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도 첫산행이다. 산행지는 태백산... 첫산행이 영험한 테백산이어서 나름 시산제의 성격도 띤다. 사실 이번 산행은 기도처도 많고 기도도 많이 했다.
근 한달간 병원에 누워있다 간만의 산나들이라 마음이 들뜬다. 날씨는 쾌청하고 기온도 그리 낮지 않고
바람도 없고 눈이 지천으로 깔려 있진 않았지만 등로는 깨끗한 하얀 융단이 시종 깔려있어 등산 하기엔
최적의 날이었다.
기억이 나질 않는다. 부딪친것 조차 기억이 없다. 뇌진탕으로 인해 사고전 30분간이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눈을 뜨고 길바닥에 일어나 앉으니 사방 사람들이 둘러싸고 웅성거린다. "어..안죽었다 살아났
네,,,"
머리에서 하염없이 피는 흘러 내리고 119 구급차가 와 타라고 하지만 만사가 귀찮아 집에 가고 싶었다. 집에 간다고 우기는 나를 억지로 눞혀 차에 태운다.
죽고 사는게 찰나거늘... 神은 나의 목숨을 거두어 가진 않으셨다. "사망유예" 하지만 똑바로 살라는
일종의 경고라 생각한다. 감사 드리고 덤으로 사는 인생 보다 충실히 살아야 겠다고 다짐한다.
오른손을 쓰지 못하는 관계로 눈길 산행이 염려 되지만 산길을 나섰다. 부러진 뼈에 나사를 박아 고정을
해 통깁스는 하지 않고 반깁스지만 오른손을 움직이면 안된다. 깁스에 팔걸이를 하고 산행이라 이게 무
슨 청승인지...행여 넘어져 손을 짚거나 하면 큰일이다.
손목 관절중 주상골이라는 뼈가 있는데 뼈중에서 제일 잘 붙지 않는 곳이라고 해 걱정이 많건만.... 그러나 그나마 다행스러운건 정작 차에 부딪친 다리는 멀쩡하고 엉뚱하게 손목이 부러지다니 다리가 부
러졌다면 생각하니 끔찍하다. 택시위로 올라 탔다 길바닥으로 떨어지면서 손바닥으로 땅을 짚다 부러진
건지 아님 보니트(bonnet)에 부딪쳐 부러진건지 알수가 없다.
"선생님 산에서 로프를 잡고 오르고 할려면 얼마나 걸리나요.." "한 6개월 후에나 가능 할겁니다" 갑갑한 이야기다. 그러나 일단 뼈만 붙으면 열심이 재활운동으로 빨리 회복하는 수 밖에...
매년 보던 신년 일출도 올해는 병실에서 손가락만 빨고...남해 바다의 상주해수욕장이 눈에 밟힌다.
날씨가 너무 좋다. 차창에 펼쳐지는 산 풍경에는 눈발이 약하다. 올해는 가뭄으로 눈이 적은 탓으로 낮
은 야산은 눈이 거의 없다.
차창에 비쳐지는 산들을 유심히 살핀다. 저게 무슨 산이지? 제법 준수한데 여기가 어디쯤인가 능선의 풍
채와 봉우리의 자태가 예사롭지 않구만 ...
저기 저쪽으로 올라 저능선을 타고 넘어.. 찜해둔다. 이렇게 찜해둔 무명의 산들이 부지기수 지만 실제
답사 해보는 곳은 별루 없다. 잊어버리거나 위치파악이 불명하거나 교통의 불편함등 이런저런 이유로 실
행에 옮기기가 쉽지 않다.
상동에서 바라보는 매봉산 단풍산의 위용이 매섭다. 조만간 필히 뜯을것이다. 장산도 기다려라...
다리가 풀린 느낌이다. 역시 몸은 늘 움직여야 그 기능이 제대로 돌아가는가 보다. 나는 코스를 단축하
려고 유일사매표소에서 오른다. 거금 2000원이다.
사실 입장료도 아낄겸 금천계곡으로 오르고자 했으나 최대장님이 그쪽은 남향이라 눈이 녹았느니 태백하
면 눈이다는둥 화방재를 고집해 쓴 입맛 다시고 꼬리 말았다.
"영감탱이 자기는 무슨 비결이 있는지 입장료를 안내니깐..." 뭐 국가 유공자라나? 독립운동가의 후손인
지 아님 월남전에서 큰공을 세우신건지? 아니면 만 65세가 넘어야 하는데 그렇게 연식이 오래된것 같지
는 않고...나한테 나이를 속이신건지...
