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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님의 강세와 종교개혁 도래를 알린 최수운
동학의 창시자 최수운(1824~1864)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아명은 복술(福述)·제선(濟宣), 자는 성묵(性默), 호는 수운(水雲)·수운재(水雲齋)입니다. 최수운은 경주의 몰락한 양반인 아버지 최옥(崔鋈)과 재가한 어머니 한씨(韓氏)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부터 흔히들 말하는 신동이라 불리며 어른들의 큰 관심 속에서 자라났습니다.
10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17살에 아버지를 여의었으며, 더욱이 그즈음 집에 화재가 나서 가세가 크게 기울었습니다. 생활고를 겪으면서 자신의 미래와 세상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하던 수운은 세상을 구원할 큰 도를 구하리라 마음을 먹고 10년간 유랑을 떠납니다.
세상을 구제하리라
19세기 말, 세계는 약소국을 침략하여 강탈하는 그야말로 약육강식의 금수세상이었습니다. 또한 당시 조선은 근대화의 태동으로 서로 문호를 개방하고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는 등 정세가 극히 혼란스러웠습니다. 당시의 조선은, 화친(和親)이 나라를 파는 것이라 여겨 더욱 문을 닫으려 하였습니다. 그 와중에 점점 유교의 질서가 무너지는 혼란 지경에 빠지게 됩니다.
애석하게도 그 책의 내용이 전해지는 바는 없고, 다만 그 가운데 “지극한 정성으로 하느님께 49일간 기도를 드려야 한다”는 내용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후 더욱 수련 정진하던 중 1856년 양산군(梁山郡) 천성산(千聖山, 원효스님이 당나라에서 온 1,000명의 스님들이 화엄경으로 득도하게 했다고 전해진다)의 내원암(內院庵)에서 49일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숙부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하고, 47일 만에 기도를 중단해야 했습니다.
다음해 천성산 적멸굴(寂滅窟)에서 다시 49일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후에도 울산 집에서 계속 공덕을 닦았으며, 1859년 처자를 거느리고 고향인 경주로 돌아온 뒤에 구미산(龜尾山) 용담정(龍潭亭)에서 수련을 계속했습니다. 이 무렵 세상 사람을 구제하겠다는 결심을 굳게 다지기 위해 이름을 제선에서 제우(濟愚)라고 고쳤습니다.
“너는 상제(上帝)를 알지 못하느냐?”
세상 사람을 구제하리라는 큰 뜻을 품고 구도에 정진하던 중 1860(경신)년 그의 나이 37세 되던 해, 당시 조정을 장악한 세도가문의 기세는 그야말로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였고, 탐관오리의 횡포는 나날이 심해져가고 있었습니다.
동양을 집어삼키려는 서양 제국주의 세력은 더욱 거세게 밀려들어오고,특히 청일전쟁으로 나라의 운명은 풍전등화와 같았고, 백성들의 삶은 점점 더 힘들어져만 갔습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본 수운은 더욱 수련에 정진하고 마침내 세상에 그 누구도 듣기 힘든 한 소식을 여호와 하느님으로부터 듣게 됩니다.
무극대도(無極大道)를 가르쳐주어라.
4월 초닷샛날, 갑자기 큰 두려움이 느껴지면서 온몸에 오한이 나고 몸이 떨리고 정신이 아득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천주[여호와 하느님]님의 성령이 그에게 임하여 말씀하시기를
“두려워 하지 말고 겁내지 말라. 세상 사람들이 나를 상제라 이르거늘 너(최제우)는 상제를 알지 못하겠느냐?”(勿懼 勿恐하라. 世人이 謂我上帝어늘, 汝 不知 上帝耶라. 『동경대전』 포덕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최제우)에게 무궁무궁한 무극대도법를 주노니 부지런히 닦고 다듬어 수련하여 글을 지어서 사람들에게 무극대도(無極大道)를 가르쳐주어라. 덕을 쌓고 정법을 펼치면 너로 하여금 장생케하여 천하에서 빛나게 하리라.” (『동경대전』 논학문)
당시 수운은 여호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주문(呪文).
侍天主 造化定 永世不忘 萬事知(시천주조화정영세불망 만사지)
註解: 천지를 창조하신 여와(女媧) 천주를 모시고, 진리의 무극대도(無極大道)를 동학의 교리로 정(定)하여, 여와 하느님을 영원히 잊지않는 주문을 외우면 일체 만물의 원리를 다 알 수 있을 것이니라,
즉 본래 여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본성(本性)을 되찾는 수행을 하여 득도(得道)한다면 지혜에 형통하여 무궁무궁한 조화(造化)능력을 갖게 되고, 일체 사물의 원리를 깨달아 천하의 만 중생을 구제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최수운으로 하여금 여호와 하느님의 천명을 받은 것을 천주님과의 ‘천상문답사건’이라고 합니다.수운이 여호와 하느님의 천명을 받들어 동학을 창도하니 얼마 지나지 않아서 경상도 일대에 동학이 급속으로 널리 전파되자 불안을 느낀 조정에서는 ‘사악한 종교로 세상을 어지럽힌다[사도난정邪道亂正]’의 죄목으로 수운을 체포하였습니다.
그리고 갑자년 (1864년) 3월, 대구 감영에서 수운이 처형을 당할 때 그가 청수를 떠놓고 [여호와] 상제님께 기도를 올린 후 비로소 목이 베이니 그의 나이 41세였습니다. 그는 여호와 하느님의 천명에 따라 세상을 뜨기 전까지 약 4년동안 ‘동학’이라는 가르침을 펴고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라는 가사를 지었습니다.
최수운이 여호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천명
첫째, 장차 세계 모든 종교를 하나로 통일하는 무극대도(無極大道)의 출현을 예고했습니다.
어화 세상 사람들아 무극지운(無極之運) 닥친 줄을 너희가 어찌알까보냐. (『용담유사』 용담가)유도 불도 누(累) 천년의 운이 역시 다했던가. 『용담유사』 교훈가)만고에 불변하는 무극대도(無極大道)가 이 세상에 생겨 날 것이니, 너는 또한 연천해서 억조창생 많은 백성들이 태평곡 격앙가를 불구에 볼 것이니라, 무극대도를 창시하신 태호복희 대황조(大皇祖)와 전지전능하신 여호와 원시천존 하느님이 설법하신 무궁(無窮)이 아닐런가. (용담유사 몽중노소문답가)
둘째로, 태고에 이 무극대도를 세상에 펼치신 태호복희,대황조(大皇祖)와 여호와 원시천존(하느님)이 친히 이 대한민국 땅에 강세하시게 될 것이니 곧 여호와 하느님을 받들어 모시라는 시천주(侍天主)를 선포했습니다.
