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생명 말씀(2021.3.14.) 말씀/ 마태 복음 10: 28-30
삶의 여백을 주신 하나님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저는 창세기 장조의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신 두 가지 축복이 있다면 일하는 것과 안식이라고 봅니다. 하나님은 6 일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7일째에 안식하셨습니다. 2장 1-2절에보면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셨고 3절을 보면 또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이 말씀을 보면 우리는 일이 무엇인지, 안식이 무엇인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일이란 본래 창조의 행위입니다. 생명을 생산하고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고 그렇게 하는 동신에 기쁨을 주는 에너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은 긍정적으로 아주 좋은 것입니다. 그리고 안 식일은 당지 일을 쉬는 날이 아니라 복되고 거룩한 날로 모든 창조 역사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일하며 산다는 것, 그리고 안식을 누리며 산다는 것은 창조적인 일에 동참하는 축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3장으로 넘어가면 일이라는 것이 다른 의미로 인간이 타락한 후에는 땀 흘려 일하는 저주가 되었고, 7일에 안식하는 것은 반드시 지켜야할 십계명의 4계가 되었습니다. 본래 마음껏 창조 역사에 동참하고 복된 항상 안식을 누리며 살아야하는 것이 우리 인생인데 이제는 계명에 매여서 그 것을 지키지 않으면 죽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얼마나 안타깝고 비극적인 일이겠습니까? 인간의 자유로운 활동과 창조 역사는 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매이는 것 없을 때, 제재 받는 것이 없을 때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죄를 짓고 축복을 상실했습니다. 자유를 상실했으며 밤낮 생존을 위해서 수고하며 세상을 방황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인간이 쉬지 않고 일만 열심히 할 때 행복합니까? 먹을 것 안 먹고 입을 것 안 먹고 잠 도 실컷 자지 못하고 평생 일하고 자식들 키우면 행복합니까? 혹 열심히 일하고 나름 성공해서 많은 돈을 모으고 좋은 집을 짓고, 정원을 가꾸고, 5,000만원이 넘는 캠핑키를 사서 여행을 떠나면 행복 합니까? 일만 하는 것은 저주입니다. 반대로 놀기만 하는 것도 좋은 것이 아닙니다. 한 달만 아니 일주일만 아무 것도 안하고 놀아보세요. 정말 힘들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많은 누리는 것도 쉬는 것도 다 저주 입니다. 전도서 2;22-24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와 마음에 애쓰는 것으로 소득이 무엇이랴 23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 뿐이라 그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24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가운데서 심령으로 낙을 누리게 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는 것이로다 평생 근심하고 수고하는 것이 인생이고 결실은 수고와 슬픔뿐이라 합니다. 다음 구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 마음이 밤에서 쉬지 못하니. 낮에 일하고 밤에는 쉬어야 하는데 밤에도 누워서 근심을 합니다. 저는 어릴 때 시골에서 살았는데 옛날은 다 그랬지만 온 식구들이 큰 방에 모두 자리를 펴고 나란히 잠을 잤습니다. 잠을 자다가 언듯 이야기 소리에 깨어 들어보면 아버지와 어머니가 무엇인가 이야기를 하며 근심하며 걱정하는 소리였습니다. 깊은 한숨을 쉬시며 “서울 아이들 어쩌면 좋지. 이걸 어떻해야지? 이렇게 하면 어떨까? 저렇게 하면” 무엇을 걱정하는지 잠도 안주무시고 저는 이해가 안 되었고 다시 금방 잠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돈이 많고 부자가 되면 근심이 없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인생은 누누나 나름대로 근심거리를 안고 산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음에 평안을 주고 심령에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는데 이모든 것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없으면 놀고 쉬는 것도 짐이 되는 것입니다. 돈 관리도 짐이 되고, 재산 관리 땅 관리도 짐입니다. 지난 번 바닷가 펜션에 들로보는데 집은 근사한데 주인이 개똥을 치우느라고 수고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전도서 저자는 자신은 모든 사람보다도 먹고 마시며 즐기는 일에 띄어났다고 합니다(전도 2:25). 