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경, 「방편품 제 2」를 풀어본다(18)
2-42.
둔한 근기 지닌 중생 좁쌀 이치 즐겨하여
죽고 사는 생사법(生死法)에 탐착하고 목을 매니
무량 부처 깊은 묘법 수행하기 불가할 새
늘어나니 고통이요 쌓이느니 번(煩)과 뇌(惱)라
이런 중생 깨치고자 열반법을 설했다오.
鈍根樂小法 貪着於生死 於諸無量佛 不行深妙道
衆苦所惱亂 爲是說涅槃
【풀 이】
●삶과 죽음에 따르는 번뇌부터 없애기 위해 우선 열반법을 설했다.
●小法 소승법, 소승의 가르침.
●於諸無量佛
<무수한 모든 부처님들(의 가르침)에 관해서(대해서)는>
*於565 기댈 어(의지하다, 의거하다)
2-43.
부처지혜 깨치도록 이런 방편 펼쳤으나
<그대들은 불도 깨쳐 틀림없이 성불한다>
이 말만은 지금까지 하지 않고 있었으니
때가 아직 아닌지라 아껴두고 있었다오.
이제 때가 무르익어 단연 대승(大乘) 설법할 새
이 구부경(九部經) 순서 밟아 중생들게 설하나니
법화경을 설하는 바 그 까닭이 무엇인고
대승경에 들어가는 근본이기 때문이오.
我設是方便 令得入佛慧 未曾說汝等 <當得成佛道>
所以未曾說 說時未至故 今正是其時 決定說大乘
我此九部法 隨順衆生說 入大乘爲本 以故說是經
【풀 이】
●未曾說汝等 <當得成佛道>
<“그대들은 불도를 성취하여 틀림없이 부처가 된다”는 말은 일찍이
입 밖에 낸 적이 없었다.>
왜 지금까지 입 밖에 내지 않았는가?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삶과 죽음에 따르는 번뇌와 고통부터 우선 해결해야
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성불하여 부처가 되는 것은 그 다음 순서이기
때문이다, 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決定說大乘
①대승을 설하기로 결심했다,
②단연코 대승을 설해야겠다,
③이제는 작심하고 대승을 설한다.
●九部法, 「2-41」의 9 가지 설법.
●入大乘爲本 以故說是經
<대승의 가르침으로 들어가기 위한 근본이기 때문에 이 법화경을
설한다.>
2-44.
불자들이 마음 닦아 청정 자재 유연하고
근기 또한 뛰어나서 무량 부처 도량 찾아
깊디깊은 신묘 불도 수행하고 닦을 적에
이와 같은 불자 위해 대승경을 설한 다음
이 몸 부처 그들에게 내세 성불 수기할 새
맘속 깊이 염불하고 청정한 계 닦을 적에
틀림없이 성불한다 그들 모두 알게 되니
터질 듯한 큰 기쁨이 온몸 가득 넘치리라.
이 몸 부처 그 맘 알고 대승경을 설하노니
성문이건 보살이건 나의 설법 열심 듣고
한 줄 게(偈)만 깨달아도 불도성취 틀림없소.
시방세계 불국토에 오직 일승(一乘) 뿐이라오.
부처님들 설하시는 방편설법 제외하곤
이승법도 삼승법도 이 세상엔 없는 거요.
헛이름자 빌어 와서 오직 중생 인도한 후
불지혜를 설하고자 부처 출현 하는 거요.
부처들이 이 세상에 오신 까닭 무엇이뇨
애오라지 이 까닭 뿐 다른 것은 거짓이요.
有佛子心淨 柔軟亦利根 無量諸佛所 而行深妙道
爲此諸佛子 說是大乘經 我記如是人 來世成佛道
以深心念佛 修持淨戒故 此等聞得佛 大喜充遍身
佛知彼心行 故爲說大乘
聲聞若菩薩 聞我所說法 乃至於一偈 皆成佛無疑
十方佛土中 唯有一乘法 無二亦無三 除佛方便說
但以假名字 引導於衆生 說佛智慧故 諸佛出於世
唯此一事實 餘二卽非眞
【풀 이】
●以深心念佛 修持淨戒故 此等聞得佛 大喜充遍身
<마음속 깊이 깨달음을 생각하며 청정한 계를 닦아 수지했기 때문에
“부처가 될 것이다”라는 말을 부처님으로부터 듣는 순간 이 사람들의
온 몸은 대환희로 가득 찼다.>
*<成佛>과 <得佛>에 대한 동양과 서양의 시각
이 두 용어에는 꼭 같이 <부처가 되다>라는 구체적 의미가 있는가 하면,
<깨달음에 이르다>라는 추상적 의미도 있다.
