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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420m에 불과한 광제산 정상 봉수대에 서면 진주 산청 하동 합천 사천(삼천포 앞바다 포함) 의령땅의 명산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지리산 천왕봉도 확인된다. 왼쪽부터 지리산 남부능선의 삼신봉 영신봉과 지리산 천왕봉, 웅석봉, 둔철봉이 시야에 들어온다. 사진 가운데 물길이 경호강이며 그 뒤가 산청 신안면, 일명 원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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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으로 가는 대전·통영고속도로와 3번 국도가 지나는 진주 명석면. 산청군과 인접한 명석면은 여느 시골과 마찬가지로 침체일로에 있었다.
변화의 바람이 일기 시작한 것은 2년 전 이곳 출신의 이춘기(50) 면장이 부임하면서부터. 그는 손수 팔을 걷어붙여 면사무소 담장을 허무는 등 주민에게 다가갔다.
신선한 변화의 결정체는 광제산 등산로 개설. 공장 하나 없는 촌구석에 한 사람의 등산객이라도 유치하기 위함이었다. 25년 경력의 산꾼인 그는 명석면을 남북으로 내달리는 무명의 광제산(420m)이 지금의 관점에서 볼 때 최적의 등산로라 확신했다. 비록 동네 뒷산 수준이지만 토종 소나무숲에 돌부리 하나 없는 푹신푹신한 등산로에다 사방팔방 거칠 것 없는 시원한 조망을 갖춘 때문이다. 여기에 산청의 집현산이 바로 이웃해 있어 산행거리가 2% 부족한 건각들을 충족시켜주고 있다.
어린시절 나무하러 다닌 산이었기에 사전답사도 필요 없었다. 최남단 면사무소에서 최북단 집현산에 이르기까지 20㎞나 되는 산길은 아직 그의 머리 속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물론 반대의견도 있었지만 휴일도 반납한 채 등산로 정비에 몸소 나서자 차츰 주변의 도움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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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제산 봉수대와 느티나무. 그 뒤가 집현산이다. 산행 중엔 이 느티나무로 광제산 정상을 식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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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꾼과 짐승들이 다니던 옛길을 최대한 활용했다. 등로를 막고 있는 최소한의 소나무만 잘라냈다. 전문 산꾼답게 종주 및 원점회귀 코스도 만들었고 체력에 맞는 하산로도 곳곳에 열었다. 가이드 산악회도 고려, 고개에서 대형버스가 회차할 수 있는 공간도 조성했다. 종주코스의 들머리는 능선대로라면 인근 아파트였지만 민원을 고려해 면사무소로 산길을 돌렸다.
최북단인 집현산 상봉은 이웃한 산청 생비량면 소속. 군경계에서 불과 500m 거리다. 이 면장은 생비량면 면장에게 집현산 상봉에 정상석을 세워줄 것을 요청하며 마지막 500m 구간도 정비했다.
2004년 10월부터 시작한 등산로 개설 작업은 3단계를 거쳐 지난해 4월 완성됐다. 올 1월에는 또 하나의 등산로가 생겼다. 주등산로에서 3㎞ 떨어진 3번 국도 변에 물좋은 찜질방이 생기자 이 면장은 곧바로 산길을 찜질방으로 연결했다. 광제산 등산로 작업의 화룡점정인 셈. 명석면과 산을 동시에 사랑하는 한 면장의 작은 노력이 이룬 의미있는 성과이다.
산행은 홍지소류지(주차장)~임도~잇단 너덜~약샘~봉수대·집현산 갈림길~광제산 정상(봉수대)~잇단 철탑~임도(내율고개·버스회차 지점)~산길·임도 반복~임도(청현고개)~대형 철탑~'깔딱고개'~562봉(삼면봉)~집현산 정상~무너미재~삼거리~집현산 4봉(산불초소)~임도~진양강씨묘~동전마을~명석각~홍지소류지 순. 순수 걷는 시간은 4시간30분 안팎. 이정표가 잘 정비돼 있는 데다 하산로가 곳곳에 열려있어 체력에 맞게 맞춤산행을 할 수 있다.
들머리는 광제산이라 적힌 대형 이정석이 서 있는 넓은 주차장. 바로 옆은 홍지소류지. 산행팀이 오를 등로는 등산로 안내판의 녹색길. 이 코스는 광제산 등로 중 비교적 오르내림이 심한 곳이다.
등로는 둘. 하나는 왼쪽 '황토맛집' 뒷길, 또 하나는 도로 오른쪽으로 20m쯤 떨어진 파밭 옆 오르막길. 두 길은 광제산 봉수대에서 만난다. 광제산 유일 샘터인 약샘을 들르기 위해 후자를 택했다. 14분 뒤 임도. 바로 산으로 향한다. 여느 산과 다름없는 오르막의 연속. 발밑에는 희귀 야생화인 깽깽이풀과 바람꽃 현호색이 눈에 띈다.
