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서사적 실존주의 작품세계에서 신화실존주의적 작품세계를 구축해오고 있는 이청준 문학의 저변을 면면히 느껴볼 수 있는 산문집 『그와의 한 시대는 그래도 아름다웠다』가 현대문학에서 출간되었다. 푸근한 질그릇 같은 느낌의 입담에 한국화의 새로운 경지를 열고 있는 김선두 화백의 그림 16점이 더해져 글맛을 풋풋하게 살려주고 있다.
이 산문집에 크게 쓰인 소재는 돌, 나무, 강물 세 가지로, 소설가 이청준의 삶과 문학세계를 비춰 드러내는 주요 기제가 되고 있다. 지나치게 지적이지도 현학적이지도 않은, 어찌 보면 평범하기까지 한 이 글감들은 40여 년이란 작가이력으로 유유자적함이 배어든 은은한 향기를 품고 있다.
돌은 그에게 여행이자 삶의 궤적으로 상정된다. 전문적인 수석 애호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닌데 ‘돌멩이'에서 ‘수석급'에 이르는 돌까지 집 안 가득 지니게 된 까닭은 그가 스쳐지나간 길 위의 시간들을 기억하기 위해 하나씩 줍기 시작한 것이 발단이었다. 여행객들이 그 지역 대표적인 명소에서 여행사진을 남기는 것처럼 그는 여행한 그 지역 특유의 돌을 기념으로 지녀왔다. 울릉도 검은 현무암 한 조각에선 홍성원, 김병익, 김원일 등과의 뱃길 여행을, 제주도 화산석에서는 오규원 시인과의 젊었던 시절을, 사해의 붉은 돌에선 김현과의 한때를 떠올린다. 그렇듯 ‘잡석류 돌멩이' 하나하나에는 함께한 사람들과의 ‘일화'가 깃들어 있는 소중한 ‘여행록'이 된다. 그와는 달리 진짜 ‘수석'을 얻는 이야기도 적고 있는데, 그 역시 돌 자체보다는 사람들과의 훈훈한 추억이 어려 있다.
강물은 ‘떠남'과 ‘세월'을 함의한다. 떠나온 지 오랜 고향의 노모, 치매에 걸렸지만 몸의 언어로부터는 자유롭지 못했던 노모, 정진규 시인에게 <눈물>이란 시를 남기게 했던 그 노모에게 ‘마지막 작별의 되풀이'를 하는 작가의 무거운 심회는 우리에게도 세월 저쪽의 변치 않는 고향, 그러나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버린 회귀의 어떤 공간을 아스라이 떠올리게 만든다. 떠나고 떠나오는 세월이 남긴 지울 수 없는 ‘허망스런 상실감', 그 모든 인과를 끌어안고 도도히 흐르는 강물에 작가는 ‘위대한 어머니'를 겹쳐둔다. 어떠한 질곡을 돌아나와도 변치 않는 모습으로 품어주는 만유의 어머니, 그 어머니는 작가에게 때로 삶과 글을 계속할 수 있는 근원이기도 하다.
오랜 시간이 흘러 돌아보아도 그 자리 그대로 나무처럼 서 있는 사람이 있다. 작가에겐 남도여행길에 만난 그런 나무 같은 사람들이 깊은 추억이 되고 있다. 산골 외딴집에 단신으로 살고 있는 김영남 시인의 노모, 송기숙 선생 어렸을 적 이야기를 들려준 여든 넘긴 송기숙 선생의 숙항, 할미꽃 군락지를 안내해 간 선창가 횟집의 동창녀, 그리고 “청준이, 제발 늙지 마소. 병들지 마소 이!” 하며 불편한 몸으로 갈길 배웅하던 한승원 선생의 노모 등……. 이들은 모두 작가에게 ‘더없이 정겹고 편안한 고향'이며, 타향살이의 척박함과 세상살이의 비루함을 씻어주는 싱싱한 그늘이다.
책 말미에는 작가 자신에게 있어 소설 쓰기의 의미를 간결하지만 괴롭게 밝히고 있다. 그가 작가로서 활동한 시기는 4․19학생혁명을 거쳐 5․17광주항쟁과 6․29선언에 이르기까지 극심한 ‘폭력'의 시대였고, 그 폭력과 정대면 못했다는 스스로의 ‘죄의식'과 ‘무력감'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그런 ‘정신의 부도지경'을 그대로 유지하고 살아갈 수 는 없는 일, ‘삶을 다시 견딜만한 것으로 부추겨나가려는 자기 생령의 씻김질'이 곧 소설 쓰기였고, 씻김질의 기간 또한 어지간히 길어 진저리 쳐진다고 술회하고 있다.
▸지은이 이청준은
1939년 전남 장흥 출생.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 졸업. 1965년 《사상계》에 단편 「퇴원」이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하였다. 창작집으로 『별을 보여드립니다』『소문의 벽』『살아있는 늪』『비화밀교』『키 작은 자유인』『가해자의 얼굴』『서편제』『섬』『목수의 집』 등이 있으며, 장편소설에는 『당신들의 천국』『낮은 데로 임하소서』『춤추는 사제』『이제 우리들의 잔을』『흰옷』『축제』『인문주의자 무소작 씨의 종생기』 등이 있다.