여기서 <佛>은 부처라는 의미도 되고, 깨달음, 즉 <覺>이라는 의미도 된다.
<佛>이라는 글자의 의미를 두 가지로 본다는 점에서 동양이나 서양이나
큰 차이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다시 말해, <佛>을 부처라고도 보고,
깨달음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은 동서양이 일치한다.
그런데, <佛>을 <깨달음>이라는 추상명사가 아니라, <부처>라는 일반명사,
즉 특별한 존재로만 해석할 경우에는 동양과 서양의 시각이 사뭇 다르다는
것을 확연하게 감지할 수 있다.
먼저,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에서는 부처라는 존재가 보통 사람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어떤 절대적인 능력을 지닌 무소불위의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부처에게, 혹은 대보살에게 정성을 다해 열심히 빌기만
하면, 그는 우리가 바라는 소망을 어김없이 이루어준다는 믿음의 대상이다.
그러나 필자가 40년 이상 거주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 미국 불자들이 가지고
있는 부처에 대한 시각은 우리와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부처를 나의 모든 것을 걸고 안심하고 따라 가도 되는 스승, 혹은 리더로
여기는 것 같다. 부처가 나를 위해 눈에 보이는 무엇을 해주거나 베풀어줄 수
있는 존재다, 라고 여기는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내가
가난하니까, 혹은 고통을 받고 있으니까, 혹은 오래 살고 싶으니까 부처님이
나서서 좀 해결해 주시오, 라고 빌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는 인식이다.
이곳 미국인 불자들의 경우, 그들은 대개 지식층, 그것도 상당한 수준의
지식층으로 알려져 있는데, 대부분 기독교 환경에서 자라고 공부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한국인들이 모임을 갖는 이곳의 사찰에서 한국불자들이
10달러 혹은 20달러짜리 지폐를 보시함에 넣고 열심히 절을 하며 빌고 있는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聲聞若菩薩
<성문이건 보살이건 (누구라도)>
*若1047 및 약(그밖에 또)
●但以假名字 引導於衆生 說佛智慧故 諸佛出於世 唯此一事實 餘二卽非眞
<假名字(실체가 없는 虛名, 즉 方便)를 사용하여 오로지 중생들을 이끌고,
그런 다음 불지혜를 설하기 위해 모든 부처님들은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부처가 이 세상에 몸을 드러내는 것은 딱 이 한 가지 이유 때문이다. 그 외
다른 것들은 부차적일 뿐, 진실이 될 수 없다.>
부처가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까닭은
죽어가는 중생들의 수명을 연장시켜주기 위해서도 아니고,
억울한 사연을 듣고 복수를 해주기 위해서도 아니고,
망한 사업을 일으켜 부자로 만들어 주기 위해서도 아니고,
高三 아들을 일류 대학에 합격시켜주기 위해서도 아니고,
저 총각이(혹은 처녀가) 우리 딸과(혹은 아들과) 궁합이 맞는지 알려주기 위해서도 아니고,
이번 승진 심사에서 높은 지위로 올라 가 크게 출세하도록 도와주기 위해서도 아니고,
죽은 영혼이 극락왕생할 수 있도록 힘을 써주기 위해서도 아니고,
지옥에서 생고생 하고 있는 영혼을 극락으로 전출시키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러면 무슨 까닭인가.
假名字(실체가 없는 虛名, 즉 方便)를 사용하여 오로지 중생들을 이끌고,
그런 다음 불지혜를 설하기 위해 모든 부처님들은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부처가 이 세상에 몸을 드러내는 것은 딱 이 한 가지 이유 때문이다. 그 외
다른 이유가 있다고 하면 모두 거짓이다, 라고 법화경에 쓰여 있다, 라고
말한다면 잘못된 것인가?