자신은 은금과 왕들의 보배와 여러 도의 보배를 쌓고 또 노래하는 남녀와 인생들의 기뻐하는 처와 첩들을 많이 두었고, 지혜도 여전하고,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다고 합니다. 그것이 자신의 분복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음을 보면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 후에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 대게 일은 열심히 합니다. 일을 떠나서는 살지 못합니다. 그런데 안식을 누릴줄 모릅니다. 오히려 부자가 되고 성공해서 그 짐들에 눌려 쓰러집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왜 7일에 안식하셧고, 또 우리에게 안식하라는 명령을 주셨습니까? 안식이란 단지 일을 안 하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 이상에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음악으로는 쉼표, 인문학적으로는 여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쉬지 않고 노래하면 노래가 안 됩니다. 여백 없으면 그림은 답답하고 삶은 빡빡하고 피곤하게 됩니다. 결국 쓰러지는 것입니다. 정동원이 부른 트롯트 여백이란 노래가 있습니다. 가사가 좋아서 색소폰 한번 씩 연주 해보는데 마지막 부분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전화기 충전은 잘 하면서 내 삶은 충전하지 못하고 사네 마음에 여백이 없어서 인생을 쫓기듯 그렸네. 마지막 남은 나의 인생은 아름답게 피우리라>. 여백이란 단지 빈공간이 아니라 삶을 충전하는 에너지입니다. 열심히 일하고 수고하다가 한 번씩 텀을 갖고 쉬어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열심히만 하다보면 목회도 번 아웃되고 탈진합니다. 그렇게 살면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목회에서도 쉽표는 매우 중요한 분분입니다. 제 카스에 잘 아는 음악교수님 이런 댓글을 달아주셨습니다. “주님 안에서 기쁨과 자유함을 누리시는 목사님을, 귀한 사역을 축복합니다. 어려움만을 사역으로 아시는 사역자들에 반해 천국을 누리시며 주안에서의 행복함을 누리심이 지극히 귀합니다” 그래서 저도 답글을 달아드렸습니다. “교수님 아주 중요한 것을 지적해주셨네요. 보통 사람들은 일은 잘해도 쉴 줄은 모릅니다. 고난을 받아야 할 때는 당연 고난도 받고 십자가의 길을 가야지요. 본분을 망각해서도 안 되고요. 그런데 평상시도 쉴 줄 모르고 여백 없는 삶을 산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왜 그렇게 살까? 어떤 철학자가 그런 말을 합니다. 인간은 놀고 쉬는 것에 죄의식을 느낀다는 겁니다. 기껏해야 잠 푹 자고, 아무것도 안하던지 TV 보고 그러는데 그것은 쉼이 아닙니다. 음악에서 쉼표은 음악의 구성 요소입니다. 제대로 쉬지 않으면 전체가 무너집니다. 삶에서의 쉽표는 에너지 충전의 의미가 있습니다. 삶의 할력소를 집어넣고, 재생산의 힘을 축적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아름다운 노래를 만들고 삶을 아름답게 창조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몇일 전 천권사님 전화가 왔습니다. 광주 목사님들 식사한번 섬기고 싶다는 것입니다. 뵌지도 오래되고 특산물 김도 선물해드리고 싶다고 했습니다. 식사만 하러 무안까지 온다는 것이 좀 그랬지만 섬기시려는 권사님 마음이 닿아서. 날짜를 맞춰 임아브라함 목사님, 오행언 목사님, 나주 정상국 목사님 흔쾌히 내려들 왔습니다. 어째튼 온다고들 하니 저도 할 일이 생겨 봄나들이 바닷가 산책코스도 생각하고, 염포탕 점심도 계획하고, 과일과 커피콩빵을 준비했습니다. 상국 목사님은 이제 청계 내려오면 커피콩 빵이 생각난다네요. 사실 임아브라함 목사님 얼마 전 큰 아들 먼저 천국 보내고, 정상국 목사님도 사모 먼저 천국 보낸 후라 말은 안 해도 마음에 상실감이 크리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쩌면 한번 위로할 수 있는 좋은 기회도 된 것입니다. 권사님이 이렇게 섬겨주신 덕분에 맛있는 염포탕 배부르게 잘 먹고, 봄 바다 산책을 즐겁게 했습니다. 봄 날씨가 따듯하고, 유난히 바닷물도 맑고,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하니 걷기만 해도 힐링이 되고 좋았습니다. 여러군데 해 변을 산책하고 하늘. 별.바다 펜션을 갔는데 전과 또 달라졌습니다. 바다와 어울어진 인테리 소품들이 얼마나 창조적이고 예술적으로 조화로운지 연실 감탄을 했습니다. "이곳은 산책만 해도 벤치에 앉아있기만 해도 힐링이 된 다구." 제가 계속 자랑을 하고 선전을 했습니다. 주인을 만나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는지, 누구의 아이디어인지, 정말 창조적이고 멋지다. 세계 어디를 가보아도 이런 것 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주인 말로는 아들이 했다고 합니다. 전공을 무엇을 했냐고 하니 전공한 것이 없다고 합니다. 아들 되는 분을 만나 ”당신이 진짜 예술가이다."라고 칭찬해줬습니다. “창세기에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 형상을 주셨는데 인간 안에는 창조의 DNA가 있다. 어떤 사람은 약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것이 내면엣 폭발해 나온다. 당신이 그렇다” 그랬더니 좋아 합니다. 