등로에 하얀 융단이 보드랍다. 그리 미끄럽지도 않고 얼어 있지도 않고 신설이라 아직 뽀송뽀송하다. 조
심스러워 천천히 오른다. 일부러 천천히 오르려니 이것 또한 편치 않다.
역시 나무의 품격은 주목이다. 격에 맞게 도도한 자태에 매료된다. 테백은 길이 편하고 된비알이 없어
오르기 편하다. 건너 함백산이 뚜렷하고 그너머 오른쪽에 매봉산의 대형 선풍기도 가까이 다가선다. 뒤
로는 소백의 줄기가 펼쳐지고 근처의 낮은 산들이 머리를 숙이고 있다.
속이 뻥 터지는 느낌이다. 그간 짓눌렸던 마음이 편해진다. 평일인데도 사람이 많아 태백의 인기를 실감
한다. 장군봉 제단에서 신고식을 하고 천제단에서 천황님께 빌고 빈다. 빌어야 할게 너무 많아 중요한
몇가지로 요약한다.
제단 앞 너른 공터는 시장바닥 처럼 붐빈다. 먹자판 찍자판이다. 문수봉 돌탑이 손에 잡힐듯 가깝게 보
인다. 문수봉 돌탑을 부여안고 빌어야 할일도 많으나 몸도 불편해 참기로 한다. 등산의 중요한 덕목중
하나가 "포기"다. 접을때는 미련없이 접어야 한다.
천제단에서 최대장님을 기다리다 먼저 내려 가기로 한다. 중국집 배달도 아니고 금방 도착하신다는 분이
... 쩝~
오름길은 그럭저럭 올라 왔으나 내림길이 고역이다. 길은 그리 미끄럽지 않지만 왼팔로 등로가의 줄을
잡고 엉금엉금 내려간다. 몸이 전체적으로 경직되고 편치 않다. 넘어지면 몸을 왼쪽으로 틀어 왼팔로 짚
어야만 한다.
단종비각에서 고개를 숙이고 단종의 원혼을 달랜다. 망경사에 이르러 요기라도 할까 했으나 귀찮아서 생
략하고 목도리를 꺼내 오른손에 칭칭 감고서 내려간다. 찬기온에 언 손가락에 위안이 된다.
계곡길로 내려서자 제당골 계곡이 시원하게 얼어있고 왼쪽 산사면은 양지 바른 급경사의 너덜겅이 다정
스럽고 포근해 보인다. 저런 거친 산사면을 마구 치고 오르고 싶지만 언감생심이다.
단군성전에 들러 예배를 드린다. "단군 할아버님 올해도 무사히 산행을 할수 있도록 굽어 살펴 주십옵소
서..." "그리고...."
일부는 얼음축제 조각 작품을 만들고 있고 다른곳은 형틀을 짜서 인공눈을 쏟아부어 집채만한 조각할 얼
음바위를 굳히고 있다.
상가에 이르자 엿장수 유랑악단이 공연을 하는데 여장남자의 언행이 아주 재미있다. 그옛날 남사당패도
이러 했을까? 세상 뭐 별거 있던가? 고상 한거나 저속 한거나 본질은 그게 그거 아니든가..
원맨쇼를 뒤로하고 주차장으로 내려가 배낭을 벗고 다시 올라와 유랑극단을 관람한다. 참으로 질긴 생명
력이다 요즘도 저런 쇼를 하다니.. 그러나 곧 멸종 되겠지 배울놈도 없고 기술전수는 안되고. 여장남자
의 애쓰는 모습이 재미있고 안스러워 엿 3통을 사서 돌아온다. "총무님 엿 먹어유~~"
좋은날이다. 마시면 안좋겠지만 다정도 병인양 하여 한꼬뿌 때려 넣는다.....졸라 취하고 싶지만 참아야
한다 그날까지.
주현미 - 사의 찬미
첫댓글 그새를 못참고 산행을 하셨군요. 못말리는 고질쟁이 산꾼..... 박향기가 그 고집을 닮으려다 부상을 입어 지금 병원신세를 지고 있네요. 누가 먼저 완치되어 산에서 날게 되려는지..... 얼마간은 저도 산행을 못할 것 같습니다. 문수봉까지 오르신걸 보면 그래도 걸을만 하였던가 봅네다. 전 18일 남덕유산 산행길에 정상은 커녕 영각사도 겨우 다녀와야했지요. 병원까지도 겨우 운전하여 다닐 정도이니 아마도 작은산님이 먼저 산행길 나서는게 아닐까 해집니다. 모쪼록 술은 자제 하시고 새해 굴러들어오는 복이나 만땅 안으시옵길 기원드립니다. 이렇게나마 만나뵙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