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11월 17일 (일)
제3회 더 베스트 땅게로스 서울2024가 열린 날, 탱고입문 8개월 베이비의 출전후기를 공유해봅니다.
1. 출전과정
11월 중순은 해외출장이 예정되어 있었다. 업계 전시회는 해마다 가니 한해즘은 빠져도 되지 않을까. 왜냐 나의 첫 탱고대회가 있는 날이니까. 부스비를 지불한 채로 비행기티켓은 알아보다가 예약조차 하지 않았다.
사실 13000원 참가비의 탱고대회가 중요했다기보다 귀국한지 3주만에 다시 공항으로 꼭두새벽에 나가야 하는 주인을 온몸이 거부하고 있었다.
탱고를 시작한지 8개월차,
2주전의 발표회는 우열을 가리는 대회가 아니고 마을잔치였는데도 70일간 엄청난 에너지를 쏟았다. 번아웃된 상태로 후기를 작성할 멘탈을 부여잡지도 못한 채 맞이한 대회는 가볍게 밀롱가를 다녀간다는 생각으로 임했다. 원래 자유로운 밀롱가파였고 발표도 해봤으니 한번즘은 특정파트너와의 연습이 필요없는 잭앤질경기에서 나의 현재 실력을 시험대에 올려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30기 동기들에게 대회소식은 공유했지만 출전소식을 전날에야 알리게 된 이유는 나의 예선탈락을 미리 예상해서였다. 조용히 예탈귀가할것이 뻔하니 조용히 치르고 구경이나 실컷 하자는 생각이었다.
이번 대회 Best Tangueros Seoul 2024는 내가 늘 다니던 그리고 제일 좋아하는 안단테홀에서 진행되었고 나는 올해 특별히 신설된 탱고신인(베이비라고도 함. 여자는 탱고입문한지 1년미만, 남자는 3년미만으로 자격제한) 잭&질부문에만 참가했다.
잭앤질이란 주사위를 던져 랜덤으로 사전정보가 전혀 없는 파트너를 만나 현장에서 틀어주는 곡에 맞춰 춤을 추고 6명의 심사위원들이 점수를 매기는 방식이다.
아침에 일어나 드레스를 골라봤으나
무엇을 입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일단 치마가 풍성한 드레스 두 벌, 치마가 딱 붙는 드레스 두 벌을 챙겨가서 현장분위기를 보고 정해도 될듯 싶었다. 11시즘 도착하여 플로어를 돌아봤다. 다들 발표회 이상의 화려하고 우아한 착장을 하고 나왔고 여자들은 기다란 속눈썹, 반짝이는 헤어핀에 목걸이, 귀걸이들을 하고있는 모습에 나는 금새 기가 죽고 말았다. 나는 고민하다가 어두운 수박색 드레스를 입었다. 발표때보다는 훨씬 저자세로 소박한 차림으로 예선을 치르기로 했다. (사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렇게 소심할 필요가 있었나. 대회도 축제인데 성적여하를 떠나 화려하게 성의껏 입고 나가는 게 맞다고 지금은 생각을 바꾸었다.)
예선전 홀에서 처음 보는 베이비로 참가자들을 만나 인사하고 바로 연습에 들어갔다. 다들 상대를 조금이라도 먼저 파악을 해야 했기에 베이비처럼 생겼다 싶으면 즉 얼굴이 좀 젊고 자신감이 부족해보이는 참가자 로를 보면 다가가서 혹시 베이비세요? 물어보고 맞으면 바로 한딴 춰보실까요?
다짜고짜 아브라소로 이어지는 광경이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절로 나온다.
오후 한시 20분즘 두 조로 나뉘어 시작된 예선에서 랜덤으로 세 명의 로를 만나서 틀어주는 곡에 맞춰 탱고를 췄다. 내 기억에 버벅거리거나 실수는 없었다. 로들은 3년경력의 신인중에서도 고수들이 나온만큼 두 명은 나를 안정적으로 리드했고 나도 흔들림없이 축을 바로 세우고 안정적으로 팔로어했다. 한 명의 로는 호흡이 거칠 정도로 긴장하여 음악에 급하게 반응했는데 스텝이 당장 꼬일것만 같아 그의 등을 토닥이며 진정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다행히 심사위원들 앞을 지나갈 때는 차분하게 리드했다.
