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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07. 02(토) • 날씨 : 흐리고 비 내림
오전 8시 30분, 아침 일찍부터 포레스트는 동료와의 이야기 소리로 시끌벅적합니다. 오늘은 포레스트 식구들과 강진 ‘다산초당’ 그리고 해남 ‘땅끝마을’로 독서소풍...? 정확히는 독서여행을 가는 날입니다.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정민)’에서는 여행을 “나 자신을 완전히 버리고 나를 다시 새롭게 찾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님의 삶과 교육을 배우러 갑니다. 오늘 독서소풍은 김성주 의원님, 이성민 선생님, 박승용 선생님, 채선영 선생님, 김현화 선생님, 최광성 선생님, 최규호 선생님, 정호영 관장님, 유종민 총 9명이 함께 합니다.
오전 8시 30분~9시 15분까지는 독서여행 준비를 하였습니다. 최규호 선생님과 채선영 선생님께서 계란, 사탕, 음료, 과일, 과자 등의 간식을 준비해주셨습니다. 정호영 관장님께서 미리 준비한 ‘다산복지학(한문고전의 복지보감)’과 볼펜을 나눠주셨습니다. 독서여행 참여자가 모두 모이고 9시 15분~9시 30분까지 ‘다산복지학’ 2~7p(친민지도, 방기원 치기본, 모민관조, 시중지의)까지 읽고 공부했습니다. 인상 깊게 와 닿는 문장에 밑줄 그었습니다.
明明德은 이와 같은 民의 明德을 계발한다거나 살린다는 말입니다. 民의 明德 곧 ‘사람들 사이의 관계와 인정, 그로써 돕는 행위’를 회복 개발하고 유지 생동시키며 개선 강화하는 일, 이것이 위정자의 明明德입니다.
民을 몸소 도와줌으로써 제 업적을 세우는 위정자는 何等으로 칩니다. 사회사업도 그렇습니다. 복지를 이루어 줌으로써 자기는 빛나고 대상자는 구차하게 만드는 사회사업가를 하등으로 칩니다. 사회사업은 사람들이 더불어 살게 하는 일입니다. 사람들이 친하게 하는 사업 親民事業입니다. 요컨대 사회사업의 道는 親民之導입니다.
당사자와 지역사회가 至善에 머물게 함이 사회사업의 止於至善이거니와 그 실제는 지극히 단순하니 곧 한결같이 당사자와 지역사회에 인사하고 부탁하고 감사하는 겁니다.
당사자의 주체인식과 역량, 사회성과 관계망, 지역사회의 이웃 관계와 인정의 소통, 이것을 회복•개발, 개선•강화해야 합니다. 이것이 문제의 근원을 막는 방책입니다.
이웃과 인정은 수재를 막거나 다스리는 제방과 같습니다. 이웃과 인정을 지키고 살리는 일은 이와 같이 防其源 治其本! 문제의 근원을 막는 일이요 복지의 바탕을 살리는 일이니, 곧 사회사업의 兩利之術입니다.
걸언은 경로행사를 할 때 노인을 상석에 모셔서 여쭙고 의논하고 부탁함이거나와, 이는 평소 그렇게 여쭙고 의논하고 부탁하던禮의 연장일 겁니다. ‘어른다움’을 세워드리려는 뜻일 겁니다.
自分은 주체로서 나눈다는 말입니다. 복지사업의 후원자 봉사자가 아니라 지역사회 사람살이 주체로서 돕는다는 뜻입니다. 저마다 제 마당 제 삶터에서 자기 인간관계와 일상생활로 돕는다는 말입니다.
지역사회에 묻고 의논하고 부탁하여 지역사회가 돕게 해야 합니다. 지금은 물질의 흉년이 아니니 마땅히 이렇게 해야 합니다. 인정의 흉년이라면 더욱 인정에 의지해야 합니다. 그래야 인정이 살고, 인정이 살아 있는 사회라야 약자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릇 어떤 사업이나 방법이든 時中之義 좋고 나쁨에 때가 있는 법, 그러므로 때를 살펴서(상황과 사안과 사람을 헤아려) 그 때에 마땅한 바를 찾고 따르고 지킬 일입니다. 마땅함을 구하고 마땅함을 따르고 마땅함을 지킬 뿐입니다. 나머지 8~20p는 독서소풍을 하면서 읽고 동료와 나누기로 하였습니다. 간단하게 독서소풍 일정 나눴습니다. 역할을 분담했으며, 팀을 나눴습니다. 총 진행은 최규호 선생님께서 맡으셨습니다. 회계는 제가(유종민) 담당했습니다. 강진팀(김성주 의원님, 김현화 선생님, 최광성 선생님, 박승용 선생님)은 강진 다산초당 일정까지만 참여합니다. 땅끝마을팀(정호영 관장님, 최규호 선생님, 채선영 선생님, 이성민 선생님, 유종민)은 해남 땅끝마을까지 모든 일정을 참여합니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강진으로 출발합니다. 다음은 독서여행 일정과 독서여행이 끝난 후, 집에 돌아와 읽은 다산복지학 8~20p(기타, 다산선생의 지식경영법)에서 저에게 인상 깊게 와 닿는 문장입니다.