여호와 하느님이 내 몸에 감응하시어
[풍전등화 같은] 아국운수 보전해 주시겠다고 언약하시었다.
호천금궐상제이신 여호와 옥황상제 하느님을 너희가 어찌 알까보냐.
호천금궐 여와(女媧)상제는 선악(善惡)으로만 선택하여 심판하는 것이 아니다.
천상의 여와(女媧:여호와) 옥황상제님은 옥경대로
인간세상에서 일어난 일을 마치 거울을 보듯이 말씀하셨느니라.
『용담유사』 도덕가)
셋째로, 새 시대 도래에 앞서 전 세계의 3년 괴질병을 거치면서 개벽시대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즉 종교적 일대심판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개벽시대는 지극한 정성으로 참 하느님 곧 여호와 하느님만을 굳게 믿고 신앙해야만 자신을 구원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느님께서 전 하신 말씀은 개벽 후 5만년에 네에게 또한 첨이로다.
(『용담유사』 용담가) 무극대도 닦아내니 오만년지 운수로다.『용담유사』 용담가)
십이제국 괴질운수 다시개벽이 아닐런가. 『용담유사』 몽중노소문답가
그말 저말 다 던지고 오직 여호와 하느님을 공경하면
아동방 3년 괴질 죽을 염려 있을쏘냐. (『용담유사』 권학가)
가련하다 가련하다 아국운수 가련하다…
요순성세 다시 와서 국태민안 되지마는,[조선(대한민국) 사람들은 여호와 옥황상제 하느님을 올바로 깨닫지 못하니] 기험하다 기험하다...!!! 아국운수 기험하다. 『용담유사』 안심가) 나는 도시 믿지 말고 오직 여호와 하느님만 믿어야 한다. 나 역시 오직 여호와 하느님만 온전히 믿고 있느니라. 『용담유사』 교훈가)
수운은 자신을 믿지 말고, 장차 “인간으로 강세하시어 새 시대를 펼치시는 여호와 하느님만 믿고, 신앙 할 것을 간곡히 당부하고 있습니다. 서구의 천주교[기독교]는 하느님의 아들 야소(耶蘇)를 믿으라고 하지만 19세기 말, 수운은 ‘ 이 땅[대한민국]에 여호와 하느님이 친히 강세하시게 되므로 사람으로 오시는 바로 그 하느님을 믿으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리고 장차 세계 모든 종교를 개혁하여 무극대도의 일종교리(一宗敎理)로 정(定)하는 성인(聖人:하느님)이 출현한다는 소식을 예고하였습니다. 이 복음을 5년간 전한 최수운은 갑자년(1864) 3월 10일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2대 교주 최시형은 ‘시천주(侍天主)에 대해 천주(天主:여호와) 하느님을 지극 정성으로 모시라. 또한 우리 인간은 여호와 하느님으로부터 천명(天命:하느님의 심판:인과응보:4주8자)를 받고 태어났기 때문에 각자 자신들의 행동은 곧 하느님의 마음과 같다는 ‘사인여천(事人如天)’라고 했습니다. 동경대전(東經大全)』최수운이 처형될 때 이 책도 불태워졌으나 동학의 제2세 교조 최시형이 1880년(고종 17년) 비밀리에 간행했습니다. 내용은 본문과 별집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포덕문(布德文), 논학문(論學文), 수덕문(修德文), 불연기연(不然其然)과 그 뒤에 운문체의 여러 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용담유사(龍潭遺詞)』최수운 대성사가 지은 모두 9편의 가사를 싣고 있는데, 서양세력이 밀려오는데 대해 깊은 우려를 나타내며 이에 맞서는 정신적 자세로서 동학을 내세우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한글 가사체의 형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①용담가(龍潭歌):수운의 고향인 경주구미산 용담의 경치와 득도의 기쁨이 담겨 있습니다. 풍수지리사상과 충효사상이 강조되어 있습니다.②안심가(安心歌):당시 사회에서 불안해하던 부녀자들을 안심시키려는 목적으로 지었습니다. 천대받던 부녀자들의 덕을 칭송하고 좋은 시절이 오면 여성이 주체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③교훈가(敎訓歌):동학교도들에게 수도에 더욱 힘쓰라는 내용입니다.④몽중노소문답가(夢中老少問答歌):자식이 없던 노인이 금강산에 들어가 빌어 옥동자를 얻었는데, 이 아이는 난세를 한탄하며 천하를 돌아다니던 중 금강산에 이르러 꿈속의 도사를 만나 득도했다는 내용입니다. 최수운 자신의 삶과 득도과정을 나타낸 내용입니다.
⑤도수사(道修詞):고향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다가 떠나게 되었을 때 제자들에게 도 닦기를 간절히 당부하는 내용입니다.⑥권학가(勸學歌):동학을 믿음으로써 다함께 동귀일체(同歸一體, 인간의 정신적 결합을 뜻하는 말로 저마다 다른 마음을 이겨내고 한울님의 참뜻으로 돌아가 한몸같이 되는 일을 이르는 말) 할 것을 권유하는 내용입니다.
⑦도덕가(道德歌):가문과 학식보다는 도덕이 중요함을 강조했습니다. 내 몸에 이미 모시고 있는 하느님에 대한 경외의 마음이 무엇보다도 소중하다는 내용입니다.
⑧흥비가(興比歌):시경(詩經)의 노래체인 흥과 비를 이용하여 도를 닦는 수행법을 가르치는 내용입니다. 도는 멀고 어려운 것이 아니라 가까운 데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 시경(詩經)은 오경(五經)의 하나. 중국 최고의 시집으로 공자가 편찬하였다고 전하여진다. 주나라 초부터 춘추시대까지의 시311편을 세 부문으로 나누어 수록하였다.
⑨검결(劍訣):
이 노래가 문제가 되어 최수운은 처형당하게 되었습니다. 다시『용담유사』가 간행될 때에는 이런 이유로 수록되지 못했습니다. 갑오농민전쟁 때 군가로 불리기도 했으며 최수운의 변혁의지가 잘 나타난 작품입니다.