(「2-13」의 <引之令得出> 참고)
*但82 다만 단(그것만, 단지, 오로지, 특히 그것만은 일부러)
*假名字는 <方便>과 同義語
-假名105 (불교) 실체가 없는 것에 갖다 붙인 이름, 즉 수많은 방편.
*餘二卽非眞에서
<二>는 <두 개>라는 의미라기보다 <부차적(副次的)>이라는 의미로
보는 것이 經의 취지에 맞다.
(계 속)
첫댓글 상세한 해설에 감복합... 차곡 차곡 저의 창고에 모아 둡니다.
좀더 깊숙하고 의미 있는 해설을 붙일 수 있으면 좋겠는데, 저가 가진 밑천이 그 정도 뿐이라
마음 뿐입니다. 목은 짧은데 침은 멀리 뱉고 싶고.....이런 심정.
阿修羅 居士님, 추석은 잘 보내셨나요? 고향 생각 많이 납니다.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오른 팔 소매를 걷어
올렸습니다. 그리고 오른 쪽 무릎을 꿇고 일심합장한 자세로
卽從座起 整衣服 偏袒右肩 右膝着地 一心合掌
*** 신해품 초반부 번역인데... 偏袒右肩을 ---> 오른 팔 소매를 걷어 올렸습니다. 로 했는데--->
원래 뜻은 (불필요하게 억지로 군말을 붙여 번역한다면)“오른 어깨(右肩)를 오로지 한쪽으로 치우쳐(偏) 발가벗겨 드러내고(袒)
인데 ... 거사님의 해석은 너무 거리가 먼 것 같습니다
<偏袒右肩>에서 <偏袒>이라는 단어는 <한쪽 소매를 벗는다>라는 게 사전에 나와 있는 풀이입니다. 우리 말로 <소매를 벗는다>가 부자연스러워 <소매를 걷어 올렸다>로 번역했습니다. 정확하게는 <오른 쪽 어깨에 걸쳐 있는 소매를 벗었다> 가 맞습니다. 阿修羅 居士님 처럼요. 그러면 거리가 조금 좁혀 지나요?
근데, 신해품은 아직 가지도 않았는데, 阿修羅 居士님이 너무 빨리 달리시는 것 아닌가요? ㅎㅎㅎ
@나성거사 옛날에 거사님이 전체 번역한 것 다시보는 중... 또 법화경 한문만 크게 뽑아 독송용으로 인 쇄하여 준비중인데... 물론 염화실의 신수대장경 한문도 뽑아 났지만 ... 얫날 거사님의 전 문 해석 때 그 한문이 더 정확하다 싶어 그걸로 하는 와중에 다음의 용왕 대중것보니... 하단 참조
<오른 쪽 어깨에 걸쳐 있는 소매를 벗었다> 정확하고 좋은 표현.... 하단에 각주로해서 달아 놓으세요. 그래야 오해가 없지...
잘 알겠씀다!
_()()()_
그리고 법화경 서두에 용왕대중이 나오는데 優鉢羅龍王等인데 왜 優癖龍王等입니까? 이런 것은 하등 손톱속의 때만한 가치로서 볼 품 없으나, 법화경의 근본을 파해치는 전문가로서의 책에 하나의 글자 오자도 용납되어서는 안 됩니다. 구마라즙의 한문 한자에도 버릴 것이 없다고 하신 바와 같이...
답글 | 수정 | 삭제
저의 파일에는 분명히 優鉢羅龍王等으로 되어 있는데, 優癖龍王等이라는 글을
어디서 보셨는지 좀 알려 주실래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찾아낸 이상 그냥 지나칠 수 없지요.
아하! 2년 전에 올렸던 글에 그처럼 되어 있군요, 그 동안 몇 번 훑어보는 과정에서
이미 본글에는 고쳐져 있습니다. 쪽집게 阿修羅 居士님, 감사하므니다.^^
00000000000
_()()()_
^_^
절차탁마
보기 흐뭇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