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의환향(錦衣還鄕)
비단 옷 입고 고향에 돌아온다는 뜻으로, 출세하여 고향에 돌아옴을 이르는 말이다.
錦 : 비단 금(金/8)
衣 : 옷 의(衣/0)
還 : 돌아올 환(辶/13)
鄕 : 시골 향(阝/10)
(유의어)
금귀(錦歸)
금의주행(錦衣晝行)
금의행(錦衣行)
금환(錦還)
의금귀향(衣錦歸鄕)
의금지영(衣錦之榮)
(상대어)
금의야행(錦衣夜行)
'까마귀도 내 땅 까마귀라면 반갑다'라는 속담이 있다. 중국 고시에 "북에서 온 말은 북풍에도 귀 기울이고, 남에서 온 새는 남쪽 가지에 둥지를 튼다"란 것이 있다. 미물이라도 고향을 그리는 마음은 같다는 말이다.
胡馬依北風(호마의북풍)
越鳥巢南枝(월조소남지)
어릴 때 객지로 떠난 사람은 어머니 품속처럼 고향을 그린다. 출세라도 했다면 고향의 친구들이나 어른들에게 으스대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같을 것이다.
그러니 천하를 손에 쥐고도 비단 옷을 입고 고향으로 돌아가려 한 항우(項羽)의 마음이 이해되기는 한다. 진시황(秦始皇)이 죽은 후 간신 조고(趙高)의 국정 농단으로 어지러울 때였다.
항우의 숙부 항량(項梁)이 내세운 초회왕(楚懷王)은 수도권 지역인 관중(關中) 땅을 먼저 정복하는 사람에게 왕을 삼겠다고 공약했다.
군사력이 월등한 항우가 거록(巨鹿)의 싸움에 열중할 때 유방(劉邦)이 먼저 관중을 차지하고 약법삼장(約法三章)을 발표하며 민심을 수습했다.
화가 뻗친 항우가 뒤늦게 물밀듯이 압박해오자 세 불리를 느낀 유방은 장량((張良)의 건의로 후일을 기약하며 관중을 양보했다.
기고만장해진 항우는 유방과 정반대의 행동을 취했다. 3세 황제 자영(子嬰)을 죽이고 아방궁(阿房宮)에 불을 질러 석 달 동안 타는 모습을 보며 술잔을 기울였다.
이 모습을 본 범증(范增)이 즉각 말렸으나 듣지 않고 오히려 금은보화와 미녀를 거두어 고향 강동(江東)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러자 한생(韓生)이란 사람이 관중은 지세가 좋은 요충지이고 땅도 비옥하여 도읍으로 정하면 천하를 호령할 수 있다고 간했으나 항우의 귀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면서 "부귀를 이루고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은 비단 옷을 입고 밤길을 걷는 것과 같으니 누가 알아주겠는가?"며 고집 부렸다.
富貴不歸故鄕(부귀불귀고향)
如衣錦夜行(여의금야행)
誰知文者(수지문자)?
결국 해하(垓下)에서 패한 항우는 자결하고 유방이 천하를 쥐게 됐다. 사기(史記)의 항우본기(項羽本紀)나 한서(漢書)의 항적전(項籍傳)에 전한다.
---
금의환향(錦衣還鄕)
비단옷 입고 고향으로 돌아옴,
출세하여 고향을 찾는 것을 뜻한다.
錦 : 비단 금
衣 : 옷 의
還 : 돌아올 환
鄕 : 고향 향
금의(錦衣)는 화려하게 수놓은 비단 옷이라는 뜻이다. 옛날에는 왕이나 고관들이 입던 옷으로 출세의 상징이었다. 반면 평민들은 흰색의 베옷을 입었는데, 이것은 포의(布衣)라 하였다. 즉, 비단옷을 입고 고향에 돌아간다는 뜻으로, 출세하여 고향을 찾는 것을 뜻한다.
초(楚)나라와 한(漢)나라의 전쟁이 한창일 때의 이야기이다. 유방(劉邦)이 먼저 진(秦)나라의 도읍인 함양(咸陽)을 차지하자, 화가 난 항우(項羽)가 대군을 몰고 홍문(鴻門)까지 진격하였다. 이때 유방은 장량(張良)과 범증(范增)의 건의로 순순히 항우에게 함양을 양보하였다.
함양에 입성한 항우는 유방과는 대조적으로 아방궁을 불태우는가 하면 궁중의 금은보화를 마구 약탈하고 궁녀들을 겁탈했으며, 시황제(始皇帝)의 묘까지 파헤쳤다.