검결(劍訣),(1861년 4월)
시호시호(時乎時乎) 이내(台乃)시호(時乎) 부재래지(不在來之) 시호(時乎)로다 만세일지(萬世一之) 장부(丈夫)로서 오만년지(五萬年之) 시호(時乎)로다. 용천검(龍泉劍) 드는 칼을 이때 아니 쓰고 무엇 하리 무수장삼(舞袖長衫) 떨쳐입고
이칼 저칼 넌즛 들어 호호망망(浩浩茫茫) 넓은 천지 일신(一身)으로 비껴서서 칼 노래 한 곡조를 시호시호(時乎時乎) 불러내니 용천검(龍泉劍) 날랜 칼은 일월을 희롱하고 게으른 무수장삼舞袖長衫 우주에 덮여있네 만고명장 어데있나 장부당전(丈夫當前) 무장사(無壯士)라 조을시구(鳥乙矢口) 조을시구(鳥乙矢口) 이내신명(台乃身命) 조을시구(鳥乙矢口)
조선 유학자들은 하느님의 이름도 잊어버렸다
조선시대 초기의 정도전(호:삼봉, 1337~1398) 황희(호:방촌, 1363~1452)와 조선중기의 조광조(호:정암,1482~1519) 이황(호:퇴계,1501~1570) 이이(호: 율곡,1536~1584)등은 반드시 상제(上帝)는 여호와 옥황상제를 지칭함을 인지(認知)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조선의 유학자들은 사단(四端)과 칠정(七情)의 관계에 대한 이해를 둘러싸고 열띤 논쟁이 벌어졌다. 칠정(七情)은 유학에서 인간의 여러 가지 감정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인간의 여러 감정들을 기쁨(희,喜), 노여움(노,怒), 슬픔(애,哀), 두려움(구,懼), 사랑(애,愛), 싫어함(오,惡), 바람(욕, 欲)의 일곱으로 묶어 나타내었다.
후대에서는 대개 《중용》에서 말하는 기쁨(희,喜), 노여움(노,怒), 슬픔(애,哀), 즐거움(락,樂)을 가리켜 칠정이라 하였다. 조선의 성리학은 인간의 본성에 따른 마음인 사단(四端)과 인간의 감정인 칠정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에 대해 학파에 따라 다른 입장을 보였다.
맹자는 인간은 본래부터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성선설(性善說)을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사단(四端)으로 나누었다.
인(仁)= 측은지심(惻隱之心) :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애처롭게 여기는 마음
의(義)= 수오지심(羞惡之心) : 나쁜것을 멀리 하려는 마음
예(禮)= 사양지심(辭讓之心) : 남을 배려하여 양보하는 마음
지(智)= 시비지심(是非之心) : 옳고 그름을 판단할 줄 아는 마음
가련하다 가련하다 아국운수 가련하다…
[후천시대 대한민국에] 요순(堯舜)과 같은 성인(聖人)이 출세(出世)하여 대한의 국운이 다시 돌아와 국태민안 되겠지마는,[일제에 의해 35년간의 식민지 시대]에 나라가 없어질까 극히 위험하니 조심하라는 뜻입니다.
『용담유사』 안심가 변경)곧 당도할 후천시대는 나는 도시 믿지 말고, 오직 여호와 하느님만 믿어야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 나 역시 하느님을 신앙하고 있으니 후세 조선 사람들은 오직 여호와 하느님의 이름만 불러야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니라. 『용담유사』 교훈가.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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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영화 보연등을 보면 옥황상제와 서왕모의 이야기 속에서 여와가 등장합니다. 곧 옥황상제와 다른 여와의 존재 즉 하느님의 존재가 있다는 것을 말하는 부분이기도 하지요.
옥황상제님이 거하는 천궁에 악의 무리의 침범으로 금이가서 깨어졌을때 그것을 보수해준 분이 바로 여와라고 하죠. 옥황상제와 여와의 이치를 조금 알게 해 주는 부분이었습니다.
옥황상제님은 어릴적 연속인형극에서부터 많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하늘의 상제로 알고 있지만 더 높은 차원의 구천을 총괄하시는 분이 또 있다는 것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구천상제님은 우주를 총괄하시고 옥황상제님은 신명계를 다스리시는 왕이시고 미륵세존님은 수 많은 영들의 으뜸가는 스승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세 분을 우리 선조들은 삼신이라고 일컬어 왔었지요.
그런 흔적은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증산께서 우리의 삼존 신위를 이렇게 밝혀 주셨습니다.
구천상제, 옥황상제, 미륵세존 여기서 하느님은 구천을 총괄하시는 구천상제님이시죠.
여와는 하느님의 영이 땅으로 오셔서 머문 자리지요.
우리는 하늘의 하느님을 어떻게 정확하게 불러야할지 알지 못하니 인간의 몸을 입은 여와를 통해 하느님이라고 하시는 것은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영이 다시 인간의 몸을 입고 땅으로 오셨는데도 아직도 여와를 부르고 있어야 하는지요?
수운도 하느님께서 땅으로 오신다고 하였는데 그 분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증산을 상제라 하여 부정하시지만 깊이 공부해 보신다면 증산상제님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아시게 될 겁니다.
뒤에 오실 참 진인이 따로 있음을 말씀드리는 것이지요.
수운의 글에도 잘 나와 있군요...
사람으로 오시는 하느님을 찾을 수 있도록 공사로써 그 이치가 밝혀지게끔 한 것이 증산의 천지공사였습니다.
증산을 공부하지 않고 인자로 오신 하느님을 알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그 속에 있는 사람들도 스스로 공부하지 않고는 찾을수 없는데 증산을 모르고 어찌 하느님의 영으로 오신 분을 찾을 수 있을지....
위의 내용만 보아도 하느님의 영이 사람에 임해 오신다고 나와 있군요!
단군전도 템플 스테이나 유교의 예절 학교처럼 발전되는 날이 언젠가는 오겠지요.
매주 교회에 다니는 기독교는 잘못된 종교 관습입니다. 시간이나 금전면에서 2~3%가 초과되는 종교 생활은 사이비입니다. 그럴 여유가 있으면 사회 봉사 활동을 하거나 운동을 하는 것이 유익합니다.
