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고와 아르헨티나 민속문화
로돌포 이그나시오 로드리게스
(아르헨티나 대사)
I. 탱고
1. 개괄
탱고는 라플라타강 유역의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등과 같은 나라들에서 나타나는 정통 문화 현상이다.
그 후 전 세계에 걸쳐 폭발적으로 확산되었으며, 100여 년의 전통을 자랑한다.
아르헨티나 탱고의 시초는 안달루시아 지역 탱고의 전승자인 “아바네라 꾸바나 (꾸바 아바나의 민속 무용)가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건너온 185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탱고 음악은 60년대에 강세를 보이다가 점차적으로
Milonga(밀롱가), Milongón(밀롱곤), Milonga Partida(밀롱가 빠르띠다) 등으로의 변형을 거쳐 80년대 탱고에 이르게 된다.
작가에 따라 탱고 멜로디의 근원은 안달루시아 지방의 탱고, 꾸바 댄스, 아프리카 끄리오요의 색채를 띤 밀롱가 등으로
나뉜다.
부에노스아이레스가 아르헨티나의 수도로 지정될 즈음, 탱고는 변두리 시인들의 특징적인 은어를 바탕으로 마드리드의
사르수엘라 서정시를 노래한 시골 변두리 음악과 결합되어 변두리 지역에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오르간 연주자들이 탱고를 연주하고, 서커스나 위원회 등의 광대 (payador)들이 탱고를 노래하였으며, 하층민들의 춤으로
그들만의 춤을 개발하였다.
도심에서 떨어진 고장들에서 초창기 탱고는 고유의 안무 틀을 성립하였다. 처음에는 남자들끼리 추었으며, 하층 민초들의
보편적인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초기 이민족들의 대거 유입으로 인해 형성된 중산층들은 접근할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이 육감적인 춤은 파리를 중심으로 유럽에 퍼져나갔다.
그러던 중 한 탱고 공연 (까시미로 아인과 포르투갈 처녀)을 참관한 교황 비오 9세가 “아름다운 춤의 표현”이라고
극찬함으로써 그 당시 사회의 탱고 이단시 풍조를 일축하자 탱고는 드디어 변두리로부터 중심부로 부상하게 된다.
탱고와 관련하여 거론할 수 있는 첫 번째 인물로는 “탱고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앙헬 비욜도 (Angel Villoldo)가 있다.
1890년에서 1900년 사이, 탱고는 각각 16박자씩 3절로 나뉘며, 8음절 가사에 2/4 운율의 틀 안에서 음악적으로 정리된다.
탱고는 바이올린, 피리, 기타 등과 같은 휴대용 악기로 연주를 하다가 반도네온(주: 아코디온의 일종)의 연주가 도입된다.
이는 독일이 원산지인 악기로 여닫을 때마다 다른 소리가 난다. 초반의 세 악기를 반도네온이 리드하다가 피아노에게
리더 자리를 내주며, 후반부에는 오케스트라 가수의 노래가 시작된다.
탱고의 주된 특징 세 가지 중 하나인 춤은 춤추는 각각의 커플이 느끼는 리듬의 자극과 공상의 산물인 일련의 지속적인
스텝과 동작들을 통해 표현하는 긴 “여정”이다. 탱고의 안무는 춤 출 때마다 직관적으로 결정되며, 따라서 반복이
불가능하다. 고로, 어떠한 탱고 춤도 똑같이 두 번 출 수는 없다.
1917년에 아르헨티나에서 최고로 꼽히는 탱고 음악의 거장 까를로스 가르델 (Carlos Gardel, “El Morocho de Abasto")이
등장한다. 그의 유명한 작품들로는 ”나의 슬픔 밤 (Mi Noche Triste)“,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날 (El Día Que Me Quieras)" 등이 있으며, 특히 ”El Día Que Me Quieras”는 세계 여러 가수들이 다양한 리듬으로 편곡해 불렀다.
가르델은 1935년 꼴롬비아의 메데인(Medellín)에서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으며, 그 후 신화적인 인물이 되었다.
여러 세대의 훌륭한 작사가들이 눈부신 탱고 가사를 선보였는데, 주로 인간의 절절한 사랑을 담고 있으며, 특히 연인이 이별하는 드라마틱한 순간을 노래한다.
또한 저명한 아르헨티나 작가들은 탱고 노랫말 속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정서를 나타냈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Jorge Luis Borges)는 다음과 같이 여러 편의 밀롱가 가사를 썼다. 까를로스 구아스따비노(Carlos Guastavino) 곡 “두 형제의 밀롱가(Milonga de Dos Hermanos)”, 호세 바소(José Basso) 곡 “망토의 밀롱가 (Milonga de Albornoz)”, 앙헬 바르똘리(Angel Bártoli) 곡 “이방인의 밀롱가 (Milonga del Forastero)”, 벤 몰라르(Ben Molar) 곡 “후안 무라냐의 밀롱가 (Milonga de Juan Muraña)” 등이 있다.
위대한 탱고 연주가이자 작곡가인 아스또르 삐아솔라 (Astor Piazzolla)는 보르헤스가 작사한 작품 세 편에 곡을 붙였다. “누군가 탱고를 말한다 (Alguien le Dice al Tango)",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바치는 송가 (Oda Intima a Buenos Aires)", "탱고 (El Tango)" 등이 그것이다.
