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과 '찬송가'는 다른가요? 두말하면 잔소리입니다. 영어로 '찬송'은 'praise'이고 '찬송가'는 'Hymn'입니다. '찬송(찬양, 찬미, praise)'은 결코 음악적인 용어가 아니지만 '찬송가(Hymn)'는 음악적인 용어입니다. 영어에선 이 두 가지가 분명하게 구분됩니다.
찬송가는 무엇입니까? 바로 찬송이라는 말에 '가(歌:노래,song)'이라는 글자가 더해진 말입니다. 이것을 풀이하면 바로 이 말입니다.
[(어떤 대상을)찬송(찬양, 찬미, 칭찬)하는 노래]기독교에서 말하는 '찬송가'는 '하나님(혹은 구세주)을 어떤 형태로든 격찬하고 칭송하고 자랑하는 내용이 담긴 노래'를 말합니다. '찬송'은 노래와 상관없지만 '찬송가'는 노래입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교회에선 언제부턴가 이 두 가지 개념에 혼란을 일으키고 말았고, 지금은 이것을 바로 잡기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그 혼돈이 깊어진 상태입니다. "하나님을 찬송합시다."라고 하면 거의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노래를 부를 준비를 하지 노래 이외의 방법으로 하나님을 찬송(praise:격찬, 자랑, 칭송)할 생각은 꿈에도 없습니다. 그런 게 있는지 아예 상상조차 못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한국교회들이 말하는 [찬송가]의 개념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오직 이것, 즉 찬송가공회에서 엄선하여 편집한 558곡, 이것만이 [찬송가]입니다. 그렇다면 그 588곡 이외의 모든 기독교 성가들은 무엇일까요? 한국교회에선 그 노래들은 죄다 [복음성가]라고 합니다. 그 노래들이 [복음성가]로 된 유일한 이유는 한국 찬송가공회에서 결정한 558곡에 포함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렇게 해서 [복음성가]로 분류된 모든 성가들(558곡을 제외한)은 어떤 취급을 받습니까? 이 노래들은 558곡의 신성하고 거룩한 [찬송가]보다 저급하고 덜 거룩하고 유치하고 저차원의 노래들이라서 공식 예배 때는 '절대'불러서는 안 되는 노래들로 강력한 제재를 받아 왔습니다. [복음성가]를 어떻게 거룩한 예배 때 하나님 앞에서 부를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식의 지식은, 아는 바로는 적어도 전 세계에서 우리 한국교회가 유일한 듯합니다. 대단한 주체성이요 독창성인 것입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그것이 대단히 위험하고 극단적인 편견이요 오류 하는 사실입니다. 세계 어느 교회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하나님께 대한 노래들)기독교 성가)'을 오직 558곡의 [찬송가]와 나머지 [복음성가]로 이원화시켜 그 거룩 성과 용도에 차별을 두는 교회는 없습니다. 그리고 극히 일부 국내 곡(13곡)을 제외하고는 공용 찬송가집에 수록된 곡들이 전부가 오직 1938년 이전에 작사 작곡 되어진 노래들로만 구성된 교회들도 없을 것입니다. 다만 한국교회만이 그럴 뿐입니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고 신앙생활을 영위하는 데 있어 558곡만의 [찬송가]로도 충분합니다. 아니 그보다 형편없이 적거나 아예 없더라도 문제가 안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왜 앞에서 우리 한국교회의 [찬송가지식이 '위험한 편견'이라고 하였을까요? 그것은 '558곡의 신성한 찬송가'만을 강조하는 분들이, 그 558곡 이외의 귀한 성가들을 (혹은 그 노래들을 부르는 성도들을) 천박하고 저속히 여기거나 정죄하는 죄를 범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무서운 죄입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가장 큰 문제는 '찬송(찬양, 찬미)'과 '찬송가'의 올바른 개념과 참 의미를 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교회에선 언제부턴가 [찬송가]라는 말을 신학적, 음악적, 국문학적 점검을 거쳐 엄선한 558곡만을 가리키는 고유명사로 인식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류입니다. [찬송가(Hymn)]는, 하나님을 격찬하고 자랑하고 칭송하는 내용의 모든 노래들(songs)을 총체적으로 일컫는 일반명사(一般名辭)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 세상에는 수 천 수 만곡의 [찬송가]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성경책과 함께 가지고 다니는 '찬송가'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찬송가]가운데 뽑고 뽑아서 단지 558곡만으로 묶어서 "자, 우선 이것으로 우리 한국교회들이 통일적으로 사용하자"고 약속한 악보집일 뿐입니다. 그것만이 거룩한 [찬송가]인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두고 보십시오. 앞으로 머지않아 새로운 공용 '찬송가집(Hymn Book)'을 편집하게 될 땐 한국교회에서 지금가지 예배 중에 '절대' 불러서는 안되는 저급한 노래들이라고 멸시했던 소위 '복음성가'들 가운데 많은 곡이 포함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어제까지는 덜 거룩하고 저급한 노래(복음성가)였는데 오늘 갑자기 거룩한 [찬송가]로 변하게 되는 것일까요?
