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새로운 도청이 들어서는 지역을 거쳐서(예천 - 안동 34km)
조선통신사 걷기행사 10일째인 4월 10일, 황토찜질방 토담에서 한 방에 여러 명이 함께 자니 새벽 이른 시간부터 일어나서 짐을 챙기는 등 어수선하다.
아침 6시 반에 식당에 모이니 엔도 야스오 일본대표가 아내가 지진피해를 위로하며 가와타씨에게 보낸 편지의 시를 낭독하겠다고 말한다.가와타 씨가 일본어로 번역한 정호승 시인의 '일본이여, 울지마소서'를 울먹이며 읽고.
아내가 보낸 편지와 정호승 시인의 시를 옮겨싣는다.
안녕하십니까 김혜경입니다.
참으로 무어라 할말이 없습니다만
더 이상의 어려움이 일어나지 않기를 제가 믿는 하나님에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TV를 보면서 들으면서 가슴이 아프고
일본국민들과 2009년에 만난 여러분들이 걱정되는 마음 뿐입니다.
가와타 상 가족과 친척들에게도 어려운 일이 없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제가 하고싶은 말을 나직히 쓰신 시인의 말을 보냅니다.
3월31일에 만날수 있을지 ......
일본이여, 울지 마소서! - 정호승
일본이여, 울지 마소서
일본이여, 일어나소서
지진으로 무너진 땅에도 꽃은 피고
쓰나미로 쓰러진 해안에도 갈매기는 납니다
2011년 3월 11일 센다이 동쪽 바다
그 거대한 지진의 파도
무서운 속도로 해안을 삼키고 마을을 삼키고
자동차와 기차를 장난감처럼 삼키고 원전을 폭발시킨
내 사랑하는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운 벗들과 형제들
그 수만 명의 거룩한 목숨마저 순식간에 삼켜버린
대지진의 파도 앞에
벚꽃 피는 일본의 봄은 갑자기 사라졌지만
오, 그 검은 해일 속으로 소리 없이 도쿄의 봄은 사라졌지만
일본이여, 당신은 울지 마소서
일본이여, 당신은 일어나소서
지금 세계가 당신의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지금 인류가 당신의 눈물을 닦고 있습니다
이것은 일본의 재난이 아니라 지구의 재난
이것은 일본의 불행이 아니라 세계의 불행
지금이야말로 잃은 것보다 남은 것을 생각할 때입니다
국가의 걸림돌을 국민의 디딤돌로 삼아
진정 일본의 힘을 보여줄 때입니다
우리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이므로
두려워하지 마소서
불행하다고도 생각하지 마소서
운명을 사랑할 때 이미 불행은 사라지므로
지금 우주의 크기를 생각해보세요
우주 속에 지구는 그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요
신은 인간에게 가끔 빵 대신 돌멩이를 던지지만
신도 어떤 이의 불행 앞에서는 어안이 벙벙할 때가 있으므로
신은 다른 한쪽 문을 열어놓지 않고는 문을 닫지 않으므로
결코 희망을 버리지 마세요
일본은 외롭지 않습니다
일본의 인내심이 인류의 인내심입니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도
질서를 지키며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은 위대합니다
내려앉은 도로에서도 신호등을 따라 길을 건너는 당신은 아름답습니다
한 개의 생수를 얻기 위해 수백 미터 줄을 서는 당신도 위대합니다
당신들의 침착과 질서
당신들의 그 사랑과 배려의 마음이
분명 다시 일본을 일으켜 세울 것이므로
빌딩 위에 얹힌 여객선이 다시 푸른 바다로 떠나고
폭발된 원전이 다시 안전하게 전기를 공급하고
당신은 지하철을 타고 다시 일상을 즐기며 출근할 수 있을 것이므로
일본 열도여 울지 마소서
일본 열도여 희망의 힘으로 일어나
다시 국민의 마음과 마음을 잇고 이어
평화의 신칸센을 달리게 하소서
미역국백반으로 아침을 들고 7시 반에 군청버스로 출발장소인 예천군청으로 향하였다. 버스의 옆 자리에는 일본 도쿄에 사는 요시오 지로 씨가 앉았다. 영어를 잘하는 그는 아내와 처제를 도쿄에 초대하였다며 나도 함께 오라고 말한다. 일본의 호텔과 음식점이 너무 비싸서 부담이 많은데 자기 집의 여유 방과 부엌을 사용하면 경제적이라고. 차는 소형이지만 네 사람은 탈 수 있으니 괜찮다며. 그 배려하는 마음과 호의가 고맙다. 걷기행사의 목적인 한일간의 우정을 잇는 좋은 사례일 수도 있으리라.
정태식 이사가 준비운동을 인도하고 내가 파이팅을 외쳤다. 군청건물에 새겨진 표어를 인용하여 '새천년 희망의 땅 예천에서 전통과 권위의 고장 안동까지 힘차게 걷자'고.
8시에 예천을 출발하여 잘 가꾸어진 한천을 건너 안동,영덕으로 이어지는 도로에 접어들어 3km 쯤 걸어가니 진호국제양궁경기장 입구가 나온다. 양궁여자세계선수권자인 김진호의 이름을 딴 것이리라.
