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밥바라기님..제가 주제넘게 대륙고려 사이트에서 좌원전투에 대한 답변을 퍼왔습니다.
개밥바라기님이 반론을 제시할 수 있으니..님이 직접 토론 전체 내용을 퍼오시면 이글을 삭제하겠습니다. 덕분에 재미있는 역사를 배웠어요..감사합니다..^^
[신설토론문답]
일개 태수가 어떻게 대군을 거느릴 수 있나요?
[ 분류 : 자유 | 작성자 : 폴권 | 등록일 : 2005년 02월 02일 | 조회 : 19 | 추천 : 0 ][ 이메일 : sqlk2025@ionet.netxyzzz ]
>읽어보면 전투의 주체가 한나라 쪽은 일개 태수가 거느린 군대이고 고구려 쪽이 동원한 군대는 불과 수천으로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전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일개 태수가 쳐들어왔는데 왕과 대신들이 벌벌 떨고 사실상 집권자인 명림답부가 싸우러 나갑니까? 그런 건 국경에 있는 장수 선에서 처리될 일이지요.
현도군 태수는 경림의 여러 가지 칭호 중 하나일 뿐입니다. 다만 낮추어 부르느라 그렇게 했을 뿐이지요.
명림답부 자신도 말했듯이, 경림이 이끈 군사는 굳센 군사 (즉 훈련된 정규군)였고, 숫자도 고구려군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10만이란 숫자는 어디서 읽었는데 지금은 찾을 수가 없군요.
하지만 고구려군 수천 기란 것은 기병이 몇천 명이라는 뜻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기병이 예를 들어 5천명이면 보병은 그 두 배에서 세 배 정도 된다고 보아야 하므로, 총합 약 1만 5천에서 2만입니다.
경림의 군대는 고구려군의 몇 배나 되었습니다. 당시는 한번 출병하면 기본 단위가 10만이었고,
또한 이것은 동한의 병권을 장악한 환관 조절이 자신의 힘을 나타내려고 벌인 전쟁이었으므로 더 많았을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이게 어떻게 '동한을 멸망시키고 중국을 400년 동안 혼란으로 몰아넣은' 대전투 가 될 수 있습니까? ㅡ _ㅡ;;
위를 보시지요. 조절은 정예병을 쏟아 넣었고, 그 정예병들이 아무런 결과도 못 내고 맥없이 박살나 버렸습니다.
충격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한나라 군대가 무려 10만명 이라는 근거는 어디에 나오는지도 궁금합니다.
위를 보시지요.
><후한서>나 <삼국지>에 한 줄도 언급되어 있지 않다고 글쓴이가 말씀하셨는데 그럼 한나라 군대가 10만이나 되고 십상시가 관련되어 있다는건 도대체 어떻게 아신건지 ㅡ _ㅡ;;;
조절이 외척출신인 대장군 두우를 죽인 것이 169년입니다. 이 때에 동한의 모든 병권은 조절과 십상시들 수중에 완전히 떨어졌습니다.
경림 마음대로 굳센 군사를 많이 끌고 천리 밖에서 군량을 실어 올 수는 없습니다.
명령을 내린 사람은 조절과 십상시들입니다.
정권을 수중에 넣은 조절은 빨리 뭔가를 보여 줘야 했고 그래서 경림을 다그쳤던 것입니다.
경림은 대군을 이끌고 가면 한 달 안에 끝날 것이라고 판단했고, 그래서 정예병들을 다 긁어모아 10만여명으로 쳐들어 갔지만,
고구려에서 지구전으로 나오니 식량이 다 떨어지고 (혹은 중간에 십상시들이 보급될 군량을 잘라먹었을 수도 있음),
사기도 떨어져 퇴각하는 길에 수천 기의 고구려 기병을 만나자 그대로 붕괴된 것입니다.
동한은 결국 좌원회전으로 손상된 전력을 다시는 보충하지 못합니다.
관련글 총 : 3 건
좌원전투에 관한질문 드려도 될까요. (개밥바라기) 21 : 2005-01-31
일개 태수가 어떻게 대군을 거느릴 수 있나요? (폴권) 20 : 2005-02-02
한 마디만 더 - 정서대장군 한중태수 위연 (폴권) 10 : 2005-02-02
한 마디만 더 - 정서대장군 한중태수 위연
[ 분류 : 자유 | 작성자 : 폴권 | 등록일 : 2005년 02월 02일 | 조회 : 10 | 추천 : 0 ][ 이메일 : sqlk2025@ionet.netxyzz ]
이 시대보다는 두 세대 뒤의 이야기지만,
촉한의 장군 위연의 정식 칭호는 정서대장군 남정후 한중태수였습니다. 촉은 동한의 관제를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위연은 촉에서 대장군까지 오른 인물입니다.
위연도 그런 식으로 따진다면 '한중태수'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관우가 우금의 대군을 무찔렀을 떄, 위서 무제기에선 한수정후니 형주태수니 그런 소리 하나도 안 쓰고, 그냥 羽 라고만 했습니다.
역사는 그렇게 쓰는 겁니다. 적은 최대한 내리깎고, 아군은 최대한 높이는 것이지요.
카페 게시글
동양사
Re:좌원전투(?)에 대해...정서대장군 한중태수 위연(펌)
치우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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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03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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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글쓴이의 답변은 저도 읽었습니다. 어떤 기록적 근거에 입각한 결론이라기 보다는 '글쓴이의 상상력에 의한 추리'더군요.
상상력에 의한 추리?..위서 무제기에서 나오는 관우나 위연에 대한 결론도 추리군요..역사책을 쓴 사람의 입장과 당시 상황을 고려해서 신중하게 읽어야겠죠. 진수의 삼국지(위서 무제기)에서 관우를 그냥 羽..이름만 말했는지..암튼 덕분에 정사 삼국지와 삼국사기를 보는 재미가 늘어났습니다.
삼국사기..신대왕4년(168)에 한나라 현도태수 경림(耿臨)이 침략해 와서 우리 군사 수백 명을 죽였다. 왕은 스스로 항복하여 현도에 복속되기를 빌었다..4년 후 신대왕8년(172)에 좌원전투가 일어나죠. 고구려본기의 내용은 명림답부 열전과 대체로 동일함.
1.현도군 태수는 경림의 여러 가지 칭호 중 하나일 뿐입니다. 다만 낮추어 부르느라 그렇게 했을 뿐이지요.→경림의 다른 칭호가 실제로 여러개 있었을 경우 할 수 있는 말이죠. 위연과의 비교도 마찬가지 입니다. 2.당시는 한번 출병하면 기본 단위가 10만이었고→ ??????
덧붙여서 관우얘기는 완전히 쓸데없는 소리라고 봅니다. 삼국사기에 명립답부가 등장할 때 마다 고구려국상이라고 하지 않고 답부라고 부르는거 하고 다를게 없죠. 삼국지 가지고 계신 모양인데 다른 장수 이름도 검색해 보시죠.
그렇군요..고구려본기는 국가 또는 왕에 대한 기록이라서 명립답부를 낮추어 국상을 빼고 그냥 답부라고 부른 건 같아요. 지금 정사 삼국지를 읽고 있는 중..개밥바라기님..폴권에게 그런 반론을 제시하시면 좋겠군요. 저는 두 사람의 토론을 지켜 보면 어떻게 역사를 봐야 하는지 배우게 돼요. 이제 그만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