檀奇古史(단기고사) 발해국 대야발이 천통(天統) 31년 (A.D 729)에 지은 고조선 3한(三韓:진한,마한,변한)중 진한의 단군조선의 실사이다. 고구려에는 우리의 근거와 그 경로를 기록한 많은 사서들이 있었다. 나라가 망할때에 점령군은 그 사서고까지 태워 버렸다. 고구려를 이어 발해를 일으킨 대조영은 동생인 반안군왕 대야발에게 단기고사를 편찬하게 했다. 명을 받은 대야발은 흩어져 있던 사서를 모으고 비문을 확인하며 돌궐국까지 여러번 답사하는 등 13년 노력 끝에 이 책을 완성할 수 있었다. 이 기록은 원래 발해문으로 목판에 새겨 나라에서 보관하였으며 교육용으로는 이를 베껴 사용했다. 그 후 건흥8년(서기 825) 4월 발해의 대문호인 황조복이 한문으로 옮기고 장상걸이 주석을 달아 펴냈다.이 한문본이 전해져오다가 구한말 학자인 유응두 선생이 중국의 한 서점에서 이 '황조복판'을 발견하고 입수하게 되었다. 이를 그의 문하생인 이윤규를 시켜 수십권 등사하게 했다. 이윤규 선생은 당시 대한제국 학부 편집국장 이경직에게 이를 건네주어 광무11년 (1907년)에 간행했으나 일제에 의해 소각되고 말았다. 그 후 임자년(1912년) 이윤규 선생의 아들인 화사 이관구
삼신할매와 단동10훈(檀童十訓) 한국의 옛 어머니들은 아기가 아프거나 아기를 일찍 낳지 못한 여인은 장독대 위에 정화수(새벽에 우물에서 첫길어올린 맑은물)를 떠 놓고 아기병을 빨리낫게해 달라고 빌었고, 또 뚜꺼비 같은 아들을 점지해 주시기를 삼신할매에게 온 정성을 다해 두손모아 양손을 비비며 기도하는 한민족만의 고유한 신앙이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집에서나 아기가 태어나 3,7일(3×7=21일)이 되면 백설기(쌀가루로 만든 흰시루떡)를 만들어 삼신할머니께 감사기도를 드리는 풍습이 있었다. 또 돐잔치(태어나 1년 되는 날) 때에도 백설기와 여러가지 떡을 만들어 정성을 다하여 삼신할머니께 감사드렸다. 삼신할머니를 섬기는 사람들이 현재도 많이 있으나 현대 엄마들은 삼신할매의 이름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어린 아이에게 처음 말을 가
모두루묘지(牟頭婁墓誌)이해에필수적역사욧점 추모성왕(鄒牟聖王:고주몽,동명성왕)은 하백의 손자이며 일월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하백(河伯)은여왜(女媧)하느님의 딸이다. 그리고 황제헌원은 단군왕검을 사위로 삼았다.또한북부여 시조 해모수는 하백(河伯)의 딸유화(柳花)를 부인으로 맞이하여, 고구려 시조 고주몽(추모왕)과 신라의 시조박혁거세왕을 낳았습니다. 따라서 단군왕검과 해모수는 동서(同壻)간이다. 모두루묘지 (牟頭婁墓誌)해설모두루묘는 길림성 집안시 태왕향 동구(洞溝) 고분군 하해방묘구(下解放墓區) 집청공로(集靑公路) 남쪽에 있는 고분군에 있다. 하해방촌의 동쪽 500미터, 압록강 북쪽 500미터 지점이다. 집안의 고분과 유적은 6개 지역군으로 나누어진다. 하해방묘구, 우산하묘구(禹山下墓區), 산성하묘구(山城下墓區), 만보정묘구(萬寶汀墓區),
이 비는 본래 함경남도 이원군 마운령에 있었으나 현재는 함흥역사박물관에 옮겨져 보존되고 있다. 이 비는 최남선(崔南善)이 함경도지역의 고서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강필동(江必東, 1793∼1857)의 문집 중에 있는 《이성고기 (利城古記)》를 근거로 하여 찾아낸 것이다. 비문은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하여 대다수가 판독된다. 건립연대는 비문 중에 태창(太昌) 원년이라는 연호가 있어서 568년(진흥왕 29)임을 알 수 있다. 비석의 재료는 질 좋은 흑색의 화강암이다. 비석의 높이는 146.9cm, 너비는 44.2cm, 두께는 약 30.3cm이다. 비면에 새긴 글자는 양면을 새겼는데 전면은 모두 10행 행당 26자이며, 뒷면은 모두 8행 행당 25자이다. 서체는 해서체로 음각하였다. 비문의 구성을 보면 앞면은 대왕의 순수를 밝힌 제기(題記)부분(제1행∼제2행), 순수하게 된 배경을 적은 기사(記事)부분
▶ 광개토태황능비(廣開土太皇陵碑) 해설 광개토태황릉비(廣開土太皇陵碑)는 고구려 장수왕(長壽王 : 413 ~ 491)이아버지인 광개토태황(391 ~ 413)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414년 9월 29일 세운 비(碑)이다. 이 비는 중국 길림성(吉林省) 집안현(集安縣) 통구(通溝)에 있으며 고구려의 수도였던 국내성(國內城)이다. 무려 1,600여년의 비바람에도 불구하고 대한민족의 역사적 진실을 품고 지금까지 우뚝 서있다. 능비 높이는 5.34m이고 각면 너비는 1.5m이다. 제1면 11행, 제2면 10행, 제3면 14행, 제4면 9행이고, 각 행이 41자(제1면만 39자)로 총 1,802자이며 현재 1,590여 글자는 판독이 가능하다. 비문의 내용은 고구려 추모왕(고주몽)의 건국 전설, 호태왕의 업적, 선조묘를 지키는 수묘(守墓) 법령으로 나누어 있다. 호태왕비는 훌륭한 서법 예술품으로서 대한민족이 관리해야 할국보적 보물입니
참의공(최잠) 전 參議公(崔潛) 傳 참의공의 일생의 행적(一生行蹟)을 적은 기록 이 글은 모든 분이 다읽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청풍 올림 충신(忠臣) 사재감(司宰監) 주부(主簿) 최공(崔公)의 휘(諱는 잠(潛)이고 字는 사강(士剛)이며 화순최씨이다. 고려시대에 화순군(和順君) 부(溥)가 계셨으니 이분이 화순최씨 시조(始祖)이시다. 6대조 준(濬)은 문과(文科)에 합격(及第=合格)하여 사인(舍人)이 되고 자빈(自濱)을 낳았다. 문과(文科)로 대사성(大司成)이 된 자빈은 함(涵)을 낳았다. 첨정(僉正) 함(涵)은 유청(惟淸)을 낳고 유청은 한(漢)을 낳았다. 한(漢)은 무과(武科)하여 우후(虞侯)가 되고 효원(孝源)을 낳으니 곧 공(公=潛)의 아버지이시며 삼례찰방(參禮察訪)이 되었다. 그때 정여립(鄭汝立)이 호남(湖南)에 살고 있으면서 까까운역(驛)에 속한 사람들을많이 압박하여 노비가 되게 하니 이 무렵(孝源 前後) 찰방(郵官)들은 그 세력이 두려워 감히 누가 어찌하지 못하였는데(莫) 공(公=孝源)이 홀로 분연히(크게 힘을 내어) 노비를 모두 본 고장으로 돌려보냈다(推出=推刷). 이로 인하여 정여립의 어찌할 수 없어 드디어(遂) 벼슬을 버리고 그 집으로
