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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정기산행이 지리산이라는 알의 산행공지를 보고 올해가 나에겐 적어도 산에 관해서만큼은 풍성한 한해가 되고있다는 생각이 든다.벌써 세번째 지리산 산행이기 때문이다.지난 6월 우리 산악회를 따라 한 지리산 종주에다가 내친김에 바로 헐렁산악회 멤버들을 모시고(진짜 모신다는 표현이 적절하겠다)노고단-반야봉-뱀사골계곡을 하였으니 이젠 제법 지리산 전체가 머리 속에 그려지고 산행당시의 기억도 아직은 생생한 편이다.약간의 부담되는 약속이 있었으나 어디 지리산을 포기할 만큼이겠는가.
가볍게 미뤄버리고 산행참여 댓글을 단뒤 좀더 욕심을 부려본다.이번 산행코스가 뱀사골-삼도봉-피아골로 이어지는 지리산 단풍의 진수만을 느낄 수 있는 것인데 당일로 충분한 산행이다.이미 추석연휴에 어쩌다보니 하게 된 나홀로 설악산 공룡능선 비박의 감흥이 가시기도 전인지라 삼도봉까지 같이 하다가 나는 종주코스로 방향을 바꿔 벽소령에서 별과 명월을 보며 하루 밤을 보내리라는 야심찬(?)계획을 했다.지리산을 당일로 끝내긴 너무 아쉽지않은가.
그러나 이를 어찌 눈치챈 알대장으로 인해 바로 꼬리를 감출 수 밖에...
알이 추가 산행공지로 예외없이 참가인원 전원이 함께 가고 함께 서울로 올라와야 한다는 엄한 포고령을 내렸으니 꼬리를 감출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있겠는가.그러나 그럼 또 어떤가.지리산을 좋은 사람들과 맛보는 데 그거만이라도 행복아니겠는가.
출발이다.
새벽 5시에 참가인원 전원이 약속장소에 모이는 걸 보면 우리산악회도 대단하다.이번 산행인원은 이미 남도유람을 하고있는 알이 현장에서 합류하면 일곱명이다.왕눈이는 우리 산악회 정예멤버,정상공격조가 다 모였다고 너스레다.왜 정예멤버가 아니겠는가.우리산악회는 매달 참가하는 대원들이 그 달의 정예멤버이며 정상공격조 인 것을...9인승 카니발에 몸을 실은 우리를 멍게총무는 시속 150을 넘나드는 속도로 대전지나 죽암휴게소까지 단숨에 옮겨놓는다.아침 해장국을 먹고있는데 알의 전화가왔단다.
지금 만복대에서 일출을 보고있는데 너무너무 좋단다.제길,이렇게 날씨좋은데 지리산 만복대에서 일출감상하면 당연히좋겠지 나쁠까.서로들 부러움 반,시기심 반으로 한마디씩 하면서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지리산을 향해 Go!
반선이다.
뱀사골매표소가 있는 반선에 도착한 시각은 9시경.예정보단 한시간여 빠른 출발이다.주차장에서 알과 합류,라면과 각자 필요한 산행물품들을 구입하고 등산화 끈매고 20여분 쯤에 뱀사골 매표소를 통과한다.어느 틈엔가 우리 산악회에서 고독한 선두주자가 되어버린 왕눈이가 역시 선두에서 대원들을 이끈다.이끈다는 표현보다는 혼자 내뺀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작년 지리산 종주 때 무지 고생한 다음부터 나름대로 터득한 요령이리라.오늘따라 발걸음이 모두들 가볍다.날이 너무 가물어 설악산에서도 단풍이 작년만 못한 걸 확인했던 나로서는 사실 단풍에 대한 기대는 그다지 없었다.하지만 큰뱀이 목욕한 후 용이 되어 승천했다는 탁용소에 이르러서 부터는 우리 눈을 제법 환하게해주는 단풍이 군데군데 있다.
