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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문(金文)에 보이는 패(覇)는 우(雨), 가죽을 뜻하는 혁(革), 그리고 월(月)이 결합된 회의(會意)에 속하는 글자이다. 이 세 요소의 회의(會意)를 통해 나타내고자 했던 본래의 의미는 짐승의 털을 제거하고 무두질을 한 다음에야 비로소 가죽[革]이 되듯이, 광풍과 폭우가 그치고 날이 갠 후 나타난 달[月]이었다. 세 요소의 형상들은 소전(小篆)에 이르러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자리잡게 되었다. 바로 이와 같은 상징에 비유된 것이 패주(覇主)이다. 춘추시대 천자가 통치능력을 상실하고 기존의 질서마저 무너져 천하가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지자 이를 빌미로 발호한 이른바 춘추오패(春秋五覇)는 스스로 달과 같은 존재를 꿈꾸었는지도 모른다. 맹자(孟子)는 오패(五覇) 가운데서 제나라 환공(桓公)이 가장 강성(强盛)하였다[五覇桓公爲盛]고 하였다. 패심(覇心)은 여기서 멈출 줄 모르고 태양과 같은 존재를 꿈꾸었으나 인의(仁義)를 경시하고 권모와 술수로 패점(覇占)을 일삼던 패도(覇道)는 패권(覇權)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진정한 왕자(王者)의 뜻은 백성을 부유하게 하는데 있지만 패자(覇者)는 오로지 더 많은 땅을 차지하려는데 있다[故王者富民, 覇者富土]. 공자는 인의(仁義)를 가장한 폭력을 가장 싫어하였다. 이럴 때는 정말이지 공자(孔子)가 우리의 역사였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