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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16:16
우린 가진 것보다 갖지 못한 것에 더 연연해하는 것 같습니다. 갖고 있는 소중한 것에 충분히 감사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믿는다고 하는 이들마져 비교 의식과 결핍감에 기쁨을 잃은 채 삽니다. 근심하는 제자들과 비슷하가고 봅니다. 공주야! 주께서 이미 선물로 주실 것들을 헤아려 보자. 답이 넘쳐나는 시대다. 그러나 마음을 헤아려주는 사람을 찾기 힘든 시대다. ‘그것도 모르냐‘며 꾸중하지 않고 마음을 읽어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예수님은 어떠실까?
We seem to dwell more on what we don't have than what we have. We don't appreciate what we have. Those who say they believe live without joy due to comparison and lack of consciousness. It is similar to and sees the disciples who are worried. Princess! Let's count what the Lord has already given us as a gift. We are in an era full of answers. However, it is difficult to find anyone who can understand our hearts. I want to meet someone who reads our hearts without being scolded, saying, "Don't you know that?" How about Jes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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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이 땅에서 육신으로 계실 날이 머지않았다. 이제 유월절이 되면 십자가에 달리실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참담한 죽음이 아니라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일이 될 것이다. 육신적으로는 다시 보지 못하겠지만 부활의 모습으로, 더 나아가서는 보혜사 성령을 통해서 예수님을 다시 보게 될 것이다. 예수님의 죽음이 잠시는 제자들에게 근심하고 곡하고 애통할 사건이 되겠지만, 궁극에는 기쁨이 될 것이다. 해산하는 여인의 기쁨처럼 십자가는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게 하는 산고와 같을 것이다.
It will not be long before Jesus is the flesh on this earth. He will be on the cross by the time of Passover. But it will not be a disastrous death, but a return to his father. You will not see him again physically, but you will see him again in the form of resurrection, and furthermore through the Holy Spirit of Bohyesa. Jesus' death will be a moment of concern, sorrow, and sorrow for his disciples, but it will ultimately be a joy. Like the joy of a dissolving woman, the cross will be like a birthplace for a new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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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십자가와 부활로 주신 거듭남의 기쁨, 영생의 기쁨,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빼앗아갈 자가 없을 것이다. 예수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시면 그분은 우리가 기도 하는 것을 아버지께 전달하여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게 하실 것이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고 직접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성령을 통하여 조명하시니 예수께 묻지 않을 것이다. 주님의 가심이 기쁨이 되는 것은 이 기도 응답의 기쁨이 충만할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말씀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시며 설명하시는가? 주께서 세상을 이기도록 주신 선물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No one will take away the joy of rebirth, the joy of eternal life, and the joy of God's kingdom given by this cross and resurrection. When Jesus passes away to his father, he will deliver what we pray to him so that our prayers will be answered. Through Jesus, you will be able to go directly to God and pray to him without going to God. I will not ask Jesus because he will be illuminated through the Holy Spirit. The reason why the Lord's mercy is joy is because the joy of this prayer response will be full. How does Jesus treat and explain to those who do not understand the meaning of the word? What are the gifts that the Lord has given to win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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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한 말의 의미는무엇인가?
-주님의 죽음과 부활
-뉘앙스; 시간의 긴박 성, 멀지 않은 시간
Q.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두 가지의 반응이 무엇인가?
-제자들: 공허하고 애통해 함
-유대인; 근심하나 기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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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여정에 대한 제자들의 의문(16-18)
a.가고 옴에 대한 예수님의 언급:16
b.조금 있으면 에 대한 제자들의 의문:18
예수님의 여정에 대한 예수님의 설명(19-22)
a.예수님의 여정에 대한 세상의 기쁨:19-20
b.예수님의 여정에 대한 제자들의 근심과 기쁨:20-22
예수님의 여정 속에서 제자들의 특권(23-24)
a.기도와 응답;23
b.기도 응답과 기쁨: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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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있으면(16a)
너희가 나를(16b)
보지 못하겠고(16c)
또 조금 있으면(16d)
나를 보리라 하신대(16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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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 중에서 서로 말하되(17a)
우리에게 말씀하신바(17b)
조금 있으면(17c)
나를 보지 못하겠고(17d)
또 조금 있으면(17e)
나를 보리라 하시며(17f)
또 내가 아버지께로(17g)
감이라 하신 것이(17h)
무슨 말씀이뇨 하고(17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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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말하되 조금 있으면(18a)
이라 한 말씀이(18b)
무슨 말씀이뇨(18c)
무엇을 말씀하시는지(18d)
알지 못하노라 하거늘(18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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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19a)
그 묻고자 함을 아시고(19b)
가라사대 내 말이(19c)
조금 있으면 나를(19d)
보지 못하겠고(19e)
또 조금 있으면(19f)
나를 보리라 하므로(19g)
서로 문의하느냐(19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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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진실로진실로(20a)
너희에게 이르노니(20b)
너희는 곡하고(20c)
애통하리니(20d)
세상이 기뻐하리라(20e)
너희는 근심하겠으나(20f)
너희 근심이(20g)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20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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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해산하게 되면(21a)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21b)
근심하나(21c)
아이를 낳으면(21d)
세상에(21f)
사람 난 기쁨을 인하여(21d)
그 고통을(21e)
다시 기억치 아니하느니라(21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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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22a)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22b)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22c)
너희 기쁨을(22d)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22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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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에는(23a)
너희가 아무 것도(23b)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23c)
내가 진실로진실로(23d)
너희에게 이르노니(23e)
너희가 무엇이든지(23f)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23g)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23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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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는(24a)
너희가(24b)
내 이름으로(24c)
아무 것도 구하지(24d)
아니하였으나(24e)
구하라*24f)
그리하면 받으리니(24g)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24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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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있으면 보지 못하리라_
You won't be able to see it in a little while
너의 근심이 기쁨이 되리라_
May your worries be joy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_
I will give it to you in my 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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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을 보내셔서 예수님을 알고 믿게 하시고 진리를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구하면 주신다고 하였사오니 주님 성령을 의지하여 구하나이다. 먼저는 우리가 성령님 안에서 기쁨이 충만하게 하소서. 늘 기도와 말씀으로 주님을 느끼며 살게 하옵소서. 노년의 상실감 때문에 걱정하는 어머니를 돕는 길을 열어주세요 아내에게 자신과 잘 싸울 수 있도록 크고 비밀한 부활을 가르쳐 주옵소서. 에스더 예주의 성장과 학업가운데 지경을 넓혀 주옵소서.
