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함께 있으면 있을수록 좋은 사람이 되고 싶고, 그리고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습니다. 지금의 나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혹은 다른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 주고 있는지 잠깐 생각해볼까요.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하는 말 한 마디와 작은 행동 하나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연인들은 서로에 대한 기대가 클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는 가지지 않는 특별한 기대를 하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연인들은 자신이 상대방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기를 바라면서 자신의 감정과 언행이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자신의 의견에 상대방이 항상 동의할 것을 기대합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기대가 항상 합리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상대방이 내 기대에 부응해 주지 못하면 쉽게 다툼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대화(dialogue)란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상호 간의 느낌과 사상을 언어로써 주고받는 행위'를 뜻합니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하면서 동시에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해주고 예절을 갖추어 의사소통 하는 것입니다. 가족치료 전문가인 '사티어(Satir)'에 따르면 모든 대화의 근본 메시지는 '나를 알아주세요(Validate me)'입니다. 그만큼 말을 통해 상대방에게 나의 생각과 감정을 알리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작용한다는 의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 간에 서로 사랑하면서도 심각한 오해가 일어나고 그 악순환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이유는 상대방의 마음에 공명하고 공감을 표현하는 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연인이 서로에게 있어서 '함께 있으면 좋은 사람'이 되려면 말을 잘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말을 잘 듣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상대방의 말을 잘 듣는 것을 어렵게 하는 요인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을 때 건성으로 듣거나 경청했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로 무성의한 태도를 보이는 경우입니다.
경청(傾聽)할 때의 '경'은 기울어질 경(傾)자를 사용합니다. 그리고 청(聽)이라는 한자에는 이런 의미가 있습니다. 상대방을 왕으로 생각하여, 왕(王)이 하는 말을 귀(耳)로 듣고 거기에다가 더해서(+)눈(目)으로 듣고 또한 한 마음(一心)으로 집중해서 들어야 하는 것이 청(聽)에 대한 해석입니다.
경청이란, 눈과 귀로도 듣고 머리로도 듣고, 가슴으로도 들을 수 있어야 올바른 경청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대방과 이야기할 때 예의를 갖추어 진지하게 경청해 주는 자세를 취하는 것을 '적극적 경청'이라고 합니다. 대화할 때 상대방과 시선을 맞추고 그의 어조나 억양, 표정이나 고개 끄덕이기와 같은 비언어적 표현까지도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며 들을 때 상대방은 '지금 저 사람이 내 말에 집중해 주고 있구나. 제대로 들어 주고 있어'라는 만족감을 경험하면서 좀 더 진정성 있는 말을 하게 됩니다.
둘째, 말을 듣는 사람이 부적절한 피드백을 하는 문제도 제대로 듣기를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말을 듣는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고 반응하거나 자기에게 유리한 내용만 선택적으로 골라 듣고 반응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합니다. 예를 들어 일은 많은데 노력하는 데 비해 일이 잘 진행되지 않아 걱정이 된다고 말하는 여자 친구가 있습니다.'내가 넘 힘들다. 그러니까 내 하소연을 들어주고, 나를 이해해 주면 좋겠어'라는 마음을 전달하고 싶어 남자 친구에게 이야기합니다. 이에 남자 친구는 '아... ○○ 가 지금 많이 피곤하구나. 그럼 좀 쉬고 싶겠네'라는 생각으로 여자 친구를 배려하여 "그러니까, 피곤해서 오늘 일찍 들어가고 싶다는 거야?"라고 남자 친구가 말합니다. 남자 친구의 피드백은 문제 중심의 대화를 하는 남자들의 의사소통 특성이 반영된 듣기를 하였지만, 여자 친구의 마음을 읽어 주지는 못했습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고 듣기보다는 '내 입장에서 이해하고, 생각하기'가 더 많이 작용했기 때문에 나타난 문제입니다.
셋째, 말을 듣는 사람의 선입관이나 편견이 개입될 때도 원활한 의사소통이 어렵습니다.
듣는 사람의 과거 경험에 따라 상대방의 말을 오해하거나 왜곡해서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흔히 '지레짐작하기'가 이에 해당합니다. 예를 들어 엄격한 아버지와 형들 밑에서 자란 가족 경험으로 인해 외부의 권위자가 하는 일방적인 지시에 대해 민감한 남자가 "~씨, 이 식당은 이게 맛있어. 그러니까 이 요리 주문해, 알았지?"라고 말하는 여자 친구에게 '지금 나한테 명령하는 거야?'라면서 갑자기 화를 내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남자 친구의 가족에 대해 알지 못하는 여자 친구의 입장에서는 '도대체 왜 이래? 내가 뭘 잘못한 거야? 우리 사이에 그 정도로밖에 말 못해?'라면서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의 내 감정이나 상황에 의거해서 상대방의 마음을 주관적으로 판단할 경우 이와 같은 갈등이 생기기 쉽습니다. 이와 같은 특성을 '정보 습득 지문(media consumption fingerprint)'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손가락 지문이 모두 다른 것처럼 정보를 습득하는 방법도 사람들마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들마다 정보를 습득하는 방법이 다르다는 것은 대화를 할 때도 똑같이 적용되기 때문에 제대로 대화하기 위해서는 나와 상대방이 갖고 있는 정보 습득 지문이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함께 있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으면 어떻게 들어야 할까요?
해답은 바로 맥락적 경청입니다.
맥락적 경청은 말 자체뿐만 아니라 말하는 사람이 그 말을 어떤 맥락에서 꺼냈는지를 생각하면서 그 말의 의도와 감정, 배경까지 헤아리면서 들으려고 하는 태도입니다. 즉, 공감하면서 이해(empathic understanding)하려는 노력입니다. 하지만 공감을 상대방의 생각과 감정에 대해 내가 전면적으로 수용하고 인정한다는 의미로 오해하면 공감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심지어는 내가 상대방에게 공감하기 위해서는 내 생각과 감정은 제쳐두고 무조건적으로 상대방에게 동의하며 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공감은 상대방에 대한 동정도 아니고, 승인, 동의, 동감, 수용, 지지도 아닙니다. 공감이란 상대방의 감정과 생각을 논리적으로는 동의하지 않지만 심정적으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표명하는 것입니다. 공감하는 것은 지는 것이 아니고 도리어 얻는 것입니다.
'귀 기울여 경청하는 일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최고의 지혜(이청득심以聽得心)'이며, '대부분의 사람에게 대화는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털어놓는, 일종의 카타르시스 작업'이라고 설명한 브라이언 크레이시의 말을 생각해 보면 공감의 중요성은 더욱 더 커집니다.
자, 여러분은 사랑하는 연인의 마음을 얻고 싶으신가요? 아니면 누군가에게 늘 함께하고픈 사람이 되어 주고 싶으신가요? 정말 원한다면 머리로만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경청은 실천과 반복을 통해 얻어지는 결과물입니다.
-『더불어 사는 사회』(2010년 12월호) -
Omar / Last dance

날씨가 제법 차가워져서 불 좀 지폈습니다, 따뜻하신가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