 종이 탈을 쓰고 동네 산이나 언덕에 모였다가 양 손에 횃불과
방망이를 들고서 일제히 괴성을 지르며 마을로 한꺼번에 내달리던 놀이이다.
무서운 도깨비 얼굴로 변장하여 오히려 마을의 모든 귀신을 막겠다는 의미이다.
이와 같은 액막이는 무엇보다도 연날리기에서 그 절정의 모습을 보인다.
음력 12월 중순께부터 띄우기 시작하는 연날리기는 정월보름에
그 막을 내리는데, 연(鳶)에 ‘액(厄)’자 또는 ‘송액(送厄)’이라 쓰거나,
자기의 성명 또는 주소 성명, 생년월일 등을 써서 하늘높이 날려
보냄으로써 액을 쫓아 보낸다는 풍습이 바로 그것이다.
설날을 맞아 벽사진경(辟邪進慶)의 꿈을 꾼다.
설날을 맞아 미리미리 액막이를 하고는, 단단히 마음을 다지고
한해를 가장 멋지게 누리는 꿈이다.
- 글쓴이 : 구재서 (시인, 1950년 충남 서천 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