Thank you for sending the Holy Spirit to know and believe in Jesus and to know the truth. He said, "If you ask in the name of the LORD, he will give it to you. I rely on the Spirit of the LORD to save you." First of all, let us be filled with joy in the Holy Spirit. May you always feel the Lord with your prayers and words. Please open the way to help my mother who is worried about the loss of her old age. Teach Young-sun a big and secret resurrection so that she can fight well with herself. Please expand the scope of Esther Yeju's growth and learning.
2026.3.25.wed.Clay
신학 비평//
요한복음 16:16의 핵심은 단순한 시간 표현이 아닙니다. “조금 있으면… 보지 못하겠고...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이 “조금”은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존재의 전환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종말론적 긴박성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여전히 *보이는 것’에 묶여 있기 때문입니다.(예수 = 눈에 보이는 스승 떠남 = 상실 부재 = 결핍) 그래서 그들의 반응은 자연스럽습니다. 곡하고, 애통하고, 근심합니다 이 모습은 당신이 말한 것처럼 가진 것보다 갖지 못한 것에 연연하는 인간의 전형입니다.
1) 십자가: 결핍을 뒤집는 하나님의 방식
그러나 예수님은 전혀 다른 해석을 제시하십니다.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이것은 단순한 위로가 아닙니다. 존재론적 역전 선언입니다. a. 세상: 상실 → 슬픔 b. 하나님 나라: 상실 → 생성 이를 가장 잘 설명하는 비유가 바로 해산하는 여인입니다. 고통은 끝이 아니라생명을 낳는 통로입니다 십자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자에게는 상실이나 하나님께는 새 창조의 시작입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접점이 생깁니다. Rainer Maria Rilke는 “자기만의 죽음”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인간의 죽음은 “자기 것으로 완성되는 죽음”이라면 그리스도의 죽음은 "타인을 살리는 죽음”입니다. (릴케: 죽음을 ‘소유’하라 복음: 죽음을 ‘통과하여 생명을 낳는다’) 즉, 십자가는 죽음의 미학이 아니라 구원의 사건입니다.
2) “보지 못함”에서 “다시 봄”으로 — 인식의 전환
예수님이 말씀하신 “다시 봄”은 단순한 시각적 재회가 아닙니다. 세 단계로 이해해야 합니다. 1. 부활의 만남→ 죽음 이후에도 존재하시는 주님 2. 성령의 내주 → 외부에서 보던 예수를, 이제는 내 안에서 경험함 3. 직접 기도의 시대 → 더 이상 중개적 의존이 아니라 아버지께 직접 나아감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 날에는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이 말은 단절이 아니라 관계의 성숙입니다. 예수님이 떠나시며 주신 것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존재의 기반입니다. ① 성령 — 보이지 않는 임재(예수를 “다시 보게 하는 눈”) ② 기도 — 직접적 관계("내 이름으로 구하라” 하나님과의 거리 소멸) ③ 기쁨 — 빼앗기지 않는 실존(상황이 아니라 존재에서 오는 기쁨) 이 세 가지는 공통적으로 외적 조건이 아니라 내적 실재입니다.
3) 당신의 질문에 대한 핵심 응답
“예수님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시는가?” 본문이 명확히 보여줍니다. 꾸짖지 않으시고/이미 묻고자 함을 아시고/비유로 풀어 설명하십니다. 즉, 예수님은 "답을 주는 분” 이전에 “마음을 먼저 아시는 분”입니다. 당신이 갈망한 바로 그 존재입니다. “그것도 모르냐 하지 않고 마음을 읽어주는 사람” 그분이 바로 예수입니다. 결핍의 신앙 vs 선물의 신앙은
a. 보이지 않으면 불안 vs 보이지 않아도 신뢰
b. 비교와 부족 vs 이미 주어진 것에 감사
c. 외적 조건 중심 vs 내적 임재 중심
d. 근심이 지속 vs 근심이 기쁨으로 전환
4) 결론: “조금”의 시간 속에 있는 우리
지금 우리는 어디에 서 있습니까? 보지 못하는 시간” 속에 있습니다. a. 기도는 아직 응답되지 않고 b. 관계는 여전히 어렵고 c. 삶은 여전히 흔들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선언은 변하지 않습니다. "조금 있으면… 다시 보리라” 이 “조금”은 시간이 아니라 약속의 확실성입니다. "십자가는 결핍의 종말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선물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