조금 더 걸어가니 큰 하천에 준설공사가 한창이다. 국가하천 내성천이라 적혀 있는데 4대강 사업의 일환일 터. 그곳에서 한적한 길로 접어들어 백골마을을 거쳐 10시 경에 고개마루에서 휴식을 취하였다. 선상규 회장은 이곳이 백아현이라는 고개인데 영남대로의 중요한 길목이라고 설명한다. 풍산에서 예천까지 소를 몰고가는데 도적의 피해를 막기위해 100명이 모여서 넘었다고.
백아현쪽에서 능선을 따라 산불이 크게 번진 흔적이 선명하게 이어진다. 10여일전 이곳에서 안동에 이르는 3000여 핵터에 산불이 번졌다고 한다. 애써 가꾼 나무들이 일거에 불타버리다니 안타까운 일, 산불예방에 더욱 힘써야 하리라.
고개를 넘어 한참을 내려가니 안동시 풍산읍이 나타난다. 읍사무소에서 잠시 휴식한 후 15분쯤 걸어서 읍의 외곽에 있는 까치식당에서 갈비탕으로 점심을 들었다.
점심 때까지 오늘 여정의 절반쯤 걸었는데 그 지점이 서울 - 부산 간의 절반이 되기도. 절반이 넘으면 반 성공이 아닌가, 여기까지 오느라 모두들 수고하였다. 남은 길도 평탄하여라
12시 50분에 식당에서 나와 안동을 향해 열심히 걸었다. 두 시간쯤 걸어 CJ제일제당 건물에서 휴식을 취하며 사과를 한 개씩 먹었다. 가나이 미키오 씨를 아는 분이 아들들과 함께 마중나와 초코파이를 하나씩 주고.
이곳에서 목적지까지는 약 7km, 시계에 접어들어 열심히 걸어서 목적지인 안동동헌 직전에 있는 안동초등학교에서 도착예정시간에 맞추느라 잠시 쉬었다. 행사를 총괄진행하는 김태영 이사가 이 학교 출신이라 모교를 찾은 감회가 깊을 터.
4시 50분에 안동동헌에 이르니 안동시청 부시장과 관계자들이 나와 일행을 따뜻하게 맞아준다. 김태홍 안동시부시장은 2년 전 군위부군수로 재임할 때 군위군을 거쳐가는 일행들을 맞은 적이 있어 더 반갑다며 안동에 머무는 동안 평안히 보내시고 부산까지의 여정이 순조롭기를 기원한다. 한일 우정 걷기가 서로 잘 되는 돈독한 지렛대가 되기를 당부하며 저녁 식사에도 참석하여 분위기를 돋우고.
오늘 걸어온 예천에서 안동 사이에 2014년까지 경상북도의 새로운 도청소재지기가 들어선다. 안동시만 해도 한때 28만여 인구였다가 지금은 17만 7천 명, 계속 줄다가 도청이 들어서기로 결정된 작년부터 약간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새 천년의 희망을 담아 웅비를 꿈꾸는 예천과 품걱높은 도시, 풍요로운 시민, 행복안동을 지향하는 두 지역을 거치며 변화와 발전의 의욕이 충만한 것을 느꼈다. 모든 지역이 특성을 살려 골고루 발전하면 좋으리라.
선상규 회장은 먼 길 무사히 온 것을 치하하며 여장을 푼 후에 교류회를 갖자고 제의하였으나 많은 이들이 피곤하다며 쉬고 싶어한다.
열흘 동안 열심히 걸어온 일행 여러분, 대단하십니다. 푹 쉬세요.
추신,
걷기행사 참여기를 메일로 받아 본 기준서 전 그리스도 대학교 총장이 다음과 같은 격려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김교수님;
대단하십니다.
하루 걷는 것도 힘들어 저녁에는 피곤하여 늘어지기 마련인데, 매일같이 글을 써서 올리니 말입니다. 덕분에 가만히 앉아서 경부 옛길의 정취를 만끽하게 되었습니다.
두견새 이야기를 듣게되니 새롭게 그 당시 세 사람의 특성을 이해하게 됩니다.
덕분에 역사 공부도 하고요.
오다 노부나까 : 울지 않는 두견새는 죽여라.
도요토미 히데요시 : 울지 않는 두견새는 울게 만들어라.
도꾸가와 이에야스 : 울지 않는 두견새는 울 때까지 기다려라.
최초의 일본 조사 시찰단원 중에 한명으로 참여하여, 최초의 일본 유학생이 되었던 유길준이
일본의 문명화를 보고서는 개화사상을 습득하기 위하여 도꾸가와 이에야스가 세운 게이오의숙에서 머물게 됩니다.
후에 미국과 유럽을 거쳐 귀국한 후 개혁세력으로 몰려 연금생활 중에 서유견문을 썼지만 조선에서는 출판할 수 없어 일본으로 건너가 도꾸가와 이에야스의 교순사 출판사에서 출판하게 되는 역사의 끈으로 연결됩니다. 그에 대하여 일본 사람으로부터 역사의 이야기를 들으셨군요.
참으로 의미있고 가치있는 장정이십니다.
무리하지 마시고 완주하세요.
사모님도 동행하고 계시지요. 안부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