에르네스또 사바또 (Ernesto Sábato) 역시 탱고 가사를 썼으며, 그 작품들은 훌리오 데 까로 (Julio de Caro) 곡 “떠나간 부에노스아이레스에게 (Al Buenos Aires que se fue)", 천재 작곡가인 아니발 뜨로일로 (Anibal Troilo) 곡 ”알레한드라 (Alejandra) (Pichuco)" 그리고 유명한 기타리스트인 에두아르도 팔루 (Eduardo Falú)의 곡에 무훈을 노래한 "후안 라바예의 죽음에 바치는 로맨스 (Romance a la Muerte de Juan Lavalle)" 등이 있다.
훌리오 꼬르따사르 (Julio Cortazar)가 작사한 작품으로는 세사르 이세야 (César Isella) 곡 “여행자들에게 전하는 소식 (Noticia para Viajeros)", 아만다 뻬레스 (Amanda Pérez Esquivel) 곡 ”도망자의 폴카 (Polca del Espiante)" 와 “모퉁이에 부는 바람 (Viento de Esquina)", 알베르또 파베로 (Alberto Favero) 곡 ”아르헨티나인이 흘리는 눈물 (Llora argentino)" 등이 있다.
오늘날, 이 역동적인 탱고는 그 주축이 되는 3요소인 음악, 춤, 노랫말을 따로 따로, 또는 한꺼번에 즐길 수 있다.
2. 탱고의 특징
탱고는 그 예술가, 그 아름다움, 그 역사적 배경이 한 축이 되어 표현되는 종합 예술로서, 삶을 살고, 느끼고, 존재와 세상에 대해 열정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방식이다. 탱고 음악은 민속 음악이라기 보다는 4/8박자 리듬에 바탕을 둔 대중 음악 장르이다. 즉흥성을 띤 기타 음악 예술과는 달리, 탱고는 미리 작곡되어 사전 동의하에 연주된다.
탱고 춤은 커플이 서로 안고 추는 춤으로, 어느 정도는 즉흥성을 띠지만 여러 시대를 거치면서 하나 또는 여러 커플이 조화를 이루어 추어왔던 안무법에 따라 기존의 정형화된 스텝을 밟으며 추는 춤이다.
탱고는 그 음악이 노래할 수 있는 시구, 가사와 만나 운율, 강약, 리듬, 멜로디, 그 정신들이 잘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노래로 승화된다. 또한 노래와 낭송, 솔로 또는 중창, 오케스트라나 합창 형식으로 노래를 부르고 연주를 할 때면, 그때마다의 연주 방식에 맞춰 다양하게 연출되는 예술 장르이다.
따라서 음악, 춤, 시적인 노랫말, 그리고 악기 연주 및 노래가 탱고를 구성하는 네 가지 예술적 요소라 하겠다.
탱고는 라플라타 강 유역 문화와 그 중요한 2대 도시인 부에노스아이레스 그리고 몬떼비데오 문화에 비춰 볼 때, 다른 문화 속의 또 하나의 문화이며, 이러한 문화는 다른 문화와 마찬가지로 삶의 방식들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렇듯 플라멩꼬에는 이에 죽고 못사는 사람들이 있고, 미국에는 블루스에 미쳐 있는 사람들이 있듯이, 우리 탱고 애호가들은 탱고에 살고, 탱고에 죽는다.
탱고는 한 형식을 통해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며, 인생에서 흔히 마주치는 주제들을 다룬다. 탱고가 극적으로 다루는 주제들은 삶 속에서 자주 보이는 다음과 같은 주제들이다.
- 미로같은 도시 속에서 겪는 힘겨운 사랑
- 마음을 지배하는 고민 또는 고독
- 망각이라는 병과, 종국에는 죽음에 이르도록 하는 무심히 흘러만 가는 세월
- 오랜 세월동안 적이면서도 위안이 되는 노스탤지어와 함께, 보상의 신조차 우리를 어떻게 할 수 없는 먼 곳에로의 추방
- 존재에 대한 이유 없는 환상으로 다가오는 행운
- 부조리와 틀에 박힌 사회
- 운명과 숙명과의 만남
- 도시 곳곳의 동네, 골목 어귀, 좋아하고 성스러운 장소, 그것들의 변해가는 모습, 그로 인한 힘겨움에 따른 우울함
대화와 독백속에서 희, 비극 요소들과의 혼돈을 야기하는 극적이고도 서정적인 면이 있다는 점으로 보아, 탱고 노랫말은 연극 공연에서도 흔히 접할 수 있는 표현들이다.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 작가 단체들이 제공한 자료들에 따르면, 탱고가 남긴 유산은 5만여 편에 이르는 작품들이다.
이러한 탱고 유산에는 그 원조 격인 라플라타강 유역 작가들의 작품뿐만 아니라 브라질,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독일, 멕시코, 캐나다, 헝가리, 터키, 폴란드, 포르투갈 작가들의 음악과 운문으로 만든 작품들도 포함되어 있다.
