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표누공(簞瓢屢空)
- 대 밥그릇 밥과 표주박 물이 텅 비다, 아주 가난하다, 청빈생활을 하다.
[소쿠리 단(竹/12) 표주박 표(瓜/11) 여러 루(尸/11) 빌 공(穴/3)]
가난한 생활을 나타내는 성어는 다양하다. 앞서 나왔던 赤貧如洗(적빈여세)처럼 의식주 전반에 걸쳐 빈한한 상태를 나타낸 말이 있는가 하면 옷이 헤어져 너덜너덜하거나 벽이나 천장이 뚫어져 지내지 못한다는 표현도 많다.
사람이 먹지 못하면 생명을 유지하지 못하므로 음식에 관한 것이 우선적이겠는데 대표적인 것이 대나무로 만든 밥그릇의 밥과 표주박에 든 물이란 簞食瓢飮(단사표음)이다.
孔子(공자)가 아꼈으나 요절한 수제자 顔回(안회)가 극빈의 생활 속에서도 학문을 닦는 태도를 높인 데서 나왔다. 청빈의 대명사 대소쿠리 밥과 표주박 물을 줄인 簞瓢(단표)마저 자주 텅 비었다(屢空)는 말은 한 단계 더한 가난이다.
이 말은 중국 六朝(육조) 최고의 시인인 陶淵明(도연명, 365~427)의 ‘五柳先生傳(오류선생전)’이란 글에서 나왔다. 본명 陶潛(도잠)인 그를 말하면 먼저 사람들은 자연과 더불어 전원생활의 즐거움을 동경하는 歸去來辭(귀거래사)나 이상향 武陵桃源(무릉도원)을 떠올린다.
하급직에 있을 때 지방관을 허리 굽혀 맞이할 수 없다고 五斗米折腰(오두미절요)란 말을 남기며 사퇴했던 일화도 유명하다. 도연명은 자서전 격인 이 글에서 문 앞에 버드나무 다섯 그루를 심어 놓고 스스로 五柳(오류)선생이라 호를 지었다며 유유자적 청빈한 생활을 즐긴다. 단지 술을 못 마셔 아쉽다면서 거처를 소개하는데 가난을 모두 모은 듯하다.
그 부분만 소개해 보자. ‘담장은 무너져 쓸쓸하고 바람과 햇빛을 가리지도 못했고(環堵蕭然 不蔽風日/ 환도소연 불폐풍일), 짧은 베옷은 여기저기 기워 입었고 대나무 밥그릇도 자주 텅 비었다(短褐穿結 簞瓢屢空/ 단갈천결 단표누공).’
이런 속에서도 선생은 항상 느긋했고 ‘늘 문장을 지어 스스로 즐기면서 자신의 뜻을 나타내고(常著文章自娛 頗示己志/ 상저문장자오 파시기지), 욕심을 버리고 그런 상태로 일생을 마쳤다(忘懷得失 以此自終/ 망회득실 이차자종)’고 했다. 후일 黔婁(검루)란 사람이 그를 극찬한다.
‘가난하고 천함을 걱정하지 않았고, 부귀에 급급하지 않았다(不戚戚於貧賤 不汲汲於富貴/ 불척척어빈천 불급급어부귀).’
혼탁한 세상을 멀리 하거나 자신의 뜻을 펴지 못해 초야에 묻힌 은자들은 예부터 다수 있었다. 높은 벼슬도 마다하고 나물 먹고 물마시며 安貧樂道(안빈낙도)의 생활을 이어간 이런 군자들은 우러름을 받았다. 바쁜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꿈같은 얘기다.
이전보다 생활이 편리하고 모든 물자가 풍족해졌다 해도 까마득한 격차에 절망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는다. 태어날 때부터 빈부는 뚜렷하여 오를 수 있는 길이 막히고 돈 있고 권세 있는 자들은 불법 편법으로 더욱 쉽게 재산을 끌어 모은다. 일자리 구하기에 지친 젊은 세대나, 수명이 늘어나는 만큼 급증한 저소득층의 노인들은 허탈할 뿐이다.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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