동인문학상(1967), 한국일보 창작문학상(1975), 이상문학상(1978), 중앙문예대상(1980), 대한민국문학상(1986), 이산문학상(1990), 대산문학상(1994) 등을 수상하였다.
▸그림을 그린 김선두는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회화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였다. 현대적인 시선으로 우리 시대의 서민들과 남도의 풍광을 독특하게 묘사해왔으며, 전통적인 필법으로 시대의 감수성을 잘 형상화해온 화가로 평가받고 있다. 현재 중앙대학교 한국화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중앙미술대전 한국화부 대상, 석남미술상 등을 수상하였다.
▸본문 중에서
언제부턴지 나는 여행을 다녀올 때면 그 여행지를 기억할 만한 작은 돌멩이 하나씩을 주워오는 버릇이 들었다. 그야 여행지 곳곳에서 사진을 찍어 올 수도 있고, 메모나 일기 따위를 써 남길 수도 있긴 했다. 하지만 사진기를 지니고 다니면 손이 거추장스러울 뿐 아니라 구경 시간을 빼앗기는 경우가 많은 데다(거기에는 남의 카메라에나 의지하려는 심보도 숨어 있었으리라), 뒷날 가서 그걸 다시 들춰보는 경우도 드물었다. 더욱이 메모나 일기 따위 여행기록을 남기는 일은 애초 마음에 두고 싶지도 않았다. 내 주변에선 더러, 자네 같은 글 전문가는 잠깐 화장실에 앉아 있는 시간에도 쉽게 생각해 써낼 수 있을 거라며 이런저런 축사나 기념사 대필을 부탁해 오는 일이 있어 애를 먹곤 하지만, 글 품팔이로 살아가는 사람치고 글쓰기에 진절미를 내지 않을 사람이 없는 판에, 하물며 남의 글 대필은 물론, 여행지에서까지 그 비슷한 노릇은 아예 가까이 하고 싶지 않아서다.
-본문 중에서
사해 돌멩이는 내 국외여행기의 첫 페이지가 된 셈이다. 하지만 그것도 어언 20년 저쪽의 일이다. 그리고 그간 김현과 오학영 형은 이미 저 세상으로 갔고, 사진에서는 무지개빛이 부옇게 멀어지다 어느 새 자취조차 사라지고 말았다. 돌멩이의 짠맛도 이제는 거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그래 그런지 그 돌멩이에서는 이제 조해일 형의 희망과는 달리 그 무지개와 사해의 기억 대신 우리 근로자들이 휴일을 바쳐 산 양 불고기 점심차림, 식당 밖에 말없이 자신들의 차례를 기다리던 얼굴들이 더욱 생생하게 떠오른다. 아마도 그 인도 어린 형제의 애틋한 기억 때문인지 모른다.
-본문 중에서
언제부턴지 나는 다시 그 천관산 너머 고향 마을을 거꾸로 찾아 들어다니기 시작했다. 삼십대 초반 청상이 된 형수에게 노년을 의지해 지내는 어머니 때문이었다. 아마도 당신이 고희 고개를 넘길 무렵부터였을 것이다. 나는 그 노모의 여생이 그리 길지 못하리라는 생각에서 그 무렵부터 일년에 한두 번씩 고향길을 내려다니기 시작했고, 때마다 그것이 어쩌면 생전의 당신을 마지막 하직하는 길인 듯싶은 무거운 기분으로 노모를 다시 떠나오곤(마지막 작별의 되풀이)하였다. 그 고향길은 당신의 연세가 더해가고 기력이 쇠해갈수록 일 년에 한두 번에서 서너 번, 네댓 번씩으로 횟수가 더해갔고, 1994년 95세로 돌아가실 때까지 20여 년이나 계속됐다.
-본문 중에서
그 나무가 내내 늘 그녀 속에 버티고 서서 그 삶을 그렇듯 싱싱하게 가꾸고 지키게 해온 게 아니었을까-. 그런 혼자 상상 속에 나는 이후 그 회진 포구를 생각할 때마다 그 마을 꼭대기 옛 학교 터의 이름 모를 나무와 함께 그녀의 삶 속의 또 하나 푸른 나무를 보곤 하는 것이다. 하기야 그런 그녀에게선 나 또한 심신이 몹시 괴롭던 어느 가을날 저녁 생선 매운탕이 끓고 있던 술청 화덕 가에 마주앉아 저 ‘꽃씨 할머니'의 전설을 전해 듣고 마음이 많이 가라앉은 일이 있을 뿐더러 뒷날의 졸작 ‘인문주의자 무소작씨의 종생기'를 구상하게까지 되었거니와, 지난 회 이야기 중 회진포구 인근의 할미꽃 군락지로 우리를 안내해 간 것도 다름 아닌 그녀였으니까.
-본문 중에서
첫댓글 인간은 자연친화적일 때 가장 순수성이 드러나는것 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