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4. 6. 20;00
윤물무성(潤物無聲)이라,
소리 없이 시작된 봄비는 시간이 흐르자 안개비로 바뀌었다.
'는개'보다 작은 알갱이로 흩날리던 빗방울은 잠시 후 제법
굵은 빗줄기로 바뀌면서 가로등불을 희미하게 만든다.
아!~
저렇게 제법 굵은 빗줄기를 맞으면 벚꽃은 어떻게 되려나.
꽃샘바람과 함께 비를 맞고 있는 벚꽃은 힘없이 땅바닥으로
너부러진다.
응달에서 자라 조금 늦게 핀 목련화도 비바람에 시달려 나풀
거리더니 아래로 곤두박질한다.
긴 낮을 좋아하는 장일(長日) 식물인 개나리, 벚꽃, 사과꽃 등
봄꽃들이 핀지 불과 며칠 만에 속절없이 떨어진다.
꽃의 공백이 길어지려나.
봄꽃이 사라져도 오랜 가뭄 속에 내리는 단비는 목마른 대지와
까맣게 타들어가던 농부의 농심(農心)에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려니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에 대한 미련은 없다.
긴 가뭄 속에 내리는 꿀비를 맞고자 '골전도 이어폰'을 귀에
걸고 우산을 꺼낸다.
나 홀로 음악과 함께 빗속을 걸으며 마음이나 다스려야겠다.
미음완보(微吟緩步)를 하면 좋으련만 한 손에 우산을 들었으니
뒷짐을 질 수가 없다.
요즘 '블루투스 골전도 이어폰'에 푹 빠졌다.
새로운 음악세계를 맛보면서 중독이 된 모양이다.
공동주택에 살면 클래식을 좋아해도 마음껏 음악을 즐기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층간소음이 신경 쓰여 '홈시어터 스피커'도 버린 지 1년이 지났다.
쿵쿵거리며 클래식 음악을 품위 있게 들려주던 마란츠, 소니,
파이오니아 전축도 미니멀리즘(minimalism)을 핑계로 다
버렸다.
마음대로 듣지 못하기에 음향기기가 아깝지만 '파이오니아'는
지인의 도자기 공장으로 보냈고, 소니는 가전제품 무료 수거팀에
주었지.
작은 라디오로 듣기도 하고 컴퓨터에 스피커 두 개를 연결해
스테레오로 듣지만 음질이 별로라 자주 즐기지를 않다가
친구의 귀에 걸린 '블루투스 골전도 이어폰'을 들어보고 매력을
느껴 바로 구매를 했다.
갤럭시 버즈 이어폰은 귓구멍에 부담이 됐고, 골전도 이어폰을
보청기로 착각을 하여 웬 보청기가 그리 큰가 생각을 했었는데,
막상 이어폰을 사용해 보니 음질이 매우 좋고 주변에 소음피해를
전혀 주지 않는다.
사티 짐노페디의 하프연주곡이 끝나고, 오펜바흐의 1시간 짜리
'자클린의 눈물'이 시작된다.
가장 슬픈 첼로곡으로 알려진 '자클린의 눈물'이라,
첼로의 장중하고 무거운 선율이 나의 마음을 울린다.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경쾌함과는 또 다른 느낌을 주는
첼로연주곡에 이런 매력이 있었다는 걸 왜 몰랐을까.
음악에 깊은 조예(造詣)가 없었던 터라 골전도 이어폰은 나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다.
골전도 이어폰은 Tv의 '사운드 바' 음질과는 차원이 다르다.
스테레오의 완벽한 분리와 함께 아주 미세한 부분까지 잡아주는
음질에 감탄을 한다.
잠깐 손태진의 '백만송이 장미'를 듣는다.
최근 서너 달 동안 Tv 조선의 '미스터 트롯맨 2'와 mbn의
'불타는 트롯맨' 등 Tv에서 진행하는 트롯 경연대회를 시청했다.
