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나는 뛰고 있었다. 주위엔 함께 뛰는 발자국 소리들이 요란하였다. 어디선가 펑펑 축포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들은 마치 군무를 추는 것처럼 함께 뛰었다. 다리들이 얽히고 풀렸다 다시 얽혔다. 몸들이 부딪히고 심장들이 격렬히 뛰는 소리가 들렸다. 최루탄의 연기가 얼굴을 뒤덮었다. 하얗게 분말을 뒤집어 쓴 어떤 여학생이 미친 듯이 탭댄스를 추었다. 햇빛이 노랗게 보이다가 이내 캄캄해졌다. 얼굴이 수천 개의 광선총을 맞은 것처럼 따가웠다. 나는 골목길에서 전신주를 붙들고 눈물과 콧물을 흘리며 꺽꺽대며 웃었다. 어디선가 구호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눈을 감은 채 그 구호를 따라 외쳤다. 그리고 다시 큰길로 뛰어나갔다. 주적主敵이 분명하던 시절이었다. 나는 미친 듯이 앞으로 내달렸다. 사방에서 방망이로 내리치는 소리가 들렸으나 어쩌면 내달리는 그 자체가 기쁨이었고 환희였다. 그 날은 구겨진 내 젊은 날의 유일한 축제였다. 그 후 어느 날 바다 위에서 배가 한 척 침몰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기울어진 배 바닥에서 학생들이 미끄럼을 탔다고 한다. 사백여 명의 사람들이 수장당했다. 즐거운 수학여행 길이었다. 어느 날 골목길로 젊은이들이 몰려들었다. 일상을 벗어나 탈을 쓰고 서로를 감출 수 있는 날이었다. 사소한 일탈이 허용되는 가면무도회의 날이었다. 그 골목길에서 백 오십여 명의 젊은이들이 압사당했다. 춤과 음악은 없었고 비명소리만 난무했다. 이보다 더 무서운 할로윈 데이는 없었다. 이것이 우리의 축제다. 축제다운 축제라고는 없는 우리나라의 축제다. 증오와 멸시만 만연해 있는 이 땅에서 벌어진 어둠의 축제다. 진정한 축제를 찾는 젊은이들의 원혼이 떠돌고 있는 저주의 축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