• 독서여행 일정 • 08:30 ~ 09:30 : 여행 준비 및 ‘다산복지학’ 공부 09:30 ~ 12:10 : 강진 이동 12:10 ~ 13:00 : 점심식사(보은 식당) 13:00 ~ 15:30 : 윤동환 교수님 만남, 다산초당 및 백련사 관광 15:30 ~ 17:00 : 해남 땅끝마을 이동 17:00 ~ 18:00 : 해남 땅끝마을 관광 18:00 ~ 19:00 : 저녁식사(오리궁뎅이) 19:00 ~ 22:00 : 전주 이동
베풀거든 소리 내지 말고 생색내지 말고 남에게 말하지 마십시오.
절약하되 베풀지 않으면 친척이 등을 돌립니다. 즐겨 베풂이 덕을 세우는 근본입니다. 가난한 벗과 곤궁한 친족을 돕되 힘을 헤아려 도우십시오. 내 창고에 여유가 있어야 남에게 베풀 수 있습니다. 공금으로써 사사로이 구제함은 예가 아닙니다. 봉급을 절약하여 고을 사람들에게 베풀고 집에서 농사지은 것을 나누어 친척을 돕는다면 원망이 없을 것입니다.
말을 많이 하지 말고 사납게 성내지 마십시오. 아랫사람을 너그럽게 다스려야 사람이 따릅니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위에 있으면서 너그럽지 않고 예를 행함에 공경하지 않으면 무엇을 보겠습니까?” 하고 또 “너그러우면 많은 사람을 얻을 것입니다.”했습니다.
가르치지 않고 혼내는 짓을 망민罔民 이라고 합니다. 가르쳐 주지도 않고 잘못했다고 책망만 해서야 되겠느냐, 먼저 잘 가르쳐야 한다, 이런 말이겠지요.
부임길에는 여러 관청을 두루 들러서 선배 수령들에게서 다스리는 일을 잘 배우고 의논해야지, 농담으로 시간을 보내서는 안 됩니다. ‣ 취업하면 그 분야 그 지역의 좋은 사회사업가들과 그 지역 주민들을 두루 찾아 뵙고 인사해야 합니다. 지역사회에 대하여, 사회사업에 대하여, 여쭙고 의논해야 합니다. 신입•전입은 “~에 근무하게 된 사회사업가 아무개입니다.” 하며 인사 다니며 여쭙고 의논하기에 좋은 구실입니다.
비록 상사의 명령이라도 공법에 어긋나거나 민생에 해롭다면 굴복하지 말고 의연히 자신을 지켜야 합니다. 강진 가는 길, 하늘이 웁니다. 장마기간이라서 비가 억수로 많이 내립니다. 내리는 비가 이 땅을 적십니다. 조용히 빗소리를 감상했습니다. 때로는 흥얼흥얼 중얼거리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읊기도 하였습니다. 졸리면 두 눈 감고 잠을 청했습니다. 정호영 관장님과 어렵지만 다산 정약용 선생님에 대해서 공부도 했습니다. 강진가는 길.. 심심하지도 따분하지도 않았습니다. 흥겹고 즐거웠습니다.
약 2시간 30분 동안 달린 끝에 강진에 도착했습니다. 최규호 선생님께서 미리 알아놓으신 보은식당에서 점심식사 했습니다. 식당 아주머니의 정성과 인심이 가득 담긴 밥상이 저희 앞에 차려져 있습니다. 영양도 보충하고 인심도 후하게 받으며 맛있게 점심식사 했습니다. 점심 식사를 마치니 비는 더욱 더 많이 내립니다. 차를 타고 10분 정도 이동해서 드디어! 다산초당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다산초당에 가기 전, 윤동환 군수님(전 강진군수)이 운영하시는 다방에서 따뜻한 차를 마시며 다산 정약용 선생님의 삶과 교육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정약용 선생님의 삶은 세 시기로 나눠집니다. 22세에 진사 시험에 급제하고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그와 고락을 함께한 시기, 39세인 1800년에 정조가 비명에 죽고 반대파가 권력을 잡자 난신적자로 몰려 18년 동안 귀양살이를 한 시기, 57세에 귀양살이에서 풀려난 뒤 고향인 경기도 양주로 돌아와 후학을 가르치며 여생을 보낸 시기로 나눌 수 있습니다.