3. 탱고의 역사
3.1. 1880 - 1895. 초창기. 선사시대
작품들: “어릿 광대 (El Queco)", ”변두리 사람 (El Orillero)", "냄비 뚜껑을 내게 던지지 마 (No Me Tires con la Tapa de la Olla)"
3.2. 1895 - 1910. 개화기. Guardia Vieja I기
피아노를 위한 끄리오요의 탱고가 나타나며, 춤이 정립된다. 반도네온이 도입된다. 사회적으로 널리 퍼지자 초기 선구자들이 탱고를 파리로 가져가서 초창기 음반 및 작품들을 녹음한다.
이 시대의 주역들로는 뽄시오 (Ponzio), 비욜도 (Villoldo), 뻬삐따 아베야네다 (Pepita Avellaneda) 가 있다.
작품들: "엔뜨레 리오스 사람 (El Entrerriano)", “돈 후안 (Don Juan)", ”부에노스아이레스 사람 (El Porteñito)", “고민 거리 (El Choclo)"
3.3. 1910 - 1925. 형성기. Guardia Vieja II기
점차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으며 피아노를 동반한 오케스트라가 형성된다. 노래로 부르는 탱고가 대두됨에 따라 리듬에 변화가 생긴다. 탱고 6중주 대두. 노래로 부르는 탱고가 등장 인물과 줄거리의 초기 형태를 갖춤으로써 캬바레의 왕으로 변모한다. 이러한 캬바레들에서 탱고 춤의 무대 스타일이 정립되기 시작한다.
주역들: Ponzio, Villoldo, Firpo, Canaro, Contursi, Gardel
작품들: "La Cumparsita", "슬픈 나의 밤 (Mi Noche Triste)", “손에 손 잡고 (Mano a Mano)", "Milonguita", "이봐, 인디언 아가씨, 난 들었지 (Che, Papusa, Oí)", "오후의 오르간 (Organito de la Tarde)", "나비 (La Mariposa)", "낮은 불빛 아래 (A Media Luz)", "손수건 (El Pañuelo)"
3.4. 1925 - 1940. 변혁기. Guardia Nueva I기
2대의 반도네온, 2대의 바이올린, 피아노, 콘트라베이스의 6중주 오케스트라가 발전하였다. 춤곡으로 연주되었다. 악기의 구상에 중점을 두며, 피아노 2대와 바이올린 또는 “마스터 4중주” 형태로 연주하는 듣기 위한 탱고 곡들이 등장한다. 이렇게 탱고는 라디오, 무성 영화, 부에노스아이레스 악극, 그 후 유성 영화 등에서 저력을 발휘한다. 오케스트라 가수가 부각되며, 역사적인 스튜디오도 탄생한다. 탱고를 교회 음악이라 여기던 900 세대의 불평 속에서 교향악 탱고가 연주된다. 탱고를 공연한 Iris Marga, Olinda Bozán 같은 영화 배우들과 초기 탱고 가수들이 등장한다.
1930년에 탱고가 일본에 상륙하는데, Arturo Alvarez Montenegro라는 아르헨티나 외교관이, 발표된 모든 탱고 음반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도쿄로 들여가서, 탱고를 가르치고, 춤 경연 대회를 열기도 하였다.
이 시기는 가장 위대한 탱고 거장인 Carlos Gardel의 전성기이기도 하다. 이 분야에서 앞서가는 인물인 그는 맨 처음 라플라타강 유역 도시들에서 Razzano와 듀엣으로 훌륭한 공연들을 선보였다. 여러 가지 면에서 최초였던 인물이다. 영화, 음반 녹음시, 그리고 전통 오케스트라와 탱고 음악 녹음시 처음으로 기타를 사용하였다. 1935년 6월 24일 꼴롬비아의 Medellín에서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였으나, 그 후 신화적인 존재로 남아서 사람들이 “나날이 노래를 더 잘한다”고 말할 정도이다.
주역: Gardel, Francisco de Caro, Fresedo, Enrique Santos Discepolo
작품들: “버림 받은 자 (Amurado)”, "Milonguero", "교외의 창 (Ventanita de Arrabal)", "안녕, 소년들이여 (Adiós Muchachos)", “공기로 된 카네이션 (Clavel del Aire)", "고물상 (Cambalache)", ”가장 행렬을 계속하세요 (Siga el Corso)", “반도네온의 불만 (Quejas de Bandoneón)",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날 (El Día Que Me Quieras)"
3.5. 1940 - 1955. 전성기. Guardia Nueva II기 (40년, El Cuarenta)
비교전 국가들에 미친 제 2차 세계 대전의 문화적, 경제적 파급 효과, 창작인과 대중의 새 세대 도래 등으로 인해 1940년대를 즈음하여 모든 탱고 예술 분야들이 부활하기에 이른다. 전통 오케스트라에 개혁이 일고, 고급 탱고가 등장한다. 탱고가 영화에 더욱 자주 등장하고, 라디오에서 승승장구한다. 리버 플레이트 (River Plate) 등과 같이 큰 축구 클럽들은 예술인와 애호가들에게 그들의 대형 구장을 기꺼이 사교 본부로 쓰도록 개방하였다. 이로써 수천 쌍들이 부에노스아이레스 각 지역의 춤 스타일을 살려 탱고를 추었다. Gardel 사망 후에도 탱고 솔로 가수들의 성공은 계속되었다.
