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다리고기다리던은 개뿔, 올해는 엄청 뜨거운 불경기탓에 시나브로 여름휴가를 맞았습니다. 무계획이 상팔자인지 작년 이맘 때 부산에서 개고생을 한 탓인지 아내는 휴가 내내 꼼짝도 안 할 기색입니다. 성년이 된 딸래미야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기왕지사 이렇게 됐으니 나라도 행복하자는 심정으로 모종의 계획을 추진했습니다.
첫째 날은 ‘엄니데이’로 홀로 계신 어머니를 위한 한나절짜리 솔루션입니다. 며느리는 있되 딸이 없으신, 대중목욕탕은 동네에 있지만 집에서 대충 씻고 지내시는 어머니이십니다. 그래서 가끔은 어머니를 모시고 바람도 쐴 겸 근교 온천으로 나들이를 다닙니다.
제1안은 김포 약암홍염천이나 옥천인삼사우나에서 목욕을 하고 강화도 드라이브를 하는 코스입니다. 점심은 태백산 불고기나 벌말민물매운탕 중 택일이고 저녁은 장어구이(낙조관람 포함)나 대선정의 시래기밥 중 택일입니다.
제2안은 포천 제일유황온천에서 때를 밀고 철원에 계신 선친께 다녀오는 코스입니다. 점심은 고모리 욕쟁이할머니집의 우거지정식이고 저녁은 포천의 이동갈비나 아예 서울로 돌아와서 원하시는 메뉴를 드시는 일정입니다.
어머니께선 포천-철원코스를 선택하셨습니다. 허기가 지신다며 동네에서 아예 점심을 먹고 출발하자시잡니다. 당연히 따라야겠지요. 마침 아내도 며칠 전부터 장어가 먹고 싶다던 참이었습니다. 서민의, 서민을 위한, 서민적인 장어집이라 맛이 기똥차다거나 서비스가 훌륭하지는 않지만 비용이 저렴합니다. 띠로리~
민물장어로 주린 배를 가득 채웠으니 이젠 달려야 할 땝니다. 서울에서 철원까지 길을 아주 잘 뚫어 놨습니다. 그래서 네비게이션만 믿었다간 엄한 놈들 호주머니를 채워주기 십상입니다. 네비게이션은 민간자본으로 깔린 유료도로를 우선적으로 안내합니다. 나야 뭐 다년 간 그 쪽을 다녔기에 함정에 빠지지 않고 정부에서 깔아놓은 국도를 이용했습니다. 무료로...
예상대로 도로사정이 좋아 지체구간 없이 아주 잘 빠집니다. 한달음에 철원의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장어를 잘 먹은 탓인지 중간에 급똥소동 마저 없었다면 너무 밋밋한 여정이었을 겁니다. 무튼 초급박했던 상황을 잘 극복하고 뒤탈 없게 처리를 잘 했다는 전언입니다. 쿱~
일전에 어머니께서 홀로 선친께 다녀오셨다는데 차비만 8만원이 들었답니다. 댁에서 동서울터미날까지 왕복 택시비로 5만원, 동서울에서 철원까지 왕복 시외버스비로 2만원, 서면에서 목련공원까지 왕복 택시비가 1만원해서 8만원입니다. 돈도 돈이지만 거기까지 왔다갔다 하시느라 육체적으로 많이 힘드셨을 겁니다. 어린이날마다 어머니를 모시고 선친께 다녀왔었는데 올해는 우리집으로 어머니와 형네를 초대해서 어버이날을 겸한 만찬을 하는 것으로 갈음을 했더니만 그게 걸리셨었나 봅니다.
선친께 다녀 온 것으로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으니 이번엔 몸을 가볍게 할 차례입니다. 어머니의 묵은 때를 벗겨드리는 미션을 수행하러 제일유황온천에 입장했습니다. 아내의 후일담에 의하면 고부가 나란히 누워 세신사들로부터 특급서비스를 받았답니다. 미션 클리어!
온천욕을 마치고 나니 금세 어두워질 기세입니다. 귀경길에 고모리 욕쟁이할머니집에 들러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어머니는 일전에 한 번 모시고 온 적이 있고, 아내는 이번이 첫 방문입니다. 우거지정식에 더해 동동주와 참숯불고기를 주문했습니다. 아내의 ‘네게 술을 허하노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나는 동동주 두 잔을 거푸 비웠습니다. 먹다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지만 나는...흙...절대 그럴 입장이 아닙니다.
작년 말에 큰일을 겪었습니다. 잘 벼른 칼날 위에서 살얼음춤을 추다 6일 만에 부활했었습니다. 하지만 살았다는 기쁨은 잠시고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막막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여생에 술은 고사하고 맛난 음식 한 번 못 먹고 살 수도 있는 상황에 절망했었습니다. 다행히 이제는 큰일 전의 상태로 회복됐지만 다시 생각해봐도 아찔합니다.
넘치도록 가득 담긴 동동주만큼이나 많은 생각들이 스칩니다. 사는 게 뭐 별 겐가 싶기도 합니다. 신기루 같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담보 잡히고 사는 이들이 불쌍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지금도 행복하고, 미래에도 계속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다들... 지내고 보면 다 부질 없습니다.
<갑판장>
& 덧붙이는 말씀 : ‘엄니데이’를 마무리하기 위해 어머니댁 인근에 있는 커피생각에 들렀습니다. 새절역 불광천변에 있는 카페 중 하나인데 의외의 동네에서 입에 착 붙는 커피를 찾아냈습니다. 요 집은 여러 번의 방문기를 한데 묶어서 따로 정리하겠습니다. 나중에...
첫댓글 "있을때 잘해"라는 말 많큼 어울리는 말은 없음...
어머님과 좋은시간 보냈구먼 ^^
어제 주님데이에 이어 오늘은 가족데이인데 다들 딴청이네. 어쩔 수 없이 플랜B를 가동할 수밖에...나홀로 밖으로 데이
갑판장님은 좋은 아들이셨군요^^
에혀...의도치 않게 포장이 됐었나 보군요. 현실은 후진 아들입니다.
푹푹찌고 스콜 내리는 날씨에 휴가 짜임새가 가족중심으로 아름답게 꾸미셨네요 ^^ 전 휴가를 모르고 삽니다 ㅠ.ㅠ
아름답게 보이도록 포장하는데 종사해었기에 체화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