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45:1~17)
솔직히 요즈음 묵상을 하긴 해도
집중력을 높이기 어렵다.
그래서 묵상 후 글을 적는 것을 생략하거나
간략히 적게 되는 것 같다.
어제 세상의 어느 곳에서 숨어 있다가
나왔는지 쌩쌩한 젊은이들이 차고도 넘치는
대학 캠퍼스를 보고는 놀랐다.
50년이 넘는 인생을 살았는데도 그런 광경은
처음 겪는 것이라 매우 특별했다.
34년을 제한된 심리적, 물리적 공간에서
생활하다보니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이 많음을
새삼 느꼈다.
오늘 말씀에도 사실 집중하지 못했다.
새로운 일을 준비하고 신경 쓰느라
다른 곳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묵상 기록은 생략하려 했는데
묵상에세이의 글이 몇 마디 남기게 한다.
'위대한 지도자가 되는 길은 "힘"이 아니라
"온유"의 길이다.'
사실 한참 동안을, 그리고 지금도 어쩌면
나는 솔직히 '온유하라'는 말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철저하게 악한 이들에게 유린 당하는 많은 이들을 두고
크리스천들은 '온유'라는 명분을 앞에 세우고 침묵했다.
그리고 오히려 철저하게 악한 이들을 옹호하다 못해
피해자들을 악마화했다.
물론 그런 자들이 외치는 온유는 온유가 아니다.
온유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 양심과 선함이
마음 속에 더 가득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영혼들을 살리기 위해,
또는 하나님의 역사를 인정하기에
온유함을 발휘하는 것이다.
나는 온유함이라는 단어가 오랜동안 참 얄밉게 여겨졌다.
하지만 온유라는 단어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다.
온유라는 단어를 오용하고, 악의를 위해 이용하는 이에게
잘못이 있다.
온유는 사랑을 더욱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모습이다.
에너지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에너지를 더욱 적극적으로 발휘하는 행위이다.
때려 죽이고 싶은데도 묵묵히 참고
영혼을 사랑하고, 참고, 기다려 주려는 데 필요한
에너지는 발산하는 에너지보다 훨씬 클 것이다.
온유한 것은 악을 용서하는 것이 아니다.
온유하다면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정확하고 세세한 표현과 가르침에 더욱 관심을 갖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