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복(三伏) 이야기
오늘은 초복(初伏)이라 이웃에 사시는 누님(85세)을 모시고 백운역 근처에 있는 음식점에 가서 오리 진흙구이로 복다림(복달음)을 해 드렸다.
열흘 간격으로 오는 한여름의 삼복(三伏)은 일 년 중 가장 더운 시기로 ‘삼복더위’라고도 부르는데 복(伏)이 ‘엎드리다’는 뜻이니 음기(陰氣)가 양기(陽氣)에 눌려 엎드린다는 의미로 오행(五行) 중 가을철을 의미하는 금(金/陰)의 기운이 대지(大地)로 내려오다가 여름철의 더운 기운(陽)이 강렬하여 엎드려(伏) 복종한다는 의미이다.
초복(初伏)은 하지(夏至)로부터 세 번째 경일(庚日), 중복(中伏)은 네 번째 경일(庚日), 말복(末伏)은 입추(立秋)로부터 첫 번째 경일(庚日)이며 태양력(太陽曆)을 기준으로 정해졌다.
천간(天干) 중 일곱 번째인 경일(庚日)을 복날로 삼는 까닭은 경(庚)이 속성상(屬性上) 약(弱)하며 오행 중 금(金)으로 계절로는 가을을 상징한다. 따라서 금의 기운이 내장되어 있는 경일을 복날로 정해 더위를 극복하라는 의미가 있다.
복날은 열흘 간격으로 오기 때문에 삼복을 지나려면 20일이 걸린다. 그러나 해에 따라서는 중복과 말복 사이가 20일 간격이 되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는 월복(越伏)이라고 하는데 금년의 경우 초복(初伏)이 오늘(7월 13일), 중복(中伏)이 열흘 후(7월 23일), 말복(末伏)은 20일 후인 8월 12일이 되어 금년이 바로 월복(越伏)이다. 즉 삼복더위가 열흘 더 길어진다는 뜻이 된다.
월복이 되는 까닭은 말복(末伏)은 입추가 지난 후의 경일로 잡기 때문에 이런 경우가 생긴다.
복날에는 벼가 나이를 한 살씩 먹는다고 한다. 벼는 줄기마다 마디가 셋 있는데 복날마다 하나씩 생기며, 이것이 벼의 나이를 나타낸다고 한다. 또한 벼는 이렇게 마디가 셋이 되어야만 비로소 이삭이 패게 된다고 한다. 말복이 지나면 본격적으로 벼를 추수할 채비를 해야 한다는 데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복(伏)날의 세시풍속과 음식>
궁궐(宮闕)에서는 초복에 종묘(宗廟)에 피, 기장, 조, 벼 등을 올려 제사(祭祀)를 지내고 각 관청(官廳)에 여름의 특별 하사품(下賜品)으로 얼음을 나누어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 국수를 어저귀(아욱과의 식물) 국에 말아 먹거나 미역국에 익혀 먹기도 하고, 호박전을 붙여먹거나 호박과 돼지고기에다 흰떡을 썰어 넣어 볶아 먹기도 하는데, 모두 여름철의 시절음식(時節飮食)으로 먹는 소박한 음식들로, 국수는 장수하라는 의미가 담겨있는 음식이다.
‘복날에 비가 오면 청산(靑山) 보은(報恩)의 큰애기가 운다.’는 말이 있다. 충청북도 청산과 보은이 우리나라에서는 대추가 많이 생산되는 지방인 데서 유래한 말이다. 대추나무는 복날마다 꽃이 핀다는 말이 있으니 복날에 날씨가 맑아야 대추열매가 잘 열린다.
이날 비가 오면 대추 꽃이 떨어져 열매가 열리기 어렵고 대추농사가 흉년이 들게 된다. 대추농사를 많이 하는 이 지방에서는 생계에 지장이 있음은 물론 큰애기(처녀)들의 혼인비용에 차질이 생기니 처녀들이 울상이라는 의미겠다.
‘복날에 시내나 강에서 목욕을 하면 몸이 여윈다.’는 말이 있다. 복날에는 아무리 더워도 목욕을 하지 않는데 만약 초복에 부득이한 사정으로 목욕을 하였다면 중복 날과 말복 날에도 반드시 목욕을 해야 한다. 이런 경우 복날마다 목욕을 해야만 몸이 여위지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나 여인(아낙)들은 원두막이나 집에서 참외나 수박을 먹으며, 어른들은 산간계곡에 들어가 탁족(濯足 : 발을 씻음)을 하면서 더위를 피하기도 했다. 해안지방에서는 바닷가 백사장에서 모래찜질을 하면서 더위를 이겨내기도 한다.
