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 사위
- 나의 애완토끼에게 가족을 -
가인 이은미
바람이 휑하니 불어온다. 애완토끼의 털갈기가 황망히 나부낀다. 공허한 듯 토끼는 멍하니 먼 산을 바라보고 혼자 베란다에 앉아 있다. 눈빛도 쓸쓸하다. 먹이도 예전처럼 맛나게 먹지 않고…. 토끼가 독신으로 산지도 어언 2년 6개월, 짝을 지어 출산을 해야 할 때가 훨씬 지났지만, 보통 여섯 마리씩이나 낳는 새끼 토끼들을 분양하는 것도 쉽지 않아 이 토끼는 그냥 자연사할 때까지 혼자 키워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요즘, 부쩍 내 마음이 흔들린다. 나의 사랑하는 애완토끼가 우울증에 빠져있는 것 같기도 하고 슬픈 듯도 하여. 출산은 자연 순리인데 그 순리를 거스르면 일찍 죽어버릴 것 같은 불안감도 생긴다. 그래서 결단을 내렸다. 토끼 신랑을 구해 보기로…….
햇볕 좋은 봄날, 우리 아파트 옆 큰 도로변에 있는 생선 국수집을 향했다. 언젠가 나의 토끼에게 주려고 풀을 뜯어오다 그 집 뜰 한 켠에서 토끼를 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풀도 주었고, 그 풀을 그 토끼가 그렇게 맛나게 받아먹었었다. 그 토끼가 여전히 지금도 있는지 그리고 수토끼인지 알아봐야겠다! 발길이 바쁘다.
먼저 아들과 함께 점심으로 생선국수를 사먹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와 예전의 토끼장으로 가보니 아뿔사! 이게 어찌된 일인가? 토끼장에 토끼는 없고 중닭만이 몇 마리 살고 있다. 그리고 그 옆엔 골드 코카 스파니엘 개집, 말끔하게 바닥엔 볏짚까지 호사스럽게 깔려 있다. 큰 개가 팔자 좋게 드러누워 있다. ‘주인이 개는 끔찍이 귀히 여기나 보다. 그렇담 토끼는 어디 갔을까?’
주인이 양푼 하나를 들고 개집으로 다가온다. 개밥을 주려나 보다.
“사장님, 개가 아주 귀족이네요. 털도 구불구불 금빛이고요. 그런데 이제 토끼는 안 키우시나요?”
“토끼요? 토끼도 있어요, 저 뒤뜰에.”
순간 반가움과 안도의 환희가 느껴졌다. 주인은 수줍게 웃으며 해맑은 미소를 지어 보인다. 동물을 참 좋아하는 순수한 사람 같다. 나는 주의를 곧추 세우며 이어 조심스럽게 내 방문 의도를 고했다. 주인은 쾌히 나를 뒤뜰 토끼장으로 이끈다. 개를 피해 토끼장을 이곳에 옮긴 모양이었다. 벽돌 담장과 집 사이를 철망으로 막아 토끼가 뛰고 달리기엔 지난번 토끼장보다 더 좋아 보였다. 바닥엔 식당에서 나온 배추 잎들이 널 부러져 있고 찌그러진 양푼엔 인공사료가 담겨있다. 다소 너저분해 보이는 공간에서 그래도 두 마리의 토끼가 평화롭게 살고 있다. 생김새는 수수하다. 연한 갈색 털에 흙에서 자라 지저분해 보이기도 하고 덩치도 크다. 기대했던 지난번의 그 토끼도 아니고 새로운 멋진 토끼도 아니다. 마음 한구석 껄끄러움이 인다. 할 수 없다. 수토 구하기도 쉽지 않으니 이 토끼만이라도 감지덕지 생각할 수밖에.
주인은 친히 토끼장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수토 한 마리를 잡으려고 조심조심 손길을 뻗는다. 그러나 만만치 않다. 겁 많고 경계심 많은 토끼가 이리저리 날쌘 돌이로 내뺀다.
“야 임마, 좀 가만히 있어, 장가 보내 줄게.”
주인의 넉살에 피식 웃음이 나온다. 주인은 수토를 먹이로 유인하기도 하고 코너 쪽으로 몰기도 한다. 하지만 혼자선 역부족이다. 그래서 퍼뜩 내게 떠오른 순간 전략!
“아들, 너도 들어가서 사장님하고 함께 잡아 봐!”
아들은 주인이 열어주는 망 사이로 벽 턱을 넘었다. 얼마간 토끼와 실갱이를 벌이다 드디어, 토끼는 깊고도 좁은 통-쉽게 뛰어올라 도망가지 못하도록-에 담겨졌다.
“사장님, 짝짓기가 끝나면 바로 데리고 올게요. 새끼 낳으면 꼭 한 마리 갖다드리고요. 고맙 습니다!”
“ 헤헤- 예, 하룻밤 푹 함께 있게 놔두었다 내일 데려오셔도 됩니다요.”
