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리버보이를 원본으로 읽었다. 예전에 선생님께서 빌려주신 한국말 번역본도 읽었었지만, 그때는 대충 읽었었다고 판단이 되어 다시 찾게 되었는데, 고평에서
원본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다. 다시 읽어보니까 은근 뜻 깊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의 의미를 담은 책이다.)
브레이마우스에서
조금 떨어진 시골로 여름휴가를
떠나는 것이 원래 일정이었다. 하지만 하루 전날, 제스의 할아버지가 심장마비에 걸리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께서는 휴가를 떠나자고 고집을 부리셨다. 또, 몸이 많이 쇠약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림을 계속 그리겠다고 하셨다.
휴가를
떠나기 전에 할아버지는 '리버보이'라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셨는데, 제스는 이 그림이 왜 중요한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강은 있었지만 '보이' 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스가 휴가 집(?) 앞에 있는 강에서 수영을 하기 시작을 하자, 한
남자아이의 존재를 느끼기 시작했다. 할아버지가 점점 쇠약해짐과 동시에 그 '리버보이' 와의 만남은 더 잦아졌다. 할아버지와 완성이 덜된 그림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자, 리버보이는 "네가 할아버지의 손이 되어드려. 그림을 완성해. 그러면 모든 게 해결될 거야."라고 대답해준다. 그래서 제스는 할아버지의 손을 부축해가면서
그림을 그려준다. 그림을 완성했다. 그런데 ''보이'는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원래 그려져 있던 강에 검은색 점들을 찍음에 불과했다. (나중에 제스는 이 검은색 점들이
리버보이의 얼굴을 이룬다는 걸 알게 된다)
시간은
지났고, 할아버지의 병이 너무 깊어져 브레이마우스 병원에 입원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 리버보이는 제스에게 자신과 함께 바다까지 수영을 하자고 한다. 할아버지와
같이 있어야 할지, 할아버지를 걱정하지 말라고, 다 괜찮을
거라고 말하는 리버보이를 따라가야 할지...... 고민 끝에 제스는 리버보이의 제안에 동의를 하고, 바다까지, 그러니까 할아버지가 입원해있는 브레이마우스까지 리버보이와
함께 수영을 한다. 바다에 도착을 했고, 강은 바다로 흘러
들어가면서 없어졌다. 그와 동시에 리버보이도 없어졌고, 저
멀리 브레이마우스 병원에서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스는 모든 것이 괜찮을 것이라고 느낀다. 리버보이가 말한 것처럼.
이 책의 가장 중점적인 포인트는 ‘인생’ 이다. 작가가 인생을 ‘강’ 그러니까 ‘리버’로 비유를
한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 읽었을 때는 막연하게 줄거리만 재미있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 보니까 제대로 읽지도 않았을 뿐 더러 내용도 제대로 파악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책에서는 제스와 리버보이와의 대화가 나오는데, 여기서 책의 핵심
내용이 나온다.
리버보이는
이렇게 말한다:
“강을
내려다보는 것은 하나의 인생을 보는 것과 같아. 이 강은 여기서 태어났고, 지정된 길을 따라서 흘러가. 어떨 때는 빠르게, 어떨 때는 느리게, 어떨 때는 일 적선으로, 어떨 때는 굽이지게, 어떨 때는 잔잔하게, 또 어떨 때는 요동치면서 흘러가. 멈추지 않고 흘러서 바다까지 가지. 이 강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던, 아름다운 끝을 만나. 제스, 죽음이 아름답다는 것이 아니야. 하지만 그렇다 치면 산다는 것도 항상 아름답지는 않아. 이 강은
흐르면서 여러가지 고비를 만나겠지만, 반드시 흘러야 하기 때문에 계속 흐르게 될 거야. 흐르고 흘러서 바다라는 끝을 만나더라도 우리가 서있는 이 자리에서 모든 과정이 다 리셋이 되어있을 거야. 강의 이런 점들이 나를 편안하게 만들어줘. 하지만 이제는 강을 떠날
때가 되었어. 강을 계속 붙잡아 놓을 수는 없잖아? 이제
나에게는 한 가지 임무만이 남았어. 바로 바다까지 수영을 하는 거야.
나와 함께 가주겠니?” (지금
번역본이 없어서 직접번역을 해보았는데 제대로 됐나 싶네요……)
작가가 ‘인생’ 이란 걸 정말 아름답게 표현을 한 것 같다. 이 한 문단이 이야기
전체를 하나도 묶어 놓은 것 같다. 제스는 리버보이와 만남으로서 할아버지의 죽음으로부터의 평정을 찾았고, 리버보이는 제스 덕분에 강을 떠날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리버보이’를 그림으로써 죽음을 편안하게 맞이 할 수 있었다. 이렇게 쓰고 나니까 세 사람이 동일 인물로 보인다. 모두 무엇인가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또 다른 관점으로 보자면 지금의 우리를 말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우리는 무언가를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너무나도 사랑하지만 이젠
헝겊이 되어버린 인형이 됐건, 공부를 하기 위하여 노는 걸 포기하는 게 됐건, 무언가를 포기하는 건 쉽지 않다. 작가가 포기해야 하는 건 포기하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걸까?
아무튼 ‘리버보이’는 정말 감동적인 책이었고,
앞으로도 쭉 그럴 것이다.
첫댓글 작가가 어떤 의미로 책을 썼을지 궁금해요.. 왜 인생을 강에 비유했을까요?
처음 읽을 때와 두번 째 읽을 때가 달라지지. 똑같은 책인데, 책에 대한 해석이 달라지는 까닭은 뭘까?
인생이 물 흐르듯 흘러서일까요?
오.. 그럴 듯 한 것 같네여
인생을 강으로 표현한 작가가 인상적이네요..
그쵸? 저 이거 읽고나니까 왠지 모르게 눈물이 핑 돌더라고요 ㅎㅎㅎ 저 원래 눈물 없는 사람인데 ㅋㅋㅋㅋ
리버 보이가 그런 뜻이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