광복71주년, 잃어버리고 버림받은 애국, 정부가 나서 바로잡아야 광복 제71주년인데 … 독립운동가 후손 정병기씨 38년째 ''고투'' 생각하면 분통이 터진다. 나라위해 목숨 받치고도 잊어지고 잃어버린 빛이 바랜 애국으로 전락 하다니? 잘못되고 왜곡된 역사를 지금 바로잡지 못한다면 정말 큰일이라고 본다. 비록 힘들고 어렵게 살아간다 해도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조가 되어야 할 것이다. 나의 소원은 나라위해 목숨을 받치신 증조부님의 명예를 찾아 바로 세워 자손 된 도리를 다하는 일이다. 일제강점기 증조부 항일독립운동 나서고 집안은 풍비박산 나고 후손들은 고향 떠나 머슴살이전전 가난은 달고 살아야 했다. 나라가 추슬러지고 잘살면 살필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아 나라위해 목숨을 받치고도 별것 없구나 하는 생각이 자꾸만 머리에 떠오른다. 일제시대 경성형무소(현 마포 공덕동 서울서부지방법원 검찰청)에서 옥사한 증조부가 독립투사였다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 국가를 상대로 35년째 지루하고 고독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정병기(59)씨. 그는 ‘광복 제71주년’인 올해도 어김없이 아픈 몸을 이끌고 방방곡곡을 누비고 있다. 증조부가 독립투사였다는 사실을 입증할 만한 단서만
오늘 현충일이자 고조선 단군 임검(왕검ᆞ임금) 탄신일 입니다ᆞ 집에서라도 차와 향으로 간소하게 나마 묵념과 참배를 올리고 경건하게 보냅시다ᆞ 단군이란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의 통치자를 의미하는 칭호다. 고조선은 BC 2333년에 홍익인간 이화세계를 건국이념으로 세워진 나라로, 2096년 동안 존속된 분명 선진국으로 조선시대 규원사화에는 고조선 47대 단군의 재위기간과 치적 등 자세하게 기록돼 있다. 단군왕검 탄신일 기록은 고려말 재상이자 대학자인 행촌 이암의 단군세기에 나온다. “왕검의 아버지는 단웅(檀雄)이고 어머니는 웅씨 왕의 따님이며,신묘(서기 전 2370)년 5월 2일 인시(寅時, 새벽 3시~5시)에 박달나무(檀木)밑에서 태어났다. 신인의 덕이 있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경외심으로 따랐다”고 명시했다. [출처]국조단군임금 탄신일ᆞ현충일|작성자대이거사
일본 천황이렇게 사과 했다 Click→https://www.youtube.com/watch?v=z3dH0fAWB9Efeature=player_embedded YS C Published on Aug 7, 2015 설명 그럼 됐다! 더 물고 느러지지말자 From: Hung Ju Yu yuhungju@hotmail.com 일본 천황의 혈통 고백 Click→https://www.youtube.com/watch?v=oWLq88RwQ1w#t=24.8439323 casio22equal5 Published on Sep 11, 2015 일본 황족이 백제 혈통인것에 인정함. Dr. Wung Chang 張 雄(Aka Dr. Eugene Chang攸鎭)拜上 Former 전(前)U.S. Presidential Advisory Commission Member 미국 대통령정책자문위원*Republic of Korea 18th Presidentail SaeNuRi-Party PARK GEUN-HYE CanidateCentural Election Committee Professional Generalize HQ Special Assistant*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선거 새누리당 박근혜 후
한국정치 발전위해 정치인식 패러다임 먼저 변해야 정치권 구태와 관행 과감히 청산하고 국민을 위한 새로운 정치 실천해야, 국민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바라보며 함께 하는 국민을 위한 생활정치 실천해야 하며 제20대 국회는 여소야대의 정치적 현실에 야권도 이제는 책임을 지는 책임정치를 반드시 실천해야 할 것이다. 또한 국익을 위하거나 국민을 위하는 일에는 여.야가 따로따로가 없이 한목소리가 나와야 하며 서로 협치를 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한국정치 이제는 원칙과 기본을 지키고 상식이 통하는 실물정치인 생활정치를 실천해야 할 때이다. 정치지망생. 후보 그리고 유권자 인식의 전환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며, 당선자가 정치인이라면 생활정치를 실천해야 하고 단체장이라면 생활행정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미래지향적인 사고와 실천이 없이는 정치혁명을 이루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우선 지역할거주의를 타파해야 하며 독선과 아집을 버리고 마음을 비워야만 큰 정치를 할 수 있다고 본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선진정치 실현에 지역이나 고향 혈연 지연 학연관계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우리는 지역발전과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는 후보자의 인물이 제일 중요한 싯점을 지나치고 있다
북한 교과서에 실린 광주 5.18 광주단체는 이제 죽은 목숨! 북한의 정부기관인 교육성이 국정교과서에 5.18이 김일성의 주체의 기치로 저지른 사건이라고 시인하였다. 북한정권이 5.18에 개입하였다고 자랑스럽게 공식선언한 것이다. 북한정부기관이 공식발행한 교과서인 만큼 5.18이 북한정권의 소행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더 이상의 증거는 없을 것이다. 5.18이 북한정권이 저지른 사건임을 증명하는 확실하고 새로운 증거가 이 번에 또 하나 드러났다 5.18이 김일성의 교시에 따른 주체의 기치로 일으킨 사건이라고 북한교과서에 실린만큼, 5.18은 북한정권이 저지른 군사침략의 확실하고 명백한 증거가 된다. "북한은 남한의 민주화 시위와 반정부운동, 파업은 모두 김일성 교시에 따라 일어난 것으로, 특히, 광주 민주화 운동은 주체의 기치에 따라 남조선 애국 인민이 호응해 일으킨 가장 성공한 인민혁명사건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광주단체는 이제 죽은 목숨이다! 북한정권이 광주단체를 버렸다! 조국을 배신한 자들은 북한정권도 배신한다는 사실을 북한정권이 더욱 더 잘 알고 있다. "배신자들에게 총살집행이 있을 뿐이다." 북한정권이 가장 실천적으로 행하는 말이다