이제 물들기 시작한 단풍은 오십을 부러트린 나를 마음 뿐아니라 몸도 젊게 만드는 모양이다.지난 6월 말 헐렁산악회때 하산코스였던 뱀사골 계곡이 그땐 정말 길고도 지루했었다.그 기억이 생생한지라 내심긴장을 풀지않고 있었는데 어느새 병소,제승소를 지나 뱀사골대피소에 와있다.나만 그런 게 아니라 어느새 자칭 우리산악회 리더격이 되어버린 왕눈이는 물론이고 항상 민폐는 끼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긴 산행을 마다않지만 그래도 어딘지모르게 신경이 쓰이곤 하는 회장,피플러버님과 산에서 다람쥐 저리가라면서도 오랜만에 하는 산행이라며 엄살을 떠는 가상이도 그랬고 육체적인 일 보단 정신노동이 어울릴
게 틀림없는 파리투 또한 힘이 하나도 안든다니 알과 멍게야 더 말 할 필요가 있겠는가.정말 3시간여의 오르막 등산길이 이처럼 가벼울 수가..
내친 김에 능선에 올라 붙어 경치 감상하며 점심을 먹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라면을 끓여야하는 관계로 식수가 있는 뱀사골대피소에서 점심을 먹는다.작년 지리산종주때 이 곳에서 재로가 가져온 콩국수를 먹던 기억이 새롭다.본인이 직접 갈아왔다던가..지리산에서 콩국수를 먹는 우리들을 신기한 듯 부럽게 쳐다보던 주위사람들의 시선이 기억난다.생업땜에 그렇게 좋아하는 지리산을 오지 못한 재로의 심정이 어떻겠는가.그래도 생업이 우선이니 자리 잡힌 다음,내년쯤이나 함께 해보자꾸나.
이제부턴 250미터 가량의 가파른 나무계단을 올라야만 한다.
이미 탄력이 붙은 지라 단숨에 화개재까지 오른다.이제부터는 지리산만에서만 볼 수 있는 겹겹이 줄지어 끝없이 펼쳐지는 산들을 보면서 걷는 길이다.먼저간 일행이 화개재에서 쉬지도 않고 삼도봉으로 내뺀다.정말 대단들하다.이정도면 우리도 알피니스트로 손색이 없지않을까.
삼도봉이다.삼도봉은 원래 날라리봉이 그 이름이었다.그러던게 이 봉우리가 경상남도,전라북도,전라남도의 경계가 된다하여 삼도봉이라 이름이 바뀌었다.개인적으론 날라리봉이란 이름이 훨씬 좋다.이 좋은 경치에 날라리 소리라도 듣는다면 금상첨화 아니겠는가.
이제부턴 반야봉을 오르는 진정한(?)정상공격조와 노루목에서 쉬면서 정상공격조를 기다리는 신선놀음조로 나뉜다.정상공격조는 작년 종주때 혼자서 고독하게 우리들의 베낭을 눈을 부릅뜨고 감시하느라 반야봉을 오르지 못했다는 살신성인 정신의 왕눈이와 지난 6월 종주때 모두들 반야봉을 그대로 패스해버려 아쉬움이 컸던 가상이,그리고 작년 반야봉에서 큰산의 맛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는 파리투 세명이다.나는 오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지난 헐렁산악회 때 올랐었고 왠지 지리산에서 느긋하게 여유부리는 것도 좋겠다는 마음으로 신선놀음조에 낀다.갈림길에서 공격조의 베낭을 맡아 노루목까지 이동한다.
노루목에 도착하니 먼저 도착해 노루목에서 하나밖에없는 제법 넓은 평지에 미국에서 가져왔다는 두꺼운 천으로 된 피크닉용 돗자리를 깔고 알이 우릴 기다린다.아까 반선에서 무슨 그렇게 무거운 걸 지고 가냐고 놓고 가라는 내 말에도 묵묵히 베낭에 넣고 산을 오르던 알.그 돗자리를 내가 반 차지하고 호강한다.시원스런 바람이 살살 불고 푸른 하늘을 보며 있으니 꿈나라로 바로 직행한다.아주 기분좋게 30분정도 말그대로 꿀잠을 자고나니 그야말로 세상 부러울 게 없다.토마토 하나 먹으며 공격조 기다리니 오른지 한시간만에 내려들 온다.모두 반야봉 오르는 길이 힘들었다고 한다.삼도봉에서 오다 갈림길에서 오르면 노루목에서 오르는 것보다 힘이 드나보다.노루목에서 올랐을 땐 그렇게까진 아니었는데.그래도 반야봉을 오른 왕눈이는 진정한 종주꾼이 되었다고 의기양양.반야봉에 뭐 놓고 오진 않았나 걱정스럽긴 하다.
