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운동부족에 시달리는 나는 시간만 났다하면 망설임 없이 부평공원으로 발길을 돌린다.어떤 때는 밤 11시에 집을 나서는 적도 있다.
위험하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빙그레 미소를 짓는 것으로 대답한다. 수많은 사람들의 휴식처가 된 부평공원에서 아직까지는 어떠한 위험요소도 발견하지 못했다. 열심히 운동을 한답시고 비싼 돈 내고 휘트니스 센터에 등록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열흘도 못 되어 그만 두고 말았다. 실내에 갇혀 걷고 달리는 게 답답해서였다.
부평공원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있다. 어렸을 적 밤동산에서 내려다보곤 했던 커다란 나무들을 찾아보는 것이다. 부평공원이 만들어질 때 나는 그 나무들을 가장 걱정했었다. 나무들을 모조리 베어버리면 어쩌나. 그 옛날 나무들을 업신여기지 않고 남겨둔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얘, 네가 지금까지 살아있어서 너무나 좋아. 네가 없어졌다면 내 어린 시절도 몽땅 사라졌을 텐데."
학교에서 미술대회가 열릴 때마다 나는 밤동산에 앉아 부대 안에 말없이 서 있던 이 나무들을 그리곤 했었다.
나의 산책코스는 이렇다. 부평역 쪽에서 시작하여 인천 쪽을 향하여 시계 반대방향으로 걷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문득 아이들의 물장구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여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지금은 복개되어 길이 되고, 각종 건물들이 들어섰지만 그곳은 맑은 냇물이 흐르는 우리들의 놀이터였다.
그때는 ‘피서’라는 말도 ‘바캉스’라는 말도 없었다.선풍기도 없었고 에어컨도 없었다.더우면 더운 대로 추우면 추운대로 살았던 것 같다.그러다 더워서 견딜 수 없을 때면 동네 아이들이 모여 길을 떠났다. 냇물을 찾아 떠나는 여행은 위험했다. 위험한 철도를 건너야 했으며, 때로 문둥이를 만날 수도 있었다.(실제로 동암역 쪽에 문둥이촌이 있었다. 어른들은 '문둥이가 병을 고치기 위해 어린아이들을 잡아먹는다'는 말을 하며 아이들이 멀리 가지 못하게 했다.) 냇물 위 까마득한 위로 철로가 지나 그 길을 건널 때면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잠깐 발을 헛디디면 냇물 아래로 풍덩 빠지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한 번도 발을 헛디뎌 떨어지는 아이들을 본 적이 없다. 그 무서움을 견디지 못하는 아이들은 냇물에 들어갈 호사를 누리지 못하였다.간신히 팬티만 걸친 채 물 속에서 물장구를 치며 놀았던 우리들. 냇물에 갈 수 있다는 건,말하자면 통과의례 같은 것이었다.
어른들과 멀리 주안 염전으로 가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짠물에 몸을 담그면 부스럼 따위가 낫는다는 이유였다. 아버지는 가끔 우리 형제들을 데리고 그곳에 갔다. 십 리 이상을 걸어 기운이 다 빠질 때쯤이면 햇빛에 반짝이는 수많은 물고기 비늘 같은 바닷물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럴 때면 힘든 것 모두 잊고 입을 헤 벌리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
한참 놀다 배고 고프면 아버지가 오이지를 바닷물에 씻어 보리밥과 함께 내놓았다. 그때 나는 소태처럼 짠 오이지가 너무너무 먹기 싫었다.
나는 까만 연기를 뿜어대며 칙칙폭폭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달리는 기차가 참 무서웠다. 냇물을 찾아가는 길에도, 주안 염전 가는 길에도 늘 기차를 조심해야 했다. 당시 철로는 단선이었다. 육교가 없었고, 육교가 있는 그 자리쯤 건널목이 있었다. 사람들이 건널목까지 가기가 귀찮아 서 있는 기차 밑을 엎드려 기어가듯 건너려다 기차에 치어 죽었다는 소리를 참 많이도 들었다.
'기차만 안 오면 자주자주 냇물에 놀러갈 수 있을 텐데.'
어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냇물에서 신나게 놀다, 머리 위로 기차가 지나가면 창피한 줄도 모르고 벌떡 일어나 외치곤 했다. 팬티만 입은 모습을 보이기 싫어 물속에서 엉거주춤 앉아 있었으면서 말이다.
"야! 기차 지나간다!"
그러면 기차는 대답이라도 하는 듯 "삑삑" 요란하게 경적을 울렸다.
부평공동묘지에서 작은 물방울로 시작하여 흘러흘러 우리의 어린 시절을 즐겁게 해주었던 그 냇물이 바로 굴포천이라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 그런데 그 굴포천이 깨끗해진다는 소식이 들려오니, 덩더쿵 춤이라도 추고 싶을 만큼 기쁘다.
첫댓글 생각해 보면 그때 어린 시절 먹었던 음식들이 모두 웰빙음식이었습니다. 동네 골목에 내다놓고 연탄화덕에 굽던 꽁치 냄새가 그립네요..오늘같이 우중충한 날에는...
와 주안에 염전이 있었어요? 그렇다면 그쪽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는 건데... 인천에서 살지 않았던 저로서는 참 신기한 얘기예요. 동춘동의 경우엔 바로 앞에 바다가 있으니 조금은 이해가 되었는데 주안은 바다와는 거리감이 꽤 많이 느껴지네요.
동춘동은 바다를 메꾼 땅이에요.
메인 그림 바람숲님이 그리신 거예요?
예...10분 만에 그린 그림.....가운데 있는 여자아이가 바로 저예요...단발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