가수들은 피나는 연습을 하고 최선을 다해 부른다.
그러나 트로트 특유의 꺾기와 기교 등 비슷비슷한 창법에 싫증이
나던 중,
뜻밖에 '불타는 트롯맨'에서 성악가 출신 손태진이 크로스오버
(crossover)로 트로트를 부르는 장면을 보며 신선한 충격을
받는다.
미스터 트롯 1에서 임영웅의 이야기하듯 담담하게 부르는
노래가 신선했고,
천상의 목소리라 불리는 성악가 출신 테너 김호중의 매력에
빠져 들었다.
미스 트롯에서 한(恨)이 서린 국악창법을 살짝 섞은 양지은의
노래와,
신미래의 레트로(retro) 창법에 반해 팬클럽에도 가입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묵직하고 장중한 목소리의 베이스 바리톤
'손태진'에 푹 빠졌다.
김호중의 음역대는 테너이고 손태진은 베이스 바리톤이다.
사실 성악계에서는 트로트를 싸구려 티 난다고 얕잡아봤다.
성악가 테너 박인수는 이동원 가수와 함께 국내 최초로 클래식과
대중음악을 접목시킨 크로스오버의 명곡인 '향수'를 탄생시켰다.
그 후 박인수는 클래식계에서 클래식 음악을 모욕했다며 비난을
받았으며, 심지어는 자신이 단장으로 내정된 국립 오페라단에서
제명을 당하는 수모를 당했다고 한다.
클래식은 대중음악과 다르다는 고정관념이 클래식계를 지배
했기에 성악은 일반에게 널리 사랑을 받지 못했고 일부 소수
계층에서만 사랑을 받았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엥카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뽕짝에서
시작한 트로트는 어찌 보면 싸구려 티가 났던 거도 사실이다.
대폿집 목로(木櫨)에서 주전자를 두드리며 불렸던 노래
대부분이 트로트였고,
가수들은 천편일률적으로 꺾기와 기교를 부려 조금만 들으면
금세 싫증이 나기도 했다.
후에 록과 포크, 발라드 풍이 인기를 끌다가 최근 들어 Tv의 경연
프로그램을 통해 트로트가 일반 대중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고,
손태진과 김호중, 양지은에 의해 새로운 트로트 장르(genre)가
탄생한 거다.
꽃에서 향기가 나듯이 이들의 노래에도 향기가 난다.
너무나 귀티 나고 품격 높은 목소리에 귀가 잔뜩 호강을 하면서
눈높이가 잔뜩 올라갔는지 웬만한 가수의 노래는 별로 듣지 않게
되었다.
21;00
길바닥과 물 웅덩이엔 떨어진 벚꽃이 하얀 수를 놓았고,
보기 흉한 색깔로 변한 목련 꽃잎이 처참한 모습을 보여준다.
맞은편에서 우산을 쓰지 않고 비를 맞으며 오는 여인과
마주치는데 그 여인도 골전도 이어폰을 귀에 걸었다.
사람은 누구나 시간 속에 살아가는 존재이다.
인간이 이 세상에 온다는 것은 시간과의 만남이며,
이 세상을 떠난다는 것은 시간과의 이별이다.
삶을 살아가며 늘 기쁨과 슬픔이 함께 하고,
때로는 기쁜 시간을 마음껏 누리려 하고 조금이라도 덜 슬프고자
시간을 잊으려 애쓰는 게 사람이다.
피아노곡 월광소나타가 끝나고 이어서 바이올린으로 연주하는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로 바뀐다.
빗속에서 들리는 음악은 또 하나의 시(詩)다.
비를 맞으며 천천히 소요음영(逍謠吟詠)을 하였더니 비로소
속화(俗化)되고 물화(物化)된 시간으로부터 풀려나 해방을 맛본다.
2023. 4. 6.
석천 흥만 졸필
첫댓글 나도 이번 생일선물로 골전도 이어폰 받는당~
축하혀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