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이 가고 초하의 6월이 오니 텃밭 일에 잠시 여유가 생긴다. 거름을 넣고 밭을 일구어 파종과 모종을 마치고 나니 먼저 심은 작물들은 힘살이 붙어 모습이 제법 어른스럽다. 고춧대는 벌써 한 자가 넘어 지지대를 세워주었고 감자는 꽃대를 올렸기에 순지르기를 해주었다. 번식력이 좋은 사철채송화를 뜯어 삥 둘러 화단가에 심었고 그래도 남은 가지들을 모아 생울타리 녹차 나무 그늘 아래 묻어 두었다. 이제 이랑에 풀들까지 잡고 나니 잘 정돈된 집안 같아 기분이 말끔하다.
6월 장마를 대비하여 이미 허리까지 차 오른 언덕의 풀들까지 예초하고 나니 작물과 과목들이 한결 도드라져 보인다. 감나무는 잎에 윤기를 흘리고 모과와 천도복숭아는 예년과 같은 잎병 없이 반듯한 모습으로 자라고 있다. 보리수는 벌써 열매가 익어 새콤한 향을 내고 자리를 옮긴 산사나무도 잎의 푸름을 더하고 있다. 한 달째 이어지는 가뭄에도 꺼덕없이 매일 대면하는 주인에게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듯 드러내놓고 있다.
내 산방에 심은 과수목들이 해마다 이렇게 잘 자라준 것만은 아니다. 매실과 살구는 열매를 맺을 무렵부터 잎주름병에 시달렸고 사과와 배나무는 초기부터 적성병에 걸려 성장이 더디었다. 진디물이나 눈에 보이는 해충들의 피해는 손으로 잡아주면 되지만 곰팡이나 균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병해는 농약 외에 달리 방법이 없기에 무농약을 고집하는 내 농사에 병약한 몇몇 과수는 결국 베어 없어지기도 했다.
마음이야 아프지만 농약 없이 열매를 달 수 없는 과목은 더 정들기 전에 서로 헤어지는 것이 마음 편할 것 같아서였다. 애초부터 간과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최신 품종은 다 좋을 것이란 내 짧은 소견이었다. 10년 전, 종묘상 팸플릿의 최신 과수들을 보고 생각 없이 사다 심은 묘목들이 내 농사법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 팸플릿에는 보다 크고 보다 달고 보다 색택이 좋다는 글들로 가득 차 있었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달고 맛있는 과실은 사람뿐만 아니라 해충과 균들도 좋아한다는 것이다.
식물학자들은 인간의 입맛에 맞는 실과의 연구에만 심혈을 기울었지 생산과정에서 찾아오는 병해에 대한 연구는 부족하였다. 그것은 농약을 연구하는 화학학자들의 몫으로 돌리고 식물의 경제적 논리에만 철저하였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식물의 당도와 농약 투입량은 비례하게 되었고 농약 없이 생산 가능한 토종의 식물들은 설 자리가 없어지게 되었다.
자연농법의 선도자 기무라 아키노리의 ‘기적의 사과’는 농약과 비료 없이 우리가 지금까지 먹어 본 적이 없는 새로운 맛의 사과를 기적적으로 생산하게 되었다. 농약 없인 생산이 불가능했던 신종 사과를 농약과 비료는 물론 퇴비까지 금하며 생산에 성공했던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 하나는 토양을 철저하게 자연 상태로 되돌려 놓은 것이고 또 하나는 사과나무를 사과를 생산하는 기계로 보지 않고 인간과 같은 생물의 한 종으로 인격을 부여하며 대화했다는 사실이다.
기무라 씨를 취재했던 기자는 그의 저서 ‘기적의 사과’에서 기무라 씨를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지금도 기무라 씨는 사과 밭에 있을 때, 사과나무에게 말을 건넨다. 취재할 때도 “아냐, 내가 아니라 사과나무가 힘든 거야”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것은 겸손이라기보다 곁에서 듣고 있는 사과나무를 격려하는 말투다.
“장하다. 장해.”
“정말 대단해.”
이상한 말처럼 들릴지 몰라도 눈을 가늘게 뜬 채 미소를 머금고 사과나무에게 말을 건네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정말 마음이 통하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바람도 없는데 가지가 흔들리며 잎이 살랑거리는 게 아닌가.
‘안 돼, 이건 위험해’하며 얼른 시선을 돌린다. 물론 그건 기분 탓이다.
다만 한 가지, 틀림없는 사실이라 생각되는 일이 있다.
