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우여곡절속에 영세한 이후 개인적인 신앙체험에 의하여 신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으며, 결국 가톨릭 신학대학을 지망하였다.
그런데 신학대학을 입학할 당시, 입학자격 중에서 영세한지 3년이상이라는 항목이 있는데 , 당시 1년 8개월 밖에 안되었기 때문에 어려운 상황에 처하였으나 학교의 배려로 1학년은 밖에서 통학하는 일반 학생으로 다니고, 2학년 때부터 정식 교구 신학생이 되는 조건으로 입학하였다.
그 이후 1년동안 일반학생으로 다니고 2학년부터 서울대교구 신학생이 되면서 정식으로 기숙사 생활을 하였다.
어느 덧 세월은 흘러 4학년이 되면서 독서직을 수여받았으며, 졸업을 준비하는 시점이 다가오고 있었다.
대신학교 재학중에 가장 좋아했던 과목이 한국천주교회사(韓國天主敎會史)였으며, 어려웠던 과목이 라틴어였는데, 재수강까지 받을 정도로 성적이 안좋았다.
졸업 시험을 치른 이후 라틴어 성적이 좋지 않은 이유로 학부에서는 졸업하였지만, 신학원에서는 제적당하면서 성직자의 길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1986년 학교를 졸업하고 천주교 군종병으로 복무한 이후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성직자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고 타 교구 신학대학을 비롯하여 수도원들을 방문하면서 성직자의 길이 가능한지 상담하였으나, 어렵다는 답변을 받으면서 냉엄한 현실을 깨달았다.
1995년 성모성월에 모 수도원의 성소피정을 끝으로 성직자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포기하고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였다.
1997년 성균관대 부설 기관인 한국사서교육원(韓國司書敎育院)을 수료하었으며, 1999년에 결혼한 이후 2001년 아들을 낳았으며,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2018년 어느 날, 절두산 성지 참배중에 그동안 전혀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