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정부 18년 동안 한국은 신분과 연고가 중시되는
‘권위 중심 사회’에서 능력과 성취로 평가받는 ‘업적 중심 사회’로 전환됐다. 이를 통해 전통사회적 가치와 지배구조를 근대적으로 바꾸는
사회경제혁명이 진행됐다.”
박정희(1917~1979)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을 앞두고 박정희
시대의 역사적 성격과 현재적 의미를 짚어보는
‘위기의 대한민국, 박정희에게 길을 묻다’ 심포지엄이 15일 오후 1시 서울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이 주최하는 이날
행사에서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장은 “5.16은 사건의 전개로는 군사정변(쿠데타), 역사적 평가로는 사회경제혁명이었으며 둘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김 원장은 또 “5.16은 1950년대 후반부터 형성된 빈곤 타파와 경제 번영, 정치적
무질서 극복, 반공 체제 확립이라는 민족적
열망을 대변한 것이었다”며 “이런 열망을 실현한 ‘박정희 정부’를 보아야지 박정희라는 특정 지도자의 남다른 행위만 굳이 부각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한다.
▼TV서 대통령의 감기 든 목소리 듣고 시골서
약 지어갖고 청와대까지 천리길을
박정희 대통령은 해마다 연두기자회견을 하고 중앙과 지방 관서를 순시했다. 1975년 1월 14일 중앙청
제1회의실에서 연두기자회견을 할 때는(위 장면ㆍ대한뉴스 제1017호
1975-01-18) 대통령의 목소리가 여느 때와 달랐다. 앞서 1월 10일 영하의 한파 속에 낙동강 구미대교 개통식에 참석하고
구미공업단지와 금오기술공업고등학교 등을 시찰하느라고 감기가 심하게 들어 연두회견 하루 전인 13일에 수도통합병원
분원(分院)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다. 박 대통령은 회견을 시작하면서 “목소리가 이상하니 양해해 달라”고 먼저 말하고
간간이 손수건을 꺼내 기침을 막으면서 2시간
40분 동안 회견을 진행했다. 대통령의 연두기자회견이 TV를 통해 전국에 방송된 후, 중앙일보는(1975-02-04) “많은 사람들이 서신과 감기약을 청와대에 보내오고 있다”고
보도했고, 서울신문은(아래 기사ㆍ1975-02-03) 경북 영일군에 사는 중년 부인이 손수 약을 지어 갖고 상경, 청와대에
전달했다며 “우리가 의지하는 대통령이 감기가
걸리신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파 견딜 수가 없었다”는 말을 전하고 있다. 수시로 지방시찰을 통해 지역 주민들을 위로 격려하고 민생을 챙기는 대통령과 국민의 ‘사랑
교감(交感)’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연두회견이었던
것.
좌승희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은
“박정희의 경제정책은 신상필벌(信賞必罰)의 시장원리를 적용, 실천함으로써 국민과 기업을 자조(自助)하는 주체로 탈바꿈시켰다”며 “세계은행의 국가별 비교 연구에 따르면 박정희 시대에 한국은 세계 최고의 성장과 동시에 최상위권의
양호한 소득 분배 상태를 나타낸 것으로
분석됐다”고 주장한다. 좌 이사장은 “박정희 이후 30여년 동안 한국의 경제정책은 스스로 돕지
않는 국민을 더 우대하여 양산함으로써 동반
성장의 동기를 차단해 왔다”며 “한국 경제가 성장의 역동성과 동반 성장을 회복하려면 평등주의적 포퓰리즘에서 벗어나 국민이
철저한 자조ㆍ자립 이념을 체화(體化)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춘근 이화여대 겸임교수는 “박정희는 실리적ㆍ현실적 차원에서 한미 동맹을 유지하면서도 자주성과
존엄을 잃지 않았고,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
없이는 한국의 안전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을 인식하고 정권마저 위험에 처하게 할지 모르는 한일협정 체결을 밀고
나갔다”고 평가한다. 이 교수는 “아직도 거친 파도가 일고 있는 외교ㆍ안보의 대양(大洋)을 헤쳐나가야 할 한국은 지금보다 훨씬 더 작은 배를
몰고도 항해에 성공했던 박정희의 조타술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
첫댓글 이런 위대한 대통령은 우리 세대엔 안온다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을 인정하고
국민이 하나로 뭉쳐야 대한민국이산다,,,
차라리 꿈이였음하네요...
하늘나라에서 역사를 되돌려서 다시금 이땅위에 오셨으면 바램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