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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공동체에 함께 사는 수녀님의 어머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수녀님의 어머님은 결혼 후 첫 아이로 아들을 낳으셨는데 예닐곱 무렵 병에 걸려 백방으로 애를 썼지만, 결국 아들을 잃게 되었다고 합니다. 수녀님이 태어나기 오래전에 있던 일이었기에 어린 나이에 죽은 오빠의 존재에 대해 수녀님은 잘 몰랐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머님이 치매로 요양원에 입원하신 뒤 점점 정신이 흐려져서 딸인 수녀님도 잘 알아보지 못하게 되셨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가려면 저기 일곱 살배기 아이 좀 데려다 놓고 가"라고 말씀하기 시작하셨다고 합니다. "엄마, 누구?" "저기 일곱 살배기 아이." "일곱 살배기 아이가 어딨어?" "저기 있잖아. 저 일곱 살배기 아이 좀 데려다 놓고 가." 수녀님은 그제서야 어머님이 기억이 다 흐려진 중에도 병으로 잃은 아들을 기억하며 찾고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자식이 죽으면 부모는 자식을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맞나 봐요." 수녀님의 말을 들으며 이태원 참사로 자식을 잃은 부모님들이 떠올랐습니다.
어버이날 전날인 지난 5월 7일 생명 주일에 이태원 참사 희생자 가족 몇 분을 초대해 미사와 점심식사를 같이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감히 자식을 잃은 부모님의 심정을 다 헤아릴 순 없었지만 그저 눈을 맞추고 손을 잡는 것만으로도 그 아픔이 고스란히 전달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태원 참사 희생자 가족들에겐 자식과 가족을 잃은 아픔을 충분히 슬퍼하고, 그들을 추모할 공간조차도 제대로 허락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많이 미안했습니다. 그래서 한자리에서 한국전쟁 등으로 파손되고 보수되면서도 121년 역사의 굴곡 깊은 아픔을 견뎌 내고, 어린 신학생들과 연로하신 수녀님들의 이러저러한 삶의 여정이 담긴 기도가 고스란히 배어 있는 원효로 예수 성심 성당이, 유가족들이 머무시는 짧은 시간 동안이라도 그분들에게 위로와 쉼의 공간이 되길 기도했습니다.
원효로 예수 성심 성당은 옛 용산 신학교 성당이었고, 현재는 성심수녀회 성당으로 쓰이고 있다. ©인명희
오신 분들 중에는 가톨릭 신자가 아닌 유가족도 계셨는데, 간절한 마음으로 함께하고 계심이 느껴졌습니다. 성지순례를 왔다가 우연히 유가족들과 함께 미사에 참례하게 된 청년도 눈이 퉁퉁 붓도록 눈물을 흘리며 마음 아파했습니다. 분명 그 미사를 통해 하느님께서 사람이 줄 수 없는 당신의 위로를 그분들에게 주셨으리라 믿습니다.
식사를 하며 나눈 이야기 중 유가족들이 간절히 바라시는 것은 분명했습니다.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대책을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충분한 애도 시간도 갖지 못한 채,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슬러 거리에 나와 분향소와 거리를 떠나지 못하고 계신 것입니다.
점심식사 후 버스정류장으로 이동하는 길에서 어머님들은 휴대폰에 저장한 생전의 딸과 아들 사진을 보여 주셨습니다. 자식들 이야기를 하실 때 어머님들의 얼굴에는 따뜻한 미소가 돌았고, 자식들의 사진을 바라보시는 그 얼굴에서 자식에 대한 깊고 큰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진 속 청년들은 어머님들의 말씀처럼 정말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에스파냐어로 케렌시아는 ‘투우 경기장에서 소가 잠시 쉬면서 숨을 고르는 장소’라는 뜻으로, 자신만의 피난처 또는 안식처를 이르는 말이라고 합니다. 달리 말하면 회복의 장소이자 치유 공간을 뜻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제가 만난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편안히 회복하고 치유할 공간이 없는 듯 느껴졌습니다. 참사 이전 삶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지금이라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기도 힘든 어려운 삶을 살고 계시다고 느껴졌습니다. 대전과 용인 등에서 서울을 오가며 수없이 떠올리고 그리워해도 다시 돌아오지 못할 자식들 생각에 애간장이 다 탄 어머님들의 얼굴이 자꾸 눈에 밟힙니다. 아마 그분들은 참사 발생 원인과 수습 과정, 책임 소재 등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이루어지고, 더 이상 안전 문제로 생명이 위협받지 않을 수 있도록 제대로 된 대책이 세워질 때야 비로소 조금이나마 위로받고, 슬픔을 삼키지 않고 온전히 애도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야 편안히 지친 몸과 마음이 쉴 수 있고, 바닥 없는 슬픔과 아픔을 달래며, 치유와 회복을 통해 일상의 평화를 되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래오래 편하게 먼저 간 자식들과 가족들을 기억하고 생각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김지선
유가족들이 극한 상황에서 자신들이 안전하다고 느끼고, 힘들어 쓰러지려 할 때 힘을 얻을 수 있는 케렌시아를 만드는 일은 우리의 힘이 필요한 일일 것입니다. 상처받고 슬퍼하면서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 거리를 오가며 "당신들과 같은 사람들이 다시는 없기를 바라시는 유가족의 바람"처럼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이 이루어지고 특별법이 제정되어 제대로 실행될 수 있도록, 관심을 갖고 참여하고 함께하는 것이 유가족들의 케렌시아를 만드는 일일 것입니다. '길 잃은 별들이 내는 길을 따라' 10.29 이태원 참사 진실과 회복을 위해 우리가 할 일을 잊지 않고 실천하는 것, 끝까지 함께하는 것이 유가족들이 편안히 애도할 수 있는 치유와 회복의 공간을 만드는 일일 것입니다. 박노해 시인의 '새벽별'처럼 끝까지 돌아가지 않고 남아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참여연대
새벽별
새벽 찬물로 얼굴을 씻고 나니
창살 너머 겨울나무 가지 사이에
이마를 탁 치며 웃는 환한 별 하나
오 새벽별이네
어둔 밤이 지나고
새벽이 온다고
가장 먼저 떠올라
새벽별
아니네
뭇 별들이 지쳐 돌아간 뒤에도
가장 늦게까지 남아 있는 별
끝까지 돌아가지 않는 별이
새벽별이네
새벽별은
가장 먼저 뜨는 찬란한 별이 아니네
가장 나중까지 어둠 속에 남아 있는
바보 같은 바보 같은 별
그래서 진정으로 앞서 가는
희망의 별이라네
지금 모든 별들이 하나 둘
흩어지고 사라지고 돌아가는 때
우리 희망의 새벽별은
기다림에 울다 지쳐 잠든 이들이
쉬었다 새벽길 나설 때까지
시대의 밤하늘을 성성하게 지키다
새벽 붉은 햇덩이에 손 건네주고
소리 없이 소리 없이 사라지느니
앞이 캄캄한 언 하늘에
시린 첫마음 빛내며 떨고 있는
바보 같은 바보 같은 사람아
눈물나게 아름다운 그대
오 새벽별이네!
(출처 = 박노해, "사람만이 희망이다")
남궁영미
성심수녀회 수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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