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사 서울 교당에서 이 완철(李完喆)에게 짐을 지고 역(驛)까지 가자 하시거늘, 완철이 사뢰기를 [제가 지금 교당 수축 관계로 십여 명의 인부를 부리고 있을 뿐더러 교무(敎務)의 위신상으로도 난처하나이다.]하니, 대종사 그 짐을 오 창건에게 지우시고 다녀오신 후 말씀하시기를 [완철은 아까 처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완철이 사뢰기를 [크게 잘못한 일은 아닌가 하나이다.]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그대의 이유에도 일리는 있으나 짐 하나 지기를 부끄러이 여겨 스승의 명을 어기고도 그 일을 크게 생각하지 아니한다면 이것이 어찌 전무출신의 본분이라 할 것이며, 또한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어찌 만생을 널리 건지는 큰 일꾼 되기를 기약하리요.]하시고 [그러한 정신을 놓지 못하겠거든 차라리 사가로 돌아가라.]하시며 엄중히 경책하시는지라, 완철이 잘못을 사죄하고 그 후로는 위신을 생각하여 허식하는 일이 없는 공부를 계속하니라.
☆ 어구 해석
이 완철(李完喆) : 본명은 형중(亨中). 법호는 응산(應山). 법훈은 종사. 서울ㆍ영산교당 교무, 중앙총부 교감, 교정원장, 감찰원장, 수위단원을 역임했다. 이완철은 1897년 4월 28일 전남 영광군 묘량면 신천리 신흥마을에서 부친 경현(景玄)과 모친 김남일화(金南日華)의 5남 2녀 중 3남으로 출생했다. 이완철은 어려서부터 천성이 자상하고 인자해서 효도와 우애가 극진했다. 일찍부터 글 읽기를 좋아하여 경서(經書)를 읽고 탐구하는 시간이 많았다. 9세시에 한문사숙에서 8년 동안 수학했으며 총명이 출중하여 칭송을 받았다. 친형인 이동안(李東安)의 인도로 1921년(원기6) 4월(원기8년 또는 원기9년이라는 설도 있음)에 영산에서 소태산대종사를 뵈었는데, 마치 공자님을 뵈온 듯 정신이 황홀했다고 한다. 깊은 감명을 받아 소태산에게 귀의하여 제자되기를 발원했다. 가정이 어렵고 복잡했으나 1930년(원기15) 4월 전무출신을 서원하여 총부 농업부에서 농사일을 시작했다. 1932년(원기17)에는 학원교무로 봉직하여 후진들의 한문지도를 맡았으며, 1933년(원기18)부터 서울교당 교무로 12년간 재직했다.
수축 : 건물 등 헐어진 곳을 고쳐 짓는 것.
교무(敎務) : 원불교 성직자로 교화ㆍ교육ㆍ자선 등 원불교 교단의 각종 사업에 종사하는 사람을 일컫는 호칭. 전무출신(專務出身)으로서 교무자격검정에 합격하여 종법사가 수여하는 소정의 자격을 받은 자로 교역에 종사하는 사람을 말한다.
위신 : 위엄과 신의를 말한다. 위신상으로 무엇을 못 한다는 것은 체면 때문에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오 창건 : 본명은 재겸(在謙). 법호는 사산(四山). 법훈은 대봉도. 소태산대종사의 구인제자 가운데 한 사람. 교단 창업기 공심의 표준적 인물. 1887년 10월 17일 전남 영광군 백수면에서 부친 윤안(允安)과 모친 김중풍(金中風)의 3남매 중 장남으로 출생했다. 소태산이 대각 후 시행한 저축조합, 방언공사, 법인기도에 동참했으며, 소태산이 부안 변산에서 법을 제정할 때 전문으로 시봉했다. 키가 크고 기력이 장했으며, 모습이 소태산을 닮아 ‘작은 대종사’로 불렸다.
소태산을 항상 가까이서 시봉했기 때문에 교중사(敎中事) 감역하는 처사법을 배워 교중사 감역에 능했는데, 특히 지방 교당 건축 감역을 많이 했다. 서울교당ㆍ당리교당ㆍ신흥교당ㆍ초량교당의 건축과 영산원 대각전, 개성교당 보수 등 총지부를 막론하고 도처에 교당 건축의 창성한 공덕을 쌓았다. 오창건은 기개 또한 장대하여 의롭지 못한 일이나 스승에 대한 무례함을 접하면 참지 못하는 불같은 성미도 지녔다.
일제 치하에 있을 때 일경(日警)이 소태산의 함자를 함부로 부르는 것을 보고 분개하여 그를 꾸짖어 보낸 사실이 《대종경》 실시품 9장에 나온다. 오창건은 영산 서무부장, 총부 서무부장 등을 오래 맡아 초창기 어려운 교단 살림을 알뜰히 보살폈고, 전주와 원평교당 교무로 일선교화에도 참여했다. 또한 총부 예감, 감찰원장 등을 지냈다. 1953년(원기38) 1월 23일 세수 66세를 일기로 열반했다.
경책 : 잘못을 저지른 데 대하여 크게 꾸짖는 것. 원불교에서는 타인의 꾸짖음에 의한 경책을 넘어서 스스로의 경책 곧 자신경책을 확인하라고 한다.
불교 사찰에서 선 수행자의 나태해진 정신과 흐트러진 자세를 다시 고쳐 잡기 위해서 하는 행위. 수행자가 좌선을 하다 보면 자세가 흐트러질 때도 있고 졸음이 올 때도 있다. 이 때 경책을 하는 지도인이 어깨의 근육부위를 가볍게 건드려서 자세를 바로잡고 졸음을 깨도록 한다. 지적당한 수행자는 그에 대한 예를 표한다. 때로는 큰 소리 나는 죽비로 어깨를 때리기도 하는데, 이는 다른 수행자들에게도 또 하나의 경책 효과가 된다. 긴 대나무 죽비 등으로 경책을 하기 때문에 소리는 크나 그리 아프지는 않다. 일반적으로 좌선하는 수행자가 자세가 흐트러지거나 졸 때 이를 바로잡아주기 위해 죽비 또는 적당한 길이의 대나무 또는 그리 아프지 않은 나무봉을 사용한다.
허식 : 실속이 없이 겉만 꾸밈
첫댓글 감사합니다. 즐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