삼도봉을 뒤로 하고 한걸음에 내달은 곳이 임걸령이다.옛날 호걸들이 머문 곳이라는 이 곳의 물 맛은 모두들 기억하고 있으리라.수량도 풍부하고 차고 단 이 물 맛에 호걸들도 똑같이 반했을 터이니 이 곳에 머물밖에.우리도 호걸스럽게 물을 꿀꺽꿀꺽 마시곤 잠시 머문다.저 멀리 왕시리봉이 보인다.저기는 언제 또 밟아보나.이젠 높디 높아보이는 산도 크게 부담이 없다.적어도 지금같은 컨디션이라면 말이다.기억은 안나는 몇마디들로 모두들 환하게 웃은 후 피아골 하산길로 접어든다.
이제부턴 피아골 하산길.
이정표를 보니 피아골 대피소까지 2킬로다.워낙 모두 컨디션이 좋은지라 금방 내려갈 줄 알았던 대피소까지의 길이 이토록 멀 줄이야.한참을 내려왔다 싶어 이젠 대피소 가까이려니 하고 있으면 나타난 이정표는 대피소까지 1.5킬로 또 한참을 내려왔다 싶은 데 1킬로,또 500미터.역시 우리 산행을 그리 쉽게 끝나게 만들 지리산이 아니다.대피소에 도착,산장지기로 보이는 털보분께 이정표 거리표시가 이상하다고 푸념아닌 푸념을 하니 거리표시는 아주 정확하다고 딱잘라 말한다.긴 말해봐야 초짜라는 광고하는 듯해 바로 접고 쉴 자리를 마련 남은 음식 처분에 들어간다.이 때 왕눈이는 무릎이 아프다며 먼저 하산해서
식당 잡아놓고 뱀사골까지 가는 차도 수배해 놓겠단다.역시 리더자격이 있다 기특히여겼는데 나중에 안 일이지만 먼저 하산한 데는 그럴만한 왕눈이 만의 숨은 이유가 있었을 줄이야...하여간 남은 음식 다 처분하고 하염없는 하산 길이다.해드랜턴을 켜고 쉼없이 내려와 직전마을인가에 도착한 시각이 오후 7시경.그나마 내려오고나니 아직도 힘이 남아 있을 정도의 적당한 피로감이 있을 정도다.
먼저 자리잡고 우리를 기다리고있는 왕눈이를 보고 멍게의 외침소리가 크다.
"아니,너 술 먹었잖아? 서울 올라갈 땐 네가 운전해야지!!"
어쩌겠는가.벌써 더덕주를 적당히 비우고 조금 벌건 얼굴로 미소를 짓고있는 왕눈이를...심증만이 가는 상황이지만 왕눈이의 무릎은 진짜 아팠단 말인가?그래서 힘들게 대피소까지 와서 쉬지도 않고 혼자 내려왔단 말인가.정녕 그는 우리 모두를 위한 희생정신을 발휘,힘든 데도 홀로 고독한 하산 길을 재촉했단 말인가.
이번에도 무늬만 막내인 왕눈이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미스테리를 만들어 우리 산행을 더욱 재미있게 만드는 고수 왕눈이.
멍게에게 연신 위로의 말을 건네면서도 어쩌겠는가.내 입에도 더덕주와 소맥 폭탄주가 연신 들어가고있는 것을.나야 선배한테 운전시킬 멍게가 아니라는 굳은 믿음이 있었지만 그래도 멍게가 안돼보여 맥주 한잔만 하라 권하니 거푸 두잔을 마셔버린다.
쬐끔 불안해졌지만 그가 누군가.우리산악회 총무!멍게 아니겠는가.바로 자제하고 백숙에 도토리묵에 파전으로만 손이 간다.
알 역시 혼자 차를 가져와 술은 몇 잔 못 마신다.