50년대에 들어 라디오는 TV에 밀리자, 음악 공연보다는 뉴스 전달에 역점을 두었다. 일본에서 탱고는 그 입지를 더욱 확고히 하여 탱고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시작되었으며, LP 음반의 등장으로 녹음의 질도 향상되었다.
주역: Troilo, Caló, Fresedo, Pugliese
작품: “남부인 (Uno Sur)", "Malena", ”내게 사랑에 대해 무엇을 말하려하나 (Qué Me Van a Hablar de Amor)", "마지막 오르간 (El Ultimo Organito)", "마리아 (María)"
3.6. 1955 - 1970. 현대화 시기. Vanguardia 시기
40, 50년대 탱고는 유럽에서 명성을 얻는다. 대형 오케스트라는 쇠퇴하고, 소규모 앙상블이 대두된다. 많은 캬바레들이 사라지고 부에노스아이레스 밤거리에는 “Tanguería (탱고 바)”들이 들어섰으며, 이곳에 탱고 애호가들이 모여 탱고를 듣고 노래하곤 했다. TV와 라디오에서는 비틀즈와, 아르헨티나 대중 가요 그룹인 “Club del Clan" 이 경합을 벌이고 있었다.
Astor Piazzolla 와 그의 차별화된 탱고 스타일이 급부상한다. 연로한 탱고 애호가들은 비록 Piazzolla 의 음악은 탱고가 아니라 대중 음악일 뿐이라고 말할 지라도, 그의 첫 번째 성공작인 Amelita Baltar 가 부른 “미친 사람을 위한 발라드 (Balada para un Loco)" 는 1969년 음악계를 석권하며 전 미주 지역과 유럽에서까지 인기를 얻었다.
주역: Troilo, Piazzolla, Salgán, Pugliese
작품: “마지막 취객 (La Ultima Curda)", "회전 목마 (La Calesita)", "안녕, 노니노 (Adiós Nonino)",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여름 (Verano Porteño)", "미친 사람을 위한 발라드 (Balada para un Loco)"
3.7. 1970 - 1985. 보편화. 현대
젊은이들이 사회의 중심 축으로 추대된 시기로, 탱고는 다시금 젊은 세대의 연대를 제안하고 나섰다. 승승장구하는 “탱고 바”들의 무대에서는 이러한 연령간의 결합이 두드러지고 있었다. Pugliese, Troilo, Piazzolla 등과 같은 저명 인사들과 함께 새로운 탱고 예술인들로 세대 교체가 이루어진다. 이러한 세대들은 1970년대 즈음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Susan Rinaldi, Eladia
Blázquez 와 같은 여성들이 눈부신 재능을 발휘하였다. 1973년 Piazzolla 는 이탈리아에 정착하여 국제 무대에서 활약하기 시작한다.
1972년, 탱고는 Troilo, Piazzolla 등의 콘서트를 통해 꼴론 극장에 입성하게 된다. 1985년 탱고는 Juan Carlos Copes 와 그의 작품 “아르헨티나 탱고 (Tango Argentino, Tango Ballet)"로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려졌으며, 6개월 동안 매일 밤 관중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 속에 공연을 지속하였다.
주역: Piazzolla, Salgán, Pugliese, Goyeneche
작품: “방랑의 탱고 (Aquellos Tangos Camperos)", "Libertango", "탱고의 로맨스 (Romance de Tango)"
3.8. 1985 - 2000. 지속기. 현재 그리고 미래
지속적인 명성을 얻은 많은 작가들과 좋은 작품들 중에서도 특히 음악인 Piazzolla와 가수 Roberto Goyeneche 가 이 시기에는 아르헨티나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모든 연령층의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프랑스, 독일, 핀란드, 영국 등지에서 탱고를 추지만, 그 스타일은 도식적이고 여과된 것이다. 세계에 퍼진 아르헨티나 탱고 교습법을 바탕으로 잘 정비된 젊은 예술인 학교에서 고전 탱고가 유럽의 탱고로 변모되었다. 프랑스, 독일, 스위스, 스웨덴 사람들은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중남미 탱고 예술인들과 함께 이 교습법을 전파했다.
아르헨티나에는 이러한 교습법을 유지, 확산시키기 위해 설립된 기관이 3개 있다. Avellaneda 대중 음악 학교 (Escuela de Música Popular de Avellaneda), 국립 탱고 아카데미 (Academia Nacional del Tango), 1996년부터 명칭이 “시립 탱고 센터 (Centro Municipal del Tango)"로 바뀐 탱고 대학 (Universidad del tango) 등이 그것이다.
주역: Piazzolla, Goyenechen, Salgán, Pugliese
작품: “내 과거를 종치며 (Campaneando Mi Pasado)", "탱고 만세 (Viva el Tango)"
II. 아르헨티나 민속무용
1. 개괄
이 용어는 영어 단어에서 비롯된 것으로, 서반아어로 번역하면 Folk (민중) + Lore (지혜) 의 의미이다.
