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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영 명창. 사진제공=국립극장 |
지극한 효심의 상징 '심청' 설화가 해학과 현실 풍자를 더해 현대 감각으로 재해석, 관객들에게 새로운 물음을 던진다. 관객과 배우들이 한데 어우러진 신명나는 놀이 한마당이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펼쳐지고 있다.
1981년부터 서민들의 애환을 담은 마당놀이는 30년 동안 체육관과 천막극장을 누비며 250만관객 동원이라는 흥행몰이를 하며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2010년 이후 더 이상 공연되지 않았다. 그로부터 4년 만에 현대적 감각으로 돌아온 마당놀이 ‘심청이 온다’가 연일 만석을 이루며 지난해 12월10일부터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을 뜨겁게 달구었다.
11일까지 총 26회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심청이 온다’는 마당놀이의 거장인 손진책 미추 대표가 연출을 맡아 공연 전부터 문화계의 관심과 기대가 쏠린 작품. 손 대표와 함께 박범훈(작곡), 국수호(안무), 배삼식(각색) 등 원년 멤버들이 다시 뭉쳐 무대에 올린 이번 작품은 배우, 무용수, 연주자 등 출연진이 77명에 이르는 대형공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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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놀이 '심청이 온다'서 열연하고 있는 송재영 명창/사진제공=국립극장 |
출연진 가운데 심봉사로 캐스팅된 송재영 명창(53·전북도립국악원 창극단장‧법명 묘정). 송 명창은 이번 작품에서 바람기 많고 철없는 심봉사 역할을 맡았다.
“배우들의 재담과 익살은 관객을 쉴 틈 없이 빠져들게 하죠. 서로의 흥을 돋우면서 한바탕 어우러지는 마당놀이는 배우와 객석의 호흡이 제일 중요해요. 때문에 배우들은 공연 내내 관객들과 눈을 맞추고 말을 걸어야 해요. 마당놀이 특성상 사면이 터진 무대이기 때문에 배우의 숨소리까지 느낄 수 있지요.”
◇중학교 시절 약장수 공연 듣고 국악에 심취…예술고 진학해 국악인 꿈 키워
전북 임실에서 태어난 송 명창은 30여 년 가까이 국악 길을 걷고 지켜온 중견 명창이다.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던 그는 초등학교 당시 우연히 트랜지스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이름 모를 국악기 소리에 요즘말로 필이 꽂혔다.
“처음에는 그것이 무슨 악기인지 몰랐죠. 하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빨려 들어가는 묘한 매력이 있더라구요.나중에서야 알았지만 그것이 아쟁이더군요. 학교 장기자랑 때 다른 애들은 다 노래를 부르는 데 저만은 아쟁 소리를 입으로 내고 사극의 대사를 따라했죠. 생각해 보면 지금의 끼도 그때부터 생긴 것 같아요.”
그는 까까머리 중학교 시절 임실 오수 장터에서 울려 퍼진 약장수의 국악공연 소리를 듣고 매료돼 심취하기 시작했다. 이후 공부보다는 장터에서 열리는 공연을 따라다니는 것이 더 신났다. 그로인해 학업은 점차 소홀해졌다. 대신 소리에 대한 강한 동경심이 상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결국 가족들에게 폭탄 선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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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국립극장 |
“고등학교 때 국악을 한다고 말했다가 작은 아버지로부터 호된 꾸지람만 돌아왔죠. 당시만 해도 소리를 한다는 것은 엄두도 못할 일이었지요. 결국 가족들의 반응은 싸늘했죠. 그도 그럴 것이 훈장인 할아버지와 작은 아버지, 삼촌 등 교육자 집안의 엄격한 가풍 속에서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죠.”
그러나 장터에서 들었던 매력적인 소리는 이미 그의 마음 한 켠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림 공부를 위해 전주의 한 예술계 고교에 입학한 그였지만 학교에 창악부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의 마음은 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미술부에서 창악부로 전과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판소리와 무용, 농악을 배우고 자연스럽게 소리의 길로 접어 들었다.
◇이일주 명창 사사…2003년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명창부 장원
24세 때 본격적인 소리공부를 시작해 전북 판소리의 대모인 이일주 명창 문하로 들어가 ‘심청가’를 사사하며 소리를 연마했다. 그리고 전북도 지정 무형문화재 제2호 이일주 명창 ‘심청가’ 전수조교라는 타이틀까지 거머 쥐었다.