잇단 너덜을 지나면 갈림길. 우측 10m 지점에 약샘. 광제산 봉수지기들이 식수로 사용하던 샘터이다. 왼쪽 오름길로 향한다. 12분 뒤 삼거리. 오른쪽 집현산 방향, 왼쪽 광제산 정상인 봉수대로 향한다. 도기념물인 봉수대는 2004년 12월 옛 모습 그대로 복원됐다. 조망이 압권이다. 해서, 국립공원에서나 봄직한 전망판이 셋 있다. 북서쪽으로 삼신봉 영신봉 등 지리산 남부능선과 지리산 천왕봉 웅석봉 둔철산 합천 황매산이, 동쪽으론 산청 집현산 의령 자굴산 방어산이, 남쪽으론 진주 월아산 망진산 사천 와룡산 삼천포항 하동 금오산 진양호가 펼쳐진다. 봉수대를 둘러싼 예닐곱 그루의 느티나무와 포구나무는 멀리서 광제산을 식별하는 인식표가 되니 참조하자. 또 한가지. 산불초소쪽 길이 '황토맛집'서 올라오는 길이다.
이제 집현산 방향으로 향한다. 곧게 뻗은 토종 소나무숲 터널에 솔가리가 널부러진 부드러운 흙길. 발걸음이 무척 가볍다. 이후 산길은 곳곳에 갈림길이 있지만 '집현산' 방향의 이정표를 보고만 간다. 잇단 철탑과 밤나무밭을 지나면 철탑 아래 임도. 사실상 광제산 끝, 집현산 시작 지점이다. 내율(밤실)고개로 가이드 산악회를 위한 버스회차장이 조성돼 있다. 동시에 산길마라톤코스이다. 봉수대에서 40여 분.
임도로 가도 되고 왼쪽 산길로 가도 좋다. 산길을 택해도 임도는 한 번 만난다. 다시 본격 산길. 이때부터 등로를 중심으로 왼쪽 산청 신안면, 오른쪽은 진주 명석면.
시야가 트이는 삼각점 봉우리(324m)를 지나면 다시 임도. 지도상의 청현고개, 일명 천고개다. 옛날 산청에서 진주장을 오갈 때 천명이 모여야 넘는 고개로, 그 만큼 도적떼나 산짐승이 많았단다.
바로 산으로 향한다. 시·군 경계길이 계속된다. 슈퍼 철탑도 만난다. 왼쪽 건물은 경남종축장, 오른쪽 저 멀리 느티나무가 보이는 광제산이 확인된다.
'깔딱고개'가 기다린다. 화엄사 코재길 수준이다. 15분 정도는 땀깨나 흘린다. 이후에도 정도의 차이일 뿐 오르막은 계속된다. 호조참의 무덤에서 10여 분 뒤 562봉. 산청군 신안면과 생비량면, 그리고 진주 명석면이 만나는 삼면봉(三面峰)이자 집현산 6봉이다. 상봉인 집현산 7봉까지는 500m. 10분이면 닿는다. 상봉(577m)은 암봉으로 멀리서 보면 상여를 닮아 상여바위라 불린다. 오른쪽 건너편에 집현산 1, 2, 3봉이 보인다. 그러고 보면 집현산은 말발굽 모양의 7개 봉우리로 이뤄진 산임을 알 수 있다.
삼면봉에서 8분이면 무너미재. 오거리다. 맨 왼쪽 현동마을 가는 길, 그 다음은 시계방향으로 각각 부봉(집현산 5봉) 가는 길, 부봉(집현산 4봉)으로 안가고 하산하는 지름길, 임도인 마라톤길이다. 부봉으로 향한다. 무덤을 지나 오르막길 좌우엔 얼레지 천국. 거기서 12분 뒤 삼거리. 오른쪽 동전마을, 왼쪽 산불초소가 있는 집현산 4봉을 들렀다 하산한다. 7분 뒤 4봉. 정상석에는 572m라 적혀 있다. 등산안내도엔 외형상 더 높아 보이는 이웃한 3봉이 549m에 불과한 데 이보다 더 낮은 봉이 572m라니 분명 잘못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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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 후 만나는 명석각 내 자웅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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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거리에서 이제 본격 하산한다. 만개를 기다리는 철쭉길이다. 무너미재 지름길로 내려오는 갈림길을 지나면 마라톤코스인 임도. 20m쯤 우로 가다 왼쪽 산길로 내려선다. 황홀한 진달래길이다. 길찾기 유의할 곳 하나. 진양강씨묘를 지나 100m 지점엔 갈림길. 왼쪽으로 가야된다. 거기서 10분이면 동전마을에 닿는다. 명석각을 지나 7분 정도면 주차장에 닿는다.