현재까지 여러 세대를 거쳐 살아온 민중들의 물질적, 영적 삶 (관습, 의상, 춤, 음악, 신앙, 신화 등) 과 같은 문화적 자산을 다룬 일종의 과학이다.
“민속” 문화의 기본 특징은 그 대부분의 구성 요소들이 찬란한 중심 도시들에 근간을 둔 과거 문명, 문화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 민속적이라 불리울까?
- 집단적일 때: 왜냐하면 전통 자산에 포함됨으로서 더 이상 개인적 창조물이 아니기 때문
- 대중적일 때: 왜냐하면 대중(folk)으로 인해 서로 동일 화되기 때문
- 실제 경험에 입각할 때: 왜냐하면 문서화된 지도법이나 이론 없이 일례를 통해 실제로 전파되기 때문
- 구전될 떄: 왜냐하면 사람에게서 사람에게로, 세대에서 세대로 경험이 직접적으로 구전되기 때문
- 합리적일 때: 왜냐하면 민중이 민속적 사실을 받아들일 때면 그 집단의 삶에 별다른 작용을 하지 않는점은 배제하고 고유의 특질에 맞는 점만 받아들이기 때문
- 익명일 때: 왜냐하면 작가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은 채 시간이 흐를수록 지워지고, 단지 공동의 전유물로 여겨지기 때문
- 지역적일 때: 왜냐하면 차후에 지역 전체, 혹은 전국적으로 확산된다 할 지라도,일단은 주변의 자연 환경이 민속에 영향을 끼침으로서 고유의 지방색을 부여 하기 때문
민속은 오늘날 두 가지 형태로 분류된다.
- 보존되는 민속: 전수자나 무용 학교 없이도 민중들 사이에 여전히 행해지며 보존되는 것. 예: Gato,Chacarera, Zamba, Cueca 등
- 소멸된 민속: 자연스럽게 실행되지 않고 있는 것들로 잊혀졌다기 보다는 활용되지 않는 것. 그 전통 숭배자들이 이들을 복원하고자 노력한다.
2. 아르헨티나 민속무용
아르헨티나 춤의 안무에서는 미디어의 크나큰 영향과 더불어, 외국의 춤과 국내 춤의 접목도 엿볼 수 있다. 초창기 끄리오요들은 정복기에 스페인 사람들이 전파한 춤을 자신들의 것으로 받아들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동일화되었을 뿐 아니라 끄리오요 그들의 이상과 지방색이 담긴 단순한 무용으로 변모되었다.
Zamba는 국민성을 가장 잘 나타내는 춤으로 여겨진다. 다른 흥미로운 춤으로는 승리의 춤(Triunfo)이 있는데, 8음절 10행시 스타일의 그 음악은 스페인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라 전역으로 퍼져서 전쟁에서의 승리를 노래한다. 단순한 Chacarera 도 두드러지는데 Leopoldo Lugones 가 베토벤의 특성을 도입-모방 아님-하여 예의 강인함에서 비롯되는 강하고 역동적인 리듬을 살렸다.
활기찬 삶의 모습이 그려진 춤으로 열정과 정열이 넘치는 것은 El Gato 이다. 또한 원기 왕성한 춤으로 Malambo 가 있는데 무용수가 혼자 다른 무용수들 앞에서 결코 따라 할 수 없는 눈부신 발장단(탭댄스)을 보인다.
차별화된 의식의 춤인 La Condición 은 Manuel Belgrano 대령에 의해 역사적 전통의 표현이라 칭송 받았다. El Escondido, La Firmeza, El Cielito, El Cuando, La Huella, La Refalosa (물론 La Media Caña, El Pericón, El Carnavalito 와 같은 집단무도 있다)와 같은 춤들도 아르헨티나에 얼마나 다양한 춤들이 있는지를 입증한다.
3. 개인 무용
한 명의 남자 또는 여자가 춤을 추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종류의 개인 무용은 아르헨티나에 네 가지가 있다. “La Campana", "El Solo Inglés", "El Malambo", "El Zapateo". 이 중 ”La Campana“ 와 ”El Solo Inglés“ 는 이미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Malambo 는 위대한 아르헨티나 출정을 그린 개인 무용이다. 일반적으로 남자 한 명이 추는 “이동” 이라 불리우는 움직임의 소규모 사이클로 구성되어 있다. “순전히” 개인적인 형태라는 점이 다소 이상한 것인데, 독립의 형태가 “경쟁 속”에서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두 명의 남자들이 번갈아 가며 1대 1 경합을 벌이는 것이다. 3명 이상의 무용수가 추는 형태도 알려져 있는데, 이때는 번갈아 가며 하는 것이 아니라, 연달아서 춘다. 예전의 발장단 춤(탭댄스)은 이 종류의 변형이다.
4. 집단무
남자들끼리나 여자들끼리, 또는 남녀 섞여있지만 쌍을 이루지 않은 채 춤의 전개 동작을 진행한다. 거의 원주민들의 것으로 몇몇 집단무만이 아르헨티나에 알려져 있다. “Los Amilantes", "La Danza de las Cintas", "El Carnavalito", "La Rueda" 등.
