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주기도의 기도문 영광송
박상운 토마스 신부(전주교구 여산성지성당 주임)
동정 성모 마리아께 대한 신심 행위는 본질적으로 삼위일체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입니다. 그리스도교 전례는 그 자체가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부께 드리는 흠숭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창조되었으며, 그 창조는 당신의 영광을 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영광을 드러내고 나누시기 위해서입니다. 묵주기도의 매 단을 마칠 때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바치는 ‘영광송’은 그러한 흠숭입니다.
그리스도교 전례의 전통
‘영광’이라는 말은 인간에게 사용되는 경우에는 그 사람의 실존과 행동의 빛나고 아름다운 영예를 의미하며, 하느님께 사용되는 경우에는 하느님 존재의 찬란한 드러남을 뜻하며 하느님의 권능과 거룩하심과 연결된 하느님의 속성입니다.(한국 가톨릭 대사전, ‘영광’ 참조)
이러한 영광에 대한 찬미인 ‘영광송’은 하느님께 영광과 영예를 드리는 내용을 표현하는 경문 또는 양식문을 말합니다. 시편의 각 권이 끝나는 41편, 72편, 89편, 106편, 150편들은 ‘영광송’으로 마치는데, 유대인의 관습이 그리스도교에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교회는 처음부터 유대인들의 기도 관습을 본받아 미사 전례문 가운데에도 ‘대영광송’과 ‘마침 영광송’, ‘주님의 기도 후 영광송’ 등 주요 기도 끝에는 흔히 영광송을 외우곤 하였습니다. 그리스도교 전통적인 기도 방식이 시간전례인 성무일도와 묵주기도에도 영향을 주었고, 영광송은 전례 밖에서도 대중적인 기도 양식문의 하나로 간주되었습니다.
13세기부터 묵주기도에 영광송이 함께 바쳐지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성모송마다 영광송을 바쳤으나, 이후에 성모송 열 번마다 영광송을 하였는데, 이는 성무일도 시편을 기도할 때 영광송을 바치기 때문입니다. 묵주기도는 기도의 발전 과정에서 시편 150편처럼 성모송을 150번 반복하는 의미에서 ‘성모 시편’이라 칭하였기에, 시편의 각 권이 끝날 때마다 영광송을 바치는 것처럼 묵주기도의 매 단의 마지막 기도로 영광송을 바치는 기도 형식이 자리 잡게 됩니다. 성 비오 5세 교황님께서는 1568년 로마 성무일도를 완성하시고, 1570년 미사 경본을 정리하는 전례 개혁을 이루시는데, 이러한 전례 개혁 가운데 1569년 매 단을 ‘주님의 기도 한 번, 성모송 열 번, 영광송 한 번’으로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묵주기도의 소리기도에 대한 전통적인 형태를 결정지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묵주기도의 관상적 기념(紀念)
묵주기도에서의 영광송은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이라는 짧은 기도문으로 ‘소영광송’(小榮光頌, Gloria Patri)이라고도 합니다. 영광송을 노래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태초에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영원히 세상 끝없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묵주기도는 그리스도교의 일반적인 기도 형식과 마찬가지로 한 분이시며 삼위이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끝맺음으로 매 단을 마무리 하고 있습니다.
미사 중에 이루어지는 전례의 기념(Anamnesis)과 묵주기도의 신비 묵상을 통한 관상적 기념(Recordatio)은 모두 그리스도의 구원 사건을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영광송을 바치며 앞선 전례나 기도가 하느님께 돌리는 영광이 됩니다. 기도 전체로 보았을 때 영광송은 일종의 쉼표이며, 마무리 자리에서는 마침표 역할을 하게 됩니다.
묵주기도에 있어서 매 단마다 영광송을 바치는 것은 다음 단으로 이어지는 쉼표이면서, 매 단이 각각 묵주기도의 본기도이기에 본문의 내용을 영광송으로 끝맺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일생에 대한 ‘복음의 요약’으로서의 신비 묵상과 함께 묵주기도의 영광송은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만물이 그분에게서 나와,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나아가게’(로마 11,36 참조) 합니다.
그리스도인 관상의 목표
바오로 6세 교황님께서는 교서 ‘마리아 공경’에서 묵주기도에서의 기도 자세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기도’를 바칠 때에는 엄숙하고도 간구하는 자세를, ‘성모송’은 조용히 반복하며 찬미 가득한 감성적인 태도를, ‘영광송’을 바칠 때에는 흠숭과 신비들에 대한 묵상으로 관상의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50항)
묵주기도의 영광송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관상의 목표입니다. 하느님의 영광은 바로 살아 있는 인간이며, 인간의 생명은 하느님을 뵙는 것입니다. 곧 창조주의 궁극적인 목적은 만물의 창조주이신 성부께서 마침내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1코린 15,28)이 되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시고 동시에 우리의 행복을 돌보시는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느님께 드리는 영광은 창조된 첫 인간이 원죄를 짓기 전에 누리던 영광이며, 그리스도의 부활로 세세대대 영원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까지 이어지는 하늘나라의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묵주기도에서 관상의 정점인 영광송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기에, 공적으로 묵주기도를 바칠 때에는 다함께 노래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는 교서 ‘동정 마리아의 묵주기도’에서 영광송을 바치는 의미를 설명하십니다. “성모송에서 성모송으로 이어가며 그리스도와 성모님께 대한 사랑으로 각 신비를 생생하게 깊이 묵상하는 그만큼, 각 단에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은 형식적인 마무리가 아니라, 마치 우리 마음을 하늘 낙원으로 들어 올리고 타보르 산의 경험(루카9,33)을 다시 체현(體現)하는 것과 같습니다.”(34항)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시어 그들 앞에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심으로써,(마태 17,1) 하느님 아버지에게서 영예와 영광을 받으셨습니다.(2베드 1,17) 이는 미래 관상의 예고와도 같습니다.
성모송과 영광송
묵주기도는 신자들에게 수난의 어둠을 넘어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도록 초대합니다.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영광중에 성부 오른편에 앉으셨습니다. 하늘로 불러올리심을 받으신(몽소승천, 蒙召昇天) 성모님께서도 영광을 받으셨으며, 유일한 특권으로 죽은 이들의 부활 때에 모든 의인을 위하여 마련된 상(賞)을 앞서 누리셨던 것입니다. 놀라운 구원 경륜 전체에 대해 하느님을 찬양하는 영광송을 노래하는 것은 마땅하고 옳은 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과 죽음과 부활이 삼위일체 하느님께 영광이 되어야 합니다. 이는 최후의 심판에 관한 말씀처럼 ‘세상 창조 때부터 우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마태 25,34 참조)하고자 드리는 청원입니다.
묵주기도의 신비 묵상이 ‘고통의 신비’(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에서 ‘영광의 신비’(그리스도의 부활)로 넘어가듯이, 성모송 다음 이어지는 영광송은 일생을 충실히 주님 뜻에 따르는 이들이 누리게 될 영광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은 믿는 이들의 영광이며, 믿는 이들의 영광은 그리스도의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마리아께서는 당신의 아드님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겪음으로써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스럽게 되셨습니다. 그래서 열 번의 성모송 뒤에 이어지는 영광송은 성모님의 일생이 온전히 삼위일체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 머물러 계심을 묵상하게 합니다.
+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드리는 영광송은 모든 그리스도인 관상의 목표입니다.
+ 열 번의 성모송 뒤에 이어지는 영광송은 성모님의 일생이 온전히 삼위일체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 머물러 계심을 묵상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