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모르는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고 말 한다. 역사란 어제의 사건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결과를 초래했으며 내일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연구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일이, 나는 역사라고 생각한다. 지역사회의 발전이 원동력이 되어 국가의 발전이 이루어지듯이 지역사회 발전은 지역민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다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지역역사를 바로 알고 우리의 역량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제도면의 역사를 알아보고자 한다.
먼저 제도(諸島)란 말은 모을 제(諸), 섬 도(島)자로 섬을 모으다 의미로서 조선시대에 장흥군의 일원인 섬을 모아 관리하는 면이 장흥군 제도면(諸島面)이다.
조선시대 이전부터 제도면(諸島面)은 존재하여 왔으며 1759년(영조35)에 펴낸 「호구총수」(戶口總數)의 문헌에 나타난 자료를 살펴보면 제도면은 713호에 2,035명(남:1,025, 여:1,010)이며, 마을은 래덕도(來德島), 대평리(大平), 덕산리(德山), 평일도(平日島), 일정리(日丁), 도장리(都莊), 화전리(花田), 척치리(尺峙), 구도청리(舊都廳), 신도청리(新都廳), 동송리(東松), 월송리(月松), 백정포촌(伯亭浦村), 소랑도(小浪島), 감목정(甘木亭), 일산도(日山島), 읍구미(邑仇味), 용산리(龍山), 금이구리(金伊仇里), 유포리(柳浦), 가이도(加耳島), 어촌(漁村), 포촌(浦村) 23개 마을이고 장흥도호부의 관할 아래 있었다. 참고로 대흥면(大興面)은 754호에 1,822명(남:955,여:867)에 연지리, 가옥치, 율지리, 교동, 군서리, 양화동, 옹암리, 내저리, 신리, 계치, 상도청, 한동리, 산정리, 거정, 회령진, 진목리 16개 마을로 나타나고 있다.
근대 이후 1896년 2월 3일 칙령(勅令) 제13호로 장흥군이 관할하고 있던 제도면의 도서 중 장흥군의 육지에서 원거리에 위치하는 도서(島嶼) 중 평일도(平日島), 일정리(日丁), 도장리(都莊), 화전리(花田), 척치리(尺峙), 구도청리(舊都廳), 신도청리(新都廳), 동송리(東松), 월송리(月松), 백정포촌(伯亭浦村), 소랑도(小浪島), 감목정(甘木亭), 일산도(日山島), 읍구미(邑仇味), 용산리(龍山), 금이구리(金伊仇里), 유포리(柳浦), 가이도(加耳島), 어촌(漁村), 포촌(浦村) 20개 도서를 완도군에 넘겨주게 되는데, 이때 제도면은 래덕면(來德面)으로 변경되면서 래덕면(來德面)이 관할하는 마을은 덕산리(德山), 장산리(長山), 도청리(都廳), 노력도(老力島), 신기리(新基), 중리(中里), 상리(上里) 7개 마을이며, 대평리가 도청리로 변경되면서 현재의 대리가 래덕면의 소재지가 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어서 일제가 강제로 한국을 점령한 이후 1913년 12월 29일 부령 제11호의 부·군(府·郡) 면(面)을 면적의 비율로 폐합하는데 군은 약 40방리(方里), 10면 단위로 하였으며, 면(面)은 4방리로 하고 호수(戶數)는 약 800호를 최저로 하여 1914년 3월 1일 장흥군에 대흥면과 래덕면이 합하여 대흥면(大興面)의 앞자 대(大)자와 래덕면(來德面)의 덕(德)자가 합하여 대덕면(大德面)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 대덕면은 전두환씨가 1979년 10.26 사태로 박정희가 사망하자 12.12사태로 군부를 장악하고 1980년 5.18 광주민주화항쟁을 무력 진압한 이후 8월에 최규하 대통령이 하야(1980.8.16)하자 장충체육관에서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의 간접선거(1980.8.27)에 단독 출마해 대통령에 당선되어 취임(1980.9.1)한 이후, 1980년 10월 22일에 제5공화국 헌법 개정안이 국민투표에 확정되고 사회 유화책의 민심 수습차원으로 1980년 12월 1일 대덕면이 대덕읍으로 승격되고, 1981년 2월25일 대통령선거인단의 체육관선거에서 90.2%로 당선되어 12대 대통령에 취임하여 1985년 10월 19일 장흥군조례 제973호 회진출장소 신설 이관에 이어 1986년 4월 1일 회진출장소가 회진면사무소로 승격 분할되어 대덕읍과 회진면이 분구되어 현재의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의 완도군 금일읍, 생일면, 금당면은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원래 조선시대 이전부터 장흥군의 관할 하의 제도면(諸島面)이었고, 1980년도 말까지 육지로 나오는 겸능호 등 여객선이 유일하게 회진항으로 왕래했던 곳이며(회진항의 뱃고동 소리 참고. 이제석), 현재는 노력도에서 금당도로 여객선만 운항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2019. 9. 21 목포 kbs방송)에 장흥군 안양수문에서 녹동으로 연륙교를 추진하면서 현재 타당성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보도 되었다. 당초 지난 총선(2016년)에서 민주당의 국회의원 후보에게 뜻있는 우리 지역민과 금당도 지역민의 건의로 회진면 노력도에서 금당도를 연결하는 공약을 발표하였는데 이런 논의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리고 현재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없는 것 같고 제도면의 역사도 잘 알고 있지 못한 것 같다.
현재 녹동에서 소록도 거금도가 연륙되어 있으며 앞으로도 거금도에서 금당도 생일도 약산도를 연결하는 장기적인 정부계획이 수립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회진 대리에서나 노력도에서 금당도로 연륙이 된다면 옛 장흥군의 제도면을 찾는 일이 될 것이며, 장흥군 발전의 크나큰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면서 이제라도 우리 지역의 역사를 바로 알고 책임 있고 뜻있는 지역 분들이 앞장서서 왜 회진에서 금당도로 연륙해야 되는지 사업의 필요성을 연구하고 노력해야 될 시기가 아닌가 생각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