18년이라는 시간동안 유배를 가게 되면 자신의 처지를 한탄해야 하는데 정약용 선생님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습니다. “나는 바닷가 강진 땅에 귀양을 왔다. 그래서 혼자 생각했다. 어린 나이에 배움에 뜻을 두었지만 스무 해 동안 세상길에 잠겨 선왕의 큰 도리를 다시 알지 못했더니 이제야 여가를 얻는구나. 경계하고 공경하여 부지런히 노력하는 동안 늙음이 장차 이르는 것도 알지 못했다. 이야말로 하늘이 내게 주신 복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유배생활 18년 동안 수없이 많은 책을 저술하는 등 학문에 정진하며 살았습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님의 대단함을 느낄 수 있는 부분입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님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동트기 전에 일어나라, 기록하기를 좋아하라.” ‘동트기 전에 일어나라’는 부지런해야 됨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기록하기를 좋아하라’는 성찰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이 말을 읽으며 ‘삶에서 나는 얼마나 부지런했는가?’, ‘기록하는 것을 좋아했는가?’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부끄럽습니다. 반성합니다.
그 외 여러 이야기를 해주셨지만, 기억나지 않습니다. 들은 만큼, 기억나는 만큼 온전히 잘 익히겠습니다.
우산을 쓰고 나무 사이로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다산초당에 올랐습니다. 빗소리, 물소리, 새소리, 풀냄새... 정겹습니다. 시골냄새 납니다. 약 10분 정도 오르니 다산초당이 보입니다. 다산초당을 보며 정약용 선생님의 유배 시절 흔적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숲 속에 자리 잡은 다산초당... 한 번쯤 살아보고 싶습니다.
다산초당에서의 즐거움도 잠시, 바로 다음 장소인 백련사로 이동했습니다. 백련사는 더욱 깊숙한 곳에 자리해 있습니다. 백련사의 본래 이름은 만덕산 백련사입니다. 조선후기에 만덕사로 불리우다가 현재는 백련사로 부르고 있습니다. 신라 말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고려명종(1170년)때 원묘국사 요세에 의해 중창되었다고 합니다. 고려 후기에 8국사를 배출하였고 조선 후기에는 8대사가 머물렀던 도량이며 고종 19년(1232년)에 원묘국사 3세가 이곳에서 보현도량을 개설하고 백련결사를 일으킨 유서 깊은 명찰로 알려져 있습니다. 백련사에서 정면으로 바라보면 바다가 보이며 그 풍경은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백련사에서의 일정도 마무리 했습니다. 백련사까지만 함께하는 동료들과 아쉬운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서로 악수하거나 포옹하며 서로의 갈 길을 응원해줬습니다. 땅끝마을팀에게 김현화 선생님께서 맛있는 간식 챙겨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곧이어 땅끝마을팀은 해남으로 이동했습니다. 여유를 즐기러 해남으로 향합니다. 1시간 정도 달린 끝에 한받도의 땅끝! 땅끝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앞이 확 트인 바다, 바람소리, 바다소리... 즐겁습니다. 여유롭습니다. 해남의 모든 것에 몸과 마음을 담았습니다.
채선영 선생님의 친구분께서 맛있는 저녁 대접해주셨습니다. 배불리 먹을 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하루간의 독서여행... 주룩주룩 비가 내렸지만 저희의 여정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여행 순간순간이 감사와 즐거움을 넘쳤습니다. 고맙습니다.
• 독서소풍 감사거리 • → 맛있는 간식 챙겨주신 최규호 선생님, 채선영 선생님 감사 → 운전 담당해주신 정호영 관장님 감사 → 맛있는 차와 귀한 강연 해주신 윤동환 군수님 감사 → 맛있는 음식 주신 보은식당 아주머니 감사 → 멋진 사진 찍어주신 박승용 선생님, 이성민 선생님 감사 → 맛있는 저녁 제공해주신 채선영 선생님 친구분 감사 사진은 다음 링크에서 보시기 바랍니다. https://photos.google.com/share/AF1QipP1r29uCvmr17ilF9tuw8R9wk9o8EbqWFDN9s3hm5-C-fzukIn7OAAR-vOg0mvJfQ?key=R2NiUHZVQVNnOW82cmN6eUJudGt6Sk44TEkweG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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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호영 선생님, 백련사에서의 사진을 보니 성불하신 것 같아요.
하하 ~ 다산 공부에 더 매진해야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