경기가 끝나고 한시간즘 기다려서 세시즘 벽에 결선명단이 나붙었다.
내가 결선까지 가다니 말도 안돼 하면서도 내 닉넴 두자를 여러번 확인하고 흥분한 나머지 여기저기 톡을 보내고 좋아했는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130기 단톡방이 들끓기 시작했다.
오후 5시 20분경 치뤄진 결선에서 또 다시 주사위로 세 명의 로를 만나서 춤을 췄고 첫번째 로는 예선때 만난 로였다. 180이 넘는 나의 발표파트너보다 더 큰 183 키의 95번 로와 출 때는 오히려 자신만만했다. 상식적으로 키 차이가 크면 에너지전달이 상대적으로 어렵다. 장신의 로에 많이 훈련이 된 상태였는지 꽤 평온하게 아브라소를 하고 그의 리드에 나의 기량을 얹어 음악에 대한 나의 해석을 춤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두번째 로는 탱스선배이자 유명한 사업가로 알려진 이분은 밀롱가에서 두세번 만난적이 있었기에
나는 신뢰하고 체중을 맡겼다. 스텝은 안정적이었다.변수는 없었다.
마지막 주사위가 던져지고...
음악이 울림과 동시에
다리엔소다!
하는 나지막한 환호소리와 함께 세번째 로가 환한 미소를 머금고 성큼 다가왔다. 나도 모르게 미소로 화답하며 정성스레 아브라소를 했다. 연습시간에 어떤 로로부터 내 고개가 앞으로 쏠린다는 피드백을 받았기에 스스로 조심했음에도 불구, 나중에 영상을 보니 또 고개가 로의 얼굴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다행히 로가 매너있게 고개를 뗐고 나도 알아차리고 축을 바로 세울 수 있었다.
박치라는 말을 들었을 정도로 뮤컬에 콤플렉스가 강했던 나는 이번 대회만큼은 오로지 음악과 내 앞의 파트너와 내 발에만 집중했다. 기억될만한 실수는 없었다. 경기내내 시종일관 평온한 교감모드를 유지했다.
6시간동안 모든 경기가 끝나고 결과발표와 시상식에서 잭앤질 라 신인부문 3위, 2위에 이어 1위로 내 이름이 호명되자 귀부터 의심했다.
다리를 꼬집어보니 꿈은 아니었다.
인생 첫 춤이 탱고라
아무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8개월의 노력 결과는 신인부문 챔피언. 발표연습과정에 춤이 맘대로 되지 않아 맘고생이 심했던 나를 떠올리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웃기는 건,
아무 기대도 하지 않았다면서도 드레스를 여러벌이나 챙겨온 일인데
결과적으로 예선때는 수박색 드레스로
결선때는 발표때 입었던, 청담동에서 맞춘 홀터넥 반짝이 핑크색 투피스를 입었다. 나의 영상을 본 탱친들이 이번 대회에서 옷을 갈아입은 참가자는 내가 유일하다며 결선까지 예상하고 준비를 철저히 한게 아니냐고 '놀려'댔다.
시상식이 끝나고 챔피언 갈라쇼에서 부문별 챔피언 로들과 파트너를 체인지하며 빠른 탱고곡에 맞춰 춤을 췄는데 음악을 가지고 노는 우승자 네로님과 잠깐 춘 춤이 베이비인 내게는 실로 영광의 순간이었다. 연예인, 아이돌과 한딴 하는 느낌이었다. 서아탱출신으로 나중에 알려진 베이비 로 챔피언님은 예선과 결선에서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터라 갈라쇼에서만큼은 보수적인 춤을 버리고 과감하고 화려한 리드로 나를 즐겁게 하며 엔딩을 장식했다.
2. 직관의 재미
일반부문 3종 장르별 (밀롱가, 발스. 탱고)경기진행을 직관하는 것도 큰 재미였다. 피스타, 잭앤질 모두 5년차 10년차 경력자들 심지어 품앗이들, 강사님들까지 총출동하여 그야말로 무림고수들의 기량을 한껏 뽐내는 아름다운 춤의 향연이었다.