아쉬운 정도로 하산주를 마시고 식당주인 차를 흥정,뱀사골 주차장까지 간다.식당에서 뱀사골 우리들 차있는 곳 까지 1시간 30분이 걸렸다.성삼재를 올라 뱀사골 반선 까지가 생각보다 긴 거리인 듯 싶다.차 안에서 문학에 해박한 회장과 왕눈이의 시끄러운 문학토론 소리도 성삼재에 잠깐 내려 밤하늘의 반짝이는 수많은 별을 보고나니 음악소리처럼 감미롭기만하다.
서울 집에 도착하니 새벽 1시30분.아마도 2시경이면 모두 집에 도착들 했으리라.
모두들 수고했다.그리고 너무 좋았다.
첫댓글 우렁쉥이 총무가 인원점검할 때 '한 번 가보지 뭐' 했다가 슬그머니 꼬리 내린 오솔길입니다.^^ 한 주 전에 똑 같은 코스로 다녀온 팀의 산행기를 보니, 주능선에서 피아골산장까지 "도대체... 언눔이 2km라고 써 놓은 거야? 이 너덜지대를 언눔이 30분이면 내려간다고 한거야" 이런 아우성이 있어 바로 꼬리내렸답니다. 건장한 남자들였는데...뱀사-피아골 당일 산행하고는 죽는 줄 알았다네요.^^ 지도...너덜지대 산행, 생각만 해도 무서워요. 흐흐
역쉬! 잘 읽었슴다. 근데 가물가물한 거이 임걸령이 반야봉 전이었어라우? 아자씨, 아무래도 그날 노루목에서 잠자믄서 선녀 만났지라. 긍께 아직도 비몽사몽 여그가 지옥인지 지린지 세상인지 구별이 안되는 거 보이...ㅎㅎㅎ 암튼 간만에 산행기 쓰느라 애썼수. 근게 한번 썼다하믄 다들 글발은 기~~네. 즐감!!!
맞습니다요.노고단에서 출발했던 종주코스를 역행했으니 삼도봉이 먼저지라.귀찮아서 본문 수정은 안하려다가 두고두고 씹힐 것 같아 수정했습니다.아무래도 지리산 꿀잠이 원인이지라. 다 쓴 산행기가 없어져서 다시 쓰질않나,순서가 바뀌질않나...하여간에 이해하시고 재미있게 읽어주시라요. 나,없는 실력에 독수리 타법으로 글쓰랴,사진 올리랴 고생 많았심다.
고생 많이 하신 거 눈에 보입니다. 기대에 110% 부응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선배님 산행기 자주 만나고 싶어지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온 산의 흙이 푸석푸석한 것에 마음 아팠고, 기어이 제 발로 먼지를 더해준 게 미안했었습니다(목마른 산한테)... 그리고 그동안 앉아만 있었던 탓에 (사무실에서, 차에서) 몸이 많이 일어있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산 중반쯤이면 보통은 바지가 헐렁해지고 흘러내리더니만 지난주는 웬걸 막 빨아입은 느낌 그대로 빡빡하게 끝까지 달라붙어 있더군요ㅠ.ㅠ 이번주 북한산 번개 누가 안하나... ??? 저는 의상봉에서 문수봉까지 길만 좀 압니다, 문수봉에서 만나도 재미있을 것 같은데... 같이 밥 먹고 또 헤어지고...
나도 역쉬! 글도 사진들도 시원시원하다. 체력도 후배들헌티 뒤지지않는가베. 수고혔어라.
고생하셨습니다... 아.부럽다 다음달에는 동참해야 하는데 결혼시즌이라 힘드네요.
선배 잘 읽었습니다. 근데 카메라에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을 차별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저렇게 뚱뚱할 리가 없습니다.그간의 자아도취(음 무척 살이 빠졌군)를 한번에 날려 버렸습니다. 앞으로 운동을 계속 해야될 지 깊은 회의가 듭니다.
부럽습니다. 수고 하셨고요. 대학때에는 매년 지리산을 다녀 왔었는데...이제는 무릅이 걱정되어 시도할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하여 저는 그날 혼자 북한산을 다녀 왔지요. 정말 가뭄이라서 계곡에 물이 전혀 없더군요. 그리스의 한 철학자가 세상은 물과 흙과 공기로 이루어졌다는 말을 한 것 같은데(?), 가상이 말대로 먼지 풀풀 나는 산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나저나 내가 지리산을 탈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