.bbs_contents p{margin:0px;} ◆선진국으로 가는길. 가까운 친지끼리 팀을 만들어 유럽의 몇 나라를 여행한 일이있다. 그때 스위스에서 겪었던 일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될만큼 인상적인 것이었다. 다음 목적지로 가기위해 이른아침 임대한 버스에 승차하려고 했을때 일행중 한분이 인솔자인 내게 긴히 할 얘기가 있다고 했다. 사연인즉, 아침에 일어나니 상반신의 앞뒤가 몹씨 가렵고 피부에 붉은 반점들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몸에는 열도 있었다. 다 알다시피 해외여행중 한사람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일행 전체의 스케쥴에 차질이 일어날 수 있으며 자칫 모두가 어려워 질수도 있다. 나는 잠시 이 돌발사태에 대해 냉정하게 생각한후 우선 스위스인 운전사에게 의논해 보기로 했다. 내 얘기를 다 들은 운전사는 버스에 장착된 전화로 누군가와 한참동안 통화했다. 그리고는 곧 회답이 올것이니 출발하자고 했다. 약 20분후, 전화가 왔고 운전사는 버스를 길옆에 세운후 지도를 꺼내 펴놓고 자세히 살피면서 통화를 계속했다. 통화가 끝난후 그는 내게 통화내용
대한민국 최고의 원로 행동하는 양심의 언론인 조갑제 닷컴 pp 全斗煥(전두환) 유머(Humor) 모음 "담배를 피우는 건 肉食(육식)이 아니라 菜食(채식)입니다." 월간조선(2000년1월호) "두 분이 다 대머리이신데 나와 셋이 나가면 주변이 환해질 겁니다. 야간경기 때 우리가 나가면 선수들이 행복해 하겠어요." 趙甲濟 수년 전 全斗煥 전 대통령이 투표를 한 뒤 젊은 기자들에게 에워싸였다. 텔레비전에 이런 말을 하는 장면이 잡혔다. "요사이 기자들이 왜 나한테 그렇게 부정적인지 모르겠어. 나한테 당해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말이야." 나처럼 그로부터 당해본 기자는 그를 옹호하는 데 언론자유가 보장되는 시대를 만나 기자 생활을 시작한 이들이 더 심하게 그를 공격하는 현상을 지적한 유머이다. 오늘 한 民畵 전시회에 갔더니 全斗煥-李順子 부부가 축하객으로 참석하였다. 민화를 해설하던 사람이 "어른께서 자리를 함께 하셔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하니 全 전 대통령은 의자에서 일어나는 시늉을 하면서,"그러면 나갈까요?"라고 하여 좌중을 웃겼다. 역대 한국 대통령들 중 유머감각에선 단연 1등이다. 전두환 유머집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이다.
도둑에게도 도(道)가 있거늘 김 중 위 평소의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도(道)는 갈고 닦는 것이고 덕(德)은 쌓거나 베푼다는 뜻으로 쓰고 있다. 그러나 이런 개념을 평생 갈고 닦으며 쌓아온 동양의 선인(先人)들이 노자나 장자나 공자인 것만은 분명하다고 여겨지는데 이들을 읽어 보아도 아리숭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예를 한번 보면 어떨까! 장자가 도둑의 대명사라고도 할 도척(盜跖)을 보고 묻는다. 도둑에게도 도(道)가 있느냐고 말이다. 그러자 도척이 거침없이 대답을 한다. 도둑이라고 하여 도가 없을까 싶으냐는 투다. “감춰진 남의 재물을 알아내는 것이 성(聖)이요 성공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지(知)요 앞장서서 뛰어 들어 가는 것은 용(勇)이요 동료를 먼저 내보내고 마지막에 나오는 것은 의(義)요 훔쳐온 물건을 고루 분배하는 것은 인(仁)입니다. 예로부터 이 다섯 가지를 갖추지 못한 자가 큰 도둑이 된 예는 없습니다.” 이런 것이 도둑의 도라면 도 아닌 것이 없겠다 싶다. 그렇다면 우리의 정치인들에게는 어떤 도나 덕이 있으며 또 있어야 하나를 생각해 보고 싶어졌다. 아무리 보아도 덕이나 도를 찾을 수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런 것을 덕목으로 삼으면 어떨까 싶다. 첫
70,80세대가 걸어온 길,몸으로 겪은 역사우리의 후손들아! 한번 얽어보라! 1945년 8월 15일,광복이 되어 우리들은 본래의 성과 이름을 되찾았다. 중학교 시절 처참한 6.25전쟁을 겪으면서죽을 고생을 다 했다. 대학을 재학중이거나 마치고 징집 영장을 받았다.춥고 배고픈 자유당 군대에서최전방 부대, 또는 후방에서 군 복무를 마쳤다. 복학하자 4.19가 터져 데모를 했으며,그후 5.16을 겪었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압축성장’의 한 가운데서월차휴가, 연차휴가도 없이 일만 했다. 우리들이 어렸을 때 처음 타본 게 소달구지였다.그러나, 지금은 자가용 승용차를 타고 다닌다.파란만장한 격변기를 살아온대표적인 구 세대인 셈이다. 현재 70,80 세대는 거개가 비슷한 세월을 살았다. 서울대 사학과 주경철 교수는, 우리 세대를 이렇게 표현했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현재 생존해 계신 우리나라 어르신들은,관솔불로 불 밝히던 어린 시절을 보낸 후전등과 상하수도를 사용하고랃라디라디오와 텔레비전을 거쳐이제는 컴퓨터와 스마트폰까지 익숙하다. 식민지, 광복, 전쟁, 혁명, 군사정변, 계엄령,대통령암살, 개헌 등, 다른 나라에서는거의 구경하기 힘든 일들을 모두모두 겪으며민주화에
세상만사 서석구 변호사 영화 변호인의 Motive인 부림사건의 재판장이었던 서석구 변호사가 우리 주변의 News와 Issue에 대해 시원하게 한마디 합니다. 안녕하세요 미국 LA YTN 라디오 서석구 변호사의 세상만사 l대통령 거부권 행사 / 이에 따른 여야의 공방 / 한미 동맹 및 북한인권 고취 방송 링크를 소개해 드립니다. 링크를 클릭하시면 방송을 들으실 수 있고 그 이전 방송을 클릭하시면 임을 위한 행진곡을 5.18곡으로 지정할 수 없는 이유를 밝힌 방송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Click→http://ytnradio.us/frm/program-detail-content.asp?idProgm=61gubun=againseq=4830.9999page=1 교회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 상임대표 변호사 서석구 올림 Dr. Wung Chang 張 雄(Aka Dr. Eugene Chang攸鎭)拜上 Former 전 U.S. Presidential Advisory Commission Member 미국 대통령정책자문위원 Present 현 *새근성 미주연합 상임고문*NHNENC Neighborhood Coun