예전의 Carnavalito 춤은 불특정 인원의 무용수들이 라인, 서클(싱글 또는 더블), 브릿지, 반원 등을 만들며 일련의 춤 동작을 전개시킨다. “La Danza de las Cintas" 춤은 기둥 끝에 묶여 있는 끈들을 각각의 무용수들이 손에 들고 춤을 추면 끈들이 기둥 상단부터 엮여져 내려오게 된다. 오늘날에도 이 춤은 여러 대륙에서 다양한 이름으로 추고 있다.
5. 2인조 무용
남성과 여성들이 파트너를 이루어 춤을 춘다. 커플 중에도 “떨어져서 추는 커플” 과 “붙어서 (손을 잡거나 안고) 추는 커플”로 나뉜다.
5.1. 떨어져서 추는 2인조 무용
대부분의 아르헨티나 전통 춤이 이에 속한다. 상호 연관된 개별 2인조 춤으로는 다른 파트너와 조화를 이루어, 라인, 라운드, 체인, 스퀘어 등을 형성하며 춤동작을 전개하는 "Carnavalito", "Moderno", "El Cielito", "El Pericón", "La Media Caña", "La Palomita" 등이 있다. 상호 개별적인 2인조 무용에서는 다른 파트너와 연관 없이 단지 시간과 공간만을 공유하며 춤을 춘다.
개별적인 2인조 무용으로 떨어져서 추는 춤 중에는 유럽인 선조들이 추던 미뉴엣과 같이 무거운 분위기의 것도 있고, 예전의 가보트 알레그로를 변형한 것처럼 활기찬 분위기의 것도 있다.
그러한 네 가지 춤으로 점잖은 분위기의 "La Condición", "El Cuando", "El Montero" 또는 페더럴 미뉴엣, 그리고 “La Sajuriana" 가 있다. 그 밖에 이 분야 춤으로는 피카레스크(Picarescas) 또는 "Apicaradas" 가 있다.
움직임은 날렵하며, 스텝은 왈츠풍이다. 춤동작은 회전, 반회전, 턴, 가로 지르기, Do-Si-Do 등의 짤막한 조합으로 이루어진다. 남자들의 발 동작과 여자들의 (어깨와 엉덩이를 흔들며 걷는) 큰 스텝이 조화를 이루어 표현을 극대화하며, 여기에 디지털 캐스터네츠와 손수건 등이 동원된다. 안무의 주제가 제한적임에도, 정형화되지 않은 응용작들이 많은 것으로 볼 때, 확실한 느낌, 즉 로맨틱한 느낌을 표현하는 무언극이다.
몇몇 춤들에서는 독특한 점이 발견된다. "El Cielito" 와 "El Pericón" 에서처럼 "Los Aires" 와 “El Gato" 에서도 파트너 교환(릴레이션)을 위해 춤동작을 멈춘다. "Los Amores", "El Ecuador", "La Huella" 에서는 무용수들이 손을 잡는 짧은 단계가 있다. "El Escondido" 에서는 무용수 중 한 명을 숨기는 척 하면 다른 한 명이 그를 찾아 나선다. ”El Sombrerito" 에서는 무용수들이 각자의 모자를 중앙으로 던지고, 이를 중심으로 춤을 춘다. “La Zamacueca", "Cueca", "Chilena" 또는 ”Zamba" (모두 같은 것) 에서는 손에 손수건을 들고 능숙하게 이것을 흔드는데, 사랑 표현의 극치이다. "La Firmeza" 에서는 가수가 회전, 옆으로 스텝, 턴 등의 구령을 외치면 무용수들이 일제히 박자 맞춰 따른다.
이와 같은 특색이 나타나지 않는 기타 피카레스크 춤들은 앞서 언급된 회전, 턴, 스텝 등과 같은 단순 동작의 조합으로 제한된다. 어떤 것들은 다음의 이름 이외에도 여러 이름을 가지고 있다. Arunga, Bailecito, Calandria, Caramba, Conejo, Correntino, Chacarera, Chirimoyero, Gato, Gauchito, Horquilla, Lorencita, Mariquita, Morote, Pajarillo, Pala-pala, Palito, Patria, Prado, Querumana, Remedio, Remesura, Resbalosa, Sereno, Trinfo, Tunante 등. 사교장이나 한 무대에 동시에 여러 커플이 있어도 각각의 커플은 그들끼리 춤을 춘다. 하지만 조를 이뤄 추는 유럽의 영향으로 어떤 피카레스크는 4인조, 즉 두 커플이 서로의 동작을 맞춰가며 춤을 춘다.
예외적으로 피카레스크에는 한 남자가 두 여자와 춤을 출 수 있는 춤이 2가지가 있다. "El Palito" 와 “La Horquilla" 가 그것이다.
5.2. 붙어서 추는 2인조 무용
지금까지는 무용수들이 서로 스치는 일 없이 떨어져서 추는 춤을 알아보았다. 이제는 남자와 여자가 함께 붙어서 추는 춤에 관해 살펴보자.
이 곳으로 유입된 유럽의 춤들과 아르헨티나 전통 춤들이 결합된 춤이다. 하지만 민속 무용으로 자리잡으면서 그 원산지명을 유지하는 춤도 있다. "Chotis", 마주르카, 폴카, 고전 왈츠 등이 그것으로, 오늘날에는 폴카를 제외하고 거의 사라졌다. 지역 이름을 담은 다른 춤들로는 위의 것들의 변형인 " La Chamarrita" 와 “El Chamamé” 가 있다.