항우는 스스로 망쳐놓은 함양이 마음에 들지 않아 고향인 팽성(彭城)에 도읍을 정하려 하였다. 신하들은 항우가 예로부터 패왕(覇王)의 땅이었던 함양을 버리고 보잘것없는 팽성으로 도읍을 옮기겠다고 하자 모두 할 말을 잃었다.
이때 간의대부(諫議大夫) 한생(韓生)이 간언했지만 항우는 오히려 화를 내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지금 길거리에서 부귀하여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면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가는 것과 무엇이 다르리! 라는 노래가 떠돌고 있다고 하더군. 이건 바로 나를 두고 하는 말이야. 그러니 어서 길일(吉日)을 택하여 천도하도록 하라.”
그래도 한생이 간언을 그치지 않자, 항우는 그를 기름이 끓는 가마 속에 넣어 죽이고 말았다.
하지만 이 노래는 항우가 천하의 요새인 함양에 있는 한 유방이 승리할 수 없으므로 항우를 함양에서 내쫓기 위해 장량이 퍼뜨린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함양을 싫어했던 항우는 그 노래가 하늘의 뜻이라고 판단하여 마침내 팽성으로 천도하게 되었다.
결국 항우는 함양을 차지한 유방에게 해하(垓下)에서 크게 패함으로써 천하를 넘겨주고 만다. 금의환향(錦衣還鄕)으로 자신의 공덕을 고향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기는 하였지만 천하를 잃고 만 셈이다.
양서(梁書)에 있는 이야기이다.
양(梁)나라 남양(南陽) 출신인 유지린(劉之潾)이 남군태수(南軍太守)로 승진했다.
이를 축하하는 자리에서 무제(武帝)가 말했다. “그대의 모친은 나이가 지긋하고 덕망이 매우 높으신 분이다. 그대에게 비단옷을 입고 고향에 가서 부모님께 효도할 기회를 주겠다.”
당시 비단옷은 귀해서 높은 벼슬아치만 입고 평범한 사람은 포의(布衣)를 입었다. 자식이 크게 출세해 고향에 당당히 나타나면 그 부모는 얼마나 기쁠까. 무제는 지린의 모친을 해 특별히 비단옷과 휴가를 줬다.
[참고]
백의가 일반 평민을 뜻한다면 비단옷을 뜻하는 금의(錦衣)는 높고 귀한 신분을 나타낸다. 금(錦)은 음을 표시하는 금(金)과 뜻이 담긴 비단 백(帛)을 합친 글자이다. 비단옷은 값이 비싸 아무나 입을 수 있는 옷이 아니어서 부귀영화(富貴榮華)를 상징하였다.
고생 끝에 성공한 사람이 값 비싼 비단옷을 입고 보란 듯이 고향에 돌아오는 것을 두고 금의환향(錦衣還鄕)이라고 한다.
금의야행(錦衣夜行)이라는 말도 있다. 비단옷 입고 밤길을 간다는 뜻이다. 밤길에 비단옷을 입고 간댔자 아무도 봐 주는 사람이 없으니, 애써 놓고 아무 보람이 없을 때 놀려 주려고 하는 말이다.
금의상경(錦衣尙褧)이라는 말도 있다. 경(褧)은 잘 쓰지 않는 어려운 글자인데, 경의(褧衣)는 속에 안감을 대지 않은 홑옷을 말한다.
저고리 위에 덧입으면 속이 은은히 비친다. 비단옷이 너무 화려해서 비단옷을 입을 때는 그 위에 경의(褧衣)를 걸쳐 입어 지나치게 화려한 느낌이 들지 않도록 하였다. 선비가 내면에 높은 학식과 덕망을 갖추었더라도 남 앞에서 가볍게 이를 뽐내거나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속뜻이 담겨 있다.
한자에서는 좋고 아름담고 화려한 것 앞에 비단 금(錦)자를 붙이는 경우가 많다. 금심(錦心)은 글에 담긴 우아하고 아름다운 생각을 말하고, 금자(錦字)는 화려한 문장을 좋게 말한 것이다.
금의옥식(錦衣玉食)은 부유한 생활을 형용하는 말이다.
금상첨화(錦上添花)는 비단 위에 꽃을 첨가(添加)한다는 말이다. 비단만 해도 화려하고 아름다운데, 거기에 꽃을 수놓아 얹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지 않겠는가.
흔히 우리 나라를 삼천리 금수강산(錦繡江山)이라고 하는데, 금수(錦繡)는 비단 위에 온갖 화려한 무늬를 수놓았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