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러시아·CIS 학과가 발간하는 월간 '러시아CIS 토크' (Russia-CIS Talk)는 2026년 9월 호(https://ruscis.hufs.ac.kr)에서 카자흐스탄의 일상을 디지털 생태계로 완전히 바꾼 슈퍼앱 '카스피닷카즈'의 성공 사례를 심층적으로 살폈다. Kairolla Gulzhanar(박사 과정, 러시아·CIS 정치 전공)씨가 쓴 '카자흐스탄은 어떻게 디지털 강국이 되었나:카스피(Kaspi.kz)가 말해주는 것'이다. 소개한다/편집자
**본 칼럼은 저자 개인의 의견이며, 학과와 바이러시아(www.buyrussia21.com)의 공식 견해와는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카자흐스탄의 일상이 된 앱:카스피
카자흐스탄 알마티의 한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면 손님 10명 중 9명은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을 꺼낸다. 카드 단말기가 없어도 문제없다. 가게 벽에 붙은 QR코드 하나만 스캔하면 결제가 끝나기 때문이다. 항공권 예약은 물론 공과금 납부, 심지어 운전면허 갱신까지 모두 하나의 앱에서 해결된다.
그 앱은 바로 카스피닷카즈(JS C Kaspi.kz, 이하 카스피)다. 카자흐스탄 인구 약 2,060만 명 가운데 1,530만 명, 즉 전체 인구의 74%가 매달 카스피를 이용하고 있다.
출처: ir.kaspi.kz/about/mobile-app
카스피는 단순한 금융 앱이 아니다. 결제와 온라인 쇼핑, 대출, 여행 예약, 부동산 매물 검색, 나아가 정부 서비스까지 하나의 앱으로 통합한 슈퍼 앱이다. 2024년 1월에는 카자흐스탄 기업 최초로 미국 나스닥(Nasdaq)에 상장되었다. 카스피의 눈부신 성장은 지난 10여 년간 카자흐스탄 정부가 추진해 온 국가 주도의 디지털 전환 정책을 기반으로 가능했다.
◇카스피: 카자흐스탄의 슈퍼앱
카스피의 출발은 화려하지 않았다. 1991년 소련 붕괴 직후 알마티에서 문을 연 작은 지역 은행이 그 시작이었다. 2012년 새로운 경영진이 합류하면서 카스피는 전통적인 은행업을 넘어 디지털 생태계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단순한 모바일 뱅킹 앱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소비자와 판매자를 하나의 플랫폼으로 연결하는 양방향 슈퍼 앱 모델을 목표로 삼았다.
오늘날 카스피는 결제(Payments), 마켓플레이스(Marketplace), 핀테크(Fintech)라는 세 플랫폼이 유기적으로 연동되는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 세 플랫폼은 동일한 사용자 데이터를 공유하며, 결제 이력은 신용 평가에 활용되고 구매 기록은 금융 상품 추천으로 이어진다.
카스피 이용자 1인당 월평균 앱 사용 횟수는 77회에 달하며, 1,200만 개가 넘는 가맹점이 카스피 결제망에 연결되어 있다.
2022년에는 카자흐스탄 카드 결제 시장에서 카스피의 거래량이 마스터카드(Marstercard)와 비자(Visa)의 거래량을 합친 규모를 처음으로 넘어섰다. QR코드 기반 결제는 카드 단말기 없이도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대형 마트는 물론 재래시장 노점상까지 카스피 결제망에 편입될 수 있었다.
2024년 4월에는 알리페이+(Alipay+)와 파트너십을 체결하며 중앙아시아 최초로 알리페이+를 도입한 국가가 되었고, 2025년 11월에는 유니온페이(UnionPay)와도 공식 파트너십을 맺었다. 2025년 4분기에는 손바닥 인식 결제 서비스인 카스피 알라칸(Kaspi Alaqan)이 알마티에서 출시됐다. 출시 3개월 만에 알마티 성인 인구의 3분의 1이 카스피 알라칸에 등록했다.
1991년 작은 지역 은행에서 출발한 카스피가 30여 년 만에 나스닥 상장 기업이자 중앙아시아를 대표하는 디지털 플랫폼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기술력뿐 아니라 장기적인 전략이 자리하고 있었다.