우주의 방문객 2004/12/26 20:49 http://blog.naver.com/godyouare/100008844745 지도령들은 그 시절에 때때로 다른 행성계의 영혼들이 지구를 방문했었다고 말한다. 그 영혼들이 자신의 행성에 있을 때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지만 지구에 올 때는 인간의 형상을 취할 수 있었다. 그들은 아멜리우스나 다른 초기의 영혼이 그러했던 것처럼 몸이 가벼운 그림자와 같은 존재들이었기 때문에 생각을 투사함으로써 원하는 그 즉시 지구를 오고 갈 수 있었다. 성서 에제키엘(에스겔)서에 묘사된 이상한 방문(에제키엘서 1:4-28)이 연상되면서 부쩍 호기심이 발동되었기 때문에, 나는 우주에서 온 영혼들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려 달라고 요청했다. 지도령들은 다음과 같이 썼다. “그들은 원자를 조작함으로써 마음대로 나타나거나 사라질 수 있었다. 같은 방법으로 돌의 원자구조를 분해해서 자신들이 택한 장소에 재구성하여 놓음으로써 거대한 암석을 옮기기도 했다. 그들이 그런 일을 했던 이유는, 지구인들도 지구의 물질적 집착과 결별하고 공기보다 가벼운 생각의 형태가 되면 지구인 역시 이런 능력을 다시 얻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이런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곳 TOP 13 13.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Chernobyl) 인류 역사상 최악의 참사 중 하나로 기록된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 (1986년 4월26일) 수만 명이 사망하고 인근 생태계가 모조리 파괴됐다체르노빌 인근도시 프리피야트에는 당시 원자력 발전소 노동자들과 그 가족 등 약 5만명이 거주하고 있었는데사고 발생 뒤 주민들이 모두 빠져나가 유령도시로 남아있다 텅빈 프리피야트 시가지에는 지금도 어린 아이의 신발1986년에 발간된 신문, 놀이공원의 자동차 등이 뽀얀 먼지를 입고 흩어져 있다 원전 반경 30㎞ 이내 지역은 여전히 사람이 살 수 없는 통제구역으로 묶여 있지만2002년부터 사고 현장을 방문객들에게 개방하고 있다 관광 상품으로 나와 있는데재앙의 근원지인 제4호 원자로에서부터 버려진 도시야생의 숲으로 변한 인근 지역까지 돌아볼 수 있다 인원제한이 있으므로 사전 예약이 반드시 필요하다현재 체르노빌 지역의 방사선 수치는 단기간의 노출로는 크게 건강에 지장을 주지 않는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지식과 기술만으로는 인류를 행복하고 품위있는 삶으로 인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
UFO 소 납치 영상,UFO극비자료 51구역 로스웰ufo 사건 UFO 소 납치 영상 동영상 논란 젖소 납치 ufo 소8000마리공중부양 ... UFO극비자료 51구역 로스웰ufo 사건 외계인존재 증거에 대한... 외계인은 있다 ? “외계인 침공”으로 NWO가 실현되다 세계를 하나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이는 로날드 레이건이 냉전의 한 가운데서 던졌던 유명한 질문이다. 아래 단편 영화가 이에 대한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2018년 지구가(외계인의) 공격을 받았다. 핵무기들이 몇 몇 개발도상국가들을 황폐하게 만들었고, 통제력을 잃은 정부들이 UN으로 달려가 군사적인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조만간 러시아를 포함한 강대국들도 이 연합에 함께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 인류 최악의 순간, 하나 된 세계(NWO)에 대한 비젼이 비로소 실현된다. 외계인의 침공으로 세계정부가 실현된다는 메시지를 담은 10분짜리 단편영화 기사원문 Short Film Depicts NWO Established Through “Alien Attacks” * 로널드 레이건은 재임 당시였던 1987년 9월 21 UN에서 “외계인의 침공과 같은 전세계적인 위협이 세계를 하나(
일본의 해저 피라미드
재학생 수십명이 집단 정신착란증세를 일으킨 페루의 한 중학교가 공개됐다. 지역 주민들은 학생들이 악령에 씌인 거라고 주장한다. 지난 18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 등 외신들에 따르면 페루 북부 타라포토의 한 중학교가 최근 20여 일 사이 저승사자 공포증을 호소하는 학생들로 난리를 겪고 있다. 지금까지 병원에 실려 간 학생들만 80명. 이들은 “검은 옷을 입은 누군가 뒤에서 쫓아온다”거나 “누군가 내 목을 잡고 있다”며 발버둥 쳤다. 학생들 영상도 공개됐다. 발을 허둥대거나 바닥에 누워 입을 벌린 채 어찌할 줄 몰라했다. 거품을 문 채 몸을 부르르 떠는 학생도 있었다. 피해 학생들 나이는 11~14세로 알려졌다 . 사건이 처음 벌어진 건 지난달 29일이다. 현지의 한 의사는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겠다”며 “앞으로도 같은 일이 계속 생길 거라는 예감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까지 80명이 병원으로 옮겨졌고, 여전히 ‘감염’은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한 학부모는 “우리 딸도 학교에서 기절했다”며 “병원에서 깨어난 뒤에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고 답답해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학생은 “다시 생각해도 끔찍하다”며 “누군가 뒤에서 쫓
몇일전에 야생아들에 대해 글을 썼는데 그와 다르게 부모의 가르침,보살핌을 받으면서 동물들과 교감을 했던 아이에 대해 써보려고 합니다. " 이 아이는 오래 살지 못할수도 있습니다"1990년 6월 4일, 보통의 아이에 비해 너무나 작고 여린 여자아이가 태어났을때 의사가 처음으로 한 말이었습니다. 이 여자아이는 몽골에 이어 두번째로 세계에서 가장 적은 인구밀도를 가진 남 아프리카의 나미비아 공화국에서 태어난 첫 프랑스 인으로 그녀의 부모 알랭더그래와 실비에 로버트는 나미비아의 수도인 빈트후크에서 아프리카의 야생동물을 찍는 사진작가였습니다. 부모로부터 티피라는 이름을 받은 이 여자아이는 주변의 우려와는 달리 아프리카의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잔병치례없이 절친한 아프리카의 동물 친구들과 함께 야생을 누비는 건강한 소녀로 성장해 갔습니다. 티피의 생애 첫 친구인 코끼리 ' 아부 ' 티피는 이 28살 연상의 5톤짜리 친구를 오빠라고 부르며 잘 따랐고 아부 역시 티피가 자신에게 기대어 낮잠을 잘때면 피부를 찔러대는 아프리카의 파리들을 열심이 쫒아내 주었다고 합니다. 물놀이 하는모습과 같이 산책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뭉클해지네요^^ 아부와 함께 티피와 가장 친
