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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10일(화) 마태복음 5:21~26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물' 새찬송가 284장 오랫동안 모든 죄 가운데 빠져
오늘은 마태복음 5:21~26 말씀을 중심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물’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형제들에게 노하는 자는 심판을 받을 것임으로 예물을 드리기 전에 원망하는 형제와 화목하고, 고발하는 자와는 화해하여 심판을 면하라고 하십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물’은 무엇일까 함께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특별히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데 오늘 본문은 그 ‘내면의 동기’를 강조합니다. 잠 4:23에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동기)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삶의 모든 것이 ‘동기’에서 발생하는 것이니 주님 앞에서 ‘동기’를 바르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일반적으로 세상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들의 동기는 대체적으로 ‘두려움과 복을 받기 위한 갈급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반 종교의 법칙은 벌을 면하고 복을 받기 위해입니다. 잘못을 저지르게 되면 벌을 받고, 거절당하며, 이미 얻은 복을 잃을까 봐 두려워서 선을 행하고 종교의 대상에게 예물을 드립니다. 반대로 복을 받고, 인정받으며, 허무한 인생에서 의미를 발견함으로써 탈출하기 위해, 또는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최선을 다하여 자신이 선택한 종교생활을 하는 것이지요. 우리도 십일조 생활을 하는데, 물질적인 축복을 받기 위해 십일조를 드리고 있지는 않은지? 주일성수를 하는데, 그것을 하지 않으면 사업이 망할까봐, 반대로 사업적인 축복을 받기 위해 주일성수를 하고 있지는 않은가? 구제라는 이름으로 예물을 드릴 때, 선한 동기보다는 그를 통해서 자신은 괜찮은 사람임을 스스로 증명하려고, 스스로 위로하려고 하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는 무슨 행동을 하든지 간에 그것을 하는 나의 참된 마음의 동기가 무엇인가를 점검해 봐야 합니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21절 말씀에 보시면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라고 합니다. 그 당시 바리새인들은 ‘살인하지 말라’라는 율법에 자신들의 해석을 추가해서 ‘살인하면 심판을 받는다’는 인간적인 해석으로 격하시킴으로서 말씀보다 자신들의 전통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전통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더 중요하다는 것은 말할 여지도 없을 뿐더러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 내면의 동기를 보십니다. 그래서 22절에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 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불’에 들어가게 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살인을 벌하지만, 예수님은 살인 이전에 속에서 들끓는 분노부터 다루십니다. 하나님은 분노가 곧 ‘살인’이라고 까지 말씀하십니다. 약1:20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성내는 일이 하나님의 뜻과 반대가 되며 하나님 나라를 이루지 못하게 하는 적대 행위라고 말씀합니다. 한편 22절의 ‘지옥불’은 히브리어로 ‘게힌놈’ 즉 힌놈의 골짜기란 말에서 나온 말인데요, 이 골짜기는 예루살렘 남쪽에 있는데, 이방신 몰록(Moloch)에게 인신 제사를 드린 곳이라고 합니다. 사람을 불태우는 제사는 하나님이 금지하신 것이었기에 요시아 왕이 이 의식을 폐지할 때 이 골짜기를 ‘각종 더러운 것과 죄인의 시체를 버리는 곳’으로 만들었습니다. 요시아 왕 시대 이후부터 1세기까지도 이 골짜기는 ‘쓰레기를 쌓아두는 곳’이었고, 그 ‘쓰레기를 태우는 연기와 불로 꽉 찬 곳’이었다고 합니다. 이 골짜기는 자연스럽게 ‘심판이 이루어지는 장소’를 상징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고 하는 자에 대해서도 말씀하는 데요. ‘라가’라는 말은 ‘텅 비고 무가치하고 우둔하며 어리석고 멍청하다’는 뜻입니다. ‘상대방의 인격을 매우 경멸한다’는 뜻으로 사용하는 일종의 ‘욕’이었습니다. 