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은 23전 23승을 했나? 결론부터 말하면 그건 창작이지, 역사적 사실(fact)은 아니다.
23전 23승의 전설은 KBS TV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이 2004~2005년 2년간 방영된 후에 널리 퍼졌다. 2005년 11월에 KTV는 특별기획 2부작 ‘이순신, 23전 23승 불패의 조건(KBS 제작)’을 방영하기도 했다.
이후 <불패의 리더 이순신, 23전 23승 전승 신화(神話)의 기록>(2014년)이라는 책도 발간되었고, 한국사 인기 강사 설민석은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2016년, p 297)에서 ‘이순신은 왜란이라는 7년 동안의 어려움 속에서 빛난 명장입니다. 1592년 5월 옥포해전을 시작으로 한산도 대첩, 명량해전, 노량해전 등 눈부신 23전 23승의 승리를 이끈 장군이지요”라고 적었다.
하지만 이순신의 23전 23승은 역사적 사실이 아닌 창작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23전이 각각 어느어느 해전인지, 그 근거가 무엇인지에 대하여는 설명이 없다. 아무리 명장 이순신이지만 단 한 번의 무승부도 없이 23전 23승 전승(全勝)을 했다는 것도 믿기지 않는다.
2007년 봄 해군사관학교 제장명 교수는 충무공 이순신 탄신 462돌 기념 학술세미나에서 “임진왜란 시기의 해전 횟수는 47차례이고, 이 가운데 이순신이 참가한 해전은 43차례”라며 “임진왜란 해전이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필자의 주장이 정확한 것은 아니나, 항간에 통용되고 있는 ‘23전23승’이라는 표현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난중일기〉 〈선조실록〉 등 다양한 자료를 조사한 결과 이순신 장군의 전적은 43전 38승 5무로 정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순신이 참전한 무승부 해전이 1594년 9월 29일부터 10월 4일까지 치러진 육·해군 합동작전인 거제도 장문포 전투이다.
이어서 2012년에 제장명 교수는 이순신 장군의 해전을 ‘45전 40승 5무’로 수정했다.
제 교수는 ‘어떤 해전을 1회의 해전으로 계산 하는지’ 하는 해전의 개념부터 정립이 필요하다고 보고 이를 ‘대표해전’과 ‘세부해전’으로 분류했다.
‘대표해전’은 조선수군이 모 기지를 한번 출동해서 다시 돌아올 때까지 기간 중 전투한 모든 해전을 1회로 산정하고 모든 해전 중 가장 대표적인 해전으로 분류하는 방식이고 ‘세부해전’은 한번 출동해서 일시와 장소가 달리하는 해전을 1회로 산정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면 이순신의 첫 출전인 옥포해전은 1592년 5월 7일에 옥포, 같은 날 합포, 5월 8일에 적진포 해전을 치르고 5월 9일에 전라좌수영인 여수로 돌아왔다. 따라서 대표해전은 옥포해전이고 세부해전은 3회였다.
이렇게 해서 제장명 교수는 임진왜란 당시 대표해전은 총 21회로 이순신은 17회의 대표해전에 참가했고, 세부해전 49회 중 이순신은 45회 참전했다고 밝혔다.
2012년에 임원빈 순천향대학교 이순신 연구소장도 “역사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 소개된 23전 23승은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한편 이순신이 참전한 대표적인 무승부 해전이 1594년 9월 29일부터 10월 4일까지 치러진 육·해군 합동작전인 거제도 장문포 전투이다.
도체찰사 겸 좌의정 윤두수는 9월 19일에 조선군 단독으로 거제도를 공략하겠다고 선조에게 보고하여 승인을 받았다. 9월 27일에 도원수 권율과 의병장 곽재우, 김덕령 등의 육군이 연합함대에 합류했고, 9월 29일에는 장문포의 왜군 진지를 공격하였다.
그런데 왜군은 진지만 지켰다. 10월 1일 새벽에 조선 수군은 거제도 장문포 앞바다에 머물다 영등포로 들어가 왜군에게 싸움을 걸었으나 왜군은 응전하지 않았다. 이후 10월 3일까지 왜군이 항전하지 않는 바람에 소강상태가 지속되었다.
10월 4일에는 이순신이 곽재우·김덕령 등과 함께 육지와 바다 양면에서 공격하였다. 곽재우·김덕령이 수백 명의 병력을 이끌고 산성에 주둔하고 있는 왜군을 공격하고, 수군은 선봉대를 장문포로 보내 들락날락하며 싸움을 걸었지만 왜군은 방어전만 펼쳤다. 저녁에도 수군 본대가 직접 나서서 왜군을 위협했으나, 왜군이 전혀 움직이지 않아 칠천량으로 물러났다.
결국 총 6일 동안 3회에 걸쳐 치른 수륙 합동전투는 별다른 소득을 거두지 못하고 이순신은 2척의 적선을 격침시키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한마디로 작전실패였다. 총괄 지휘를 한 윤두수는 책임을 지고 좌의정에서 물러났다.
이렇듯 이순신의 23전 23승은 사실(fact)이 아니라 창작이다. 엄연히 무승부가 있는데도 드라마를 제작한 공영방송 KBS는 이를 알았을까? 아니면 재미에 치중하여 알고서도 이를 무시했을까?
지나친 이순신 신화 만들기는 오히려 이순신에 대한 존경심을 저하시킬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