신앙시집 발간 세상에 참뜻 전달, 25년간 미국 시카고에 불교포교 활동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졸업한 재원, 19년전 불심사 창건한 ‘애국 신앙인’ 서울 강북구 우이동의 신령한 북한산 기슭아래 조용한 주택가에 위치한 ‘불심사(佛心寺)’는 천혜인 주지 스님(이하 혜인 스님 / 서울시 강북구 우이동 154-6)의 포교원이자 독서를 하며 공부를 하는 도량이다. 시인으로도 유명한 스님은 평범한 일상속의 시 이면서도 문구 하나하나에 참신앙의 깊은 뜻을 함축해 감동을 주는 시로 널리 알려져 있다. 부모님이 불자인 가문에서 4녀1남 중 막내로 성장하던 고등학교 시절부터 일찍이 신앙과 문학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천혜인 스님은 특이하게도 이화여대 기독교학과를 졸업한 재원이기도 하다. 24세 때 출가한 후, 미국 시카고로 유학해 Chicago I.B.M Institute 입학 후 25년간 미국 포교활동에 전념해 왔으며, 귀국한 후 19년전에 우이동 불심사를 창건해 국내포교에도 일로매진하고 있다. 눈물의 모친 반대 불구 ‘출가’ 국내 유수의 여성대학 명문인 이화여대를 졸업한 혜인 스님은 32세에 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출가를 했다. 모친께서는 평범하게 있다가 시집가서 아이
많은 사람들을 추종하게 하고 소중한 돈을 헌금하게 하는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기적같은 영적 능력을 가진 남녀의 교주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예컨대 기독교를 내세워 전도를 하다가 종착역에는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며 천문학적인 대졸부(大猝富)가 된 교주도 있고, 불교에서 미래에 온다는 미륵불 사상으로 포교하다가 마침내 자신이 미륵불이라고 주장하고 결론은 대졸부(大卒富) 노릇을 하고 있는 교주적 남녀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나는 교주적 남녀들을 나름으로 종교천재라고 보며 이 글을 쓴다.성질 급한 혹자는 파르르 격노하여 나의 종교천재 주장론에 “희대의 사기꾼이지 무슨 종교천재?” 일언지하에 맹공(猛攻)을 퍼붓는 사람들은 있다. 이러한 주장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나의 분석에는 신비한 일이 있는 것이다. 나는 예화들 들어 설명해보겠다. 동학이요, 천도교의 교주인 수운(水雲) 최제우도 애초에는 역시 불교에 입문한 승려였다. 그는 당시 사회에서는 과거시험을 통해 관직에 입신양명(立身揚名)할 수 없는 유학자의 서자(庶子)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인정을 받는 유학자였고, 아버지로부터 유학의 글을 배웠다. 하지만 그는 출신이 서자여서 관계에 출세할 수 없다는 것을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 1925년 한국
①예수 발자취 따라…전국이 '원조' 성지 예수 안 믿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두 민족의 순례객 모시기 ※편집자주 = 인구 840만명의 이스라엘은 우리나라 강원도 크기에 불과한 작은 나라지만 연간 300만명이 찾는 관광 강소국입니다. 연합뉴스 예루살렘 특파원이 전통적인 성지 순례 관광 상품 뿐만 아니라 레저 상품까지 개발하고 있는 이스라엘 관광산업의 현주소를 두 꼭지로 나눠 소개합니다. (예루살렘=연합뉴스) 김선형 특파원 = "성경에 따르면 아마도 여기쯤이라고 합니다." 14일(현지시간) 이스라엘 예루살렘 올드시티(구시가지)에서 유대인 여성 가이드는 십자가의 길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를 걸으며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가 "비아 돌로로사는 라틴어로 고난·수난의 길을 뜻한다"고 설명하는 동안 관광객들은 흐느끼거나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그는 "가이드 학교에서 배운 대로 관광객들에게 설명할 뿐"이라며 유대교도인 자신은 "예수나 기독교에 관한 확신은 없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예루살렘 올드시티(구시가지) 기독교 구역의 골고다 언덕 찾은 순례객들. 이스라엘 전체 인구 840만 명 가운데 기독교 인구는 16만1천 명(약 2%)뿐이다. 이
통일교 문선명의 생애 격동기 한국의 위인 문선명 문선명 文鮮明 Moon Sun Myung 본명문용명(文龍明)출생1920년 2월 25일(음력 1월 6일) 일제 강점기 평안북도 정주군 덕언면 상사리 2221번지사망2012년 9월 3일 (92세) 대한민국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송산리 청심국제병원사인감기와 폐렴으로 인한 합병증매장지대한민국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송산리 천성산국적대한민국학력와세다대학 부설 고등공업학교 전기과활동 기간1954년 5월 1일 ~ 2012년 9월 3일교파통일교수행 성직통일교 총재칭호참아버님칭호 기간1960년 4월 11일 ~직업종교인배우자한학자자녀문예진, 문효진, 문혜진, 문인진, 문흥진, 문은진, 문현진, 문국진, 문권진, 문선진, 문영진, 문형진, 문연진, 문정진웹사이트가정연합 홈페이지, Peace TV
유불선통합교 하늘법도 종교대학 김정임 설립자 인터뷰 기도자가 흰옷을 입고 나타나 약 10m에 달하는 탑을 돌며 하늘을 향해 기도하는 종교가 있다. 유불선통합교가 바로 그 종교다. 다소 생소한 이 종교를 알기 위해 본부를 찾아갔고, 설립자 김정임 대표를 이 종교의 상징인 기도탑 앞에서 만날 수 있었다. 김정임 대표가 소개하는 유불선통합교는 유불선 어느 종교를 갖고 있던 사람이든 모두 포용이 가능한 종교였다. 유불선 즉, 우리나라의 토속종교와 불교와 기독교를 모두 포용한다는 뜻이다. 그는 “이 같이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종교를 갖고 신앙생활을 하지만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며 “그들이 개인의 소원을 이루도록 하나님께 정성을 드리거나 탑을 돌며 기도해주는 것이 내 역할이다”고 말했다. 그는 약 15년 전 사고로 8시간 동안 의식을 잃고 죽음을 겪었다고 말했다. 이때 많은 것을 보고 그에게 보이는 환상과 음성을 따라 대전시 동구 효동에 약 10m에 이르는 돌탑을 쌓았다. 이 일이 있은 후 그는 25년 동안 직업으로 삼던 의상 디자이너도 그만뒀다. 김 설립자는 유불선통합교의 설립 동기에 대해 “하나님은 모든 종교에 다 다른 특색을 주신다”며 “우리 종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