또한 ‘미련한 놈(모레)’이라는 말은 ‘라가’와 거의 같은 뜻으로, 헬라어로는 ‘어리석다’를 의미하지만, 히브리어로는 ‘도덕적 배신, 반란, 악’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형제’는 피를 나눈 실제 혈연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모든 타인을 뜻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노하면 심판을 받게 된다고 할 때, 이 심판은 우리의 내면의 문제를 다루므로 실제 재판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정’을 뜻합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타인을 욕하고 인격 모독하는 것은 마치 몰록의 제사에서 자녀를 불 속에 던지는 것처럼 가증스러운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내 옆의 누군가에게 ‘바보, 멍청이, 쓸모없는 놈’이라고 말하는 것은 바로 그의 인격이 가치가 없다는 것이며, 인간 쓰레기라는 것이므로, 요시아 왕이 몰록의 제사를 폐지하고 쓰레기장으로 만든 그 게힌놈 골짜기로 그를 던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자녀를 불 속에 던진 가증한 제사와 같은 것이며, 내가 욕하는 그 사람과 함께 나 자신을 그 골짜기로 던지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분노가 내 속에서 들끓을 때, 내 속에 몰록의 신상이 만들어진 것이 보입니다. 그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길 속으로 나를 화나게 한 사람을 욕하면서 집어던질 때, 사실은 나도 같이 집어던져져서 그 불길에 이글이글 타오르는 모습 말입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봅니다. 나는 반복적으로 형제나 자녀를 정죄하거나 열등감을 자극해서 상처를 주는 말이나 행동을 하지는 않습니까? 내 자식을 잔소리로 달달볶지는 않습니까? 또한 23~26절에서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예물을 말씀해 주고 있는데 그 예물은 우리가 드리는 헌금이나 봉사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23,24절에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형제와 화목하는 것이 예물을 드리는 일보다 더 급하다고 하십니다. 예수님 당시 어떤 제물이라도 효력이 있으려면 죄를 고백하고 그 죄를 보상해야 했습니다. 자신의 제물이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한 번 더 돌아가 화해하고 잘못한 것은 바로 잡아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리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아도 인간관계가 바르지 못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게 맺어지지 않은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지적하고 계십니다. 오늘날도 동일합니다. 사람이 아무리 열심을 가지고 기도하고 찬양해도 형제와 불화 관계에 있다면 그 예배는 하나님께 전혀 열납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드리러 갈 때 형제와 갈등이 있을 때는 반드시 먼저 화해하고 와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 서로가 다른 것뿐인데 틀렸다고 손가락질하고, 상대방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비판하고 정죄하는 모습이 너무나 많이 보입니다. 그런데 주일날이 되면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 경건한 모습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물론 예배가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인하지 않은 것에 자족하지 말고, 형제를 미워하며 살인한 우리를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먼저 회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의 끊어진 관계를 회복하고 화목해야 합니다. 사무엘상 15장에 하나님께서는 사무엘 선지자를 통하여 불순종한 사울왕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사울왕에게 아말렉 족속을 전멸하되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도 그렇게 하라고 했는데, 사울은 자신의 생각대로, 자신의 욕심대로 전리품 중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을 살려둡니다. 사울은 이 기름진 좋은 양과 소를 가지고 하나님께 제사 드리려고 남겨 두었다고 말합니다. 허울 좋은 말이지요, 변명에 불과합니다. 그때 사무엘은 사울의 중심, 마음의 동기를 지적하며 후벼파는 말을 합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다’(삼상 15:22) 아무리 예배가 귀하고, 헌금드리는 것이 귀하다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분노와 미움이라는 장애물이 제거되어야지만 그 예배와 예물이 진실로 가치 있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이 기뻐받으시는 예물을 드리기 위해 혹 나와 의견대립을 하는 가족이나 지체나 급히 화해할 일은 없습니까? 마음에 분노를 가지고 형제와 막혀진 담을 풀어야 할 일은 없습니까? 또한 내 안에 들여다 보아야 할 마음의 불순한 동기는 없습니까? 하나님과도 화목하고, 형제와도 화목한 저희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