◇기술디지털 카자흐스탄:국가 주도 전환의 궤적
카스피의 성장을 이해하려면 먼저 카자흐스탄의 디지털 전환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카자흐스탄 정부는 2017년 대통령령을 통해 ‘디지털 카자흐스탄(2018-2022)’ 국가 프로그램을 승인했다. 경제 디지털화, 전자정부 구축, 인적 자본 개발, 혁신 생태계 조성을 핵심 축으로 삼은 이 프로그램은 120여 개 사업을 통해 카자흐스탄 사회 전반의 디지털 전환을 이끌었다. 프로그램 시행 2년 만에 디지털화에 따른 경제 효과는 8,030억 텡게에 달했고, 12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됐다.
이러한 성과는 여러 지표에서도 확인된다. 카자흐스탄의 인터넷 보급률은 92.9%에 달하며, 전자상거래 규모는 2020년 대비 7배 성장해 소매 거래의 14%를 넘어섰다. 또한 2024년 유엔 전자정부 발전 지수에서 카자흐스탄은 193개국 가운데 24위를 기록하며 CIS 국가 중 1위에 올랐다. 온라인 서비스 부문에서는 세계 10위를 기록해 중국(35위)과 캐나다(47위)를 앞섰다.
카자흐스탄의 디지털 전환은 단순히 각종 지표의 개선에 그치지 않고 국민들의 일상에도 빠르게 스며들었다. 국민들은 이미 세금 납부와 문서 발급, 각종 행정 업무를 스마트폰으로 처리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디지털 공공서비스를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환경이 먼저 조성된 것이다. 카스피가 짧은 기간 안에 국민 생활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었던 배경에도 이러한 디지털 환경이 자리하고 있다.
◇카스피의 부상: 젊은 인구 구조와 플랫폼 전략이 이끈 성장
국가 차원의 디지털 전환이 카스피 성장의 기반이 되었다면, 카스피가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두 가지 요인이 더 있었다.
하나는 인구 구조다. 카자흐스탄 인구의 59%는 30세 미만이다. 디지털 기기와 함께 성장한 이 세대는 새로운 서비스를 빠르게 받아들이며, 카스피가 새롭게 선보인 기능들이 단기간에 대규모 이용자를 확보할 수 있었던 배경이 되었다.
다른 하나는 카스피의 전략이다. 카스피는 정부 서비스를 슈퍼 앱에 통합하면서 단순한 민간 기업을 넘어 국가 디지털 인프라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운전면허 갱신과 세금 납부, 여권 확인과 같은 공공 서비스를 모두 카스피 앱 안에서 이용할 수 있다. 이는 이용자가 앱을 떠날 이유를 줄이는 동시에 국가의 디지털 전환과 민간 플랫폼을 연결하는 고리가 되었다.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연평균 37.6%의 매출 성장률은 이러한 전략이 거둔 성과를 보여준다.
◇카자흐스탄 디지털화가 남기는 것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이 카스피를 MBA 스터디 사례로 두 차례 선정한 것은 이 모델이 국제적으로 주목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한계도 존재한다. 2025년 법인세율이 20%에서 25%로 인상되고 스마트폰 공급 차질까지 겹치면서 순이익 증가율은 전년의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카스피 모델은 아직 완성된 단계에 이르지 않았으며, 외부 환경 변화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다. 카스피가 터키 이커머스 기업 헤시부라다(Hepsiburada)의 지분을 85.17%까지 확대하며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린 것 역시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카자흐스탄의 경험이 CIS 지역에 주는 시사점은 분명하다. 카스피와 같은 디지털 혁신은 기업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일관된 국가 디지털 정책, 이를 수용할 수 있는 인구 구조, 공공 인프라와 민간 생태계를 연결하는 기업의 장기적 전략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
러시아(43위), 우즈베키스탄(63위), 키르기스스탄(78위)이 카자흐스탄(24위)과의 격차를 좁히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디지털 인프라에 대한 지속적이고 일관된 투자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카스피 사례는 단순한 기업 성공담에 그치지 않는다. 국가 주도의 디지털 전환이 민간 생태계와 결합할 때 어떤 성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카자흐스탄과 카스피의 경험은 포스트 소비에트 공간에서도 세계적 수준의 디지털 혁신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하나의 이정표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