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봉 전설
강화도 어디쯤 우거진 나무들 사이
봉우리도 아닌 곳을 한참 걸어올라가다보면
크게 소문 나지 않아 찾는 사람도 드물고
누구의 잦은 손도 타지 않은
강 저편 북녘땅 금세 돌아오마 약속하며 떠났을
그리 사랑도 깊지 않고 철 없었을 바람 같은 남자
망부석이 되었다는 백제의 여인처럼
정선 아우라지 처녀처럼
뭇 남정네의 품에서 노리개처럼 오가던 몸
처음으로 마음을 주고받은 사랑을 만나
떨리는 손 끝으로 옷고름을 풀었을
어린 기녀의 숨 막히는 사랑이
저릿하게 온 몸을 눌러온다
한이 되도록 가슴에 품고 살다 죽은
불러도 불러도 다다르지 못할 이름
저렇게 가까운 곳에 그대 있는데
그리워해도 그리워해도 만나지 못할 얼굴
내일이면 돌아오겠지
어두워지기 전에 찾아오겠지
그 애달픈 심정으로 하루가 가고
일 년이 가고
또 해가 바뀌고
강바람에 씻긴 세월
눈물로 지워진 기다림으로
피 토하며 인적 없고 바람 차가운 강가 언덕에
마른 나무 뿌리로 꽂혀 서서히 죽어갔을
슬픈 역사 보이지 않는 끝 어디쯤에
저 초라한 비석처럼 쓸쓸하게 남아있을
강 건너 북쪽 마을 돌아오지 않는 애인을 기다리다 죽은
어린 기생에게
술 한 잔 따라주지 못하고 온 것이
소리 한 자락 뽑아주지 못하고 온 것이
마음 아래 무겁게 깔려
눈시울만 뜨거워진다.
2007.
첫댓글 ‘소리 한 자락 뽑아주지 못하고 온 것이
마음 아래 무겁게 깔려 ‘
갑자기 독한 술을 한잔 따라주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취한 그리움을 보고 싶어집니다.
취해서 푹 쌓인 눈길을 같이 걸어가도 싶은.
좋은 글 감사합니다.
선생님 댓글이
한 편의 시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