주인이 웃으며 후하게 말씀하신다. 그 마음을 진심으로 재차 감사하며 인사를 하고 아들과 함께 조심조심 신랑 토끼를 집으로 데려 왔다.
베란다에 풀어 놓았다. 어리둥절 수토는 잠시 주변을 탐색한다. 우리 토끼와 견주어 보니 참 못생기기는 못생겼다. 눈은 뱀처럼 실눈이고 콧구멍은 왕 구멍, 입도 ‘불뚝’ 볼품사납게 앞으로 툭 튀어나와 있고, 귀도 엄청 길쭉, 앞발, 뒷발은 완전히 산적 수준이다. 몸집은 나의 애완토끼보다 두 배, 종 자체가 다르다. 그리고 위생상태, 어쩜 그리 불결한가? 시골구석에서 막 살다 온 녀석처럼 털도 부시시-매끄럽지 않고 들쭉날쭉, 꺼칠꺼칠, 군데군데 오물도 덕지덕지- 촌스럽고 깔끔치도 못해 사랑스러운 정이 물씬물씬 솟지 않는다. ‘으-솔직히 토끼 사위가 좀 거시기 맘에 안 든다!’ 나의 애완토끼는 털도 깨끗하고 인형처럼 예쁜데, 고이 기른 예쁜 딸을 산적에게 주는 것 같아 맘이 불편하다. 그러나 어쩌랴. 이미 주인에게 수토를 빌려줘 고맙다고 인사도 깍듯이 했고 새끼나면 한 마리 갖다 준다고도 했으니…….
우람한 수토는 나의 애완토끼를 발견하자 조금은 수줍은 듯 다가가 슬며시 꽁무니 냄새를 맡아본다. 찰나, 내 애완토끼는 못생긴 수토를 보고 화들짝 놀라 고고한 기색으로 순간 줄행랑을 친다. 그러다 간만에 불현듯 나타난 수토에 호기심이 이는지 은근 슬쩍 담겨온 통을 탐색해 보기도 하고 슬그머니 수토에게 다가가 코를 발씬발씬 해보기도 한다. 그러자 그때 수토가 암토의 몸을 감싼다. 부드럽다. 우리 암토가 사랑스러운가 보다. 생김새는 못생기고 촌스러워도 행동은 신사이다. 나의 암토를 향한 마음이 순진하고 순수해 보인다.
나의 애완토끼도 얌전히 있다. 그다지 수토가 싫지는 않은가 보다. 수컷의 몸동작을 받아들인다. 잠시 후, 암토에게서 수컷의 뒷걸음질이 있는가 싶더니 이제 암토가 다른 곳으로 피한다. 이런 모습을 보이면 짝짓기가 된 것이라고 알아 본 내용에는 되어 있었다. 수토는 연신 함께 놀자며 암컷을 쫄랑쫄랑 따라다닌다. 그러나 암토는 계속 피하여 도망다닌다.
이제 수토를 갖다 주어야 할까보다. 하루 정도 푹 같이 있게 두어도 된다고 주인은 인심 좋게 말했지만, 암토가 피해 다니니 오래 둘 수도 없다. 아무튼 수토가 수고한 대접은 해야겠다. 우리 토끼가 먹는 알파파를 주었다. 먹이통에 조심스럽게 다가와 맛을 보더니 그다지 많이 먹지는 않는다. 몸집은 커도 볼수록 순하디 순한 토끼다. 자세히 보니 너무 못난이어서 나름 귀여운 구석도 있다. 산에 갖다 두면 그 우람한 골격과 근육으로 온산을 누비며 신나게 내달릴 것 같다. 자유를 만끽하며.
“새끼 낳으면 널 가장 많이 닮은 토끼로 데리고 갈게.” 머리를 쓰다듬었다. 수줍은 듯 작은 눈을 더 가늘게 뜨고 납작 엎드려 큰 코를 발름거린다. 공손하다. 갖고 왔던 통에 수토를 넣어 생선국수 집으로 향했다. 짝짓기를 마쳤노라고 주인을 찾아 말하려고 하는데 바쁘게 일손을 움직이는 안주인께서 말한다. 사장님은 다른 곳에 볼일 보러 가셨다고. 그래서 토끼장에 토기를 넣어두고 가겠다 했다. 뒤뜰의 토끼장 망을 열고 조심조심 토끼를 집어넣었다.
그때, 혼자 쓸쓸히 먹이를 오물거리고 있던 다른 토끼, 세상에! 돌아온 수토를 보자마자 맹공격 신을 펼친다. 질투와 시샘의 불이 붙었는가 “우당탕탕!” 난리가 났다. 혼자 장가간 친구토가 괘씸한지, 자기가 암토여서 다른 암토를 보듬고 온 낌새가 분한지 나는 알 수 없다. 쫒고 쫒기는 살벌한 추격전, 쏜살같이 내달리고 내뺀다.
“호호 참….” 웃음이 나왔다. 어쨌든 이제 애완토끼가 새끼 가족을 가져 쓸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햇살이 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