참가자중 청사과처럼 풋풋한 23살 커플의 퍼포먼스를 보는 내내 춤사위가 너무 생기발랄하고 아름다워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역시 젊음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불가한 자산이다.
육아에 전념하느라 불어난 체중때문에 몸에 맞는 공연복이 없어 캐주얼차림으로 경기를 치른 프렌치네로커플이 일반부문 우승을 휩쓸었는데 집에서 매일 연습을 했는지 둘의 퍼포먼스는 기술이 아니라 예술이었고 대회가 아니라 자기 집에서 노는듯 물 만난 고기를 연상케 했다. 어쩜 저렇게 음악을 자유자재로 가지고 놀 수가 있단 말인가.
3. 대회가 끝나고
탱고를 쉬고 싶은 맘이 생길 정도로 11.2 발표이후 슬럼프에 빠졌었는데 대회를 통해 실로 신기하고 재미있고 놀라운 경험을 했다. WTC, 뉴스타, KTC대회에 나가라는 제안들이 눈꽃처럼 날아들어왔다. 그러나 현실속의 나는 베이비일뿐, 베이비의 심사기준에 맞았을뿐 일반부문의 참가자들에 비교하여 갖춘 실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도 깊이 깨닫는 시간들이었다. 일년후에 도전은 가능할 수도 있겠다.
베이비참가자들 실력은 로든 라든 평가할 방법이 없었다. 수상하는 순간까지도 나는 내가 뭘 잘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영상분석과 나의 느낌을 종합해보면
5개월의 밀롱가경력이 큰 힘이 된건 분명해보인다. 밀롱가는 작은 사회이자 정글이며 향락만이 행해지는 곳이 아님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입문 두달반만에 밀롱가로 뛰쳐나간 나에 대해서 초급강사님들중 한 분은 극구 반대를 하셨고 다른 한 분은 적극 권하셨다. 결국 나는 마음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향했고 언젠가 한 번은 넘어야 할 산을 내 방식으로 모진 진통을 이겨내며 넘어왔다.
밀롱가에서 배운 것들은 이루다 말할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러나 소홀히 한 부분도 적지 않다. 홀대했던 기본기들을 발표연습과정에 조금 더 다지느라 애썼다. 다 강하게 나를 훈련시킨 나루&본느사부님 덕분이고 70일간 함께한 발표파트너의 공이 크다.
대회현장에서는 실수를 최소화하고
음악과 파트너에 집중,
주사위로 로를 잘 만나는 행운이 따랐던 점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밀롱가에서도 이토록 음악에 집중한 적은 없었다. 내가 대견할 정도.
그동안 밀롱가에서는 음악의 80프로는 로에게 맡겼었고 나는 로로부터 음악을 들었다. 이번 대회를 통해 좀더 능동적인 음악해석과 퍼포먼스에 자신감이 더 생겼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 극한의 운동들, 마라톤에 이어 탱고까지 짧은 시간에 그 황홀함을 맛보기까지 내가 쏟은 열정과 땀방울들...원래 단기간에 무언가를 이루는 게 목표냐고 묻는 사람도 있지만 운동도 춤도 놀이라고 생각할뿐이다. 비생산적인 놀이에 무슨 효율성을 따지겠나. 자기 스스로 만족하면 된다. 다만 흐지부지 이도저도 아닌채로 그만두는 것도 발전없이 질질 끄는 것도 싫었을뿐. 진심으로 좋아하다보면 몰입이 되고 결과물이 조금씩 나타나게 되어있지 않을까.
나는 호기심이 많고 실천을 좋아하는 탐구형인간. Ai가 아무리 발달해도 대신할 수 없는 영역에 관심이 많다. 시간이 갈수록 삶과 놀이, 춤의 본질과 의미에 대하여 자문하고 답을 찾기도 한다.
4. 감사의 마음
이날 특별히 감사하고픈 사람은,
130기 품앗이 마리오사부님! 안단테행사현장에서 제일 바쁘심에도 불구 연습파트너를 해주시고 사진 찍어주시고 소식 전하시느라 경기내내 큰 힘이 되어주셨습니다.
