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형의 「여름의 칼」 감상 / 나민애
여름의 칼
김소형 (1984~ )
화난 강을 지나
우리는 툇마루에 앉았다
참외를 쥐고 있는 손
예전부터 칼이 무서웠지
그러나 무서운 건 칼을 쥔 자의 마음
사람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을
칼은 알아야 한다
여름의 창이 빛나고
열차는 북쪽으로 움직이고
강가에서
사람은 말을 잃고 있었다
가늘게 깎인
빛의 성유
곤충은 화려한 군무를 추고
어느새
침묵이 들린다면
중요한 것은
신념일 것이라며
뜨거운 굴에 물 붓는
그림자를 구경했다
나이프는 능숙하게
막을 헤집고
꿰뚫어 보다가
놀라운 걸 발견했다는 듯
들끓었고
내가 악을 지르는 순간
칼을 쥔 손이 다가와
달콤한 살을
입에 얹어주었다
―계간 《문학과사회》 2023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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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현대시에서 ‘칼’이란 자주 볼 수 있는 소재가 아니다. 시인들은 꽃이나 나무, 별이나 달빛을 간절히 쥐고 싶어 했지, 칼은 즐겨 잡지 않았다. 사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어서 가까이에서는 이형기 시인, 조금 더 멀리서는 유치환 시인에게서 칼의 시를 찾아볼 수 있다. 이 두 시인은 연약한 자아를 단련시키려는 뜻에서 칼의 이미지를 가져왔다. 다시 말하자면 내적이고 강한 정신력이 바로 칼의 진짜 의미였다. 결코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무기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이번 여름의 한 문예지에는 김소형 시인의 「여름의 칼」이 실려 있다. 이 시에서 칼을 쥔 사람은 선한 사람이다. 그는 칼로 참외를 깎고 있으며, 시의 후반부를 보면 달콤한 참외 조각을 나누어 먹고 싶다. 결코 남을 해하는 칼의 이야기가 아닌데도 우리는 이 ‘여름의 칼’이라는 단어에 멈칫하게 된다. “무서운 건 칼을 쥔 자의 마음”이라는 구절에서는 시선을 오래 떨구게도 된다.
왜 우리는 무서운 ‘여름의 칼’을 알게 되었을까. 왜 우리는 이 지경까지 왔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문제는 칼이 아니라 칼을 쥔 마음이다. 여름에는 여름답게 더위하고만 싸우고 싶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첫댓글
여름의 칼
김소형 (1984~ )
화난 강을 지나
우리는 툇마루에 앉았다
참외를 쥐고 있는 손
예전부터 칼이 무서웠지
그러나 무서운 건 칼을 쥔 자의 마음
사람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을
칼은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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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의 한 문예지에는 김소형 시인의 「여름의 칼」이 실려 있다. 이 시에서 칼을 쥔 사람은 선한 사람이다. 그는 칼로 참외를 깎고 있으며, 시의 후반부를 보면 달콤한 참외 조각을 나누어 먹고 싶다. 결코 남을 해하는 칼의 이야기가 아닌데도 우리는 이 ‘여름의 칼’이라는 단어에 멈칫하게 된다. “무서운 건 칼을 쥔 자의 마음”이라는 구절에서는 시선을 오래 떨구게도 된다.
왜 우리는 무서운 ‘여름의 칼’을 알게 되었을까. 왜 우리는 이 지경까지 왔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문제는 칼이 아니라 칼을 쥔 마음이다. 여름에는 여름답게 더위하고만 싸우고 싶다.
나민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