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우, 하우두유두’
네 살이 채 되지 않은 딸아이 입에서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말이다. 깜짝 놀라며 아내와 눈을 마주친다. 아내 또한 한 방 먹은 표정이다. 그러면서도 “우와, 발음 죽이네”라고 말한다. 하긴 경상도 사람이니 영어발음에 열등감을 가지고 있던 아내다. 물론 남편이라는 사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영어 단어 외우는 시간에 수학 문제 푸는 걸 더 좋아하고 영어시험은 기본만 하자는 아이였으니, 영어실력이 오죽 하겠는가.
‘헬로우, 하우두유두’
아이가 또 말한다. 아내와 말하지는 않았지만, 불안이 엄습해온다. 영어나 외국어는 부모의 실력이 중요한데, 아빠는 영어체질이 아니라고 합리화한지 오래이고 엄마는 경상도 사투리로 발음하니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영어공부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음 날,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 주면서 선생님께 묻는다.
“영어 가르치나요?”
속으로는 ‘그렇게 안 봤는데, 왜 가르치니’ 라고 항의한다.
“아니요. 그냥 가끔 쉬는 시간에 영어 비디오 틀어주는 정도예요. 그런데 요즘 한 아이가 학원을 다니는지 영어를 하는데, 다른 아이들도 따라하더라구요”
궁금한 부분이 풀렸다. 하지만 그러면 뭐하나. 딸아이가 이미 사교육 천국의 영향권 안에 포위되어있는 것을 확인했으니, 씁쓸하고 불안할 따름이다.
사교육은 보험
사교육이 투자였던 때가 있었다. ‘나보다 나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부모의 희망이 사교육으로 표현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97년의 IMF 충격 이후 사교육의 심리는 조금 변한다. 투자의 마음이 여전히 있기는 하나, 점차 보험 드는 마음이 커진다. 계층 상승만 주로 보아오다가 계층 하락을 직간접적으로 접한 게 그 이유다. “아, 이 나라는 중산층에서 떨어질 수도 있구나. 그리고 떨어지면 비참하구나”라는 점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당연히 부모의 마음에서 ‘나보다 못살면 안돼, 최소한 나처럼 살아야 해’라는 메아리가 커져간다.
2000년대 들어 사교육의 양극화가 심해지는데, 중상층 이상이 양극화를 주도하는 게 특징이다. 중상층 아래가 사교육비를 예전과 비슷하거나 조금 더 지출하는 사이에 중상층 이상이 사교육비를 대폭 늘리면서 격차가 점차 커져간다. 불안하기 때문이다. 떨어질 곳이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추락은 두려움이다. 그리고 추락 지점을 비참한 곳으로 생각하면 할수록 두려움과 불안은 크다. 당연히 추락을 막거나 대비하기 위한 장치를 미리미리 마련해야 한다. 보험을 들어야 한다. 그것도 많이 들수록 좋다. 최후의 마지노선으로는 평소 씹어대기 바쁜 교사를 염두에 둔다. 이 보험의 심리는 유독 중상층만 그런 게 아니다. 중상층 아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추락에 대한 두려움의 정도가 다르며, 가용할 수 있는 경제력과 정보력 또한 다르다.
이처럼 교육에서 IMF 충격은 사교육을 투자에서 보험으로 바꾸었다. 약육강식과 승자독식의 사회를 경험하면서 대비책으로 사교육에 더욱더 몰두하도록 만들었다. 그 안에는 불안이 깔려있다.
불안을 먹고 사는 영어광풍
사교육기관이 많고 다양하긴 하나, 부모 입장에서는 유형이 웬만큼 정해져 있다. 아줌마통신의 정통 코스는 이렇다. 일단 어릴 때부터 영어를 시킨다. 그리고 초등학교 고학년부터는 특목고나 자사고를 대비시킨다. 중학교 고학년이나 고교부터는 일류대를 준비한다. 물론 시작하는 시기와 비용이 가계 수입이나 부모의 가치관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겨냥하는 것은 같다. ‘아이 맡기기’나 ‘특기 살리기’의 마음을 제외하고는 죄다 입시다. 일류대라는 최종 목적지를 위해 그 중간다리인 특목고를 보내야 한다. 그런데 특목고는 영어가 중요하다. 아니, 영어는 특목고, 일류대, 취업이나 승진에서 모두 필요하다. 그러니 일단 영어다. 영어를 몰라도 생활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는 이 땅에서 영어 광풍이 몰아치는 이유는 이거다. 영어가 모든 직업에서 ‘꼭’ 필요한 게 아닌 이 나라에서 ‘미친 영어’가 자리잡은 까닭이 여기에 있다. “국제통상이나 교류가 많은 분야 등 영어를 꼭 필요로 하는 사람들만 영어하면 되지, 왜 모든 한국인이 영어해야 하나? 글구 통역이나 번역은 두어서 뭐하나?”라는 항변은 무의미하다.