경기내내 온라인에서 열정적인 응원과 축하를 보내주신 130기 동기님들과 늘 몸과 마음으로 무한한 신뢰를 보내주시는 루시아사부님, 멀리 창원서 뜨겁게 응원해주신 나루&본느사부님,
함께 출전하고 저녁뒷풀이까지 챙겨주신 심화반 쥬니&카일쌤 밀롱가 우승 격하게 축하드리고요. 종일 현장에서 실시간 경기소식을 전하며 응원해준 130기 대모 지헤짱님! 깊은 감사의 마음 전합니다.
맛있는 도시락 5인분을 챙겨와 결선까지 함께한 탱스125기 동기이자 솔땅 129기 선배인 토리님, fox님,
고생 많으셨고 다음번 대회때 좋은 성적 기대합니다!
그리고 출전하라 꼬드기고 본인은 빠져버린 바람잡이 미녀땅게라 129기 선배, 탱스 동기 스텔라님이 찍어준 이쁜 사진과 동영상 너무 감사했습니다. 제가 이 대회에 나가도록 만든 일등공신이셔요!
화요인텐시브반 수업동기 데니님, 사띠님 뜨거운 현장응원 감사드리고요.
결선은 반드시 핑키 드레스로 갈아입어야 한다며 이쁜 은색 귀걸이까지 빌려주신 착한 마음씨의 129기 선배인 레아님!
본인도 출전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수업동기라고 각별히 챙겨주신 넉넉한 마음에 깊이 감동했습니다.담대회에서 멋진 활약 응원합니다!
멀리 유럽서 귀국하여 대회장에 짜잔 나타나신 비비안님! 탱고마젠다라는 강남의 공연복맞춤가게를 소개해주신 덕분에 반짝이고 핑키핑키한 예쁜 드레스로 저의 첫 탱고발표와 첫 탱고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었습니다. 부지런히 자리를 옮겨다니며 찍어주신 귀한 영상 또한 고맙게 잘 받았습니다.
그리고 결선 막딴을 즐겁게 여유로운 표정으로 함께 하신 131기 솔땅후배 태건님, 편안하게 또 경쾌하게 리드해주시고 이쁜 영상 전해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다음번엔 더 큰 대회에서 좋은 성적 거두시길 기대합니다!
독립군으로 파트너의 제약없이 대관연습없이 자유롭게 참가하는 것이 잭앤질의 매력, 딱 내 체질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이 후기를 마칠 무렵 드는 생각은,
뭐나 혼자 독불장군으로 해내는 건 아무것도 없다. 발표는 더욱 그랬지만
대회출전, 수상 역시 온마을이 나서서 도와야 가능한 일이었다. 대회현장에서 함께한 사람들을 둘러보면 수업동기나 솔땅선후배, 스승이 아닌 이가 없었다.
모든 도전은 아름답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아들러의 가르침처럼,
꼭 탱고가 아니더라도 살다보면 슬럼프가 찾아오는 순간이 있기 마련. 그것을 지혜롭게 헤쳐나가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크고 작은 대회에 한 번씩 나가보는 것도
삶에 활력소를 더하는 일인것만큼은 분명해보인다. 혹시 또 아나. 취미생활로 만족하는 나같은 사람도 많지만 대회를 통해 인생의 진로가 달라지고 판을 뒤집는 사람도 분명 생겨날테니까.
모든 참가자들, 수상자들에게 다시 한번 뜨거운 박수를 보내드린다.
마지막으로 수상기회를 주신, 이번 대회의 오거이신 one님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대회진행장소가 안단테라서 제가 평상심을 가지고 편하게 즐겁게 놀 수 있었던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자주 안단테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단테님
어쩌다보니 명절 한번 없는
11월을 스펙터클하게 보내고있네요. 열정빼면 송장이라 그거 하나로 정신줄 붙잡고있습니다.
늘 응원해주셔서 감사하고
동기로서 함께한 몇달간이 발표회로 뿌듯하게 느껴졌답니다.
그날 진심 멋졌습니다!
곧 또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