III. 아르헨티나 민속 음악
국가는 지리상, 기후상 특성에 따라 여러 지역으로 나뉜다. 하지만 비록 각각의 지역이 독립되어있지 않음으로 이웃 지역이나 이웃 나라들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할 지라도, 문화적으로 각각 고유의 특징을 지닌 여러 지역으로 분류될 수 있다. 이렇듯 아르헨티나의 민속 지도 역시 지도상 경계가 지리상 경계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에는 흔했던 집단 문화가 현재에는 실질적으로 드물다 할 지라도, 자신의 개성을 작품에 실었던 작가들 개개인이 그 빈 자리를 채우고 있다. 하지만 지리적 위치, 사는 고장의 전통 등과 같이 불가피한 문제들은 예술 작품에 자연히 녹아 들기 때문에 이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을 간과할 수는 없다. 확실한 점은, 예술가 개개인의 사상과 감정은 그들이 받은 교육이나 학력보다는 환경에 더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1. 해안 지방
아르헨티나 북동부 해안(강) 지방으로 미시오네스, 차꼬, 포르모사, 꼬리엔떼스, 엔뜨레 리오스 주에 걸친 지역이며, 산타 페 지역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Misiones 주는 2개국과 인접해 있으며 브라질 쪽의 특성 (해안 지방 및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특징과 많은 유사성을 보이는 브라질 남부 리오그란데 쪽에서 유래)을 포함한 과라니 문화가 확산되어 있다. 이 지역은 많은 영향을 받았음이 엿보인다. 유입된 후 이 지역에 맞게 변형되어 가장 대중적인 리듬으로 탈바꿈한 Schotis를 이곳에 들여온 유럽 이민족. 대중들의 선호도 면에서 두 번째를 점하는 춤인 Galopa를 도입한 파라과이와 같이 이웃 나라들로부터 유래된 요소들로 인해 완성도를 높인 점 등이 그 예이다.
Formosa 와 Chaco, 특히 Corrientes 지역에서는 언어면에서 과라니 문화의 영향이 두드러진다. 이곳에서는 Chamamé 가 전역에 확산되었으며, Rasguido Doble 와 Valseado 도 눈에 띤다. Entre R os 에서는 인접국인 우루과이의 전철을 모방한 Chamarrita 가 널리 퍼졌다. 또한 Linares Cardozo 와 같은 연구가들이 Tanguito Monteliero, Chacarera Estirada, Milonga 와 같이 잊혀져간 전통 음악을 엔뜨레 리오스 지역의 특징에 맞게 편곡하여 주목을 끌었다.
이러한 변형 음악, 특히 Chamamé 는 Santa Fé 지역에도 널리 확산되어 수많은 애호가들이 있는 산띠아고 델 에스떼로 지역까지 그 여파가 미쳤다. 이 음악들은 선율이 아름답고 리드미컬하며, 강약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전반적으로 그 가사는 애절하고 서경적이며 어떤 것은 증언 형식을 띠고 있다.
최근에는 4명 또는 5명이 앙상블을 이뤄 현대적인 하모니를 연출하기도 하지만, 전통적인 표현 방식은 솔로나 듀엣이다. 여러 버전으로 연주되는 아코디온, 피아노, 반도네온, 기타, 그리고 종종 등장하는 인도 하프 등이 많이 연주되는 악기들이다. 이 리듬에 맞춰 쌍쌍이 어울려 춤을 춘다.
2. 중 - 북서부
중 - 북서부 지역은 지중해 지방인 Santiago del Estero에서 시작하여 꼬르도바, 라 리오하, 뚜꾸만, 살따, 후후이 지역을 포함한다. 기타나 Bombo Legüero (산띠아고 타악기의 일종) 와 같은 악기를 이용하여 Chacarera, Gato, Escondido 같은 전통 리듬들을 솔로나 듀엣, 앙상블의 형태로 연주한다.
또한 춤곡인 Remedio 와 Arunguita 가 확산되어 여러 변형 형태가 나타난다. 살라비나 지역에서는 끼츄아어가 퍼져 있으므로 음악에서도 2개국어가 사용된다. 바이올린과 비달라 (Vidala: 향수 어린 단가)를 연주하며, 노래는 주로 듀엣곡이다. 특정한 안무는 없다.
꼬르도바 지역 남부는 꾸야나 음악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뚤룸바 지역은 Chacarera 가 특징이다. 다른 지역에서는 Zamba, 꼬르도바 Jota, 꼬르도바 Bailecito, Gato 가 두드러진다.
리오하에서는 Chaya 와 리오하 Vidalita가, 뚜꾸만에서는 Zamba 가 확산되었으며, 나라 전역으로 널리 퍼져서 그 춤은 국민적 댄스로 각광받았다.
살따 지역은 Zamba 의 진원지이지만 대위법에 맞춘 듀엣곡인 Baguala 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후후이 지역에서는 La Puna 가 볼리비아 고원 지대의 음악과 매우 유사한 음악적 흐름을 형성하였다.