그것은 그가 진심으로 사과나무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는 것이다.
자기 힘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그는 처음으로 진정한 의미에서 사과나무와 마주할 수 있었다.
기무라 씨가 사과나무에게 말을 건네는 것은 진심으로 사과나무에게 감사하기 때문이다. 상대가 듣느냐 안 듣느냐는 문제가 안 된다. 사과나무는 사과라는 과일을 생산하는 기계가 아니다. 사과나무도 이 세상에 목숨을 받아 태어난 하나의 생명이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그는 그러한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사과에게 말을 건넨다. 기무라 씨는 사람이라는 생물의 한 종으로서 사과라는 생물과 마주 섰다.
기무라 씨의 기적의 사과는 일본의 NHK 방송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려졌고 그의 농장에는 국내외의 많은 사과재배가들이 몰려들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의식 있는 몇몇 농가가 그의 재배법을 배우고 돌아왔지만 아직 기무라 씨 같은 사과를 생산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그것은 자연 농법의 생산 기술만 배우려고 노력했지 사과나무를 인간처럼 대하는 기무라 씨의 진정성은 유심히 관찰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피터 톰킨스의 '식물의 정신세계‘는 식물도 영혼을 가지고 있으며 감정을 표시하는 생물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이제 식물이 단순히 살아 숨쉴 뿐만 아니라, 상호 교감도 나눌 수 있는 존재, 즉 혼과 개성을 부여받은 창조물이라는 시인과 철학자들의 직관을 받쳐 줄 증거들을 속속 제시하고 있다. 미국의 거짓말 탐지기 검사 전문가 백스터는 범행의 현장에 있던 식물에게 거짓말 탐지기를 걸어 범인을 색출할 수 있었고 실험의 여러 경로를 통해 식물도 그의 관리인들과 서로 교감할 수 있다는 사실들을 발견했다.
미국의 화학연구원 보겔은 식물 잎사귀 2장을 뜯어다 한 장은 계속 살아 있어달라는 부탁을 매일 아침마다 했고 나머지 한 장은 그냥 내버려두는 실험을 했다. 한 달이 지났을 무렵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잎사귀는 갈색으로 변해 썩어 가고 있었는데 매일 살아 있어 달라고 관심을 기울인 잎사귀는 여전히 싱싱함을 유지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와 유사한 실험을 계속하는 동안 실험 대상 식물들은 그의 기대를 한 번도 저버리지 않았다.
이 책을 통해 나는 기무라 씨의 진정성을 확연히 이해할 수 있었다. 기적의 사과는 외부의 어떤 조건보다도 기무라 씨의 격려를 받고 힘을 얻은 사과나무 자체가 만든 작품이라고 나는 믿는다. 기무라 씨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건 그렇게 대단한 게 아니야. 무두들 열심히 노력했다고 말하지만, 실은 내가 아니야. 사과나무가 힘을 낸 거지. 이건 겸손이 아니야.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해. 주인공은 인간이 아니라 사과나무라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사과나무를 돕는 것 정도야.”
올 봄, 산방일기를 쓰기 시작하면서 나는 식물을 바라보는 눈을 바꾸기로 했다. 인간의 입장으로 본다면 식물은 벙어리이자 장님이고 귀머거리, 앉은뱅이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인간의 감정을 지각하고 인간과 교류할 수 있는 대단히 예민한 생명체임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열매는 맺으나 해마다 썩어 낙과하는 천도복숭아를 올 봄에 없애려 했으나 마음을 고쳐먹고 그에게로 다가갔다. 나는 너를 믿으니 두려워하지 말고 튼튼히 자라 달라고 내 마음을 전했다. 그래서 인지 맺은 열매가 아직은 떨어지지 않고 있다. 개수는 그리 많지 않지만 달린 대로 열매가 여물고 있다. 예년 같으면 썩고 물러져 떨어졌거나 흉측스런 모습으로 대롱거리고 있을 텐데 말이다.
2012. 6. 4
첫댓글 귀농인으로로서의 풍부한 지식과 현장에서 얻어지는 삶의 지혜가 어우러진 한 편의 수상록隨想錄을 읽는 자미慈味가 유별합니다.
시골 생활의 재미가 요즘 솔솔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보니 모든게 신기하고 새롭습니다. 마치 내가 새로운 세상에 새로 태어난 것처럼요...
그래요
초암님 정열적인 농심에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나 봅니다
여기 저기 울긋불긋 매달린 햇 과일이 담쓰럽기도 하지요
항상 즐겁고 행복한 나날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늘 건강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