조선 후기, 홍석모(洪錫謨)가 쓴『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개를 삶아 파를 넣고 푹 끓인 것이 개장(狗醬)이다. 닭이나 죽순을 넣으면 더욱 좋다. 또 개장국에 고춧가루를 타고 밥을 말아 먹으면서 땀을 흘리면 기가 허한 것을 보강할 수 있다. 생각건대『사기(史記)』에 진덕공 2년, 삼복(三伏) 제사를 지냈는데 성안 대문에서 개를 잡아 해충의 피해(蟲災)를 막았다는 기록으로 보아 개를 잡는 것이 복날의 옛 행사요, 지금 풍속에도 개장(狗醬)이 삼복음식 중 가장 좋은 음식이 된 것이다.”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또 1800년대 중국의 유만공(柳晩恭)은 “참외 쟁반에다가 맑은 얼음을 수정같이 쪼개 놓으니 냉연(冷然)한 한(寒)기운이 삼복(三伏)을 제어한다. 푸줏간에 염소와 양 잡는 것을 보지 못하겠고, 집집마다 죄 없는 뛰는 개만 삶아 먹는다.”라고 하여, 지금처럼 19세기 중국에서도 삼복에 개장국을 먹는 풍속이 있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고려 후기의 문집에는 삼복 풍속에 팥죽을 쑤어 먹으면 더위를 먹지 않고 질병에도 걸리지 않는다 하여 팥죽을 먹는다고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개장국을 먹는 풍속은 조선 시대 이후의 풍속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요즈음도 복날에는 개장국(보신탕/사철탕/영양탕)을 먹는 풍습이 전하는데 우리 속담에 ‘복날 개 패듯 한다.’라는 말이 있는 것으로 보아 삼복에 개를 잡는 것은 오래된 풍속이며, 예로부터 복날 영양식으로 개고기를 즐겨 먹었음을 알 수 있다.
원래 중국에서 복날 개를 잡는 것은 음양오행 사상에 근거한 것이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더위로 탈진하기 쉬운 한여름에 사람과 단백질 구조가 가장 유사하여 소화가 잘 되고 또 강장 효과가 있다고 믿어지는 개고기를 먹는 것이 하나의 풍속으로 굳어지게 된 듯하다.
서양의 일부사람들은 우리나라나 동양 사람들이 개고기를 먹는다고 야만인 운운하는데 상식 밖의 말이다. 나라마다 다른 문화의 차이, 식습관의 차이를 무시한, 자신들과 다르면 야만인으로 치부하는 오만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에 귀엽지 않은 동물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도 예전부터 개고기를 ‘정갈하지 않은 음식’으로 간주하였던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다. 개고기를 먹으면 상가(喪家)나 제사(祭祀)를 모시는 집을 방문할 수 없으며 아이를 낳은 집에도 갈 수 없다. 그래서 제사나 출산이 예정된 가정에서는 개고기를 멀리했다. 그러나 복날은 그러한 추육(醜肉)인 개고기를 먹는 것이 허용되며 또한 권장되기도 한다.
개고기를 먹는 것은 주로 남성들이다. 그러나 개고기가 아니라도 삼계탕이나 오리탕 등을 먹음으로써 복달음(또는 복다림)을 하였다. 즉, 복날 사람들이 어울려 좋아하는 영양식을 함께 먹는 것이 복달음인데 일반적으로 가장 많은 것이 보신탕과 삼계탕일 것이다.
복달음은 친구들끼리 어울려 하기도 하지만 자식들이 나이 드신 부모님을 위해 특별한 음식을 장만하여 대접하는 의미도 있다. 복날 자식들이 국수를 끓여 부모님을 대접하고 또 보신탕이나 삼계탕을 마련하여 드린다. 국수를 먹는 것은 장수를 뜻하며, 보신탕이나 삼계탕은 땀을 많이 흘려 탈진하기 쉬운 여름철을 잘 이겨낼 수 있도록 영양식으로 대접하는 것이다.
주로 여성들이나 아이들이 즐겨 먹는 복달음으로는 오리(鴨) 요리로, 탕이나 훈제 또는 진흙구이가 인기가 많고, 닭 요리는 중병아리(軟鷄)를 잡아서 백숙(白熟)을 만들어 먹는 것이 영계백숙인데 여기에 인삼(水蔘)을 넣으면 삼계탕이 되며, 요새는 전복을 곁들여 전복삼계탕이 인기를 끈다.
첫댓글 복날에 대해 정리를 다 해주셨네요.
모르던 상식, 잘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
좋은 상식 감사합니다
저는 다이어트문제로 보양식은 피하고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