이 지역에서 또한 두드러지는 것은 Huayno, Cueca, Yaraví, Triste, Bailecito, Carnavalito 등이다. 이 작품들은 모두 솔로나 듀엣, 앙상블로 연주된다. 기타와 Bombo (북), Caja (북), Aerófono (공중 청음기), Quena (피리), Pincullo (피리), Anata, Erke 등과 같은 민속 악기를 사용한다. 춤은 쌍이 떨어져서 추는 형식이다.
3. 꾸야나
꾸요 지방은 산후안, 멘도사, 산 루이스 등지를 일컬으며, 그 영향은 꼬르도바 남부, 까따마르까, 라 리오하, 라 팜파 북부까지 미쳤다. 칠레와는 음악적으로 교통하며, 널리 퍼진 노래로는 La Tonada 와 El Gato (이 지역에서는 2번 회전하는 춤), La Ceca (북부 지역과는 다른 형태), 왈츠 등이 있다. 이 작품들은 모두 춤곡으로, 유일하게 특정 안무가 없는 서정 장르인 Tonada를 제외하고는 쌍쌍이 떨어져서 춘다. 보통 듀엣곡이며, 기본 악기는 기타이다. 꾸요 지방 사람들은 기타로 훌륭한 연주를 한다.
또한 기타의 변형에 줄이 더 많은 Requinto Cuyano (꾸요 지방 기타의 일종) 라는 악기가 널리 확산되었다. 솔로 연주가 두드러지며, 멜로디에 동반된 가사의 주제는 역사적 사실이나 종교적인 면도 있지만, 항상 사랑이다.
4. 남부 또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지역
“남부 또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지역은 부에노스아이레스 주 전역과 라 팜파, 산타 페, 엔뜨레 리오스 남부를 포함한 지역이다. 노래는 내성적이며 근엄하다. 가수는 주로 솔로이며 기타만을 동반한다. 가사는 사랑이나 피카레스크적인 주제도 다루긴 하지만, 사회, 도시 문제를 주로 성토한다. 리듬에는 Milonga, Huella, Cifra, Estilo 등이 주로 사용되었다.
이 지역에서는 즉흥적인 즉석 노래들이 불려졌는데, 주로 광대 (payador) 들이 솔로나, 대위법에 맞추는 파트너와 함께 불렀으며, 즉석 노래 리듬에는 Milonga, Cifra, Trinfo, 왈츠까지 사용되었다. 이 지역의 특색있는 인물로는 끄리오요 낭송자가 있는데, 실생활을 묘사하는 끄리오요 시들을 통해 사회 문제를 표현하곤 했다. 이 모든 것이 우루과이에서도 함께 확산된 “라플라타강 유역의 민속” 에 속하는 것들이다. 또한 이 지역의 춤 종류는 매우 다양하며, 전통 춤까지 하면 100가지가 넘는다. 대부분이 쌍쌍이 떨어져서 춘다.
최근 들어 새로 등장한 민속 예술가들은 변형 피리 (Flauta Traversa: 옆으로 부는 것), 색소폰, 건전지를 이용한 오르간, 건반과 같은 최신 악기를 도입하였다. 이러한 새로운 면은 변화를 거부하는 수구파들을 제외하고는 점차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추세이다.
5. 파타고니아 지역
파타고니아 지역은 아르헨티나 남단 꼴로라도 강 유역부터 네우껜, 리오 네그로, 츄붓, 산따 끄루스, 띠에라 델 푸에고 지역을 아우르는 곳이다.
이 지역의 노래는 사람들이 살았거나, 살고 있는 시골 마을들에서 불려졌다. 이 사실은 최근의 연구, 조사로 알려지게 된 성과다. Loncomeo, Cordillerana, Chorrillero, Kaani 등이 두드러진다. 솔로나 듀엣, 앙상블로 연주되며, 특정한 안무는 없다. 기타 이외에도 막대기 (북채)로 치는 원추형 북의 일종인 타악기 Kultr n (원주민들의 악기)을 이용했다.
첫댓글 아 머리아포~ 내용이 길면 글자체와 글자크기를 수정해주는 센스가 게시판 생활8년동안..아직도 습득못한것인가!!!!!!!!
매너님, 이거 꼭 읽기숙제 같아요~^^
이 역사는 정말 수차례 도전했지만 읽고나서 뒤돌아서면 포맷되는군요 이번에도 찬찬히 잘 읽어보았지만.. ㅋㅋ 역사에 대해 묻는자 그 죄를 엄히 물으리라~~
기..... 길다!!!!!
왠일로 진진한 글 올렸나했어 길다
일본의 탱고음악에 대한 역사는 춤에 비하면 2배가까이 긴 50년이 넘습니다. LP레코드의 경우에도 아직도 많은 중고 판매점에서 쉽게 만날수 있다고 하네요. 심지어 판권이 일본 회사에 있는 앨범도 있을 정도입니다. 현재 스이요우카이에서 탱고음악 듣기 동호회가 활동중입니다.
ㅋㅋ 그냥 읽으삼 .. 아르헨티나 대사가 쓴거니 ... 좀 논문적일수도 있지만.. 아무레도 기타 다른 글 보다는 정확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