혹 어떤 이들은 "복음성가를 예배 중에 못 부르게 하는 것은 그 노래들이 저급해서가 아니라 [복음성가]는 '인간이 인간들을 향해 부르는 노래'이기 때문에 못 부르게 하는 것이지요. 예배는 오직 하나님만을 향하여 드리는 것이잖아요. 뭘 모르면서 자꾸 삐딱하게 보십니까?"라고 항변합니다. 언뜻 대단히 옳아 보이지만 이 항변은 많은 모순점을 안고 있습니다.
첫째는, 이 분이 말하는 '복음성가'가 만약 558곡짜리 '찬송가' 이외의 모든 성가들을 지칭하는 것이라면 위의 항변은 사실이 아닙니다. 저는 최근에 [찬미예수 1500]이라는 성가 악보집을 편집하였는데 여기에 수록된 1500여곡 가운데 적어도 절반 가까이는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향하여'아뢰고 고백하는 노래들이었습니다. 그 직접 대상이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셨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위의 항변은 분명한 오류입니다.
둘째로는, 이 분이 말하는 '복음성가'가 정말 본질적인 의미에서의 [복음성가-즉 인간이 인간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소개하고 회심을 촉구하며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고 권고하는 수평적 노래]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이 또한 모순을 안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한국교회 공용 통일 '찬송가' 558곡 가운데 60% 이상이 바로 이런 노래들, 즉 전형적인 [복음성가]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자 근래에 어떤 분들은 "어? 그렇네. 그렇다면 558곡 안에 들어있는 그런 노래(수평적 복음성가)들도 예배 때 부르지 않도록 하자"라고 주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예배 때 부를 수 있는 노래들)인간이 하나님께 직접 아뢰는 노래)은 그 수가 558곡 중에서도 기껏 100여곡도 안 되게 됩니다.
이것도 아닌 것 같으니 또 어떤 분들은 "아니다. 찬송가 558곡 안에 포함된 복음 성가들은 요즘 복음성가들과는 차원이 달라서 예배 중에 불러도 된다. 찬송가에 포함된 것만 봐도 그렇지 않느냐. 이곡들은 그래서 '복음성가(Gospel songs)'가 아니고 '복음 찬송가(Gospel Hymns)'라고 하는 곡들이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분들께 "그러면, 지금 통일 찬송가집에는 편집당시 포함된 국내곡 13곡 외에는 1938년도 작곡된 곡이 최신(?)곡인데, 그렇다면 1938년 이후에는 더 이상 수준 높고 거룩한 노래들이 만들어지지 않았느냐?"라고 물으면 묵묵부답입니다.
왜 이런 상황이 되었을까요?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우리 한국교회가 '찬송가'라는 명칭에서의 '찬송'이라는 단어를 본질적인 의미, 즉 영어에서의 'praise-격찬하다, 자랑하다'와 꼭 같은 의미로 해석해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찬송. 찬양'이라는 말을 음악용어가 아닌, 다른 대상을 격찬하며 자랑하다. 라는 본래의 의미로 정확히 해석해 주기만 하여도 지금 한국교회 내에서 교회음악을 가지고 벌이고 있는 수많은 논쟁들의 상당수는 쉽게 해결될 수 있을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우리의 창조주이시고 구원자이신 하나님을(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격찬하고 자랑하고 칭송하려고 정해진 시간에 한 자리에 모였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우리의 입에선 어떤 고백들이 터져 나올 것이며 우리가 내 보이는 감정적 표현과 행동은 어떤 모습일까요?
그리고 바로 그 고백들에 음악적인 멜로디를 붙였다면 그 노래들은 어떤 가사내용을 지녔을 것이며 우리는 어떤 반응으로 그 노래들을 부르게 될까요?
바로 그것이 [찬송가(중국에선 찬양가, 일본에선 찬미가)]이거늘...