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 이주송
사각의 잠 외
어느 집의 내역일까
골목 끝에 냉장고가 나와 있다
비우면 채워지는지
채우면 비워지는지
부유하던 말들이 텅 빈 사각에 압축되어 있다
목이 쉬었거나 편두통이 도졌거나
세태를 탓하기엔 축축한
밤이 깊어진다
울음도 잦아든다
울음의 색채는 암전의 방식, 보라인지 분홍인지
전봇대에 기대앉은 곰 인형을 주워올까 말까 고민한 적이 있다
다시 가보니 없었다
누군가 데려갔을 거야
아니야 쓰레기통에 버려졌을 거야
뜬금없는 목소리, 단호했다
그리움으로 건너는 길, 누군가는 그게 바라밀이라고 했다
나는 바람이냐고 몇 번이나 되물었다
금세라도 네거리로 나설 것만 같은 냉장고는 몸을 찻길 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인다
맑은 하늘이 울 것만 같다
소리에도 습성이 있는지 몰라
결국엔 모두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
엇갈린 각을 따라 미끄러지거나 떠오르거나
꿈과 잠 사이
버성긴 한밤
냉장고는 발을 꺼내 어디로 갈까
------------------------------
공터의 논법
공터에 첨부하는 방식으로 데이지꽃이 한 무더기 피어 있다 그렇다면 공터는 한 마디 바깥을 달아놓은 셈 첫 번째 손짓을 돌아 데이지 꽃다지를 지나치니 이런, 그 많은 구구는 어디로 갔는가 소낙비와 눈송이를 담론으로 삼았던 깡통차기나 고무줄놀이는 더이상 양산되지 않는다 훤칠한 건물의 모퉁이가 서성거리다 그림자를 공연히 걷어찰 때 그곳엔 망치 소리나 엇나간 못 같은 것이 어제 쪽으로 휘어 있다 한 번 호명된 공터의 소속은 재사용할 수가 없다 시시각각 변하는 잡초의 은폐를 믿고 오랜만에 찾아간다거나 근처를 불러 모으는 일은 난감하다 버려진 곳이 받아낸 풍경으로 자늑자늑해질 때 계절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공터에 활용된다 식물은 겨울 동안 스스로 질문이 되어간다
---------------------------------------------
이주송
2020년 농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평택생태시문학상, 송수권시문학상 젊은시인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식물성 피』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