어릴 때부터 만들기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알고보니 목포로 교회를 다닌다고 합니다. 바다에 물이 차면 차는대로, 물이 빠지면 빠지는 대로 밤이 되어 달이 뜨면 뜨는 대로 모든 풍광이 멋진 곳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닦 장식 글씨, 조형물들 어떤 하나하나도 아무렇게나 된 것이 없었습니다. 모두가 예술작품 세트입니다. 말 그대로 '하늘, 바다, 별'의 세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코로나가 아니면 많은 분들이 와 볼 텐데 아쉬웠습니다. 2층 그믈에 나란히 누워 잠시라도 망중한을 즐겨보았습니다. 엄마 품이 이런 것인가? 주님 품이 이런 것인가?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그저바라보다가 '드라마 OST "감사"라는 노래말 첫 가사내용이 떠올랐습니다. 거기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눈물이 흘러 넘쳐 올려다본 파란 하늘이 이렇게 푸르던 걸 모르고 나 이제까지 살아왔어 내 마음 속의 있는 사막에서 차올라 오는 소중한 물과 같은 사랑을 이제 영원히 믿고 싶어" 어쩌면 우리가 그렇게 살았는지 모릅니다. 살기 위해서 생존을 위해서 앞만 보고 달리다보니 한번 제대로 하늘을 우러러 푸른 하늘을 보는 여유도 갖지 못했지 않는가! 다행히 그런 삶을 살다가 이제는 하늘 바다 별을 보는 삶의 여유를 누릴 수 있게 되어 감사가 되었습니다. 여유를 누리고 여백 있는 삶을 산다는 것은 단지 부요해서는 아닙니다.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외와 중노동에서 해방시키시고 자유를 주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 총청에 응해야 합니다. 마태 복음 10: 28-30을 보십시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사람은 쉼이 없다면 아무리 오래 살아도 행복할 수 없습니다. 돈, 재산, 명예, 권력. 이런 것 들이 쉼을 주지 못합니다. 예수님 앞에 나아와야 합니다. 참된 쉼도 행복도, 평안도 하나님이 주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수고하고 짐진 인생을 내게 오라고 초청하십니다. 그러면 쉬게하리라고 약속하십니다. 그러면서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합니다. 주님께 나아갑니까? 내게 배우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내가 누구인지? 우리는 끊임없이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배우고 알아가면 우리는 짐을 벗어던지고 가벼워지고, 여백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오셨습니다. 알면 죄를 내려놓고 자유하지만 모르면 평생 죄 짐을 지고 살아야 합니다. 죄짐이 무거운 사람이 무엇을 한들 편하겠습니까? 자동차가 흔하지 않던 시절 머리에 짐을 지고 시골길을 걷는 할머니 차에 태워주었더니 계속 머리에 짐을 지고 있더랍니다. “할머니 짐을 내려놓으세요” 하니 “차탄 것도 미안한데 짐까지 매려놓으면” 하더랍니다. 무지한 것 아닙니까? 이제는 어떤 죄던 즉각 즉각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바로 다시 시작하세요. 누가 밥사주면 미안하지 말고 맛있게 드세요. 여러분, 사랑이 좋지 않습니까? 사랑도 모르면 짐이 됩니다. 사랑한다고 하는데 나도 힘들고 상댑1ᅟᅡᆼ도 힘듭니다. 사랑처럼 좋은 것이 없는데 왜 그렇습니까? 모르니까? 그래서 배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만하지 말고 제 7일은 아무것도 일하지 말라고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날은 하나님말씀을 만나고 예배하고 예배하며 말씀을 듣고 배우고 은혜를 충전하는 시간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여백은 공시간이 아닙니다. 삶을 더욱 아름답게하고, 밝게하고 생동감있게 충전하는 윤활유입니다. 그렇게 해서 새 힘을 얻고 한 주간을 열심히 창조적으로 일하며 더욱 아름다운 신간을 만들어가라는 것입니다. 당연히 그런 삶은 행복하게 됩니다. 저는 과거에 하나님만 사랑하고, 복음의 사명만 감당한다고 할 때 하는 것 없이 바쁘고 삶이 무거웠습니다. 산에 바다에 갈 틈도 없고 악기를 불 수 있는 꿈도 꾸기 어려웠습니다. 또 인문 고전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늘 바쁘고 여우가 없었습니다. 속이 채워진 것이 없으니 여유가 없습니다. 지금은 새벽 5시30분부터 밤 12시까지 바쁘게 살면서 항상 바쁩니다. 그러나 여유롭습니다. 왜냐하면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여백이 있기 때문입니다. 토요일 재중집사님 어머니 소천하셔서 해남을 다녀왔습니다. 토요일은 바쁜 날이지만 오히려 여백이 되었습니다. 오고가면 지홍 집사님가 영적 대화도 나누고, 해남 들력에 피어나는 봄의 기운을 받으며 은혜의 충전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돌아와서 또 집중하여 카스 글을 써서 올릴 수 있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 모두가 할 일없이 바쁘기만 한 사람이 되지 말고, 언제나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여백 있는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