한량춤의 대가인 전북무형문화재 제17호 故 금파 김조균 선생에게 춤사위를 익혔고 박창규 선생에게 우도농악을 배웠다. 그 이후 수많은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이름 석자를 알리기 시작했다. 그 노력에 힘입어2003년에는 국악계 최고의 등용문인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에 출전해 명창부 장원으로 대통령상을 수상하며 명실공히 명창 반열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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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국립극장 |
그는 수많은 작품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으로 <어매 아리랑>, <견훤>, <청>을 꼽았다. <어매아리랑>은 2013년 전북도립국악원이 초연한 창작 창극으로 임실에서 6·25 한국전쟁 당시 아들을 잃고 고난과 격동의 세월을 살아온 한 어머니의 실화를 소재로 제작됐다. 관객의 성원에 힘입어 1년 뒤에는 리바이벌 됐으며 송 명창은 아들역인 ‘진수’로 출연했다.
2008년 세계소리축제 초청개막공연인 창극 <견훤>에서는 주연을 맡아 열연했다. 2010년 국립극장 국가브랜드 공연 <청>에서는 심봉사 역으로 출연해 절절한 소리와 탁월한 연기력으로 ‘조상현을 잇는 최고의 심봉사’라는 극찬을 받기도 했다.
◇할머니 따라 불교와 첫 인연…'부처님 일대기' 다룬 창극 제작해 순회공연 할 터
스승인 이일주 명창의 뒤를 이어 동초제(東超制)의 맥을 잇고 있는 그의 입에서 동초소리에 대한 애정이 묻어난다. “동초소리는 판소리의 한 계보로 논리적이고 극적인 부분을 더욱 극대화 시키는 것이 특징입니다.소리의 짜임자체가 이면에 부합한 소리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기승전결과 문맥이 굉장히 세련됐지요.”
지난 2011년 전북도립국악원 창극단장으로 부임한 송 명창은 ‘창작’과 ‘전통’을 병행한 창극의 대중화에 힘을 쏟으며 예술혼을 불사르고 있다. 결국 옛것과 현대를 접목시켜 대중에게 한 발짝 다가가겠다는 것.
현재 전주대 엔터테이먼트학과 외래강사, 전주 예술고 판소리 강사로 출강하면서 후학 소리꾼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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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국립극장 |
신심 깊은 할머니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불교를 접했고 청소년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불교에 귀의했다. 현재 참좋은 우리절 거사회 부회장과 홍보를 맡고 있는 그는 ‘낮춤’을 강조한다. 바로 ‘하심’이다.
“인생을 살면서 '하심'이라는 단어는 겸손이라고 생각해요. 누구한테든지 나를 낮추는 자세로 살고 싶은 마음입니다. 지금도 항상 이 두 글자를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어요.”
국악계에 몸담고 있는 불자로서 그는 “부처님 일대기를 창극으로 만들어 전국 순회공연을 하고 싶다”고 했다. “제 직업을 살려 부처님께 회향하는 것도 공덕이라고 생각해요. 예술 작품을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관객에게 한편의 극으로 전달할 수 있다면 불자의 한 사람으로서 더 없이 보람되고 뿌듯할 것 같아요.”
끝으로 그는 “진솔함과 열정으로 무대에서 관객과 함께 호흡하고 소통 하겠다”며 “국악에 대한 애정 어린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 송재영 명창은
1961년 전북 임실에서 태어났다.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판소리 명창부 장원 대통령상, 남원춘향제 전국명창대회 명창부 최우수상 문광부 장관상, 전주 전국고수대회 명고부 장원 국무총리상 등을 수상했다.
국립극장 및 소리문화의 전당 춘향가‧심청가‧흥보가 완창 발표회, 모스크바 국립음악원 초청 세계음악페스티벌 심청가 공연, <춘향 아씨>, <심청>, <놀부놈거동보소>, <삼룡아!>, <어매 아리랑> 각색 연출 및 대본을 맡았다.
전북 무형문화재 2호 이일주 명창 심청가 전수조교이며, 현재는 동초제 판소리보존회 부이사장, 전주대사습놀이 이사, 전주대 엔터테인먼트학과 외래강사, 전주 예술고 판소리 강사, 전북도립국악원 창극단장, 참좋은 우리절 거사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