영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그래서 불안하다. 영어를 잘해도 불안하고, 못해도 불안하다. 영어 잘하는 사람으로 인정받아도 모국어 수준이 아니기 때문에 불안하고, 못 하는 사람은 능력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힐까 두렵다. 그래서 너도나도 보험을 든다. 일하는 사람은 시간을 쪼개서 각종 온·오프라인 영어 사교육기관을 찾고, 부모는 아이를 영어학원 봉고차에 밀어넣는다. 빠른 엄마는 태교부터 시작한다.
1997년부터 초등학교에서 영어수업이 시작되고 특목고와 자사고가 확대되면서 등장한 풍경이다. 교육분야에서는 입시에서의 영어 비중이 영어 광풍의 원인이고, 초등학교 영어 수업이 촉매제다. 물론 해도해도 끝이 없다. 100점을 맞는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남보다 한 발 앞서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영어 사교육의 순례는 보다 강한 약효를 찾아 쭉 이어질 뿐이다.
불안을 부채질하는 이명박 정부의 영어교육 정책
여기에 이명박 정부는 기름을 붓는다. 지난 1월 30일 <영어공교육 완성 실천방안>에서 △5년 안에 영어전용교사 2만3천 명 충원, △영어수업시간 확대, △영어능력평가시험 도입, △영어친화적 환경 구축 등을 발표한다. 영어 광풍의 촉매제였던 초등 영어수업을 보다 확대하겠다고 한다. 미친 영어의 원인이었던 입시에서의 영어 비중은 일언반구도 없다.
물론 수능 영어를 상시적인 국가영어능력평가 시험으로 대체하고, 현재의 수능 영역인 읽기.듣기는 등급제로 하며, 말하기.쓰기는 합격/불합격만 판정하겠다고 말하기는 했다. 하지만 시험 부담만 커진다. 한 번만 보던 수능에서 여러 번 치는 시험으로 바뀌므로 ‘남보다 한 발’ 앞서기 위해서는 보다 높은 점수를 받을 때까지 시험봐야 한다. 여기에 읽기.듣기만 보던 시험에서 말하기.쓰기가 추가된다. 더구나 인수위는 2012년부터 대입을 완전 자율화한다고 했다. 그 때 등급이나 합격/불합격으로만 나오는 영어능력평가 결과를 대학들이 그냥 받을까. 지금까지 변별력을 외쳐왔던 대학들이 그 때 가서는 가만 있을까. 영어 본고사가 없으리라고 장담하기 어렵다.
그래서 인수위의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은 사교육을 유발하지 않도록 학교 교육과정을 충분히 반영”한다는 이야기는 웃긴 소리다. 대학서열화와 특목고.자사고는 보다 확대되고, 입시에서의 영어 부담은 커지고, 학교 영어수업은 늘어나니, 영어 광풍의 앞날에는 거칠 것이 없다. 불안을 치유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불안을 부추긴다. 영어 못 하면 정말 큰일 날 것 같다. 보험 더 들어야 한다. 이젠 영어 사교육기관 알아보기와 영어 사교육기관의 떼돈 벌기만 남았다.
불안을 만드는 이명박 정부
더 나아가 이명박 당선인은 “영어 잘 해야 잘 산다”라는 말까지 한다. 최소 10년 동안 영어를 배웠어도 여간해서는 영어가 필요없는 사람들에게 영어 잘 해야 잘 산단다. 영어를 공용어로 하는 필리핀이 우리보다 잘 사는지에 대한 말도 없다. 그냥 영어 잘하면 잘 산단다. 걔네들 발음 웃긴다 하면서 놀리는 일본이 우리보다 못 사는지에 대한 말도 없다.
전 국민이 영어를 잘 못해서 국가적인 위기가 닥쳤다는 말도 없다. 위기의 징후도 없다. 그러면서 영어 잘 하란다.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도 없다. 국제화 시대라고는 하는데, 온통 영어 이야기 뿐이다. 그래서 더 답답하고 불안하다. 정책을 입안하는 사람 입장에서야 위기를 들먹이면서 불안을 조성하는 게 정책 추진에 도움이 되기는 하나, 도대체가 위기 국면에 대한 뚜렷한 말 한마디도 없고, 오로지 두려움만 조장할 뿐이다.