◇ 교통편
- 진주서 신기행 버스 27-1번 홍지마을 하차
부산 서부버스터미널에서 진주행 시외버스는 오전 5시40분부터 8~1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1시간30분 걸리고 6700원. 노포동종합터미널에서도 시외버스가 출발한다. 오후 6시부터 30~40분 간격. 2시간 걸리고 7700원.
진주터미널에서 나와 왼쪽으로 500m 가면 남강신호대 사거리. 이곳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신기행 27-1번 버스를 타고 홍지마을에서 내린다. 오전 8시10분, 8시45분, 10시25분. 900원.
날머리 홍지소류지에서 진주터미널행 27-1번 버스는 오후 3시, 4시40분, 5시50분, 6시50분(막차)에 있다. 진주터미널에서 서부터미널행 버스는 10~20분 간격으로 출발하며 막차는 밤 9시10분. 심야버스도 있다. 밤 10, 11시, 자정 출발. 주례, 롯데백화점 서면점을 거쳐 부산역이 종점이다. 8500원. 노포동행 시외버스도 있다. 25분 간격이며 오후 8시가 막차. 시간이 맞지 않을 경우 명석택시(055-744-3434, 4747)를 이용하자. 홍지소류지에서 서진주 스파랜드까지 1만 원.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진주분기점~대전·통영고속도로 서진주IC~시청 진주성 직진~산청 명석면 3번 국도 좌회전~명석면 판문동 우수리 우회전~광제산 등산로~명석면~홍지 신기~광제산 등산로~신기~광제산 이정석~주차장(홍지소류지) 순.
◇ 떠나기전에
- 인근 '서진주 스파랜드' 피로씻기 적당
집현산과 광제산은 남덕유에서 출발한 진양기맥의 막바지길. 재밌는 점은 집현산 정상은 기맥에서 500m 벗어나 있다. 풍수지리 관련 책을 두 권이나 펴낸 풍수지리 전문가이기도 한 이춘기 면장은 "이는 정상이 본루에 없고 후면에 위치해 기맥의 기(氣)를 불어넣어 주는 양상"이라고 설명했다. 진양기맥을 상수도관에 비유하자면 집현산은 압력을 불어넣는 가압장이나 물을 채워주는 배수지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명석(鳴石)면에 오면 '보국충석(報國忠石)의 고장'이란 수식어를 흔히 볼 수 있다. 보국충석은 남자의 성기와 여자의 족두리를 각각 닮은 두 개의 돌. 일명 자웅석(雌雄石) 또는 운돌이다. 사연이 있다. 고려 말 진주성 정비때 온 백성들이 동원됐다. 집현산에 있던 이 두 돌도 성돌(城石)이 되고자 굴러갔다. 명석면쯤 왔을 때 공사에 참여한 한 스님이 이 돌을 만나 이미 공사가 끝났다고 하자 돌은 그 자리에서 크게 울며 눈물을 흘렸다. 이에 감복한 승려가 이 돌을 '보국충석'이라 명명하고 아홉 번 합장배례했다 한다. 이 돌은 이번 산행의 날머리에서 주차장으로 오는 도중에 위치한 '명석각'에 잘 보존돼 있다.
명석면은 등산로 개설 기념으로 매년 11월 마지막주 일요일 광제산 등산축제를 개최한다.
맛집 한 곳 소개한다. 들머리 홍지소류지 인근 '황토맛집'(055-745-6092). 소금과 숯이 포함된 황토집에 물은 지장수를 쓰는 웰빙식당이다. 목살처럼 두꺼운 생삼겹살(사진)을 참숯에 굽는다. 양념과 야채는 직접 재배했고 소금도 황토에서 구웠다. 된장도 직접 담갔다. 된장 콩비지 등 모든 메뉴가 맛깔스럽다.
피로는 탄산유황천이자 알칼리 찜질방인 '서진주 스파랜드'(055-744-8383)에서 풀자. 올 1월 말 문을 열었다. 물이 미끄러워 비누가 필요없을 정도이다. 홍지소류지에서 차로 10분 걸린다. 5인 이상일 경우 차가 실어다 준다. 특히 이곳은 지리산 종주산행을 오가는 산꾼들이 부담없이 1박을 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이번 산행에는 광제산을 130여 차례나 오른 진주 오광대 무형문화재 후보자이자 명석면사무소 농악단 단장인 하계윤(50)씨가 동행했다. 그는 광제산 산행도우미다. 안내를 원한다면 적어도 4, 5일 전에 문의하면 된다. 011-552-9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