이런 이유로 이경숙 인수위원장에게 자꾸 눈이 간다. 인수위원장인지 영어교육부 장관인지 모를 정도로 틈만 나면 영어를 언급하고, 자신의 숙명여대가 대한민국 최초로 테솔(TESOL)을 운영하고 작년부터는 교육청의 지원 속에서 현직 영어교사의 심화연수를 하고 있으니, 의심의 눈초리는 당연하다. 또한 인수위가 앞으로 테솔을 통해 영어교사를 양성한다고 했으니, “기존의 교대와 사대는 죽이고 숙명여대나 성균관대를 키우려는 속셈 아니냐”라는 말도 나올 만 하다. “인수위원장이 수학 전공자였으면, 온 국민에게 미적분 강요했겠네”라는 비아냥도 있다. 이쯤 되면, 지위를 활용하여 개인적 이득을 취하는 ‘업무상 배임’의 혐의를 지우기 어렵다.
뭐, 좋은 말로 한 개인의 학문적 소신이라고 하던 새 정부의 교육철학이라고 하던 간에 인수위의 모습은 밑도 끝도 없다. 그냥 영어 잘 하란다. 그래야 잘 산단다. 그래서 학교에서 영어 공부 많이 시키고 시험 보겠단다. 그러면 사교육비 줄어든단다. 인수위 그 자체가 불안이다. 어디로 튈지 모른다. 보험 꼭 필요하다.
사교육 심리의 이중성이 불안 해소의 출발점
투자든 보험이든 간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교육을 시킨다. 그리고 이중적이다. 자기 아이 문제일 때는 보신주의와 가족이기주의가 작동하나, 한편으로는 공교육과 좋은 교육을 말한다. 이거 나쁘게들 평가한다.
하지만 다르게 볼 수도 있다. 보신주의와 가족이기주의는 현실이 강요한 거다. 양육강식과 승자독식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삶의 지혜이다. 교육 분야에서의 형태는 사교육으로 나타난다. “아이는 스스로 자란다”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니 쉽지 않다. 오늘도 자기보다 20~30살 어린 아이와 다툰다. 아이에게 부모의 존재가 스트레스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사는 건 사는 게 아니다. 불안이 치유되지도 않고, 행복하지도 않다. 그래서 꿈꾼다. 불안이 치유된 사회, 행복한 학교, 즐거운 아이를 희망한다. 변화를 바란다. 현실과 바램의 괴리가 이중성을 낳는 것이다.
지금은 이명박 정부의 변화를 학부모가 불안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 물론 이건 꿈꾸던 변화가 아니다. 그래서 더 불안할 뿐이다. 당연히 다른 변화, 보다 나은 변화에 대해 여전히 목마르다. “모든 한국인이 영어를 해야 합니까? 영어 꼭 해야 하는 사람만 하면 안 됩니까?”라는 질문에 답을 기다리고 있다. 필요한 분야만 영어 하고 입시에서 영어 부담이 없어서 영어가 즐겁기를 바란다. 대학서열화, 고교서열화, 입시의 틈바구니를 부수는 행복여행을 원한다. 여기엔 빠른 답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한국 교육의 제2법칙 “처음에만 시끄러울 뿐, 금방 적응한다”가 작동한다.
누가 다른 변화를 말하고 학부모와 대화할 수 있을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정파주의의 화신은, 정파보신주의와 정파이기주의로 똘똘 뭉친 집단은 ‘보다 나은 변화’로 다가가기 어렵다. 학부모가 대화 자체를 거절한다.
요즈음 딸아이는
‘헬로우, 하우두유두’ 하지 않는다. 잊어먹었다. 한국말만 쓰는 환경이 낳은 결과다. 대신 TV에서 <우리말 겨루기>나 비슷한 프로그램만 방영되면, “정답입니다”를 외치면서 신나게 달려가서 뚫어지게 쳐다본다. 엄마 아빠는 그동안 아이에게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신기해 하는데, 한창 말을 배울 때라 그런가 보다 한다. 물론 한편으로는 여전히 불안하다.
특히, 지난 십수 년간 영어와 담을 쌓고도 잘 살아왔다고 여기는 아빠라는 작자는 영 못마땅하다. 그래서 지난 십수 년간 꾸준히 애용해왔던 ‘알파벳 C와 아라비아 숫자 8의 합성어’에다가 ‘2MB’라는 새로운 단어를 연신 갖다 붙인다. 물론 딸아이 몰래 하느라 애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